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미생

미생, 이 시대 직장인들을 위한 최고의 격려 '더할 나위 없었다'

Shain 2014. 11. 2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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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일하던 직장에도 드라마 '미생'처럼 화상회의 장치가 있었습니다. 일부 임원들만 회의실에 모이면 다른 지방에 근무하는 임원들은 웹캠이 설치된 PC 앞에서 회의에 참석하는 방식이었죠. 요즘은 기술도 기술이지만 인터넷 속도도 빨라져 영상통화하듯 실시간 중계하는 화상회의도 가능한 모양입니다만 그때 회의실에 설치된 모델은 초기형이라 화면도 작고 화질도 좋지 못했습니다. 반응 속도까지 느려 회의에 차질이 생길 땐 꽤 답답했었죠. 화상회의가 시범사업의 일부라 종종 그 시스템을 써야했는데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어도 아무도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이미 그 사업에 꽤 많은 돈을 투자한데다 교체 후 이뤄지는 감사에서 왜 구형을 선택했느냐 하는 문제부터 비용, 책임 문제까지 거론되는게 꽤 부담스러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장그래 더할 나위 없었다 YES! 원인터내셔널 계약직 신입사원 장그래 무사히 2년차 사원이 되다.


'과감히 깨트린다'는 뜻의 '파격'이란 용어를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만 대기업처럼 조직이 탄탄할수록 파격은 쉽지 않습니다. '미생' 장그래(임시완)의 표현대로 '판을 바꾸는' 일은 장비 하나 교체하는 일 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판을 바꾼다는 말은 지금까지 지켜온 한 조직의 시스템을 재정비한다는 뜻이며 룰을 바꾼다는 뜻과 같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반발이나 거부도 문제지만 새로운 틀에 적응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조직의 덩치가 크면 클수록 변화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파격 보다는 기존 방식을 선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위 '안전빵'을 선택하는 이유는 나보다 큰 권한을 가진 사람들의 반발과 분노를 직면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변화에 따른 비난이나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파격은 때로 도박이 되고 때로 위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장그래는 아이디어는 제시할 수 있어도 책임질 수 있는 능력과 지위가 주어지지 않은 신입입니다. 막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프로젝터를 켜고 음료수를 나르고 회의실 불을 끄는 일 정도죠. 오성식 차장(이성민)이 요르단 중고차 사업 PT를 장그래의 방식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무모하고 겁없는 도전임에 틀림없습니다.


'저 친구 완전히 작두에 올라선 거 같애' 큰 조직에서 판을 깬다는 것은 도박이자 위기가 될 수 밖에 없다.


장그래의 '판을 깨는' 도전은 처음부터 오차장의 결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습니다. 천관웅 과장(박해준)과 김동식 대리(김대명)이 장그래에게 한마디씩 던진 것도 수많은 임원진 앞에서 파격적인 프리젠테이션을 선보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연륜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죠. 오차장의 새로운 시도가 비난만 받고 물거품이 되고 영업3팀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반대할 것이 뻔한 요르단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것도 최전무(이경영)를 비롯한 임원진의 반대를 뚫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판을 깨는 방법 말고는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최전무와 임원진이 오차장의 요르단 사업 선택을 반대한 이유는 사업 수익성 문제 보다는 회사의 수치인 비리를 다시 거론하고 싶지 않고 사장(남경읍)과 최전무 간의 알력싸움을 자극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큽니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비리 문제로 외면한 많은 사업들을 다른 기업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아주 간단한 진실이 필요했습니다. 오차장은 '사업 본연의 가치' 만 보라고 말합니다. 오차장에게 우호적인 사장의 도움까지 보태져 결국 판을 깨트린 PT는 요르단 사업 자체를 반대하던 임원들을 성공적으로 기선제압했습니다. 파격은 때론 위기를 돌파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상사맨 출신 임원들을 감동시킨 장그래의 '우리 회사'라는 말.


'겁없는' 장그래는 사장에게 요르단 사업을 제안한 이유가 '우리 회사'이기 때문이라 대답합니다. 장그래가 위기가 될 수 있는 파격을 제안한 이유는 원인터가 우리 회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장그래는 인턴 시절 자신을 '우리 애'로 받아준 오상식 차장의 말을 제대로 받아들였고 신입사원들 중 그 누구 보다 먼저 '우리'가 되었기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장그래의 노력은 안영이(강소라)의 말대로 단순히 '바닥부터 시작한 사람의 몸부림', 살아남기 위한 최선 만은 아닙니다. 물론 장백기(강하늘)처럼 모든 스펙을 갖추고 입사했다면 좀더 쉬엄쉬엄 일을 했을 지도 모르지만 장그래의 가장 큰 동기는 '우리'이기 때문에 판을 깨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 아닐까요.












