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 한옥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아한 한옥과 암팡진 아궁이에 따뜻하게 장작불 지핀, 덤으로 구들장도 두껍고 튼튼한 온돌방을 선호하시는 분들이라면 뭔말인가 하시겠지만 이유는 단 하나 제가 직접 살아본 한옥은 너무 추웠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유리문으로 막아도 창호지 바른 미닫이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코가 시렸고 비내리고 바람불면 아궁이에 불지펴봤자 밤새 식어버리곤 했습니다. 더불어 요즘 한참 전원주택이라며 짓는 예쁘장한 집들도 개인적으로 참 별로라 생각하는데 전원주택이면 대부분 외딴집이고 외딴집이면 비바람과 추위에 강해야합니다. 말이 쉽지 허허벌판에서 한겨울 추위를 버틴다는 건 생각 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없는 시골에서 살려면 처마도 짧고 벽도 얇은 집으로는 정말 버티기 힘듭니다.


류승수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읍내에 가려는 이서진. 어쩌다가 읍내는 할머니 서진의 로망이 됐는가.


어릴 적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제가 겪었던 '허기'는 밥에 대한 배고픔과는 또 달랐습니다. 간단한 참치캔 하나라도 사려면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장터로 나가야했고 전자기기같은, 장터에 팔지 않는 물건은 차로 달려 40분 거리에 있는 도시로 가야했습니다. 간단한 생필품도 바로 살 수 없고 도시에 흔하던 과자나 인스턴트 식품 살 수 없고, 학교 앞에서 사먹던 떡볶이나 라면도 못 사먹고 TV도 안 나오고 라디오 채널도 잘 안 잡히고 도서관도 없이 - 바라보면 그저 하늘하고 땅 밖에 보이지 않는 이 곳에서 느낀 문명에 대한 허기는 생각 보다 힘들었습니다. 눈이라도 내리면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변해 교통이 끊겨버리는 동네가 참 무서웠습니다.


요즘에는 인터넷도 있고 차편이 좋아져서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생필품을 사러 일주일에 한번 장을 보러 갑니다. 살다 보니 동네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이 왜 김장 때 마다 싫은 소리 해가며 딸과 며느리를 부르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식재료를 구하러 갈 방법이 전혀 없는 분도 움직일 수 없는 분도 있더라구요. 때문에 이 동네에서는 생강, 파, 배추, 고추, 무같은 김치 재료나 토란, 박, 호박같은 채소를 길러먹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 그런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딱히 돈이 아까워서라기 보다 시장과의 물리적 거리가 먼 만큼 산에서 따고 밭에서 기르는 자급자족이 당연한 일과가 되버린 것입니다. 농사일 바쁜 여름철엔 계란은 커녕 김치 하나로 끼니를 떼우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오지에서 삼시 세끼 차려먹고 농사일하고 무덤덤하게 사는 시간이 부러운 사람도 있을까? 워낙 시끄러운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편이라 저는 여전히 이곳이 불편합니다. 그래도 뭐 이런 외딴 집에서 혼자 자급자족하는 삶이 한번쯤 부러운 사람도 있긴 있겠죠. 도시에서의 삶에 지치고 피로해진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텃밭에서 기른 유기농 야채에 조미료 넣지 않은 담백한 식사, 자동차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숲속 풍경과 하룻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넉넉함이 그리워서 시골을 찾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분명 이런 부분은 이서진이 냄새나는 화장실을 참을 만큼 중요한 장점이긴 합니다.


물론 '삼시세끼'에 출연 중인 이서진이 딱히 이런 오지에서의 삶을 그리워한다거나 원했을 거 같진 않습니다. 나영석 PD는 떨어지는 빗소리도 소중히 여길 정도로 옥순봉 아래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지만 매일 나영석 PD와 티격태격하며 싸우는 이서진에겐 게스트가 찾아올 때 마다 늘어가는 돼지고기 빚과 수수 베기가 영 못마땅해 보입니다. 고기를 먹으려면 수수를 베야 하고 밥을 먹으려면 벽돌로 화로를 만들어야하는 상황에 이서진은 늘 투덜댑니다. 방송을 본 것이 어제로 딱 두번째였는데 '할머니'라는 별명을 얻을만 하더군요. 손주가 찾아오면 뭔가 주긴 줘야하는데 텃밭을 털어 음식 마련하는 일이 딱히 쉽지만은 않은 그런 할머니 말입니다.


