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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장희빈을 본게 이번이 다섯번째가 아닌가 합니다. 숙종은 그 사이 여자에 휘둘리는 유약한 버전에서 강력한 군주로 또는 깨방정 버전으로 여러번 다시 태어났습니다. 장희빈은 악녀란 평가가 별반 달라진게 없고 숙빈 최씨는 이번 'MBC 동이'로 '느님' 반열에 올랐군요.
장희빈과 인현왕후, 그리고 숙빈 최씨의 대결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게 자의대비(장렬왕후) 조씨와 그 며느리 헌렬대비(명성왕후) 김씨의 대립입니다. 장렬왕후가 인조의 계비였고, 효종임금의 아내가 인선왕후, 효종의 아들 현종의 부인이 명성왕후이니 시할머니뻘이 되는 셈입니다. 숙종에게 증조 할머니가 되죠.
동이 마지막회 기념으로 깨방정 숙종의 가족사를 한번 훑어보려 합니다.
전부터 왕이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중전을 들이면 사고가 나지 않은 적이 드물다고 했는데(드라마에 나온 인원왕후는 아주 양반) 장렬왕후는 본인이 아니라 신하들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장렬왕후 보다 나이가 많은 의붓아들 효종과 며느리 인선왕후가 죽자 살아있는 장렬왕후의 장례 기간을 어떻게 하냐를 두고 남인과 서인이 싸운 겁니다.
자세한 건 현대인 관점으로 봐서는 꼬투리에 가깝습니다. 우리 눈엔 계모의 장례기간이 1년이든 3년이든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서인과 남인은 계속 논쟁을 벌였고 대립하게 됩니다. 명성왕후가 서인 계열이었고, 장렬왕후가 남인 계열이었죠.
시할머니 뻘이지만 장렬왕후와 명성왕후는 나이차이가 20살 정도 납니다. 웃전은 웃전인데 피섞이지 않은 할머니니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이나 아들이 왕위에 있는 동안 명성왕후는 장렬왕후를 많이 존중한 거 같진 않습니다. 장렬왕후 역시 장희빈 문제 이외엔 거의 손자며느리의 뜻을 거스른 거 같지 않구요.
왕들은 대개 살아 있는 동안 후궁을 두기 마련입니다. 왕 본인이 원치 않아도 왕에게 후궁을 밀어넣는 신하들은 아주 많습니다. 1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정종 조차 후궁이 아주 많았고, 재위 기간이 짧은 인종도 후궁을 뒀습니다. 세자에 불과했던 사도세자 역시 후궁이 있었죠.
대개는 후궁을 두지 않은 왕은 경종이나 단종 등 병약하거나 왕권이 약했던 왕입니다. 그런데 그 유일한 예외가 바로 현종입니다. 무려 15년간 왕위에 있었음에도 아내는 명성왕후 단 한 명 뿐이죠. 명성왕후가 거칠고 사나웠기 때문에 둘 수 없었다고 하는데 시어머니와 시할머니 모두가 살아 있었음에도 이런 일이 가능했다니 대단한 성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나치게 적극적인 그녀의 성격은 어린 아들 숙종이 왕위에 올라가자 극에 달합니다. 숙종 등극 후 남인이 정권을 잡았을 때 명성왕후와 서인들은 '홍수의 변' 혹은 '삼복의 변'이란 사건을 일으켜 인조의 손자들인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복 세사람이란 뜻으로 삼복의 변) 세 사람을 귀향가게 만들고 세력을 잡습니다.
홍수란 궁녀를 뜻하는 말인데 복창군이 궁녀와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주장한거죠(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외할아버지 김우명과 어머니 명성왕후의 무고라고 할 수도 없고 엄청난 남인들과 왕족들을 처벌할 수도 없는 숙종은 상당히 난감했을 겁니다. 편전에 나와 내말이 맞다며 대성통곡하는 어머니가 어떻게 느껴졌을까요?
숙종이 장렬왕후 조씨를 매우 깍듯하게 대했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혈연은 아니지만 왕실의 웃전이고 증조모란 이유로 매일 예의를 차리는 사이이다 보니 친어머니 명성왕후 보단 좀 더 많은 위로를 받았던 거 같습니다. 거기서 만난 장희빈 때문에 또 한번 헌렬대비는 숙종을 뒤집어놓지만 말입니다.
