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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신통의 두 악녀, 미실과 사도왕후

Shain 2009. 8. 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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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이 저지른 여러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화랑세기를 읽다 보면 미실이 그리 치밀하거나 냉정한 인물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색을 즐기고 만사에 호탕한 유쾌한 인물에 가깝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악녀라는 표현을 쓰긴 했으나 신라왕조에서 승리한 건 누가 뭐래도 진골정통이다. 그러니 김알지, 석탈해, 박혁거세가 삼분하던 신라 세력의 군형을 맞추기 위해 경쟁하던 여인들에게 '악녀'란 타이틀은 불공정하다. 미실의 색사는 공정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두 인통은 힘이 약해진 것 같으면 서로 견제하고 인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성씨(性氏)라는 문화가 생기기전까진 모계를 중심으로 두 인통을 구분했다. 대원신통이 미실을 내세워 세력을 확장했을 땐 진골정통 역시 그만한 맞대응이 있었다고 보는게 맞다. 드라마에서 묘사하듯 일방적으로 왕족이 휘둘리는 그런 '부당한' 모양새는 아니라는 것. 혼인 관계가 복잡해 뚜렷이 드러나지 않을 뿐 두 혈통의 대표들은 치열한 세력 다툼을 하고 있었다.

삼각관계처럼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친인척. 진지왕의 아들이란 설정대로라면 비담은 선덕여왕의 오촌 아저씨뻘, 김유신은 선덕여왕의 사촌동생. 출처 : MBC 선덕여왕.


진흥왕이 부계의 전통을 수립하고 난 이후 김씨성의 계승이 확립되고 점차 대원신통의 입지도 약해졌는데 미실의 시기에 단 한번 부흥하게 된다. 화랑세기 보리공편에 하종이 신궁에서 옥진궁주와 법흥왕의 교신상[각주:1]을 보고 먼저 옥진에게 절을 했다고 한다. 왕보다 옥진의 혈통을 우선으로 생각한 것이다. 왕에게 먼저 인사하는 오늘날의 상식과는 맞지 않지만 두 인통들은 이런 모계 우선권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모양이다.


혈통의 수장이자 권력을 가진 각 인통의 종(宗)

특히 대원신통의 종(宗)인 사도왕후와 미실은 모든 관계와 정치를 대원신통을 기준으로 선별하였고 미실은 자녀들을 단속해 대원신통의 세력을 잘 규합하곤 하였다. 대원신통인 사다함과 설원랑 등은 미실에게 대를 이어 충성한 형제이고 김서현(아들 김유신은 진골정통이라 중간 입장을 취한다)과 김용수, 김용춘도 대원신통의 후계자로 미실들에게 협력한 남자들이다.

대원신통의 딸들은 대원신통의 후계를 잇고, 궁주로 등용되어 왕의 자녀를 낳는가 하면 궁주가 되지 못한 딸들은 대원신통 세력과 결합해 풍월주의 조상이 된다. 아들들은 혈통에 충성하여 정치와 병권을 장악하고 대원신통에 힘이 되는 사람들을 모은다. 전주의 자리에 있던 미실은 그에 그치지 않고 원화, 새주의 자리를 오가며 직접 그 남자들을 통솔하기까지 한다.

모계 중심의 골품제 사회에서 왕족과 가까운 골품들은 종종 난을 일으킨다. '석품, 칠숙의 난'과 '비담의 난' 등은 여러 의미가 있다. 출처 : MBC 선덕여왕.


두 인통의 겨루기는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태후의 공격으로 시작된다. 진골정통의 종이었던 지소태후는 진흥왕의 아내인 대원신통 사도왕후를 쫓아낸 후 숙명공주를 왕후에 앉힐 궁리를 한다. 지소태후의 또다른 아들 세종의 아내이던 미실은 이를 사도에게 고하고 사도왕후는 진흥왕에게 읍소하여 자신의 왕후 자리를 보장받는다. 이에 화가난 지소태후는 미실을 쫓아버리지만 아들이 상사병에 걸려 죽을 것같자 미실을 다시 불러들인다.

위기의식을 느낀 사도왕후는 자신의 며느리는 미실로 삼아 대원신통을 굳건히 하고자 동륜태자와 미실을 이어지게 하지만 미실은 동륜 뿐만이 아닌 진흥왕의 잉첩이 되어버린다. 사도왕후는 미실 이외에도 이모인 금진과 같은 대원신통의 여자를 왕에게 들여 후사를 낳게 한다. 미실과 삼생(三生, 과거, 현재, 미래의 삶)을 함께 하기로 약조를 맺은 사도왕후는 권력을 나누며 대원신통의 세력을 확장한다.


미실 보다 냉정했던 여인, 사도왕후

사도왕후는 미실과 삼생의 약조를 한 이후 한번도 미실을 배신하지 않았다. 동륜태자의 아내로 자신의 며느리가 되어줄 것을 약속한 다음 진흥왕의 총애를 받게 된 미실, 전주이자 원화로 왕후의 권력 못치 않은 권세를 누린 미실에게 질투할 법도 하건만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미실이 진흥, 진지, 진평 이 세 명의 왕을 모시는 동안 사도왕후 역시 왕후 혹은 태후로 함께 권력을 누렸다.

그녀의 의리는 동륜태자의 죽음 때 제일 먼저 드러난다. 동륜태자는 미실, 미생과 함께 여색을 탐하다 진흥왕의 후궁 보명궁주까지 넘보다 개에 물려 죽게 된다. 그 일로 인해 미실의 과오가 드러나고 추문이 퍼지게 되고 관련자들 처벌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어찌 천한 무리들의 어지러운 말로 총첩의 은혜를 빼앗고, 죽은 아들의 혼령을 아프게 하려 합니까?'라는 말로 미실을 편들어준다. 미실은 울며 죄를 빌고 출궁하는 것으로 이 일은 마무리된다.

