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패자 아닌 혁명가로 다시 태어난 정도전

Shain 2014. 6. 3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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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이 죽고 난 후 이성계와 이방원에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역사에 관심없는 분들이라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성계는 개국공신들과 동생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태종 이방원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은 신덕왕후의 유일한 소생인 경순공주를 출가시키고 궁을 떠나버립니다. 그 때문에 보내기만 하면 죽는다는 함흥차사와 태조가 태종을 활을 쏘아 죽이려 했으나 하륜의 조언으로 굵은 기둥을 설치한 덕분에 살았다는 야사가 전해졌습니다. 태종은 늙어서 기운 빠진 아버지를 걱정했다기 보다 이성계가 전국을 떠돌며 민심을 동요시키고 신덕왕후 강씨의 친척이 일으킨 '조사의 난'이 이성계의 반란이란 말까지 나오자 정치적으로 이성계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던 것같습니다. 가족을 가장 경계해야하는 이성계 집안의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방원아 민본의 대업은 계속될 것이다' 패자 아닌 혁명가 정도전.


아시다시피 조선 초기의 역사는 승자 이방원의 시점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나 드라마 '정도전'은 조선 건국을 정도전(조재현)의 입장에서 재해석합니다. 그 덕분에 간신이자 권력싸움의 패자였던 정도전은 그 시대로서는 드물게 민본(民本)을 주장한 혁명가로 다시 탄생했습니다. 어떤 인물이 혁명가라는 것은 파워게임의 승자란 뜻이 아닙니다. 권력을 갖는 자체가 혁명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방원(안재모), 수양대군처럼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은 권력을 쥐지만 혁명 즉 정도전의 표현대로라면 '대업'의 목적은 권력이 아닌 변화 입니다. 


'정도전'은 사극으로서 기록된 역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들을 드라마틱한 캐릭터로 묘사합니다. 실제 기록상으로도 이성계(유동근)는 전쟁터에서 뼈가 굵은 대단한 장군으로 타고난 통솔력과 대담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해서는 치밀하지 않은 면이 있었습니다. 위화도 회군과 조선 개국을 이뤄낸 인물임에도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해보이지는 않습니다. 드라마는 이런 이성계를 백성들을 사랑하는 여린 마음의 군주로 묘사합니다. 양지(강예솔)의 무덤에 가죽을 덮어주고 성계탕을 퍼먹으며 눈물을 뚝뚝흘리는 이성계는 어쩐지 측은합니다. 용상은 지옥의 불구덩이이라고 외치는 그는 불행해 보입니다.


'용상은 지옥의 불구덩이'라는 저주는 이방원도 피해가지 못했다.


반면 이방원은 신진사대부이자 유학자로서 정도전이 말하는 '개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이나 다섯째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형들을 제치고 대세가 될 정도로 야심많은 인물입니다. 원경왕후(고나은)와 함께 정도전을 도모하고 형제들을 죽이는 이방원은 권력을 꿈꾸던 그 시대의 흔한 영웅입니다. 이방원도 정권을 잡고 나서는 진시황제가 그랬듯 주변을 경계했고 파워게임이 일어날까 두려워 처가 식구들과 사돈을 모두 숙청해 버립니다. 경복궁에서 부엉이 소리를 피해 잠자리를 옮겼다고 할 만큼 예민해진 이방원은 절대권력자의 함정에 빠집니다. 


역사 속 정도전은 비참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 500여년의 시간 시간 동안 역적으로 불리고 그 무덤도 찾을 수 없는 패자지만 드라마의 정도전은 실패한 혁명가로 그 최후가 그려집니다. 이방원이 조선 건국 세력인 조준(전현)같은 사대부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는지는 아니면 왕권이 목적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드라마 속 묘사대로 정도전의 업적을 폄하하면서도 그의 정책 대부분을 수용합니다. 혁명가 정도전 - 정도전의 목적이 오로지 '권력'이었다면 이미 예전에 이방원을 제거했을 것이란 점에는 수긍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이방원은 쿠데타를 일으킨 반역자고 정도전은 혁명가인 셈입니다.









