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스물다섯 스물하나, 어쩐지 측은한 고유림의 낡은 운동화

Shain 2022. 3. 3. 19:03
728x90
반응형

나희도가 사는 모습을 보면 유쾌하고 거침없는 게 보기 좋습니다. 나희진도 백이진을 그리 싫어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쪽에 가깝죠. 가까워질 듯 말듯한 나희도의 감정은 10대의 순수한 마음처럼 솔직하고 거침이 없습니다. 그래서 백이진이 나희도를 그렇게 부러워했고 그 즐거운 기분에 동화되기도 했던 거겠죠. 그리고 고유림도 그렇게 나쁜 아이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독립적이고 딱 부러지고 똑똑한 아이죠. 개인적으로 고유림 캐릭터가 자체는 그저 그런데 사실 고유림의 운동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어린아이가 버티기 힘든 압박일 텐데 - 고유림에게 가난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까지 고유림은 '화면'으로 밝혀준 적이 없습니다. 약간 낡은 운동화와 아무 무늬 없는 신발을 보며 유림이 나희도(김태리)을 조금 부러워 하나보다 생각한 게 전부죠.

 

백이진의 고장난 자동차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나희도.

 

고유림(보나)은 당당하지만 한 번도 남들 앞에 나선적이 없습니다. 아니 사실은 눈치를 보는 쪽에 더 가깝죠. 그렇다면 고유림의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백이진(남주혁) 집안의 후원을 받았다는 건 알려져 있지만 왜 어려워진 건지는 알려져 있지 않죠. 어릴 때 돈이 없는 집안이었으면 펜싱은 손대지 못했을 거고 - 차를 타고 자주 끌고 다니는 걸로 봐서 장기적으로 멀리 돌아다니는 일을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마도 화물 관련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화물연대가 빨간 팻말을 걸고 '데모'를 하고 있지만 '구조조정 중단하라'는 구호는 시대와 겉돌고 있습니다.

 

전학 왔던 날첫 나희도는 기대에 부풀어 고유림을 만나러 왔습니다. 첫 만남에 '이름도 모르는 애랑 무슨 경기를 해요'라며 고유림을 밀어냈던 나희도는 내심 고유림과의 경기를 기대하고 있었죠. 그런데 한눈에 봐도 고유림과 나희도는 가정형편이 다르네요. 그리고 고유림은 그런 나희도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창문틀에 매달려 고유림을 훔쳐보는 아이 - 유림이네 떡볶이를 먹지만 한눈에 봐도 가난하지 않아 보이는 나희도를 어떻게 몰라보겠어요. 나희도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가의 운동화도 아무렇지 않게 바꿔 신고 남이 부러워하는 비싼 책가방도 잘 바꿔옵니다. 종종 택시도 타구요. 나희도는 역시 아나운서 집안의 딸이라서 그런지 가난하지는 않았던 거예요.

 

나희도는 고유림의 어려운 처지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비싼 펜싱 비용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든 고유림은 고달프게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늘도 잘 들어가지 않는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고유림의 형편을 누가 알아보겠어요. 아무리 기를 펴고 살고 싶어도 비싼 비용은 저절로 고유림의 어깨를 움츠리게 만듭니다. 신중하게 운동화도 수선해서 부대비용과 장비값을 감당할 수도 없고 나희도 앞에서 당당하기보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고유림의 처지도 이해가 갑니다. 고유림의 자존심은 남들은 쉽게 이기지 못하는 성적에서 나오는 곳이고 비싼 운동화 신지 않아도 고유림은 앞서서 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남들 앞에서 나희도를 무시했던 거죠. 아마도 가난을 모르는 세대에게 이런 부수적인 어영부영 문제는 넘어가겠죠.

 

 

 

 

 고유림의 꿈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다고 고유림이 불쌍하다거나 측은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브랜드 치킨도 아닌 일반 통닭에 낡고 수선한 운동화를 신고 있어도 남들보다 움츠려 들어 행동해도 고유림은 고유림입니다. 어른들 몰래 소주 한잔 마시는 고유림은 절대 불행하거나 비참해 보이지 않습니다. 내 꿈은 찢어진 운동화도 아니고 떡볶이 장사도 아니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고유림의 처지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자신 만만한 나희도의 축하는 남의 처지를 고려하는 느낌은 조금도 담겨있자 않죠. 어린아이의 특유의 당당함과 자신만만함이 느껴지는 가끔은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남들은 나희도가 부럽든 어쩌든 일단 국가대표를 유지해야 하죠.

 

내가 언젠가 니들 싸울 줄 알았다 - 그것도 머리 끄덩이 잡고.

