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미생

미생, 영업3팀은 천관웅 과장에게 '우리'가 될 수 있을까

Shain 2014. 11. 2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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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 받아온 특별 보너스를 세 덩어리로 나눠 아이들 교육비, 생활비, 남편의 용돈으로 나누는 아내. 오차장(이성민)의 아내(오윤홍)가 남편의 승진 소식에 모처럼 여유있게 웃는 모습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자주 보는 어머니들의 모습입니다. 돈이 넉넉하면 좋으련만 어느 집이나 할 것없이 평범한 월급쟁이들의 봉급은 모자라기 마련이고 자녀들과 남편의 몫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가져가는 어머니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우리'를 위해 그런 희생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사회 어디에나 이렇게 크고 작은 '우리'들이 있기에 가정이 굴러가고 나아가서는 기업도 돌아가는 법입니다.


'날 의심하면 의심한대로 할 것'이라며 김대리에게 경고하는 천과장. 최전무의 지시로 영업3팀에 온 천과장은 고민한다.


물론 하나의 기업을 커다란 '우리'로 묶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기업 안에는 많은 조직이 있고 조직 내에는 크고작은 팀이 있습니다. 부장급 이상의 중견간부가 되거나 전무나 상무같은 임원들이라면 몰라도 한 기업에 입사해서 갑작스레 한 팀이 된 사원들이 처음부터 직장동료들을 '우리'로 느끼기는 힘듭니다. 결혼이나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도 아니고 학교 선배나 고향 선배도 아니고, 하다 못해 성격도 닮지 않은 동료들이 언제부터 '우리 팀'이 되고 언제부터 '우리'가 될까요? 남같으면서 적같은 직장동료들을 '우리'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불러도 되는 걸까요? 기업 내의 직장동료들이 생각하는 '우리'는 어떤 면에선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영업3팀의 활약으로 박과장(김희원)의 비리가 공개되었습니다. 다른 팀은 박과장의 비리를 대충 눈치채고도 영업3팀에 박과장을 떠넘겼습니다. 오차장은 회사라는 '우리'를 위해 옳은 선택을 했지만 영업3팀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차장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김부장(김종수)을 물러나게 했고 탄탄하던 최전무(이경영) 라인에도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원인터내셔널 사장(남경읍)이 직접 오차장을 승진시키고 격려금까지 주었지만 동료들이 오차장을 차갑게 쳐다본 것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질타도 있지만 오차장의 선택으로 애꿎은 김부장과 자신이 속한 '우리 팀'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겠죠.


오차장의 선택은 회사를 위한 것이었지만 그 때문에 한때 오과장의 팀이자 사수였던 김부장은 좌천되고 만다.


신입사원일 때는 내가 속한 팀,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들만 '우리'지만 점점 더 직급이 올라가면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범주가 점점 더 넓어지는 동시에 좁아지는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학연, 인맥같은 자잘한 관계까지 포함되면 '우리'의 개념은 점점 더 복잡해지죠. 함께 일만 하는 동료를 '우리'라고 부를 때도 있고 끈끈한 동료애로 똘똘 뭉친 동료를 '우리'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최전무의 발령으로 영업3팀의 일원이 된 천관웅 과장(박해준)의 표정이 복잡했던 이유는 자신있게 '우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영업3팀 출신으로 과장이 된 천관웅은 갑작스레 최전무 라인에서 밀려난 자신의 처지를 고민합니다.


천관웅 과장은 김동식 대리(김대명)를 회의실에 불러 영업3팀에 경고 아닌 경고를 합니다. 천과장은 경력직 출신으로 입사동기도 없고 신입사원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사수도 없습니다. 최전무의 지시에 민감할 수 밖에 없지만 동시에 자신의 소속인 영업3팀을 소홀히할 수 없습니다. 천관웅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 영업3팀에 왔냐는 김대리의 질문에 '적어도 난 이유없다'고 대답하면서 '적당히 잘 지내자'라고 합니다. 과거에 같은 팀이었던 오차장이나 김대리의 뒷통수를 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이자 최전무에게 지시받는 자신의 입장을 헤아려달라는 양해같은 것이죠.


