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직급별로 배워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회사를 잘 모르는 신입사원 때는 부족한 업무 능력이나 요령을 배워 이 회사가 과연 나의 미래를 걸만한 곳인지 생각해봐야합니다. 대리 이상 과장급이 되었을 땐 아랫 사람들을 통솔하고 어떻게든 일을 성공시키는 노하우를 배워야합니다. 부장 이상 회사의 중역급이 되었을 땐 자기 부서 뿐만이 아닌 회사의 전체적인 업무를 대부분 다 파악하고 사람보는 눈을 더욱 키워야하죠. 그리고 어떤 직급이든 반드시 배워야하는 기술(?)이 바로 처세술입니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선택을 달리 하는 법 - 처세술은 어쩌면 다른 어떤 자질 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계약직 신입 장그래(임시완)은 인턴 시절처럼 오성식(이성민)에게 혼이 납니다. 이제 시키는 일을 적당히 할 수준은 됐는데 여전히 능력이 모자랍니다. 자존심강한 장백기(강하늘)는 직속 상관으로부터 무시 당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배추숨죽이기' 과정을 겪는 중입니다. 인턴 때는 PT도 상사들 눈치보기도 제법 잘 했는데 사수는 아무래도 장백기를 직장에 맞게 길들일 필요를 느끼는 듯합니다. 한편 최고 인재로 어느 팀에서나 탐내던 안영이(강소라)는 여자라는 이유 만으로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안영이는 지금부터 자신의 능력 보다 여자라는 편견과 싸워야하는 셈이죠.
'미생'의 신입사원들에게 닥친 어려움은 한 직장에서 완생이 되기 위한 첫번째 시험이자 과제입니다. 아무리 안영이에 대한 상관들의 행동이 부당하다고 한들 결혼과 집안사정같은 개인적인 일과 직장일을 병행하려면 꼭 한번은 거쳐야할 난관입니다. 안영이의 멘토가 될 선차장(신은정)은 힘들게 노력해서 승진했지만 여전히 한 가정의 엄마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첫번째 단계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 두번째 과제는 절대로 불가능하죠. 또 이런 어려움은 개인적으로 이겨낼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시험이 있습니다.
내가 일하는 팀의 직원이 타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면 또는 상관이 부당한 일을 저질렀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바로 '내부고발' 문제입니다. 교과서적으로 정해진 정답은 하나지만 상황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자원팀의 정과장(정희태)이 실수로 누락한 BL에 대한 책임을 오과장에게 떠넘기자 과거 오과정의 증언 때문에 감봉당한 마부장(손종학)은 이때다 싶어 오과장을 질책합니다. 오과장의 후배인 정과장은 뻔뻔하게 오과장이 과거 부하직원을 죽게 했다며 이죽거려 화가난 오과장이 정과장을 폭행합니다. 오과장에 대한 오해와 소문이 보태져 일은 점점 더 커집니다.
장백기는 자원팀 인턴 시절 직접 BL을 받았기 때문에 오과장이 결백한 걸 알고 있었고 자원팀 안영이는 서류철을 뒤져 오과장이 줬다는 BL을 찾아냅니다. 장그래는 김동식 대리(김대명)와 오과장의 대화를 듣고 사내에서 오과장의 잘못으로 소문난 과거의 일이 사실은 최전무(이경영)의 짓이란 걸 알게 됩니다. 오과장이 과거에 대한 후회로 동료 직원들을 감싸며 자학 비슷하게 사람들의 오해를 내버려두고 있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그 때문에 장그래는 안영이에게 BL을 자원팀이 받았다는 걸 듣자 마자 몰래 서류를 찾으러 자원팀에 갑니다. 물론 자원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장그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마부장 앞에서 혼나지 않기 위해 오과장 핑계를 댄 정과장의 행동은 분명 잘못입니다. 그러나 장백기는 서류 못봤냐는 한석율(변요한)의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않고 다시 묻는 안영이에게 '남의 일'이라며 안영이가 '자원팀 팀원'이란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장백기는 어쨌든 지금은 자원팀 팀원이 아니기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선택이 현명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안영이는 계속해서 고민하며 선차장에게 물어봅니다. 선차장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남녀 문제가 있냐'며 '양심'을 말합니다. '알면서도 안하는 사람과 알기 때문에 하는 사람'이 있다는 선차장의 말은 안영이에게 용기를 줍니다.
자기가 속한 팀의 잘못을 남에게 알리는 일. 내부고발의 중요성은 사회 어디에서나 거론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자기 팀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동료 간의 신뢰를 깨트릴 수도 있고 직장에 사표를 내야할 때도 있습니다. 오과장이 여직원회의 편을 들어 마부장의 행동을 증언한 건 옳지만 마초적인 자원팀 마부장과 정과장, 하대리같은 인물들은 아무리 잘못했어도 그들 역시 한솥밥 먹는 동료들입니다.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면 그들의 가정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오과장의 선택은 같은 동료인 여직원들을 위하는 일이었지만 자기들끼리 똘똘 뭉친 마부장무리들에겐 배신으로 느껴질 수 있겠죠.
오과장에게는 최전무가 은지라는 부하직원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웠지만 아무 말 못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오과장도 아이 셋을 책임져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발목을 잡았을 것입니다. 그때의 후회가 남의 일을 도맡아 할 정도로 일은 잘하면서도 최전무같은 윗사람에겐 고분고분하지 않은 오과장을 만들었겠죠. 최전무에게 굽신거려서라도 김대리를 도와주고 선차장의 딱한 처지를 돌봐주는 것도 그 때의 기억 때문일 것입니다. 직장인에게는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상황에서 '예스맨'이 되어 고개를 굽혀야할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쌓인 후회가 담배 연기에 모두 날려가기는 할까요.
오과장에 '미안하다 좀마니'라는 사과문에 열받은 마부장이 씩씩거리며 찾아왔을 때 폭행당한 듯 알아서 쓰러지는 김대리와 그런 김대리에게 오버스럽게 병원에 가라는 오부장(쿵짝이 얼마나 잘 맞는지 배꼽빠지게 웃었습니다). 마부장에게 할말은 다 하면서도 친절한 태도로 자기 일은 딱 부러지게 하는 선차장. 오과장은 야단치고 자원팀 마부장을 찾아가서는 사과하는 김부장(김종수). 상관들의 알력관계를 보며 신입사원들은 어떻게든 현명하게 처신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그러나 내부 고발에 대한 문제 만은 스스로 결정해야하고 고민할 문제죠. 누구든 불이익과 비난을 감수할 자신이 쉽게 생길 리는 없습니다.
사실 어제 방송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맞벌이하는 선차장과 '배달의 기수'가 되어 도시락 심부름하는 안영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사회구조상 여성 직장인들은 남성들 보다 능력 아닌 문제로 더 많은 고민을 해야합니다(이제는 여성 문제라기 보다 사회문제죠). 그리고 안영이 말고 누가 오과장에게 자원팀 캐비넷 비밀번호를 알려주었을까요? 남자라는 이유로 한팀이 되어 안영이를 냉대하는 자원팀 세 남자들 중 하나일텐데 누군가는 자원팀이면서도 오과장에게 인정있게 굴었단 뜻입니다. 지금으로선 유대리가 가장 가능성이 높지만 의외로 장백기가 오과장의 추궁에 털어놓았을지도 모릅니다. 예고편을 보니 안영이가 뒤집어쓰겠더군요. 동료의 잘못을 폭로하는 일은 어떤 선택을 하는게 맞을까요? 아마도 '미생'에서 '내부고발' 문제는 두고두고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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