명성왕후는 궁녀 장희빈을 사가로 내쫓고 서인 출신의 어리디 어린 인현왕후 민씨를 숙종의 계비로 밀어넣고 그것도 모자라 서인 가문의 귀인 김씨까지 들여옵니다. 장옥정을 궁에 들이는 건 죽어도 안된다는 강경한 대비를 보며 숙종은 상대적으로 장렬왕후 조씨와 남인 세력, 장옥정의 존재에 위안을 느꼈을 만 합니다.
물론 명성왕후는 숙종 때문에 죽음을 맞긴 합니다. 아들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기에 숙종에 병에 걸리자 무당의 말을 믿고 냉수를 뒤집어쓰고 기도하다 병에 걸려 죽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던 장렬왕후 역시 이 성질 사나운 손주 며느리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할 정도로 애처롭게 죽지요.
남인과 서인을 아우르며 후궁과 중전을 교체하는 숙종은 사실 강력한 내명부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했을 것입니다. 서인을 등에 업은 인현왕후, 세자의 모후 장희빈, 연잉군의 모후 숙빈 최씨 모두 숙종의 사랑을 받았으나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처럼 어머니에게 휘둘리는 아들이 나오지 않길 바랐는지도 모르는 일이죠. 늘 서인이니 남인이니 권력의 대표자 노릇을 하는 아내들에게 질렸을 수도 있구요. 그들에게 당하고 산단 기분이 지긋지긋했을 지도 모릅니다. 명성왕후의 성격이 조금 만 덜 사나웠더라도 장희빈의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MBC 동이 마지막회에 숙빈 최씨라는 부인에게 토라진 숙종 얼굴이 나오던데 참 재미있단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평생을 권력자로 살아온 숙종에게 아내들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숙종의 권력욕이 아내들을 갈아치우게 했다는 주장이 아직도 많으니까요. 어떤 아내가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도 가시방석이었을 거 같긴합니다.
장희빈과 인현왕후, 그리고 숙빈 최씨의 대결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게 자의대비(장렬왕후) 조씨와 그 며느리 헌렬대비(명성왕후) 김씨의 대립입니다. 장렬왕후가 인조의 계비였고, 효종임금의 아내가 인선왕후, 효종의 아들 현종의 부인이 명성왕후이니 시할머니뻘이 되는 셈입니다. 숙종에게 증조 할머니가 되죠.
동이 마지막회 기념으로 깨방정 숙종의 가족사를 한번 훑어보려 합니다.
MBC 동이에서 명성왕후(박정수)와 대치 중인 장희빈(이소연). 헌렬대비는 남인을 막기 위해서 요물 장옥정을 반대했을까? 사실 명성왕후는 장씨가 재입궁 하기전에 이미 병으로 세상을 떴다.
전부터 왕이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중전을 들이면 사고가 나지 않은 적이 드물다고 했는데(드라마에 나온 인원왕후는 아주 양반) 장렬왕후는 본인이 아니라 신하들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장렬왕후 보다 나이가 많은 의붓아들 효종과 며느리 인선왕후가 죽자 살아있는 장렬왕후의 장례 기간을 어떻게 하냐를 두고 남인과 서인이 싸운 겁니다.
자세한 건 현대인 관점으로 봐서는 꼬투리에 가깝습니다. 우리 눈엔 계모의 장례기간이 1년이든 3년이든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서인과 남인은 계속 논쟁을 벌였고 대립하게 됩니다. 명성왕후가 서인 계열이었고, 장렬왕후가 남인 계열이었죠.
시할머니 뻘이지만 장렬왕후와 명성왕후는 나이차이가 20살 정도 납니다. 웃전은 웃전인데 피섞이지 않은 할머니니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이나 아들이 왕위에 있는 동안 명성왕후는 장렬왕후를 많이 존중한 거 같진 않습니다. 장렬왕후 역시 장희빈 문제 이외엔 거의 손자며느리의 뜻을 거스른 거 같지 않구요.
MBC 동이의 부제는 사실 숙종과 4명의 아내들. 다른 아내들은 생략.
왕들은 대개 살아 있는 동안 후궁을 두기 마련입니다. 왕 본인이 원치 않아도 왕에게 후궁을 밀어넣는 신하들은 아주 많습니다. 1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정종 조차 후궁이 아주 많았고, 재위 기간이 짧은 인종도 후궁을 뒀습니다. 세자에 불과했던 사도세자 역시 후궁이 있었죠.
