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복수극이라는 포맷은 주인공의 감정을 격앙시킬 수 있는 훌륭한 이유가 될 수 있는 동시에 자칫 드라마를 뻔한 막장 드라마로 만들기 쉬운 장치이기도 합니다. 보는 사람들을 전혀 납득시킬 수 없는 유치한 복수극은 시청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오히려 짜증을 유발하기 마련이죠. 그래서 많은 복수극들이 '미스터리'를 추가시키고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악역을 덧붙입니다. '호텔킹'은 호텔상속녀인 여주인공 아모네(이다해)와 자신을 호텔 전회장의 아들로 알고 있는 총지배인 차재완(이동욱), 악역 이중구(이덕화)의 미스터리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캐릭터 백미녀(김해숙)를 중심으로 호텔상속을 둘러싼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1회부터 3회까지 지켜본 아모네는 호감이 가기 보다는 짜증을 유발하는 캐릭터 입니다.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수차례 납치될 뻔했고 목숨을 위협받은 아모네는 사방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본능적으로 차재완을 비롯한 이중구 부회장이 아버지 아성원(최상훈)의 적이라고 느끼고 있지만 적의를 드러냈다간 더 위험해질 수도 있고 일을 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에 호텔 진상 역할을 합니다. 깜찍하고 발랄한 4차원 캐릭터가 멋대로 행패를 부리는 척 맘대로 행동하면서 이중구와 차재완의 뒷통수를 치는 거죠.
사람들이 흔히 복수 하면 치밀하고 계획적인 전개를 예상하고 또 복수극의 또다른 재미중 하나는 박력있게 치고 나가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아모네의 말썽부리기는 어쩐지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느껴집니다. 그 덕분에 백미녀는 뒷탈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아모네를 대신해 CCTV 기록을 지워주기도 했고 '사고치기 전에 신호 정도는 보내달라'고 합니다. 메이드 복장으로 왕리친(나광훈)을 접대중인 차재완에게 뛰어드는 아모네에게 경고하는 인물도 바로 백미녀죠. 그만큼 아모네의 복수는 안쓰러우면서도 엉성해서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합니다.
반면 차재완은 첫등장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습니다. 할렘가의 소년으로 동생을 지키려다 죽도록 얻어맞는 제이든은 무슨 일이든 계획대로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집념이 대단합니다. 자신을 구해준 이중구에게 복종하며 최고의 호텔리어로 성장하고 아성원 회장이 스카우트할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아버지로 알고 있는 아성원 회장을 증오하면서도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자살하는 모습에는 연민을 보이고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캐려 무리하는 아모네에게 동정을 보이죠. 오빠의 시선으로 봤을 때 아버지의 호텔을 물려받겠다는 그녀가 기가 막힌 것같기도 합니다.
차재완은 개 아모네는 고양이 흥미로운 캐릭터의 배치
차재완은 호텔 업무를 방해하는 아모네에게 짜증이 나면서도 응석부리듯 휘젓고 다니는 아모네에게 그래도 세상에 한 사람 밖에 없는 핏줄이란 감정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죽은 새를 보고 주저앉아 눈물흘리는 아모네를 쓰다듬어주며 위로한 것도 그런 감정이었죠. '호텔킹'은 그런 차재완을 사냥개와 비유합니다. 지난주에 커다란 검은 개를 끌고 산책하던 이중구는 개가 새를 잡아오자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으며 칭찬합니다. 그러나 개는 사냥을 위한 수단일 뿐 가족도 아니고 집안에 같이 살지도 않죠.
이중구 회장은 그렇게 오래 차재완을 친절하게 대해왔으면서도 차재완을 개와 동등하게 취급합니다. 재완을 칭찬할 때는 환하게 웃으며 칭찬하고 일을 시킬 때는 냉정한 모습이 개를 훈련시키는 방법과 똑같습니다. '나는 네 주인'임을 잊지말라고 못박고 딸인 다배(서이안)가 만든 음식은 가족에게 대접해도 되지만 남에게는 안된다며 선을 긋습니다. 차재완의 캐릭터는 어릴 때부터 사냥개와 비슷하게 포지셔닝된 것 입니다. 반면 그런가 하면 아모네의 캐릭터는 차재완에 의해 고양이로 묘사됩니다.
침대 위에 올려진 죽은 새를 보고 겁먹은 아모네는 자신을 위로하는 차재완을 사납게 내보내고 선우현(임슬옹)을 불러 억지로 신발정리를 시키고 잠이 듭니다. 차재완은 새를 무서워한다는 말을 했던 아모네와 사냥개가 잡은 새를 치운 이중구를 생각하며 홀로 술을 마시다 길고양이 한머리를 봅니다. 그리고 슬쩍 자신이 먹던 안주접시를 내밀어놓고 안으로 들어가버리죠. 적극적으로 먹이를 준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안주 접시의 먹이를 먹도록 피해준 것입니다. 차재완이 여동생 아모네를 위해 몰래 움직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인 듯 합니다.
한쪽은 믿음직한 사냥개처럼 한번 정한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한쪽은 앙칼진 고양이처럼 할퀴고 공격하지만 두 사람 모두 여린 속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선 비슷합니다. 아성원과 아주 젊을 때부터 친했고 집에서도 가정적인 이중구 회장이 아성원에게 원한을 가지게 된 동기와 차재완을 데리고 온 이유 등 이 드라마에는 미스터리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 끝내는 한편이 되어야할 아모네와 차재완의 성격을 그렇게 대조적으로 설정한 것은 서로의 호의를 다르게 해석할 수 밖에 없는 둘의 대조적인 성격과 입장을 강조하기 위해서 겠죠. 캐릭터의 대립이란 재미와 더불어 미래에 대한 암시인 셈입니다.
차재완의 엄마인 백미현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성원, 이중구와 관련이 있는 인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미현이 누구의 엄마인가에 따라 백미녀는 아모네 또는 차재완의 이모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중구는 재완의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왜 아성원에게 잔인한 복수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지 숨기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아모네에게 협력하지만 차재완에게 도움을 줄 이유가 충분히 있는 캐릭터가 바로 백미녀라는 뜻이죠. 넓게 보면 아성원을 죽음으로 몰고갔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꼼꼼하게 호텔을 파악하고 휘어잡고 있는 이유도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조만간 남매가 아님이 밝혀저 러브라인이 시작될 차재완과 아모네, 그리고 그 정체가 미스터리한 백미녀와 속셈을 알 수 없는 이중구의 이야기 이 정도면 복수극의 시나리오는 충분히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중구는 차재완에게 왜 무슨 이유로 아성원의 아들이란 거짓말을 했으며 어디서 어디까지가 거짓말일까요. 특히 '개와 고양이' 관계로 설정된 차재완과 아모네는 8년전에 한번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이동욱과 이다해라서 그런지 더욱 기대가 됩니다. 요즘 방송중인 주말드라마 중에는 가장 흥미로운 드라마가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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