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방송된 '유나의 거리'를 보다 보니 눈에 띄는 연기자가 두 명 보이더군요. 하나는 드라마 '신의 선물'에서 은주 역을 맡았던 아역배우 조은형이고 또다른 한사람은 유나(김옥빈)가 훔친 보석들을 처리해 준 장물아비 고물상 사장 역의 배우 기정수씨입니다. 아역배우는 일찍부터 등장했지만 어제서야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된거고 장물아비는 보석을 훔칠 일이 거의 없는 유나가 윤지(하은설), 화숙(류혜린)와 함께 도둑질을 하면서 만나게 된 인물입니다. 배우 기정수는 원래 성격파 배우라 예전부터 부모님이 악당 전문 배우라고 하시더군요. 드라마 '짝패(2011)'에서도 주인공 귀동(이상윤)의 아버지 역할을 했습니다. 워낙 오래전부터 활동하던 배우라 작가와의 의리가 없으면 보기 힘든 배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치관도 생활도 전혀 다른 유나와 창만. 어떤 점이 통했을까?


요즘 어딜 가나 '의리'라는 단어가 유행이라 덕분에 의리의 원조 김보성씨는 CF 출연료로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던가요? 현실에서는 쉽게 의리를 따지기는 힘든 세상이라 '의리 열풍'이 생긴건지 아니면 원래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치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의리란 단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부부는 사랑해서 결혼해도 나중에는 의리 때문에 산다'는 말도 있고 친구들 끼리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하죠.


'유나의 거리'의 주인공 창만(이희준)은 김보성에 버금가는 의리남입니다. 창만이 아니면 몸을 다쳐 몸져 누운 문간방 할아버지 장노인(정종준)은 하루 종일 라면 한 그릇 먹기 힘든 처지입니다. 하루 종일 누워서 전화도 못하고 혼자 살다 죽으면 아무도 자기를 발견 못할까봐 무서웠던 장노인은 식사를 챙겨주는 창만에게 '외로웠다'며 '나는 죽더라도 꼭 당일날 발견되고 싶다'고 합니다. 창만이하고는 만난지도 얼마 안됐고 창만에게 딱히 장노인을 챙길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창만이 장노인을 챙겨주는 건 인간에 대한 의리겠죠.


죽더라도 당일 날 발견되고 싶다는 장노인과 모두가 싫어하는 계팔.


창만은 다가구 주택 사람들이 너무너무 싫어하는 계팔(조희봉)을 자기 방에서 재워주고 식구들 몰래 병원 입원비까지 챙겨줍니다. 가짜 비아그라를 팔다 벌금을 물게 된 계팔의 벌금을 빌려주기도 합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계팔과 깊은 우정을 쌓은 것도 아니고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닌데 창만은 계팔에게도 짠하다는 감정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 멀쩡하게 살아가야 한다는게 창만의 철학인 것같습니다. 이런 창만의 주변엔 사람이 모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가끔은 직설적인 말을 해서 얄밉다고 흉을 보면서도 모두가 창만을 의지합니다. 한사장(이문식)이 창만에게 지배인 일을 맡긴 것도 따지고 보면 창만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 때문입니다. 밴댕이(윤용현)이나 식당아줌마, 변칠복(김영웅), 혜숙(김은수)가 모두 창만을 좋아합니다. 이 오지랍넓은 남자는 자신의 연적이자 유나를 따라다니며 어떻게든 같이 일을 하자고 조르는 남수(강신효)에게도 종종 측은함을 느낍니다. 아무리 선을 분명하게 긋는 게 중요해도 최소한 인간에 대한 도리는 지켜야 한다고 믿는 거죠. 그게 창만이란 남자의 의리입니다.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는 유나의 의리?


아무리 의리의리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리(義理)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살며 서로를 돌보고 기본적인 도리를 지킨다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겁니다. 장노인에게 몰인정하다는 소리까지 들으며 욕을 먹는 한사장도 장노인에게 월세 한푼 안 받고 방을 내준 인물이고 딱 한번이지만 목욕탕에 모시고 가서 때도 밀어줍니다. 다쳤을 때 치료비를 내준 사람도 한사장입니다. 창만이 만큼은 아니지만 유나나 깍쟁이같은 꽃뱀 미선(서유정)도 계팔이나 장노인에게 못되게 굴지 않고 가끔 보살펴주곤 하죠. 이게 '인정'이라는 이름의 의리입니다.