대개는 후궁을 두지 않은 왕은 경종이나 단종 등 병약하거나 왕권이 약했던 왕입니다. 그런데 그 유일한 예외가 바로 현종입니다. 무려 15년간 왕위에 있었음에도 아내는 명성왕후 단 한 명 뿐이죠. 명성왕후가 거칠고 사나웠기 때문에 둘 수 없었다고 하는데 시어머니와 시할머니 모두가 살아 있었음에도 이런 일이 가능했다니 대단한 성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나치게 적극적인 그녀의 성격은 어린 아들 숙종이 왕위에 올라가자 극에 달합니다. 숙종 등극 후 남인이 정권을 잡았을 때 명성왕후와 서인들은 '홍수의 변' 혹은 '삼복의 변'이란 사건을 일으켜 인조의 손자들인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복 세사람이란 뜻으로 삼복의 변) 세 사람을 귀향가게 만들고 세력을 잡습니다.
홍수란 궁녀를 뜻하는 말인데 복창군이 궁녀와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주장한거죠(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외할아버지 김우명과 어머니 명성왕후의 무고라고 할 수도 없고 엄청난 남인들과 왕족들을 처벌할 수도 없는 숙종은 상당히 난감했을 겁니다. 편전에 나와 내말이 맞다며 대성통곡하는 어머니가 어떻게 느껴졌을까요?
SBS의 장희빈은 '홍수의 변'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드라마에서는 복창군과 왕녀 간의 구체적인 로맨스가 있었던 것으로 그렸다(기록으론 확실치 않다). 남인을 경계하는 명성왕후 역 견미리는 부드러움을 겸비한 모후였다.
숙종이 장렬왕후 조씨를 매우 깍듯하게 대했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혈연은 아니지만 왕실의 웃전이고 증조모란 이유로 매일 예의를 차리는 사이이다 보니 친어머니 명성왕후 보단 좀 더 많은 위로를 받았던 거 같습니다. 거기서 만난 장희빈 때문에 또 한번 헌렬대비는 숙종을 뒤집어놓지만 말입니다.
명성왕후는 궁녀 장희빈을 사가로 내쫓고 서인 출신의 어리디 어린 인현왕후 민씨를 숙종의 계비로 밀어넣고 그것도 모자라 서인 가문의 귀인 김씨까지 들여옵니다. 장옥정을 궁에 들이는 건 죽어도 안된다는 강경한 대비를 보며 숙종은 상대적으로 장렬왕후 조씨와 남인 세력, 장옥정의 존재에 위안을 느꼈을 만 합니다.
물론 명성왕후는 숙종 때문에 죽음을 맞긴 합니다. 아들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기에 숙종에 병에 걸리자 무당의 말을 믿고 냉수를 뒤집어쓰고 기도하다 병에 걸려 죽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던 장렬왕후 역시 이 성질 사나운 손주 며느리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할 정도로 애처롭게 죽지요.
'KBS 장희빈'에서 장렬왕후(강부자)와 명성왕후(김영애)는 꽤 적극적인 대결구조를 보인다. 당시의 대립구조로 보아 장렬왕후는 다분히 고의로 장옥정을 숙종에게 밀어넣은 듯하다(조사석의 사주).
남인과 서인을 아우르며 후궁과 중전을 교체하는 숙종은 사실 강력한 내명부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했을 것입니다. 서인을 등에 업은 인현왕후, 세자의 모후 장희빈, 연잉군의 모후 숙빈 최씨 모두 숙종의 사랑을 받았으나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처럼 어머니에게 휘둘리는 아들이 나오지 않길 바랐는지도 모르는 일이죠. 늘 서인이니 남인이니 권력의 대표자 노릇을 하는 아내들에게 질렸을 수도 있구요. 그들에게 당하고 산단 기분이 지긋지긋했을 지도 모릅니다. 명성왕후의 성격이 조금 만 덜 사나웠더라도 장희빈의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MBC 동이 마지막회에 숙빈 최씨라는 부인에게 토라진 숙종 얼굴이 나오던데 참 재미있단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평생을 권력자로 살아온 숙종에게 아내들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숙종의 권력욕이 아내들을 갈아치우게 했다는 주장이 아직도 많으니까요. 어떤 아내가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도 가시방석이었을 거 같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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