'일하러 와서 게임이나 하고 있다가는 자네부터 게임에 빠진다'


눈치빠른 오차장이 그런 천과장의 상태를 알지 못할 리 없습니다. 과거에는 친하게 지내던 김대리를 사무적으로 대하고 요르단 건을 물어보는 천과장에게 '일하러 와서 게임이나 하고 있다가는 자네부터 게임에 빠진다'며 주의를 줍니다. 사내 정치에 휩쓸리지 말라는 충고이자 천과장을 '우리 팀'으로 끌어안기 위해 손을 내민 셈이죠. 회식자리에서 천과장은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남들 기분 맞춰주면서' 마시는 술 보다 혼자 편하게 마시는 술이 좋다고 했지만 직장생활 내내 직장 상사의 속내를 고민하느냐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던 것입니다. 천과장이 오차장의 호기로운 충고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일단 오차장은 천과장을 당연히 '우리'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우리'에 끼워주거나 '우리'가 되는 법을 깨닫거나


계약직 사원 장그래(임시완)는 영업3팀 소속이고 능력있는 안영이(강소라)는 자원팀 소속입니다. 뛰어난 스펙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 기본이 덜 된 장백기(강하늘)는 철강팀 새내기이고 개벽이 소리를 들을 만큼 현장일에 뛰어나지만 뺀질이 상사 때문에 속썩는 한석율(변요한)은 섬유팀 소속이죠. 직장 내에서 축구공처럼 이리저리 차이던 장그래는 그래도 운좋게 인턴 시절부터 오상식 과장을 만나 '우리 애'로 인정받았고 동기들 중 가장 빠르게 팀의 일원으로 능력을 보여줬지만 나머지 세사람은 아직까지 넘어야할 난관이 남아 있습니다.


안영이는 하대리(전석호)의 부당한 지시를 지독하게 수행하며 근성을 인정받아도 여전히 마초스러운 자원2팀에서 갈 길이 멉니다. 선차장(신은정)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안영이도 언젠가 이겨내야할 일이죠.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회사 업무에 부적절한 점이 많았던 장백기는 강대리(오민석)이라는 노련한 상사를 만나 나날이 발전중입니다. 한석율은 술값도 일도 떠넘기는 성대리(태인호) 덕분에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장백기처럼 공문서에 쓸 문장을 구어체로 마무리하는 직장 후배를 만나 애먹은 적이 있는데 드라마 속 강대리는 장백기의 자존심을 적당히 자극하면서도 꼼꼼하게 훈련시키더군요.


'우리'에 끼워주거나 '우리'되기 위해 노력하거나. 직장생활의 기본.


회사 동료는 진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사람도 있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도대체 왜 저런 사람이 한팀일까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더럽고 치사해서 오늘 꼭 사표쓴다며 분노를 삭이는 순간도 있죠. 그런데 다양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한팀 즉 '우리'가 되어 일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더이상 발전할 수 없습니다. 신입사원 장그래와 장백기, 안영이가 상사와의 갈등을 넘긴 덕분에 한단계 발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한 조직에서 팀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직장인으로서 꽤 중요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개념은 서로를 감싸주는 인간애일 뿐만이 아니라 직장인이 맨처음 배워야할 사회성입니다. 직장에서 만난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직장생활이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사실 우리 나라 대기업 계약직들의 현실을 볼 때 장그래는 정직원으로 들어온 입사동기들과는 달리 재계약 때문에 눈치보는 처지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많은 직장에서 계약직은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우리'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장그래는 오상식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만난 덕분에 영업3팀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낙하산이라는 오해를 받았어도 장그래 정도면 계약직이나 인턴으로서 운이 좋은 편입니다. 처음에는 남들이 눈치챌 정도로 장그래를 얕보던 장백기도 요새는 어쨌거나 장그래를 직장 동료로 인정하는 분위기죠.


'우리가 박과장에게 모욕을 받았다'는 이유로 요르단 사업을 맡기로 한다.


'우리 애'라는 한마디는 낙하산 인턴으로 자신이 할 일 조차 찾지 못하던 장그래에게 무한한 힘을 주었습니다. 오상식이란 상사의 무한한 아량이 큰 힘이 되기도 했지만 영업3팀이 되기 위해 장그래도 필사적으로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습니다. '배추숨죽이기'를 당하면서도 강대리에게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은 장백기와는 다른 태도였습니다. '우리 팀'의 일원으로 끼워준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우리'가 되는 법을 깨닫는 과정도 필요한 셈입니다. 천과장은 영업3팀에 발령났으면서도 최전무와의 관계 때문에 영업3팀과 데면데면한 사이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최전무와 오차장 사이에서 불안해하는 천과장. 요르단 사업을 추진하면서 '언제부터 우리가 구더기 무서워서 장못담궜냐'는 오차장. '이 회사의 모두가 박과장에게 모욕을 받았다'며 '우리 팀의 일이 아직 덜 끝났다'는 장그래. '우리가 모욕을 받은 것'라는 장그래의 말은 오차장에게 요르단 사업을 추진해야하는 타당성있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우리'고 내가 받아들여야할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라는 말은 끊임없이 천과장을 자극할 것입니다. 과연 오차장이 밑도 끝도 없이 믿고 있는 '우리'는 오차장을 지탱해줄 수 있을까요? 그래도 용감한 상사맨 오차장이라면 '우리'를 찾지 못해 매일 밤 맥주를 홀로 마시는 천과장을 진짜 영업3팀으로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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