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시청했을 '노다메 칸타빌레'는 만화 원작 드라마로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2006년에 제작된 '노다메 칸타빌레' 외에 스페셜 드라마 한편(2008년), 극장판으로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 두 편이 각각 2009년과 2010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일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국내 케이블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송되어 한번쯤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주연 배우 우에노 주리는 2001년 영화로 데뷰한 후 이 드라마로 확실히 연기파 배우 반열에 자리매김했죠. 치아키 역할의 타마키 히로시 역시 이 드라마로 일본 최고 인기 배우가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노다메 칸타빌레' 한국판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될까?
'노다메 칸타빌레'는 만화 원작부터 드라마까지 주인공 두 사람의 멜로와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잘 살린 수작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소재 부족에 시달리던 한국 드라마가 리메이크를 결정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캐스팅 논란이 일어나는 걸 보며 그럴 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작의 색깔이 워낙 강렬하니 연기파 배우들이 아니면 다수의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긴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다음에서 하고 있는 온라인 투표를 보니까 심은경이 독보적인 1위고 캐스팅 후보로 거론된 윤아는 불과 4%대의 호응을 얻고 있었습니다(한국판 '노다메' 역 거론되는 배우들, 나의 선택은?).
윤아에 대한 일부 공격성 평가를 제외하면 드라마 원작의 이미지를 따져볼 때 주인공 노다 메구미가 4차원의 복합적인 캐릭터라 청순하고 예쁜 외모의 윤아 보다는 젊은 연기파로 인정받는 심은경, 나이는 좀 많지만 역시나 엉뚱한 캐릭터 이미지가 있는 이하나가 제격이란 의견입니다. 원래 만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원작이 있는 드라마는 원작 이미지를 훼손하지 말라는 논란을 겪기 마련인데 '노다메 칸타빌레' 경우 이미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만화 원작을 실사로 구현해 팬들의 머리 속에 각인이 된 드라마니 더욱 논란이 증폭될 수 밖에 없겠죠. 더군다나 윤아는 '소녀시대' 멤버로서가 아닌 연기자로서 전혀 엽기 천재형 이미지는 아닙니다.
반면 한국판 치아키 역할의 주원이나 프란츠 폰 슈트레제만 역의 백윤식, 사쿠 사쿠라 역의 도희는 별다른 반대 반응을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어제는 윤아의 캐스팅이 확정적이란 말에 한국판 '노다메 칸타빌레' PD가 캐스팅에 원작자 허락이 필요하다고 했다는 기사도 올라왔습니다. 심은경 측에서도 캐스팅 제안이 들어온 건 사실이지만 영화 촬영 스케줄 때문에 고사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구요. 언론 보도는 윤아가 '확정적'이라고 했지만 내부 진통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 와중에 어제 밤에 '노다메 칸타빌레' 원작자가 한국판 캐스팅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고 합니다.
윤아가 원작의 노다 메구미와 이미지가 맞다 아니다를 떠나서 사실 저는 이 논란의 과정이 꽤 본질과 다르게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속담 중에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죠. 뭐든지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말로 아무리 좋은 드라마라도 리메이크하는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일본 드라마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한국에서 그대로 성공하라는 법도 없거니와 모든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도 없습니다. 원작 드라마를 그냥 더빙해서 한국에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이상 한국판 제작은 완벽한 현지화가 관건입니다.
훌륭한 원작과 이미 구현된 드라마가 있으니 캐스팅이 어려울 것이다.
한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는 좀 다릅니다. 시청자의 선호도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단적으로는 한국 드라마는 잔잔한 흐름 보다는 감정 과잉의 연기가 훨씬 더 시청률이 잘 나오는 편이고 잔잔한 이야기 보다는 극적이고 딱 부러지는 줄거리 진행이 있어야 60분 동안 시선을 잡아놓기 편리합니다. 논란에 참여한 시청자들이야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드라마 제작을 원하겠지만 '노다메 칸타빌레' 한국판 제작자 쪽에서 어떤 방향으로 리메이크를 결정했는지 한국판의 작가는 누구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원작의 완벽한 재현이냐 한국에 맞는 변형이냐 하는 부분이 관건이죠.
일드의 리메이크는 '직장의 신(2013)',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처럼 원작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하되 한국 상황에 맞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킨 경우 훨씬 더 큰 호응을 얻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노다메 칸타빌레' 한국판 제작자가 클래식 음악을 바탕으로 한 '출생의 비밀'이나 '삼각관계'를 메인 요리로 삼을지 원작처럼 음악가로서 성장하는 연인을 중심으로 삼을지 그 의중을 드러내지 않은 상황입니다. 컨텐츠가 재생산될 때는 여러 복잡한 상황이 얽히기 마련이니, 그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원작자도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쪽으로 트위터 의견을 쓰지 않나 생각되네요.
한드는 원작 훼손 보다 시청률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판 제작에는 여러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원작의 사차원 캐릭터라면 윤아의 이미지나 연기력으로 소화하기 힘든 캐릭터지만 예쁘장한 삼각관계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하면 캐릭터 자체가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원작을 좋아하는 분들은 절대 원하지 않을 각색이나 원작에서는 러브라인이 크게 강조되지 않았던 '직장의 신'이 삼각관계 비슷하게 흘러가고 '가정부 미타'가 '수상한 가정부(2013)'로 탄생하며 커플이 바뀌었다는 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원작과 다르게 제작된 한국판은 한국 만의 사정이 있어서 나름대로 그게 말이 되긴 했죠. 어쩌면 그게 진짜 리메이크의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 리메이크를 허락한 순간 원작자의 손을 떠났단 이야기죠.
좀 더 솔직히 말해 우리 나라 드라마 제작의 현실을 잘 아는 분이라면 '윤아' 캐스팅 논란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드라마가 작품성이나 원작의 재현 보다는 높은 시청률에 목매는 경향이 있어 지명도 높은 유명배우를 우선 선정하고 그에 맞춘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 관행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PD 본인은 원작의 재현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제작사 윗선에서는 시청률이나 일본 판매를 의식한 배우를 선정하려 들 것입니다. 일단 잘 나가는 배우가 주연을 맡아야 시청률도 잘 나온다 이겁니다. 윤아 정도면 일본에서 팔린다는 생각에 PD 보다 높은 사람이 윤아를 지목하고 PD는 원작자를 거론하며 방어막을 쳤을 지도 모르죠(농담이지만 작품 제작을 예상하고 2013년 연기대상에서 상을 쥐어줬나봅니다).
한국 드라마 제작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 캐스팅 논란.
공중파 3사의 시청률 경쟁이 치열한 우리 나라 드라마 제작 환경과 일본의 드라마 시장이 다르고 사전제작 보다는 시청자의 반응에 맞춰 생방송 제작을 선호하는 상황도 다르고. 뭐 일부 배우들 중에는 이 생방송이 싫어 영화판에 갔다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또 그렇게 시청률 의식하며 작품 보다 유명세있는 배우를 선택한다고 해서 시청률이 망하는 건 아닌게 우리 나라 드라마입니다. 말 그대로 귤화위지(橘化爲枳)입니다. 시청률 의식하지 않고 원작에 충실한 드라마 한편을 봤으면 좋겠다 싶지만 또 윤아가 캐스팅된다고 해도 그건 그대로 또 우리 나라 드라마가 될 겁니다. 캐스팅 논란은 어쩌면 현지화의 확실한 신호탄이죠. 이번 논란은 뭣 보다도 제작 담당 PD나 방송사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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