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밤만 되면 각 공중파 방송사 드라마를 다운로드 받느냐 정신이 없다. 방송 3사의 드라마 세 편 모두를 시청하기 때문에 최소한 두 편은 다운로드 받다 보면 한편당 60분이 넘는 방송시간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다. 그런데 월화 드라마 세편 모두 시청률이 고만고만한 만큼 대부분 볼만한 가치가 있다. 법조계의 문제를 다루는 '펀치'나 '오만과 편견'은 매회 마다 긴박감 넘치는 승부가 펼쳐지고 밤심부름꾼 힐러와 언론 이야기를 다루는 '힐러'는 어딘가 모를 매력이 꽤 볼만하다. 각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과 초점이 다르지만 월화드라마 세편 모두 대한민국의 '현실'을 꼬집는 내용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드라마의 특성답게 특정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가상의 이야기라는 전제를 달고 있지만 말이다.
각자 다른 매력을 선보이고 있는 공중파 3사의 월화드라마 세 편. 공통적으로 대한민국 권력의 현실을 꼬집는다.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이고 있는 월화 드라마 3편 - 로맨스를 선보이는 주인공 커플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드라마를 떠받치고 있는 조연급들의 연기도 볼만하다. '오만과 편견'의 속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부장 검사 문희만(최민수)이나 '펀치'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는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 '힐러'에서 주인공 커플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자 김문호(유지태)의 연기는 드라마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오늘은 어느 한편도 빼놓기 힘든 월화 드라마 세 편의 치명적인 매력을 비교해 본다.
KBS 힐러 - 김문호가 채영신과 서정후에게 전달하려는 그 메시지
'힐러'는 밤심부름꾼이라는 가상의 직종과 '어르신(최종원)'으로 대변되는 권력자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한다. 힐러(지창욱)는 경찰망까지 뚫는 만능 해커(김미경)를 통해 각종 의뢰를 받고 비밀리에 일을 처리한다. 80년대 해적방송의 멤버였던 김문호는 어린 시절 형 김문식(박상원)에 의해 버려진 최명희(도지원)의 딸 채영신(박민영)을 찾아내 유명기자로 훈련시킨다. 어제 방송에서는 시장선거 후보로 나선 김의찬(조영진) 의원의 성접대 비리를 채영신이 속한 인터넷 언론사 썸데이에서 밝혀내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인기를 끄는 유명기자였으나 제대로된 송신 시설 조차 없는 인터넷 신문사 기자로 변신해 채영신이 정치인 인터뷰를 따내도록 도와주는 김문호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채영신에게 유명기자가 되는 훈련을 시키고 정치인의 성접대 비리를 폭로하게 만드는 김문호. 그의 메시지는?
김문호는 최명희와 형의 친구들이 해적방송을 하던 그 시절을 목격한 당사자다. 그때 경찰의 추적을 피해 민주를 외치던 형들과 누나가 얼마나 힘겹게 자신들의 사명을 다 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채영신은 최명희를 차지하고 싶은 형 김문식의 욕심 때문에 엄마와 떨어져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했다. 김문호가 조카세대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은 일단 채무감이자 책임감이다. 현대 사회의 언론은 과거와 똑같이 현실에 눈감과 권력에 복종하고 있지만 후배세대로 대변되는 채영신과 힐러에게는 이제는 인터넷이나 해킹같은 무한한 능력이 있다. 김문호는 아무래도 80년대에 형들과 누나가 그랬듯이 채영신과 힐러도 바른 언론의 역할을 하길 바라는 것같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혼자 살길 원하던 힐러 서정후와 연예기자 역시 대중들에게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 채영신에게 정의와 민주는 김문호의 생각과 조금 다를 것같다. 힐러의 세대 역시 그들 만이 느끼고 있는 고민과 가치관이 있기 때문이다. '힐러'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그들의 메시지는 세대를 통해 어떻게 거듭날 것인가. 그 과정이 현대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세대와 장년층의 갈등이기에 드라마속 해법이 궁금할 뿐이다. 현대는 무조건 '정의'를 외친다고 호응하는 시대가 아니고 '정의'의 의미 조차 달라진 시대이기에.
SBS 펀치 -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선과 악
'펀치' 6회에서는 검찰총장인 동생 이태준에게 자신의 존재가 위협이 될 것같다고 느낀 형 이태섭(이기영)이 자신들의 부모 묘가 있는 저수지로 뛰어드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절 뒤편에서 직접 캔 칡뿌리를 동생과 나눠먹던 이태섭이 저수지에 빠져 죽으면서 수몰지구에 묻혀 있는 부모의 묘를 보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가슴저리게 만들었다. 법무부 장관 윤지숙(최명길)이 그렇게 기를 쓰고 무너트리려 애쓰는 이태준 형제는 누가 봐도 '악'이지만 그들이 각종 부정을 저지른 마음의 밑바탕에는 남들처럼 권력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숨겨져 있었다. 아들의 병역비리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이태섭과 야합하는 윤지숙은 시청자에게 한가지 교훈을 안겨준다. '나쁜 사람과 덜 나쁜 사람' 중의 하나를 고르는게 권력이라는 점을 말이다.
