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현대인에 맞춰 해석된 정몽주의 마지막 저항

Shain 2014. 5. 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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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시국이 어수선한 선거철이 되면 미디어를 유심히 지켜보게 됩니다. 역사를 바탕으로 만든 '사극'도 예외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단순히 오락을 위한 소모적인 컨텐츠로 생각하지만 드라마 때문에 '바뀐' 것도 예상외로 많습니다. 특히 역사적 사실을 현대에 맞춰 재해석한 사극의 경우 권력과 영웅, 민중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기 마련이라 한때 정치권의 사극에 대한 외압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성계의 군사 쿠데타를 통한 조선 개국을 묘사하고 있는 드라마 '정도전'도 그런 면에선 예외가 아니죠. 고려 멸망과정에서 권력이 지옥임을 깨달은 이성계(유동근)와 이상국가를 꿈꾸는, 순진한 정도전(조재현)은 지금까지의 해석과는 또다른 관점입니다.

 

 

권력자가 한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국가와 국민이 다수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국가가 다르듯 같은 역사적 사실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도전'에서 묘사된 것과는 다르게 태조 이성계가 뿌리얕은 변방 출신이라는 자신의 한계 때문에 민심을 두려워했고 혼인을 통해 고려의 귀족 세력의 권력을 이용했다거나 **고려 사회의 반발이 두려워 최영과 정몽주를 충신 반열에 올렸다는 식의 묘사도** 가능합니다. 전제개혁이나 계민수전이 뭔지는 모르지만 고려 민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과전법을 시행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씨가 왕이 된다'는 내용의 '목자득국(木子得國)' 노래나, 이성계가 먹게 해준 밥이라 '이밥'이라 불렀다는 건 제법 많은 배후세력이 오랜 기간 민심을 이성계에게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뜻하고 이성계가 노련한 장군 출신으로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고려가 붕괴되기까지 오래 기다렸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드라마 속에서 보여주었듯 우왕(박진우)과 공양왕(남성진), 이인임(임영규), 최영(서인석) 등 꽤 많은 고려 사람들이 이성계를 막으려다 죽어갔습니다. 지난회 목숨을 빼앗긴 정몽주(임호)는 마지막 고려의 생명줄이자 의인으로 묘사됩니다.

권력에 대한 태도가 달랐던 것으로 묘사되는 이성계와 이방원. 그들에 대한 해석은 다분히 현대적이다.

 

정몽주의 죽음을 두고 조선의 운명이 또 갈립니다. 자신이 '거골장'이라는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이성계가 권력을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되는 칼로 생각한다면 그의 아들 이방원(안재모)은 필요할 때 칼을 휘둘러 불필요한 잡음을 제거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정몽주라는 같은 지인에게 배웠지만 그들의 인성은 그렇게 달랐습니다. 역시 직접 외척을 처단해 분쟁의 씨앗을 잘라버렸다는 이방원답습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여 자신을 '임금 되고 싶어서 자기 아들 시켜 충신을 때려잡은 거골장'으로 만들었다는 이성계와 '나를 숙부로 부르지 말라'는 정도전의 분노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암살당한 정몽주, 현대인의 관점에서 해석된 그의 죽음

 

이방원은 '충분한 힘이 있는데 굳이 왜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는가'라는 입장입니다. 이런 타입의 권력자들에게 협상은 힘이 대등하거나 약한 자들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많은 권력 지향적인 인물들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며 착각하는 현상이기도 하지요. 소위 온건파는 쿠데타 과정에서 죽는 인물이 적을수록 자신들의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믿지만 이방원같은 인물은 힘으로 해결하는게 혼란을 줄이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극중에서도 배극렴(송용태)을 비롯한 장수들과 남은(임대호), 조준(전현), 윤소종(이병욱)같은 급진적 신진사대부들은 정비 안씨(김민주)를 찾아가 공양왕을 폐위시키라 압박하죠.

 

정몽주의 죽음과 조선개국 세력의 왕위 찬탈은 다분히 현대인의 관점에서 해석된 느낌이 강합니다. 그동안 방송된 사극의 영향으로 조선 개국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은 야사집인 '연려실기술'에 의존해 극화되는 경우도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몽주의 죽음 즉 선지교(선죽교)에서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거꾸로 말을 타고 갔다는 이야기는 함흥차사 전설처럼 야사입니다. '연려실기술'에는 종종 조선 초기 개국 세력들의, 어딘가 모르게 잔인하고 불편한 갈등을 실려 있습니다. '금계필담'에 실린 세령공주 야사처럼 무정한 권력의 이면을 담은 이야기중 하나입니다.

 

암살당한 정몽주와 사사당하는 공양왕. 현대인들에게 권력을 쓰는 방법에 대해 묻는다.

 

흔히 정몽주하면 고려에 의리를 지킨 충신으로 다소 정적이고 차분한 느낌이 강하지만 '정도전'의 정몽주는 **자신의 벗인 정도전을 죽이려할 정도로 강하게 이성계 일파에 저항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외교사절은 외국의 매너까지 익혀야할 정도로 박식하고, 순간적인 상황판단이 빠르고 영리한 인물이 적합합니다. 고려와 까다로운 명나라와의 관계를 회복시킨 인물이 정몽주이고 보면 정몽주 역시 눈치가 빨랐고 보통 사람은 아니었단 판단이 가능합니다. 그런 정몽주가 대세에 따라 이성계의 편을 들지 않고 고려를 지키려했다는 건 신념에 따른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고려의 충신으로 죽게 해줘 고맙다', '너희의 대업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찬탈이 됐다'는 정몽주의 마지막 대사. 칼에 찔리고 철퇴에 맞아 잔인하게 죽는 정몽주의 죽음은 고려 귀족사회에 이성계 무리를 따르지 않으면 저리될 수 밖에 없다는 공포감을 조성했을 것이고 이성계 일파가 오랜 시간 꽁꽁 숨겨왔던 권력에 대한 욕심을 한눈에 드러냈을 것입니다. 더불어 권력의 잔인함을 증명한 정몽주의 임살은 현대사의 많은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의인'들이 권력자들을 위해 암살되었으며 권력의 잔인함을 증명했던가?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 속 이성계와 정도전은 정말 순진한 것일까?

드라마 속 정도전은 끊임없이 고민하며 개국만이 궁핍한 고려 백성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결론지었지만 정몽주 암살은 조선 개국의 정당성을 훼손한 행위인 동시에 대화와 타협으로 설득되지 않는 상대를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것은 폭력일 뿐입니다. 아쉽게도 정몽주의 암살은 그냥 과거가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도 쿠데타와 권력집권 과정에서 암살당한 장준하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힘을 기반으로 집권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상대방을 암살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행위인데 피로 얼룩진 고려사를 보면서도 순리를 깨닫지 못한 권력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발전이 더뎠던 것입니다.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는 과거 사극에서도 여러번 보았습니다. 과거에는 정몽주가 그냥 고려의 충신이라 생각했지만 고려라는 국가를 개혁하길 원했지만 고려를 버리고 싶지 않았던 정몽주의 선택은 입장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원의 철퇴로 인해 정몽주의 죽음이 평화적 정권 교체가 아닌 군부 쿠테타가 되었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권력자들이 손쉽게 중신의 목숨을 끊고 뜻에 맞는 왕을 마음대로 옹립할 수 있다면 국가는 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요? 어쩌면 과거 사극과는 다른 모습의 거골장 이성계, 권력자의 자리를 '지옥'으로 생각하는 이성계가 답을 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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