 

반면에 고유림의 엄마(김영선)는 세상 누구보다 철이 없고 믿음직하지 못한 인물이더군요. 아들은 어쨌든 스포츠카를 몰고 있어서 그런가 - 보통 가난이란 것은 운동화나 신발 한 켤레 사기 힘든 궁색함을 뜻합니다. 옷이야 평소에 입던 걸로 대충 해결한다고 쳐도 백이진의 가난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남들이 쓰던 가구에 깨진 유리창 아무 때나 버릴 수 있는 살림살이가 백이진이 가진 전부입니다. 백이진이 동생 백이연(최민영)이 악다구니 쓰는 인간들 앞에서 느꼈을 공포는 친구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그 역시 백이현이 겪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형이니까 내가 앞장서야 한다고, 수산물 시장에서 친구들 앞에서 거짓말이나 한다며 비난했지만 그 역시 백이현이 겪어야 하는 과정이죠.

 

'여기 온 거 자기 핑계 대지 말라' - 뭐 틀린 말은 아닌데 그리고 드라마 빚에 쪼들리거나 부도난 어느 집 아들이란 비난도 받지 않으며 백이진 가족이 그 상황을 어떻게 버텨야 할까요. 백이진은 이미 돈문제에서 '경제사범'을 선택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도망가지도 않고 맞서서 대처해야 하는 걸까요. 백이진 아버지(최교식)의 비난을 피한다고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어머니, 남편, 동생 모두 그 문제에서 손을 털었고 이제 빚을 진 당사자는 아버지 한 명만 남았습니다. 그마저도 동생 명의로 되어있다고 했죠. 아마 이 문제의 해답을 가족의 일이지만 백이진이 진지하게 고민할 것 같진 않아요. 이제는 약간 한 다리 건너의 일로 넘기는 수밖에 없는 거죠.

 

공중전화의 아련한 느낌처럼 백이진과 나희도를 흔들던 떨림

 

생판 남의 입장에서도 약간 씁쓸하지만 - 어쨌든 그들의 돈을 같이 누리고 썼던 책임이 있으니 - 돈 없는 백이진에게 더 이상의 추궁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젠 한쪽으로 미뤄둔 일인 거죠. 그런데 고유림의 꿈은 무엇일까요. 끊임없이 고유림을 이기고 싶어 노력했지만 고유림은 생각보다 엄청난 압박과 부담을 받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아닌 척하면서 찍어 누르는 게 더 무겁게 다가오는 법이죠. 나희도가 고유림을 친구처럼 대하지 않고 무시하려고 이유 중에 하나도 그 압박도 포함되었을 거예요. 팬이라면서 다가오는 나희도가 부담스러웠겠죠. 전학 오는 순간 나희도에게 느꼈던 공포와 부담감을 고유림은 절대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나 봅니다.

 

그건 그렇고 백이진에게 펜싱 경기장에서 나희도가 했던 말 중에 '우린 어떻게든 결국 만났을 거야'라는 게 있죠. 그 한마디는 백이진을 멀리 떠나보낼 수 없게 만듭니다. 어떻게든 만나서 어떻게든 행복하길 바라게 됩니다(그래 그 사람은 두 꼭 만나야 해). 백이진이 죽었을 거라 예상하는 사람도 있고 백이진은 김민채(최명빈)의 딸이 나희도니까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을 거란 추정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성이 모두 제각각 인걸로 보아 나희도를 제외한 모두가 이름을 바꾸었을 거라 생각하는 쪽입니다. 일부러 그렇게 지으려고 해도 힘들다 싶을 이름들 이거든요.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이쁜 이름 지으려다 남긴 이름들은 아닌지 싶기도 해요.

 

백이진과 나희도의 다음 만남을 기대하게 하는 웃음. 우연한 만남.

 

마지막으로 아까도 말했지만 백이진의 엄마는 너무 철이 없어요. 현실감 없는 캐릭터인데 워낙에 빚을 많이 진 인물이기도 해서 위장이혼까지 하신 분이 너무 철이 없어요. 딴 사람은 몰라도 엄마가 진 빚만은 이진이네 형제들이 갚아야 할 텐데 싶죠. 그 잘생긴 배우에게 다 떠넘기신 건가요. 그 추억을 뒤로하고, 어쩌면 저렇게 키가 크고 훤칠한지 배우 남주혁을 볼 때마다 어쩌면 저렇게 잘 생긴 배우가 다 있나 싶습니다. 약간의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느껴지는 건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고 오지 못할 시간에 대한 아련한 미련 같은 거겠죠.

 

그리고 원수연 씨의 '풀하우스'는 지금은 공간 문제로 버렸지만 예전에 사모았던 적이 있습니다. 삐삐도 없어서 사람들하고 연락도 잘 안되고 전화가 안 오면 애틋했던 그 감정은 잊어버려도 만화책으로 추억을 말하던 그 시절 - 깨알같이 써 내려간 메모장의 그 일기 같은 시절이 우리 모두에게도 있었던 거죠. 지금은 아득한, 옛날의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기억 오늘은 그 때의 기억에 젖어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