요즘도 계란은 커녕 김치 하나로 식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서진이 제일 좋아하는 일은 역시나 읍내에 나가는 일인가 봅니다. 게스트 류승수가 한마디씩 툭툭 던지며 이서진의 읍내행을 말려보지만 이서진은 기어코 읍내에 가서 부채도 얻어오고 화장실도 다녀옵니다. 답답한 시골 생활에 이서진이 적극적으로 임하는 단 하나의 즐거움, 이서진이 읍내에 나가는 모습을 보며 옛날 생각이 나더군요. 고등학교 때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아이들은 이서진처럼 입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있곤 했습니다. 괜히 농협이나 작은 수퍼를 둘러보며 집에 필요한 물건은 없는지 살피기도 합니다. 가게 하나 없는 동네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살 수 없으니까요.


질퍽한 길에 딱 좋은, 옥택연의 길고 긴 장화와 지독한 햇빛과 살림에 손이 쭈글쭈글해진다는 이서진이 그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는,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읍내를 돌아다니며 넉살 좋게 형아우를 만드는 이서진은 너무나 편해 보입니다. 편의점이나 카페 하나 없는 그곳이 편리한 도시 만큼 만족스럽진 않겠지만 매회 마다 읍내에 나가는 걸 보면 이서진네 동거인들에게도 읍내에 들락달락하는 일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죠. 어떻게든 나영석 PD를 설득해 읍내에 나가려는 모습이 시골 사는 할머니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느꼈던 사람많은 곳에 대한 '허기'처럼 산속에 살면 저절로 읍내를 가고 싶어하게 되나 봅니다.


떡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서진과 택연은 읍내를 정말 좋아한다.


사실 지난주에 처음 이 프로그램을 볼 때는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차 한대 없이 자급자족하는 시골 할머니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구나,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일상적인 삶이 누군가에게는 예능처럼 느껴질 수도 있구나 싶더라구요. '이런 게 예능이 될 줄 몰랐다'는 몇몇 시청자들의 평가처럼 비와서 침수되고 텃밭이 쓰러지고 동물들이 피해를 입는 삶이 오지에 사는 당사자들에게는 별로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비가 내리면 수해를 입을까 걱정되고 눈이 내리면 도로와 단절되는 무서움이 '삼시세끼' 조차 고마워하게 만드는 날도 있습니다. 이서진과 옥택연은 그 비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서진은 투덜대고 옥택연은 잠자코 일을 하는 모습이 마치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같기도 합니다. 부부끼리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사람 말소리 한번 들을 수 없는 시골에선 부부 중 한사람은 떠드는 역할을 맡곤 합니다. 이서진처럼 읍내에 가자며 할아버지를 조르는 할머니들도 있구요. 그러고 보면 음식 잘하고 힘 잘 쓰는 옥택연과 수제비는 못 끓이지만 쓸데없이 꼼꼼한 이서진의 궁합이 잘 맞네요. 누구 말대로 따지고 보면 별거 없는 예능에서 현실의 냄새가 난다는게 어딘가 모르게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도시에 살면 시골에 가고 싶고 시골에 살면 도시가 그립고, 연출력의 승리일까요 아니면 아이템이 좋았던 걸까요.


읍내에 가고 싶어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같은 그들.


그나저나 나영석 PD가 돼지고기 값을 비싸게 받는다는 걸 알게 된 이서진. 돼지고기 한근을 만이천원, 20만원 상당의 수수와 맞바꿨다며 읍내 변호사를 선임한다고 했는데 이번 기회에 나영석 PD가 수수값을 좀 올려주려나요. 뭐 원래 시골에서도 농사지은 쌀이나 복숭아같은 걸 고기랑 바꾸려면 기름값 들고 경매 시장에 보내서 팔아야하는 수수료가 붙긴 합니다. 독거 '할머니'가 혼자 팔아서 장을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죠. 그래도 그동안 너무 비싸게 받아먹었으니 인심써서 돼지고기 두 근으로 올려주시는 건 어떨까요. 농가 부채 좀 줄여봅시다. 뭐 아무리 봐도 나영석 PD가 돼지고기를 깎아줄 거 같진 않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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