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미생

미생, 존대말도 반말도 불편한 직장에서 만난 '갑' 친구

Shain 2014. 11. 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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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회식이나 접대를 하다 보면 꽤 비싼 술집이나 음식점을 가게 될 일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회식 자리는 비싼 곳 보다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곳이 훨씬 좋지만 접대는 될 수 있으면 고급스런 곳으로 가야 생색이 납니다. 접대가 꼭 잘 봐달라는 뜻의 뇌물은 아니라도 업체간 친목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으로 간주해 회사에 따라서는 접대 대상별로 비용이 정해져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동등한 협력관계라면 그나마 괜찮지만 업체에 따라 갑을 관계가 분명한 곳일수록 접대자리가 과하거나 뒷말이 많은 곳들이 흔합니다. 기분좋게 마신 술은 숙취도 덜하지만 대접을 위해 억지로 마신 술은 몸을 더욱 힘들게 하죠. 접대한 다음 날 출근하기가 더 싫다고 느껴본 직장인들이 많으실 겁니다.


계약을 위해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자신을 물먹이기 위해 '갑질'했다는 걸 알게 된 오상식은 허탈하게 웃는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냐는 문제는 직장생활 뿐만 아니라 사는 곳 여기저기에서 중요합니다. 지나치게 갑 위치를 강요하는 업체도 진상이고 사회문제가 될 수 있지만 '갑'이라는 걸 제대로 인식시키지 않으면 업무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싫은 소리 못하고 사람좋은 박대리(최귀화)가 '을' 업체에게 호구 취급당하는 모습을 보면 적당히 '갑' 노릇을 해야할 때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장그래(임시완)가 자기 만의 묘수를 고안해 박대리를 구해내는 과정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은 그렇게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며 언제나 타협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박대리는 늘 상사에게 질책당하면서도 자신이 고발하면 위험해질 수 있는 상대 업체의 처지를 고민합니다. 그러나 박대리는 몰랐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상대 업체의 변명을 들어주고 그들 사정까지 걱정해줬지만 상대업체는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박대리의 잘못은 갑을관계가 딱 부러져야할 순간에 인정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일은 잘 해결됐고 일상생활과 회사 생활에서 힘겨워하던 박대리는 자신의 껍질을 벗게 되었다고 장그래에게 감사해 합니다. '을' 업체와는 새로운 관계가 정립된 것입니다.









오상식(이성민) 과장은 협상과정에서 고등학교 친구(이달형)를 만나 나름대로 일이 잘 성사될 거라 여겼지만 친구의 '갑질'은 오과장을 괴롭게 합니다. 학교 다닐 때는 오과장이 공부도 더 잘 하고 나름대로 '갑'이었지만 친구는 이제는 자신이 '갑'의 입장이라 톡톡히 갑질을 합니다. 오과장은 회의실에서 한 시간씩 기다리게 하고 어렵게 굴고 비싼 곳에서 접대해달라 요구하는 친구가 그래도 계약은 성사시켜줄 거라 믿었는데 한때 친구였던 그 인간은 처음부터 계약을 할 생각이 없었고 갑질할 생각에 오상식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친구를 접대하다 간도 쓸개도 다 빼줘야하는 느낌, 회사일로 만나지 않았으면 그냥 반가운 옛친구인데 회사 생활이 인간관계를 깎아먹는 그 기분을 느껴보지 않으면 모를 것입니다.


김동식 대리(김대명)의 말대로 회사 생활하다 마주치는 수많은 '갑' 중에 친구가 '갑'이 되는 경우가 가장 힘들죠. 갑은 갑대로 나름 자기의 갑 입장을 드러내면서 친구를 대해야하고 을은 을대로 존대하기도 막 대하기도 힘든 친구를 어려워합니다. '접대 자체가 주종 관계를 깔고 들어가는 것'이라는 김대리의 말처럼 주종관계는 분명한데 친구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 주종관계를 유지한다는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뭐 '미생'에 등장한 오상식의 친구같은 경우 아예 물먹일 생각으로 까다롭게 군거지만 회사의 주종관계가 사적인 관계를 지배하면 이렇게까지 회사 생활을 해야하나 싶죠.


