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태종 이방원, 정도전의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Shain 2022. 2. 1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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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는 결혼 후에 신덕왕후와 결혼했지만 알다시피 이방석은 그리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신덕왕후가 오래 살았더라면 이성계의 권력과 신하들의 권력에 기대 어찌어찌 생명유지를 할 수 있었겠지만 신덕왕후는 오래 살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왕자의 난이 일어나 왕위찬탈을 당한 것이죠. 이방원은 극 중에서 동생인 이방원 때문에 고민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어쨌든 형제이고 친가족처럼 가까이 지냈으니 당연히 그런 고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형제라 해도 갈등이 있고 반란을 꿈꾸는 마당에 이복형제인 이방석을 살려두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신덕왕후의 속앓이가 그렇게 현실이 된 것이죠. 죽을 사람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권력의 향배는 정도전을 향하게 됩니다.

 

하륜, 이숙번과 대립하던 정도전은 결국 그렇게 죽었다.

 

정도전(이광기)은 똑똑한 인물이었지만 '학자'라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시기였으면 학자라는 점은 칭송받을 만한 장점이었겠지만 당시는 권력이 안정되지 않은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정도전은 우선 사병 혁파로 권력을 집중시키려 해 보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시에 평화로운 상황이 지속되어 위기의식도 없었구요. 이른바 '왕자의 난'이 발생한 것입니다. 왕자의 난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2년도 안되어 정도전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이방석도 죽었죠. 이방석이 보기에 후계 구도가 안정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믿을 만해 보였던 정도전도 믿을 수 없는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명나라의 갈등으로 믿음직하지 못했으니까요.

 

정도전(이광기)은 결국 비참하고 초라하게 죽습니다. 이방석은 왕권을 지켜준 방원과는 돈독할 수밖에 없는 사이였습니다. 직접 구해준 자식 같은 아들이고 친한 동생 동생이었습니다. 그랬던 동생과 하루아침에 의절하고 돌아선 것입니다. 이성계 핏줄의 죽음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숙부님이라 부르며 하며 친하게 지내던 정도전과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는 사실입니다. 정도전은 누가 뭐래도 조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이성계는 정도전을 역적으로 만들라는 눈물 흘리며 문서에 사명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신덕왕후가 죽는 혼란의 시기가 되자 이방원은 깊이 고민한다.

 

공식적으로 정도전은 송현에 있던 남은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 죽었다고 합니다. 남은, 심효생, 이직 등을 만나 술을 마신다는 첩보를 전해 들은 이방원이 사병을 끌고 가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방석을 세자로 세운 일로 앙심을 품었다는 것이죠. 정도전의 최후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공식적인 최후와는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는 평입니다. 우선 이방원 주변의 사람들이 이방원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뿐이었죠. 조선의 왕자였던 이방우의 최후도 그의 행적을 적으면서 임의로 삭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당시 이방우는 정계에서 배제되었을 뿐 멀쩡히 살아 있었던 거죠('청해백집'의 기록). 이방우는 태조 2년에 죽습니다.

 

 

 

 

정도전과 함께 죽은 이방석

 

정군안(이방원)을 시켜 정도전을 죽게 할 때 '청하건대 죽이지 마시오. 한마디 말하고 죽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예전에 공(公)이 이미 나를 살렸으니 지금도 또한 살려 주소서'라는 말에는 '네가 조선의 봉화백이 되었는데도 도리어 부족하게 여기느냐? 어떻게 악한 짓을 한 것이 이 지경에 이를 수 있느냐?'라고 대답했다고 대답합니다. 그렇게 정도전은 처형됩니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처형될 때 시 한수를 남겼다는데 어떻게 그럴 새가 있었는지는 의문이죠. 정도전과 사이가 좋은 인물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이방원 옆에는 하륜(남성진), 이숙번(정태우) 같은 인물들 뿐이었는데 그 사람들은 똑똑하긴 하나 '간신' 평가를 받는 인물도 많습니다.

 

이숙번, 하륜 등은 이방원과 한편에 써서 싸우게 된다.

 

89년인가 정도전이 묻혀 있다는 야사가 전해지는 곳 주변을 파헤치니 정체불명의 무덤과 목이 없는 시긴 그리고 몇 가지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주변의 작은 묘비 없는 무덤이 있다는 증언을 들으니 사람들이 찾는 정도전의 무덤이 맞는 것 같죠. 그는 그렇게 무덤도 없이 묻히는 신세가 됩니다. 정도전의 후손들은 대부분 옆에서 죽음을 당했고 곁에 있지 않았던 아들은 무사히 대를 잇게 됩니다. 또 삼족을 멸하는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정도전의 문집 역시 무사히 보존될 수 있었는데(보통은 태우거나 하죠) 정도전이 시를 다른 사람에게 대신 쓰게 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방석(김진성)은 그날 바로 이방석에게 죽습니다. 그 후 태조 이성계는 물러나 정종(이방과, 김명수)이 되고 권력에 신물이 난다며 태조는 상왕으로 물러납니다(그때 아팠다는 말도 있습니다). 태종의 정비 신덕왕후는 첩으로 강등됩니다. 본래는 정비냐 첩이냐 정비냐는 문제를 두고도 말이 많았으나 일단 아버지 이성계 때문에 한발 물러선 듯합니다. 이방석은 세자로서 자질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자질을 평가하기 이르다는 평도 있죠. 유교의 제왕학을 학습시키려던 정도전의 꿈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모든 형제가 죽고 살아남은 것은 경순공주 한명이었다.

 

사실 그들의 혼맥이 너무 얽혀 있어서 누구에게 왕위를 물려주든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첫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그의 뜻은 딱히 틀렸다고 하기엔 문제가 있었죠. 덕분에 이방번(오승준)에게 혹시 왕위가 가지 않을까 기대하던 방번은 그대로 죽음을 당합니다. 살아남은 것은 경순공주(최다혜) 뿐이었습니다. 일가족이 몰살당한 것입니다. 경순공주는 머리를 깎을 때 눈물 흘리며 슬퍼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버지 태조는 이제는 태상왕이 된 공주를 그렇게라도 살리고 싶었던 거겠죠. 어릴 때는 한 가족처럼 잘 지내던 사람들인데 권력이란 것은 그렇게 무섭고 무서운 것인가 봅니다. 왕가의 죽음은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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