유나도 창만 못지 않게 '그쪽' 세계에서는 의리녀입니다. 찜질방에서 보석 도둑으로 몰려 경찰소에 갔을 때 형사들까지 이번 도난 사건은 유나의 범행 스타일과 다르다고 인정합니다. 퍽치기, 아리랑치기같은 일은 절대 할 수 없다며 남수를 떠날 만큼 자존심도 강합니다. 소매치기로 유명한 아버지 강복천(임현식)은 모르는 사람이 없고 바닥 식구들 사이에선 유나 하면 실력이든 인맥이든 최고로 쳐줍니다. 오죽하면 화숙이나 윤지같은 어린 애들도 유나를 존경한다고 이야기하죠. 어차피 강도든 절도든 소매치기든 모두 범죄지만 유나는 '식구들' 끼리는 절대로 뒷통수 치지 않고 챙겨준다는 의리는 꼭 지킵니다.


바닥식구끼리는 챙겨준다는 유나의 의리. 유나 주변에도 사람이 많다.


깡순(라미란)처럼 흉기로 사람을 위협하지 않고 오로지 기술과 작업 만으로 '깝지'를 터는 유나는 남의 걸 털더라도 최소한의 도리가 있다고 믿는 쪽입니다. 어린 소매치기 소녀 은정(이빛나)이 이모와 함께 찜질방 보석을 털고 유나가 윤지와 함께 그 보석을 털러 파주에 갔을 때도 은정네를 신고하자는 윤지에게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며 '어차피 사람에게 상처주는 일, 너무 잔인하고 야비하게 상처를 주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범죄를 저질러도 사람은 해치지 말고 쥐도 궁지에 몰리면 사람을 문다고 아무리 상대방이 범죄자라도 너무 밑바닥까지 몰아부치지 말란 이야기죠.


동료들 챙기는 것도 꼼꼼해서 정보를 제공해준 양순(오나라)에게도 돈을 나눠주고 화숙의 몫을 나눠 남수에게 나눠줄 궁리까지 하는 유나입니다. 남수와 깡순을 속여 하나는 감옥에 넣고 하나는 손을 다친 화숙을 완전히 용서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의 도리를 할 기회는 줍니다. 조그만 거 하나에도 아웅다웅 치고 받고 싸우는 다가구 주택 사람들을 생각하면 언제 잡힐지 모르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남까지 챙기는 유나는 남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창만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유나의 세계는 남들이 존중해줄 수 없는 범죄자의 세계란 것이죠.


'인간에 대한 의리'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의 사랑.


같이 일하는 이모에게 얻어맞고 입술이 터진 은정과 모처럼 돈을 벌었지만 고스란이 뺐길 처지가 된 유나. 어쩌면 어린 나이에 절도를 하게 된 은정을 어떻게든 그들에게서 빼내는 구도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더군요. 연정을 품고 있는 남수가 아니라도 바닥식구들이 유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의리가 그녀에게 있는 것입니다. 바른생활 사나이 창만과 소매치기 유나가 전혀 다른 가치관에 전혀 다른 생활을 하면서도 유일하게 공통된 부분은 인간에 대한 의리죠.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창만은 유나를 숨겨주고 유나는 창만에게 선뜻 오만원을 내줬던 것처럼 서로에게 인정을 배푼 두 사람이 좋아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입니다.


깍쟁이 대학생 다영(신소율)의 유치한 질투, 의붓딸 다영을 편드느냐 창만까지 다그치는 홍여사(김희정). 창만은 자기도 모르는 새 무슨 짓을 하고다니는지 알 수 없는 유나를 불안해 합니다. 결혼하면 먹여살릴 수 있다고 장담도 하죠. 야생고양이같은 유나가 창만에게 길들여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푹 고아진 곰탕같은 창만의 따뜻함에 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사람의 의리있는 세상살이가 정말 인상적입니다. 얼핏 읽으니 이 드라마가 50부작이라는 거 같던데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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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echwinsquare.tistory.com BlogIcon 위니[WINNIE]
    2014.07.22 10:16 신고

    드라마를 본적도 없는데, 본거 같게 만드는 이글 ㅎㅎ
    인간에 대한 의리로 연결해 마무리까지 마음에 듭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드라마 꼭 봐야겟네요!ㅎㅎ

  2. BlogIcon 라임
    2014.07.22 13:10 신고

    흐뭇하게 웃으면서 정독했네요. 유나의거리는 드라마는 실제 본인들 같우 리얼한 연출 지점이 있어서 ㅎㅎ 빨리 유나가 창만에게 ㅇ사음을 열고 잘되기를 기대하게 돼네요 글구 실제로도 두분 잘됐으면하는 은근 바램이 ㅎㅎ 옥빈씨갖너무 어린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