남편 진흥왕이 죽었을 때 조차 사도왕후는 전략적인 면모를 보였는데 진흥의 죽음을 사도, 미실, 미생, 세종 네 사람만 아는 상태로 둘째아들인 금륜을 불러 즉위하면 미실을 왕후로 삼을 것을 약속시킨다. (비록 풍질에 걸려 희한한 상태로 죽었을 지라도)남편의 죽음 앞에서 같은 대원신통이 왕후가 되어야함을 더 중요하게 여겼으니 대단한 여인이 아닐 수 없다. 즉위와 함께 사도왕후의 오빠 노리부는 상대등이 된다.

같은 대원신통이었지만 사도왕후와 미실들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 문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기록되어 있지만 폐위된 가장 큰 원인은 인통과의 색공을 무시한 탓이 아닐까. 출처 : MBC 선덕여왕.


이런 사도왕후의 행동은 자신의 둘째 아들 진지왕을 폐위시킬 때 조차 이어진다. 미실을 며느리 삼아 다음 대원신통의 종으로 삼고 싶었던 사도왕후는 진지왕이 미실에게 시들하고 지도왕후를 내세우자 미실을 앞세워 정권을 교체한다. 지도왕후 역시 대원신통이었으나 미실의 반대파인 문노를 지지하는 등 미실들과는 뜻이 맞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병권을 움직여 궁을 장악한 사도왕후는 동륜태자의 아들 진평왕을 등극시킨다.

귀신의 아이라는 비형랑의 존재로 보아 진지왕이 목숨은 부지한 것으로 짐작되지만 아들 조차 폐위시킬 정도로 사도왕후는 냉정한 우두머리였다. 둘은 꿋꿋이 협력하며(자식끼리 혼사도 시켰다) 3대에 걸쳐 권력을 장악했다. 미실은 진흥왕이 병에 걸렸을 때 남편 세종을 사도왕후에게 색공하게 하여 의리를 지켰다 한다. 진평왕의 진정한 벽은 사도왕후가 아니었을까.


미실과 사도왕후의 라이벌 지소태후와 만호태후

왕족들의 혈연관계는 복잡하기 때문에 미실의 아들 하종의 어머니는 대원신통으로 하종 역시 대원신통이 되지만 하종의 고모 숙명공주나 하종의 할머니인 지소태후는 진골정통이 된다. 또 하종의 성은 김씨이다. 혈통이 달라도 친척에 인척이기에 '편을 갈라' 정확히 나눠설 수 없는 사이들이다. 드라마에서 갈등구조가 명확한 진평왕과 미실 사이에도 보화공주란 딸이 있으니 원수대하듯 하기는 힘든 관계다.

그들에겐 인통의 수장으로 끝까지 함께한 라이벌들이 있다. 사도왕후는 자신의 시어머니, 즉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의 견제를 받으며 왕후의 자리에 있었다. 두 며느리인 사도왕후와 미실을 쥐락펴락한 지소태후는 진골정통의 종으로 자신의 인통을 키우려 하지만 색사에 능한 사도와 미실에게 이기지 못한다. 진흥왕과 짝지워주려 했던 숙명공주는 이화랑과 사통해 원광을 낳는다.

11화에 단한번 등장한 만호태후는 진평왕의 어머니이자 동륜태자의 아내이다. 전후 관계를 볼 때 미실은 만호태후와 비슷한 또래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 MBC 선덕여왕.


미실에게는 만호태후라는 라이벌이 있었는데 동륜태자의 아내였던 만호는 미실로 인해 남편을 잃었지만 아들 백정(진평왕)이 왕위에 올라 태후 자리에 등극한다. 사도왕후의 섭정시기엔 미실을 견제하기 어려웠을테지만 그 후엔 왕실의 최고권력자로 진골정통끼리의 혼인을 추진한다. 지난번에 등장한 미실의 딸 애함이 보리공과 맺어지지 못한 건 만호태후의 견제 탓이었다. 만명과 김서현의 혼인을 반대한 결정적인 이유도 그것이다.

태후가 아닌 미실은 늙어가며 점점 입지가 좁아지게 되는데 궁중에 있던 만호태후가 만명과 김서현 커플을 용서하자 미실은 만호를 위로한다며 보종에게 풍월주의 지위를 유신에게 양도하라 명한다. 김서현(가야 세력), 김용수, 김용춘 등이 진평왕과 함께 하며 대원신통이기 보다는 진골정통의 짝으로 떠나가는 바람에 미실은 평생을 호령하던 신라의 권력을 잃게 된다.

진평왕조를 묘사하는 드라마에서 미실이 '하늘도 무섭지 않다'며 새주의 위력을 과시하지만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 진정한 그녀의 라이벌들이 없으니 양 인통 간의 진정한 '승부'는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부계전승이 고정되는 김춘추의 등극까지 이들의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컸던 것으로 보인다. 문장이 뛰어났다던 미실은 색사와 정치적 능력으로 신라 왕조를 장악했으니 보통 여걸이 아니지만, 미실 보다 더 치밀하고 과감했던 여인은 미실을 등용한 사도왕후 쪽이 아닐까.


  1. 교신상(交神像)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으나 외국의 사례처럼 성적인 뜻이 가미되어 있을 수도 있다. 궁내에 설치된 신궁에는 여러 신상이 있어 사람들이 제례를 올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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