똑같은 '갑' 이지만 다른 두 사람. 하나는 너무 무르고 하나는 진상.


회사 생활이란게 그렇습니다. 사적으로 아는 사이든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는 사이든 간에 일은 분명히 해야합니다. 회사 일로 지나치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회사 일로 지나치게 진상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갑' 위치에 서면 관계 자체가 달라진 듯 거들먹거리는 사람도 많지만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죠. 상대 업체에 대한 박대리의 온정도 과했고 주종관계를 이용해 사적인 앙심을 해결하는 오상식의 친구도 지나쳤습니다. '친구라서 더 비참한 굴욕'이 되기도 하고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뒷통수를 치기도 합니다. 품의서 한장으로 계약서 한장으로 해결되는 업무라지만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니 이렇게 고민할 수 밖에요.


사적으로 아는 친구를 업무상 만났을 경우 회사 생활을 오래한 경력직들은 '일이 더 어렵게 됐다'며 고민합니다. 사적으로 친했으면 친한대로 어렵고 껄끄러우면 껄끄러운대로 힘듭니다. '미생'에서처럼 갑을 관계까지는 아니라도 비슷한 경우는 제법 많죠. 대학교 선배를 군대 후임으로 받게 된 선임, 한때 스승이었던 고등학교 선생님을 대학교 제자로 만나는 경우, 절친한 친구에게 계약서에 사인해달라고 졸라야하는 경우 등 사적으로 아는 사이란 사실이 훨씬 더 힘든 상황이 종종 일어나게 됩니다. '공은 공 사는 사' 이게 분명히 갈라질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이 이런 고민을 하지 않겠죠. 


직장이란 곳은 친구를 만나도 반가워할 수 없는 곳이다.


한편 계약직 장그래가 그럭저럭 영업3팀의 일원으로 무리에 끼어들고 있는 반면 인턴 시절엘리트로 촉망받던 장백기(강하늘)는 여전히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장그래에게 자원팀 캐비넷 비밀번호를 알려준 일로 구박받는 안영이(강소라)의 신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거운 샘플 때문에 다리를 다치는 모습이나 '본처가 남의 집가서 첩질하고 오면 이런 기분'일 거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는 그녀는 자원팀에서 철저한 '을' 위치에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심인지 인간적인 의리인지 몰라도 장백기가 안영이를 도와주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죠. 겉으로는 약아 빠지게 보이는 장백기라는 인물의 양면성을 보여준 것같기도 합니다.


장백기의 또다른 '갑', 장백기의 선임은 왜 장백기에게 전혀 일을 시키지 않을까요. 이리저리 소문을 옮기고 다니는 한석율(변요한)은 그게 '배추숨죽이기'라고 했습니다. 장백기의 사수가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장백기를 고의로 무시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일을 시켜달라고 해도 일을 하겠다고 해도 상관은 꼼짝하지 않습니다. '장백기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강대리의 말은 아직까지 장백기가 회사생활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일 것입니다. 남보다 출근도 일찍하고 회사생활 준비도 열심히 하는 장백기에게 모자란 것은 무엇일까요.


장백기의 '갑'인 강대리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길래.


고졸 계약직 장그래도 이미 영업 3팀 팀원이 되어 일을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하고 고생할 때 같이 고생하는데 장백기는 왜 아직 철강팀의 일부가 되지 못했을까요. 말하는 것만 봐도 철두철미하고 꼼꼼한 강대리가 자존심 강한 장백기에게 '필요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모습이 싸늘하게 보였죠. 그러면서도 책반납같은 자질구레한 일은 또 부탁하는 강대리의 의중은 무엇일까요. 장백기라는 부하직원이 '을'이라는 사실을 입력시키기 위해서는 아닌지. 어쩌면 박대리가 상관에게 야단맞고 일을 시원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박대리를 무시했던 장백기의 태도와 강대리의 무시가 상관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아무튼 미워할 수 없는 '미생'의 상사맨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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