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마왕 신해철의 죽음. 11월 2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신해철 사망 미스터리, 수술실에서 무슨일이' 방송을 기다리는 사람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소재로 KBS는 11월 22일 '추적 60분'도 '마왕의 죽음, 네 가지 미스터리'를 방송했고 MBC 역시 11월 24일 'PD수첩'에서 '나에게 의료사고가 생긴다면'이란 주제로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갑작스런 장협착과 심낭 천공에 의한 죽음이라기엔 많은 부분 의심쩍은 그의 사망은 공중파 방송 3사가 의료사고와 의료소송의 문제점을 짚어보기에 충분한 테마였습니다. MBC와 KBS의 방송을 모두 시청한 다음 마지막으로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방송도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다른 두 방송사와는 다르게 故 신해철의 아내인 윤원희씨와 사망 과정을 잘 알고 있는 매니저가 출연하더군요.
마왕의 죽음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S병원과 강원장에 대한 기사 대부분을 읽어봅니다. 국과수 부검 결과 발표로 수술 이후 심낭에 천공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새로울 것이 없었고 신해철과 그 가족이 동의하지 않은 위장축소수술(S병원 주장에 의하면 위장 강화수술)이 있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새롭게 제시된 내용은 방송을 기다리던 팬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방송 당시 트위터와 페이스북, 포털사이트 게시판을 지켜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강원장을 강력히 비난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진이 마주친 '뜻밖의 진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의료사고를 넘어 의료살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취재진이 밝힌 몇가지 사실은 시청자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왕 신해철의 죽음은 강원장에게 불거진 여러 의혹과 사망 사고의 일부일 뿐이었습니다. 위밴드 수술과는 달리 위주름성형술은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란 증언이 나왔고 S병원에서 수술받고 맹장, 담낭 등의 장기가 사라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S병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사의 증언으로 밝혀진 S병원의 실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의사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이었습니다.
신해철 씨가 환자로 붐비던 대학병원에서 장유착 수술을 받지 않고 S병원을 선택한 이유는 과거 위밴드 수술을 받았던 경력과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의사는 간단한 수술이라는 말로 당시 신해철에게 믿음을 주었지만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강원장이 의사로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란 확신만 가지게 할 뿐입니다. 강원장은 환자의 동의없이 위축소 수술을 했다는 증언도 금식지시를 내린 적 없다는 증언도 수술과정에서 천공이 생겼다는 의혹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과수 부검결과 위용적을 줄이는 수술을 했다는 결과가 나왔고 윤원희 씨가 보여준 약봉투에는 '식후'라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에 한두번 쯤은 병원에 가고 수술을 받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수술을 맡기고 많은 의사들이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릴 만큼 최선을 다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수술을 집도했던 대학병원 의사선생님은 바쁜 와중에도 회진을 돌며 꼼꼼히 수술자리를 살펴봤고 마취없이 생인손을 찢었던 의사선생님은 생살을 찢는게 아플 수 밖에 없다며 친절하게 저를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건성건성 질병을 살펴보던 의사들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할 일은 제대로 했고 대부분은 만났던 의사들 대부분은 고마운 사람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故 신해철의 위험한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도 환자를 퇴원시키고(여러 의사들의 견해로 보아 엑스레이를 판독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더군요), 수술받은 환자가 통증과 고열을 호소해도 진통제 이외에는 처방하지 않고 S병원이 최소 25-26명의 환자에게 위밴드 수술 중 맹장이나 담당을 제거하고 보험료를 과다청구했다는 의혹(전직 S병원 간호사에 의하면 한달에도 몇건씩 있었다고 합니다)은 보는 사람들을 무섭게 합니다. 저 의사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아니냐? 어떻게 저런 사람이 의사일까? 어떻게 환자의 동의없이 장기를 제거하는 의사에게 생명을 맡길 수 있는가 하는 공포가 시청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습니다.
76건의 요청 중 인터뷰에 응한 의사는 단 다섯명
'그것이 알고 싶다'와 인터뷰한 故 신해철의 유가족과 매니저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대학병원이 붐벼 신해철 씨의 뜻대로 S병원에 데리고 갔던 매니저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며 후회했고 아내 임원희 씨는 S병원의 말을 믿었다는 걸 후회하는 듯 보였습니다. 어떤 병원이든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릴 것이란 믿음이 왜 후회할 일이 되버렸을까요?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어떤 의사든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실수를 해도 환자를 살리려 최선을 다하기에 의사이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기에 의사인데 강원장의 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문투성이였습니다. 그 후회를 대체 왜 매니저와 가족이 떠맡아야하는 것일까요?