2년차 사원이 되는 신입사원들 - 모두 더할 나위 없었다


드라마 '미생'은 지금까지 13회가 방송되었습니다. 드라마 속 시간 상으로 1년 반정도가 지난 시점이겠죠. 원인터의 입사동기 네 사람은 각자 한해를 마무리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영업3팀과 함께 요르단 사업을 시작하게 된 장그래는 비록 계약직이지만 네 사람 중 그 누구 보다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새로온 영업본부 부장 이신태(김경룡)도 장그래의 이름을 알고 낯선 사원들은 장그래에게 질문을 던지고 여직원들도 휴게실에서 장그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불안불안한 계약직의 파리 목숨도 사장까지 기억하는 장그래라면 쉽게 넘어설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바둑 밖에 모르던 장그래가 인턴이었을 땐 능력 미달의 최전무 낙하산이었지만 지금은 잠재력있는 영업3팀의 사원입니다. 회사에서 살아남아 완생이 되기 위한 집념과 오차장의 '우리 애'라는 말에 보답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은 그를 한층 더 성장하게 해주었습니다. 계약직에 울컥했던 장그래의 마음을 달래준 것도 '더할 나위 없었다 YES!'라고 씌여진 오차장의 카드였습니다. 장그래의 힘겨웠던 일년을 되돌이켜 보기에 충분한 위로였죠. 아직 요르단 사업과 '정규직'이라는 커다란 위기가 남아 있지만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용기를 주기 충분했습니다. 카드가 날아가는 드라마 속 장면이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감동적이더군요.


힘들고 벅차지만 '우리 회사'에 다닐 이유를 가진 1년차 신입사원들.


인턴 시절, 입사 초기에 장그래를 마음 속으로 무시했던 장백기는 장그래 보다 무능한 자신에게 절망했지만 그에게는 강대리(오민석)와의 작은 유대감이 생겼습니다. 이젠 누구 보다 강대리를 따르고 의지합니다. 자원팀으로부터 '우리'가 되길 거부당한 안영이는 여전히 마부장(손종학)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그녀는 일년 동안 차곡차곡 돈을 모은 통장에 만족하며 포도주를 마십니다. 가족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한석율(변요한)은 뺀질이 성대리(태인호)와 '우리 팀'이 되긴 벅차지만 연말 만큼은 가족들에게 선물과 카드를 챙겨줍니다. 그들 모두 크고 작게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야하는 '동기'를 찾았습니다.


제가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직장동료를 술자리에서 만나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같이 사우나에 가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죠. 근무 시간이 긴 만큼 사적인 시간은 뺐기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조차도 가끔은 직장동료들과 술한잔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마치 강대리에게 술 한잔이 간절해 쭈삣주삣하던 장백기처럼 말이죠. 그 알 수 없는 유대감의 정체 - 회사에서 만난 '우리'는 어떤 의미일까요.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만큼 회사에서 부대낀 '우리'들이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입사원에게 1년차의 시간은 '우리'의 의미를 깨닫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미생'의 네 사람이 다음 회부터는 2년차 사원이 되는 것이죠.


1년차를 무사히 마무리한 장그래. '더할나위 없었다'라는 오차장의 글이 이 시대의 직장인들을 위로한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계약직이라는 것 만큼 어깨를 무겁게 하는 단어도 없습니다. 일할 때는 정규직과 다름없는 책임을 지지만 1, 2년이 지나면 계약연장이 되지 않고 그만 둬야할 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일의 능률을 떨어트리곤 합니다. 정규직과 연봉 차별, 대접 차별이 있는 곳도 많아 굳이 회사에서 '우리 팀' 소리를 들어가며 열심히 일해야하나 싶기도 하죠. 정규직이 될 가능성은 말 그대로 가능성으로 끝나는 곳도 있으니 휴게실에서 만난 실무직 여사원들처럼 차라리 다른 회사 입사지원서를 내는게 마음이 편할 때도 있습니다. 계약직들은 '우리'면서 '우리' 아닌 존재로 겉도는 경우도 많습니다. 장그래의 '우리'는 그렇게 한번 더 위기를 맞겠지만 오차장, 김대리, 천과장을 믿어볼 수 밖에요.


오늘 예고편을 보니 안영이와 삼정물산 신팀장(이승준)과의 과거가 조금 더 밝혀질 것같더군요. 두 사람은 잘 맞는 선후배 사이였지만 남자, 여자다 보니 불미스런 소문에 휘말린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 지독한 마부장이 거론하는 걸 보니 안영이에게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거기다 첫회부터 안영이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그 사람, 아버지라는 인물이 또 돈문제로 안영이를 괴롭히나 봅니다. 계약직 장그래는 요르단 사업의 시작은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정직원이 될 길은 아직도 멀고 멉니다. 1회에 등장했던 요르단 지사의 직원(최재웅)이 다시 등장했던데 다시 장그래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두고볼 일입니다. 가끔은 쓰고 가끔은 달달한 소주 한잔처럼 먹먹한 미생들의 직장생활이 오늘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래서 오차장의 '더할 나위 없었다'는 말은 직장인들을 위한 최고의 격려로 다가오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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