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는 전형적인 무장으로 상당히 체격이 컸습니다. 아들 중에는 젊을 때부터 전쟁터를 따라다닌 이방과(정종)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아 기골이 장대했는데 이방원은 그런 글귀가 보이지 않고 문과에 급제한 것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사람이 모든 것에 뛰어날 수는 없으니 이성계가 궁궐의 작명, 각종 제도와 서적 편찬을 정도전에게 맡길 수 밖에 상황이나 정종이 왕위에 욕심내지 않고 이방원에게 자리를 물려준 속사정을 이해할만도 합니다. 적어도 그들은 남에게 맡겨야할 일과 내가 직접 해야할 일의 차이를 알았던 거지요. 어쨌든 함경도 사투리쓰는 태조 이성계(유동근)는 경복궁에 훈신들을 불러모아 흥겨운 연회를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395년 10월 30일의 일입니다.
인간 이성계와 인간 정도전(조재현)이 나라를 세우고 세자를 책봉하고 궁궐을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랐던가.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친구와 스승, 선배를 배신하고 죽였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환갑도 보지 못하고 일찍 죽던 시절이니 이성계의 나이가 결코 적지 않습니다만 전쟁과 정치적 대립을 이겨내고 그 자리까지 온 사람들을 보며기뻐하고 흥겨워합니다. 경복궁 연회는 그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노력을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정도전에게 직접 지은 노래에 맞춰 상의를 탈의하고 춤추게 했다는 이성계는 그날 만큼은 그렇게 충분히 기뻐할만 했을 것입니다.
정도전은 알고 보면 서울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입니다. 근정전, 사정전을 비롯한 궁의 이름도 지었지만 직접 한양 도성을 설계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숭례문, 돈의문을 비롯한 도성문의 이름과 종묘, 사대로의 위치가 모두 정도전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儒宗功宗(유종공종)' 즉 유학에도 으뜸이지만 나라를 세운 공도 최고라는 이성계의 어필은 과찬이 아닌 셈입니다(평택 문헌사 현판에 이 글씨가 있습니다). 더불어 '오래 살라'는 뜻으로 정도전에게 거북무늬가 그려진 갑옷 즉 귀갑구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권력이 강하면 그늘도 짙은 법. 조선의 역사를 아는 시청자들은 1395년의 이 연회가 정도전으로서는 거의 마지막 영광 되리란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정치는 권력을 얻기 위한 대립과 갈등의 연속입니다. 이인임(박영규)이 공민왕(김명수)을 죽이고 이성계가 최영(서인석)과 우왕(박진우)을 죽이고, 정도전이 이인임과 여러 사대부들을 제거했듯이 그들의 업보는 고스란히 이방원(안재모)에게 대물림될 것입니다. 나중에는 이념을 위해 정적을 제거했거나 왕권이라는 욕망을 위해 사람을 죽인 것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아는 정치 아닐까요.
이인임에게는 정도전이, 정도전에게는 이숙번이
과전법을 주장한 정도전의 민본사상은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아도 획기적이며 법학, 경제학, 도시설계 등 여러 면에서 재능을 보인 그의 열의는 현대인도 쉽게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천재적입니다.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고도 그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것을 보면 세자자리를 이방석(박준목)에게 넘겨주었다는 것 빼면 시스템 자체에는 불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다만 신덕왕후(이일화)를 첩으로 강등시키고 정도전 역시 서자로 깎아내린 것은 왕권에 아무도 도전하지 못하게하려는 이방원 나름의 조치였겠죠. 나중엔 처가와 사돈 가족도 다 죽여버립니다.
드라마 속 한 장면이지만 이인임이 정도전과 이성계에게 남긴 유언은 내심 노련한 정치인의 마지막 진심이 담긴 충고로 들립니다. 정도전에게는 '이상향을 꿈꾸는 순진한 선비가 진짜 괴물이 될 것'이라 예언했고 '과도한 이상과 권력이 합쳐질 때 괴물이 탄생'한다고 했습니다. 이인임은 또 이성계에는 '자네에게 용상은 지옥이 될 것'이라며 절대 권력의 자리는 희생과 고통이 함께한다는 걸 예언했습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죽였다는 업보는 끝끝내 그들을 따라다닙니다. 이성계나 정도전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누군가는 죽었고 욕심이 아닌 이상을 선택했기에 훨씬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드라마 '정도전'은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흥미로운 캐릭터를 창조해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여러 글에 따르면 가족과 신하들을 죽이며 권력을 차지한 이방원이나 그의 아들 세조는 이 '업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합니다. 태종이 왕위에 오르고 부엉이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고 그 때문에 부엉이를 피해 잠자리를 옮겼단 이야긴 유명(부엉이 괴변)합니다. 그 부엉이가 마치 정도전이나 신덕왕후같다는 말까지 있었죠. 마찬가지로 조카와 동생들을 죽인 수양대군 역시 귀신을 무서워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도전은 가장 친한 친구인 정몽주(임호)의 죽음 이후 자신의 민본사상을 제도화시켰습니다.
어렵게 차지한 권력일수록 지키려는 의지도 독하고 강력하다던가요. 권력은 더욱 더 많은 피와 희생을 요구하며 결국엔 반대파와 적들이 나타납니다. 고려의 이인임이 왕을 쥐락펴락하다 정도전에게 도전받았듯 조선의 정도전은 이방원과 하륜(이광기)의 적대적인 반응도 모자라 젊은 날의 자신과 비슷한 이숙번(조순창)의 비난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또 역사는 반복됩니다. 이인임이 유들유들하게 속내를 숨기며 정도전을 요리한 것과 달리 정도전은 이숙번을 거칠게 폭행하며 짓눌러 버립니다. 이숙번의 개인적 원한 때문이 아니라도 정도전이 생각이 다른 최고 권력자인 것은 사실이니 증오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겠죠. 이숙번은 정도전을 죽인 당사자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도전이 품었던 이상이 정치인이 당연히 지녀야할 이상이면 드라마 속 정몽주가 피흘리며 외친 상생과 화합은 현대인이 배워야할 가장 현명한 정치의 순리인지도 모릅니다. 정도전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이 피를 불렀던 것처럼 정적을 제거하는 개혁은 부조리한 현실을 낳습니다. 나름 개혁적이었던 조선 초기 사대부들 점점 더 이상하게 변질되었던 것처럼 정도전의 건국 이념은 세월이 흐르며 점점 더 희석되어졌으니 말입니다. 드라마 '정도전'은 보면 볼수록 역사의 현대적 재해석과 캐릭터 창조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50부작이라 앞으로 방송 분량이 2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더군요.
명나라 주원장(조광유)의 지원으로 힘을 얻은 이방원이 날개를 달았습니다. 흥겨웠던 경복궁의 연회 풍경은 어쩌면 이성계와 정도전이 이승에서 누린 마지막 기쁨입니다. 불과 3년 뒤 정도전과 남은(임대호)은 죽습니다.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전 신덕왕후도 죽어 육십 넘은 이성계는 기력잃은 노인이 되고 맙니다. 이성계의 비극적인 가족사와 정도전의 죽음은 어차피 예정된 일이고 가평부곡에서 만난 우리 땅의 백성들, 정도전이 이상향을 꿈꾸게 만든 양지(강예솔)와 천복(장태성)의 죽음을 보고 조선 개국을 위해 죽을 힘을 다했던 정도전의 마지막이 궁금할 뿐입니다. 정도전이 보여준 정치의 정의는 현대 사회에 많은 생각할거리를 남겨주기 때문에 더욱 그런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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