S병원에 법적 소송을 진행중인 신해철 측 변호사는 S병원이 유가족 동의없이 위주름성형술을 실시한 이유는 임상사례를 만들어낼 목적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수술 후 '그들이 내 몸에 무슨 짓을 했나'라며 분노한 故 신해철은 수술중 간간이 수술 상황을 들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평소 다수 연예인들과의 친분으로 병원을 홍보해왔던 강원장은 위주름성형술 홍보를 위해 성공적인 사례에 필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알고 보니 위절제, 위밴드를 비롯한 표준 수술법과 달리 위주름성형술은 데이터가 부족해 그 안전성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시술이었습니다.
전직 S병원 간호사의 증언으론 S병원은 단 한번도 수술 동영상을 남기지 않은 적이 없지만 신해철 씨의 수술 동영상 만은 사라진 상황이라 합니다. 수술실의 비밀은 강원장 말고는 아무도 모르게 되버렸습니다. S병원 측에 소송을 제기한 여러 피해 사례와 '비만수술'을 했다는 서울아산병원의 진료기록, 신해철을 옆에서 간호하고 지켰던 매니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와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비롯한 여러 전문의들의 증언은 강원장에 대한 의혹이 대부분 사실임을 증명합니다. 심낭의 천공과 장의 천공도 S병원 수술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합니다.
故 신해철 씨의 경우 증거자료도 국과수 부검결과도 있어 자료가 충분한 편입니다. 엑스레이 사진도 남아 있고 수술 이후 마약성 진통제 말고는 조치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충분해 의료소송에서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전문가들은 그리 밝은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유명인이고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가 함께 해도 의료소송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쪽에 제보한 사례들은 故 신해철의 사례 이외에도 여러 건이었습니다. 사망한 환자도 있고 혈전 수술을 받고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된 환자도 있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의문투성이인데도 강원장은 지금 현재까지도 버젓이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여러 건의 소송이 진행중인 의사도 수술이 가능한 것일까요? 이것은 의료소송 관련 법이 환자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것도 의사지만 사고를 검증하는 것도 의사이기에 의료소송은 진행해봤자 승소율이 2% 밖에 되지 않는다는 현실, '그것이 알고 싶다' 측에서 76명의 의사에게 자문을 요청했지만 불과 5명이 인터뷰에 응했다는 현실은 인터뷰에 응해준 의사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게 만들 정도입니다. 방송 이후 인터뷰에 응한 의사들이야말로 진짜 의사라는 감사의 인사가 터져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런 마왕 신해철의 죽음으로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죽음에 관심을 갖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이유는 그가 연예인인 까닭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S병원의 미스터리를 알면 알게 될수록 팬들은 소름끼치는 공포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신해철 씨가 유명연예인이라 이 정도까지 밝혀진 것이지 만약에 내가 저런 일을 당했다면 소송은 커녕 매스컴에 알리지 못하고 포기해야했을 것이라 했습니다. 단순히 연예인이 당한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당할 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른바 '신해철법'이라 이름붙여진 의료소송 관련법이 점차 힘을 얻어가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지금 국회에서 거론되고 있는 '신해철법'은 본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으로 신해철씨 사망 전에도 거론되던 법안입니다. 이미 지난 4월 복지위에 상정되었지만 방어진료를 우려하는 의사협회의 반발과 다른 국회 법안들에 밀려 처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기에 무조건 의사의 책임을 묻는 것도 옳지 않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환자에게 불이익이 발생해도 증명할 방법이 거의 전무합니다. 현행 개정안은 병원이 거부하면 시작 조차 할 수 없는 의료분쟁 조정을 강제로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의사의 수술동영상을 확보하지 못한 이번 신해철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병원 측이 바쁘다고 회진만 할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실시간 진료 기록, 수술 영상을 반드시 제공하고 수술 경과 등을 충분히 설명해야할 의무를 법제화할 필요도 느낍니다. 의사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환자들의 방어수단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수술동영상이 확보되지 않았음에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고 고열과 통증에도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의사의 말만으로 단순 '과실'이 된다면 환자들은 의료인 모두를 믿을 수 없게 되버립니다. 보험료 청구를 위해 장기를 떼어버리는 의사. 환자 보다 돈이 우선인 의사를 도대체 어떻게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요?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 남은 좋은 의사선생님들은 과중한 업무에도 환자를 위할 줄 아는 진짜 의사선생님이었습니다. 그들의 노력과 헌신을 무참히 무너트린 S병원 강원장 같은 사람들이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를 깨트리고 있습니다. 꼭 '신해철법'이 아니라 어떻게 이름붙여도 좋습니다. 환자가 의사를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의료계 스스로 필요한 법적 조치를 의무화하는 노력이 이뤄내길 기원합니다. 시청자들은 단지 신해철의 죽음이 유명인의 죽음이기에 이리 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고 싶은 마왕 신해철 - MC 김상중의 말처럼 저 역시 편히 잠들길 바란다는 인사는 잠시 접어두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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