냉소와 절망을 혁파하고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드라마에서는 대를 잇게 하라며 이방원이 살려준 것으로 나오지만 정도전의 아들 정진(김정민)은 사실 이성계를 수행 중이었기 때문에 죽일 수 없었던 것같습니다. 칼을 차고 들어선 드라마 속 모습과는 다르게 이방원이 차마 아버지 앞에서 칼을 휘두를 수는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정도전의 큰아들과 이방원의 나이 차이가 얼마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친분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나중에는 주변의 눈 때문에 죽일래야 죽일 수가 없었겠죠. 수군으로 충군되었다가 1407년 복직하여 세종 때는 형조판서까지 오릅니다. 정진은 업적이 폄하된 '역적'의 자식치고는 상당히 잘 나갔습니다.


정도전과 이방원은 어떻게 달랐을까? 가장 중요한 차이는 혁명?


혁명이라는 말은 현대 사회에서 '색깔론'으로 공격당하기 알맞습니다. '혁명' 자체가 집권 체제에 반기를 드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혁명'은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개혁'과 달리 급진적인 변화로 사회, 정치를 확 바꿔버리는 점 때문에 피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혁명가들이 목숨을 잃었죠. 정도전은 한때 이성계와 함께 역성혁명을 성공시킨 승자로서 그를 권력을 탐한 반역자로 볼 것이냐 혁명을 꿈꾼 혁명가로 볼 것이냐 하는 부분은 개인 마다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같은 행동이라도 다양하게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원나라 사신을 맞는 영접사로 지목되었을 때 '사신의 머리를 베겠다'며 반발한 일이나 농업생산력 증대에 힘쓰고 현대사회의 토지공개념과 비슷한 토지 사유 금지를 내세워 전제 개혁을 추진한 일 등을 비추어볼 때 명나라에 무조건 굽히고 귀족들의 이속을 중시하던 그 시대 귀족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졌음은 분명합니다. 후세에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선택으로 폄하된 왕자들의 사병혁파나 신덕왕후(이일화)의 아들 이방석(박준목) 세자 책봉도 어떻게 보면 혁명 뒤에 안정된 정치를 위해 필요한 선택이죠. 이 부분은 태종 이방원이 세 아들 중 세종을 선택한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실패한 혁명가 정도전. 조선시대를 통해 비춰본 현대사회의 정치.


드라마 '정도전'에서 묘사된 역사적 사실은 대부분 사서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자칫 평면적으로 흐르기 쉬운 사서 속 역사를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가장 현대적으로 해석했고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치적으로 재구성했다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진사대부들과 권문세족의 대립은 친명과 친원이란 면에서도 해석이 되지만 합리와 불합리의 대결, 야당과 여당, 진보와 보수의 갈등도 연상됩니다. 드라마틱한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인들이 역사적 패자 정도전의 어떤 장점을 취해야할 것인지 그 답을 보여줍니다. 그 시대에 이미 '민본'을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덤도 없이 야산에 버려진 정도전은 마지막 장면에 군사들 앞에서 자신의 대업을 이야기합니다. '민본의 이상을 실현하고 백성 모두가 군자가 되어 사는 대동의 세상을 만들자'는 주장과 '냉소와 절망, 나태와 무기력을 혁파하고 저 마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대업. 진정한 대업이다'이라는 대사는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정도전이라는 캐릭터의 핵심적인 주장인 동시에 우리가 역사 속에서 짚어내야할 교훈인 셈이죠. 승자인 이방원이 혁명의 배신자가 되고 패자인 정도전이 혁명의 상징이 되는 모습에 여운이 남습니다.


이 시대에도 '대업'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한 왕권을 꿈꾸던 태종 이방원을 묘사한 '용의 눈물(1996)'이 권력자 입장에서 역사를 보던 시대의 사극이었다면 고려의 유배지에서 백성들의 삶을 직접 겪고 토지 개혁을 시도한 정도전은 민중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성혁명입니다. 백성이 원하는 대업은 역사 속에서 수없이 권력 앞에 쓰러졌습니다. 엔딩 장면을 보며 이 시대에도 '대업'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사극을 좋아하는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정도전'은 정사에 충실하면서도 역사를 보는 관점을 바꿨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극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훌륭한 드라마를 남겨준 제작진과 연기자들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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