과거 냉전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하면 세계가 멸망한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핵무기를 한번 사용했던 제2차세계대전의 무서움을 세계인들은 충분히 보았기 때문에 세계 최강국인 두 나라가 혹시라도 핵무기를 모두 동원해 치킨게임이라도 벌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에 약소국가들은 두 나라의 대립에 바짝 긴장하곤 했습니다. 오래된 기억입니다만 어떤 영화는 어린아이들이 장난삼아 미국 국방부를 해킹하고 게임인 줄 알고 전쟁을 하다 세계대전을 일으킬 뻔했다는 내용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만약 핵무기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누군가가 미쳐서 실수로 혹은 의도적으로 핵무기를 발사한다면 그대로 세계는 멸망하고 말겠죠.
혹시 모를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는 핵무기에 대한 권한을 최대한 쪼개고 나누는 것입니다. 사용을 결정하는 과정도 복잡하지만 행여 결정했다고 쳐도 투하 과정까지 많은 단계와 결재를 거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핵전쟁을 원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겠어?'라는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핵폭탄을 투하해서 상대국가를 전멸하자는 '미친 놈'은 의외로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힘을 조각조각내는 이런 장치는 핵무기 뿐만 아니라 다른 권력에도 모두 적용
해야 하는 원리죠. 한사람에게 힘을 집중시킨다는 것 만큼 위험한 일이 없습니다.
'쓰리데이즈'의 김도진(최원영)은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정성들여 플라스틱 조각을 하나하나 깨끗하게 분리하고 색칠하는 모습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와 똑같습니다. 재벌총수인 그가 '아빠'에게 물려받은 재신그룹의 힘을 다루는 방식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권력에 대한 가치관이 미성숙한 김도진 혼자일 때는 일개 재벌총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부서트리듯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재신그룹 뿐이었다면 그럭저럭 누군가는 김도진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진 재벌 총수도 정치나 군사를 쉽게 좌지우지 할 순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미친 놈'이 하나가 아닌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넷이 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 니다. 재벌을 규제해야할 정치인이 재벌에 종속되고 정치 경제와 분리되어야할 군인이 정치인과 손을 잡고 국가 안전에 관한 정보를 감시 감독해야할 국정원이 음모론의 주체가 되어 조각조각 나누어져 있어야할 힘이 한 곳으로 뭉치면 절대로 일어날 리없다고 생각했던 참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요직에 '미친 놈'이 하나쯤 있는 것은 괜찮은데 '미친 놈' 하나가 아닌 둘 이상만 되어도 얼마든지 문제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쓰리데이즈'에는 적어도 넷 이상이 똘똘 뭉쳐서 힘을 주무릅니다.
그들도 처음부터 김도진과 같은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들도 힘을 내 뜻대로 제어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잠깐 손을 잡으면 나중에는 내가 그 힘의 일부가 되어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동휘(손현주) 대통령도 팔콘사의 컨설턴트로 양진리 사건을 제안할 때 민간인에겐 피해가 없을 것이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이런 일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정치적 이상을 가지고 있던 신규진(윤제문) 비서실장도 비슷한 착각에 빠졌지만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죠. 참모총장 권재연(정원중), 여당대표 민현기(남명렬), 국정원장 변태훈도 제거당합니다.
독재와 권력 집중이 위험한 것은 드라마 속에서 보여준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이 아니라도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일을 추진한다는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결정 권한을 견제해야할 집단이 한곳에 뭉치면 일처리는 쉬워질지 몰라도 부정부패 부담은 훨씬 커집니다. 왕정국가가 아닌 현대사회의 민주주의 국가가 권력을 애써 분리한 것은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특정 집단과 개인의 장난감이 될 수 없도록 만드는 안전장치이기도 합니다. 극단적으로 핵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내 이익 때문에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미친 일 -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기 때문에 김도진의 '미친 짓'이 더욱 아찔한 것이죠.
이동휘 회장이 신임 재벌 총수가 된 김도진에게 농담을 했던 것 - 엄청난 돈을 벌고 싶으면 한국에 제 2의 IMF 사태를 일으키라는 농담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재벌총수가 되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김도진은 그 농담을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 현실화시켰습니다. 최근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외국 몇몇 국가도 그렇지만 한국 사회 여기저기에서도 권력이 한곳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죠. 그들이 일단 한번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대통령도 국민들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 개개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힘은 반드시 분산되어야할 이유가 있는 셈
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2009)'에서 최원영이란 배우를 처음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신라에 맞서는 계백 장군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백년의 유산(2013)'에서 마마보이 역할을 인상적으로 소화했던 기억도 납니다. 많은 팬들이 찌찔한 마마보이가 저렇게 매력적이기도 힘들 거라고 했었습니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마치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모든 일을 진행시키는 김도진은 자신이 가진 힘의 본질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말에 복종하고 설득하면 따라올 것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김도진 자신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그것이 힘의 매력이기 때문
이죠. 최원영이 보여준 천진난만한(?) 파워게임이 섬뜩하고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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