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최영의 죽음과 지옥의 뜻을 이해한 이성계

Shain 2014. 4. 28.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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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대량 학살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미사일 버튼 신드룸이라고 하던가요. 굳이 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폭탄이나 인재를 통해 사람이 죽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직접 칼이나 도끼로 사람을 죽이던 과거 보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덜한 것같습니다. 실제 역사 속의 인물들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알 수 없으나 '정도전'의 캐릭터 최영(서인석)과 이성계(유동근)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왜구와 홍건적을 죽인 노련한 장수들입니다. 그들이 살인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이유는 한점 부끄럼없이 고려를 위해 적들을 죽였다는 신념 때문이겠죠. 스스로를 거골장이라 자조하는 이성계도 그랬습니다.

백수 최만호의 안타까운 죽음. 최영의 죽음으로 이성계는 이인임이 말한 지옥의 뜻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시대에도 입만 살아있는 정치가들은 다릅니다. 최영이란 인물이 단 한번도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유용한 적이 없고 백성들을 위해 백발을 휘날리며 용맹하게 싸운 장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최영을 죽여야하는 입장입니다. 고려는 이제 실질적인 기운이 다했고 신진사대부 중심으로 권력을 다시 짜고 있습니다. 쟁쟁한 권문세가들이 이성계를 아군이라 믿었다가 죽었습니다. 과정은 다르지만 경복흥(김진태), 이인임(박영규), 최영, 조민수(김주영) 등이 죽었고 정몽주(임호), 이색(박지일)도 곧 실각할 것입니다.

지방 호족 출신의 젊은 신진사대부들과 달리 이들은 고려의 명문 귀족들로 사적으로 소유한 토지가 많고 대대로 권력을 누리던 집안 출신입니다. 조선이 사대부의 나라였다면 고려는 귀족의 나라였습니다. 귀족 위주로 운영되는 고려에 무장 최영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정치인들이 많았다면 희망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귀족 사회의 부정부패로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권력욕이었는지 계획이었느지 알 수 없으나 이성계는 고려말 최고 권력자들과 친분을 맺으며 차례차례 그들을 제거합니다. 극중에서도 정도전(조재현)과 이미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로 결의한 상태죠.



 

그런데 이인임의 예언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인임은 이성계에게 자네에게 용상은 '지옥'이 될 것이라했고 정도전에게는 과도한 이상과 권력이 합쳐질 때 '괴물'이 된다고 예언합니다. 조선 개국의 역사를 아는 시청자들은 당연히 이인임의 예언이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성계는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가족과 측근들을 죽이는 입장이 되었고 정도전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권력자로 살다가 절대권력을 원하는 이방원(안재모)에게 죽습니다. 살인을 원치 않는 자에게 정치는 지옥이고 무자비한 권력을 가진 자는 괴물입니다.

이성계는 이미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윤소종(이병욱), 조준(전현), 남은(임대호)까지 끌어들여 개국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대업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개혁은 최영의 죽음과 맞바꿀 수 있는 가치있는 일이었을까? 조준이 들고 나온 전제 개혁 즉 사전을 폐지하고 토지를 재분배 한다는 정책은 여러 의미에서 파격적이었습니다. 고려는 땅과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에게는 살기 좋은 세상이었으나 백성들에게는 지옥이었습니다. 이색을 비롯한 이숭인(정희태), 권근(김철기) 등도 개혁적인 인물이었으나 사전철폐는 그들이 동조하기엔 급진적이었습니다.

결코 가볍게 들을 수 없는 이인임의 저주. 이성계는 지옥, 정도전은 괴물 그 말은 정확히 적중한다.

 
문제있는 나라를 고쳐쓰면 된다는 입장에서는 일전일주제(一田一主制)를 완전히 싹 바꾸어 새로운 제도 위에서 시작해야한다는 입장에서는 사전철폐를 주장했습니다. 조준 역시 명문가 출신으로 이런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는게 쉽지는 않았을 것같지만 어쩌면 이 문제는 핵심세력이 된 이성계와 점점 더 멸망해가는 고려 귀족들의 경제적 이권을 둔 세력싸움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뭐 드라마가 현대사회의 색깔론을 제대로 비꼴 생각이었는지 하륜(이광기)의 입을 통해 혁명 이야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흥미롭습니다.

이인임의 유언인 지옥과 괴물은 인간 이성계와 인간 정도전에게 내려진 저주와 같습니다. 이색이 비록 고리타분한 학자이고 이인임이 간신이긴 하나 그들에게도 국가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이 있고 절대악이 아닙니다. 그들 역시 모반에 찬동하고 때로는 급진적인 변화가 꼭 필요한 시점도 있지만 모든 것을 개혁하는 일은 피를 동반한다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정도전도 인연을 끊은 스승 이색과 간신 이인임의 말을 떠올리며 정치라는게 생각 보다 무섭다는 말을 깨닫는 순간이 오겠지만 지금은 일단 가던 길을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최영과 정몽주의 죽음 - 이성계와 정도전, 지옥과 괴물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손에 한번 피를 묻힌 사람은 더 이상 두려울게 없다고 하던가요? 이성계와 정도전 모두에게 포은 정몽주는 고려를 무너트리는 마지막 기둥이자 지옥의 문을 열고 괴물로 변할 수 밖에 없는 계기입니다. 이성계의 운명론은 탐탁치 않습니다만 최영 장군의 죽음에 비통하게 눈물흘리는 이성계의 모습은 죽음이 뭔지 아는자의 눈물이라 더욱 공감이 가는 것같습니다. 고려 최고의 영웅이자 존경하는 장수인 최영까지 죽으면서 이뤄낸 역성혁명. 스승과 절연하고 친구의 죽음을 지켜봐야하는 괴물. 이성계의 지옥과 괴물 정도전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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