나쁜 사람 이태준과 덜 나쁜 사람 윤지숙 모두 박정환 검사의 남은 인생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앞으로 길어야 6개월 밖에 살 수 없는, 시한부 박정환 검사(김래원)가 남은 인생 동안 마주쳐야할 사건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나쁜 사람 이태준 검찰총장과 덜 나쁜 사람 윤지숙 장관 모두 박태환을 처참하게 쓰러트리고 싶어할 것이다. 힘겹게 검사가 된 박정환은 자신의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이태준과 손을 잡았고 딸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하고 싶어 예린(김지영)을 사립학교에 넣으려 했다. 자신이 죽으면 엄마(송옥숙)를 책임질, 동생 현선(이영은)은 검사 후배들과 결혼시키고 싶어했다. 워낙 가진 것이 없었던 박정환에게 법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래야 성공할 수 있었으니까.
도대체 왜 박경수 작가는 이렇게 선과 악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잡았을까? '추적자(2012)'와 '황금의 제국(2013)'으로 강한 여운을 남긴 박경수 작가가 악인 이태준을 인상적으로 묘사하는 의도는 아직까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그 러나 재벌과 검찰총장의 커넥션을 파헤치려는 신하경(김아중)의 손을 드는 정국현(김응수)처럼 '검사가 들어야할 명령은 법의 명령'이라는 소신이 얼마나 지키기 힘든 것인지는 충분히 알 것같다. 검사가 한 사람의 개인에게는 과감하고 무서운 칼을 휘두르지만 권력자에게는 무딘 칼을 슬쩍 휘두르는 그 이유가 그 누구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적 욕망에 있는 것은 아닌지 박정환이 보여줄 마지막 모습이 안타깝게 기다려진다.
MBC 오만과 편견 - 얼굴없는 권력자 박만근을 찾아라
마지막회를 앞둔 '오만과 편견'은 첫회부터 날카로운 현실비판으로 화제가 되었다. 매회 마다 충격적인 반전으로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 드라마는 결국 한 아이의 납치, 살해사건부터 성접대 사건까지 모두 얽혀 있는 '박만근'의 존재를 마지막으로 남겨두고 있다. '펀치'가 처음부터 '악의 축'을 드러내놓고 시작하는 드라마라면 '오만과 편견'은 마치 어둠 속을 촛불로 조금씩 밝혀가듯 단서를 하나하나 풀어간다. 한열무(백진희)가 궁금해했던 동생 한별이의 죽음은 단순히 정창기(손창민)의 교통사고가 아니라 13년전 특검팀의 비리와 연결된 복잡한 사건이었다. 구동치(최진혁) 검사와 강수(이태원), 한열무가 박만근의 정체를 파헤치게 된 것은 필연이었던 셈.
촛불로 어둠을 밝히듯 하나하나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 도대체 박만근은 어떤 존재이길래?
송아름(곽지민)이 동영상에서 목격했다는 박만근은 대체 누구일까?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길래 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지금까지 꽁꽁 숨어있을 수 있었을까? 오차장(김여진)과 박순배(맹상훈)를 시켜 송아름을 찾으려 하는 박만근의 정체는 누구일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기에 사진을 가진 정창기의 목숨까지 노리는 것일까? 마지막회까지는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시청자들은 박만근 정체 찾기에 여념이 없다. 13년전 특검팀 새내기 검사였던 최광국(정찬)부터 잠깐 스치듯 지나간 감사팀 직원, 진실과 권력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문희만까지 - 박만근의 후보로 거론된 사람만 여럿이다.
그런데 어쩌면 박만근의 존재는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검사는 때에 따라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만큼 많은 권력자들의 입김과 압력에 휘둘리기 쉬운 위치가 검사다. 파릇파릇하게 애정을 나누는 구동치나 한열무처럼 무조건 진실을 향해 나간다고 해서 그들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때로 화영과 손을 잡거나 잡는 척하는 문희만의 결정이 옳다고 편들 수도 없다. 미지의 권력자 박만근이야 말로 검사들이 공소시효가 있든 말든 계속 추궁해야할 영원한 미제사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지막회가 방송되면 문희만의 '그죠~' 소리가 꽤 듣고 싶을 것같다. 약간의 애교와 함께 반강제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그 멘트가 어쩌면 그렇게 어울리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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