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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4일 밤엔 산타클로스가 옵니다 )
산타클로스라는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어린 시절에 이미 해결한 의문이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혹은 상황에 따라서는 '산타클로스'라는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 따윈 아무 의미가 없는 어린 시절을 경험하신 분들도 있겠죠. 전후 이어진 가난과 고난으로 유난히 축제와 선물받을 일이 드물었던 과거에는 크리스마스 만큼 공짜 선물을 받기 좋은 때도 없었습니다.
저 역시 딱히 크리스마스를 챙기지는 않는 성격입니다. 주변에 맞추는 정도로 넘어가고 연말 전 한해를 정리할 수 있는 휴일의 성격을 띄는게 크리스마스죠.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가진, 그런 크리스마스에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각각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마냥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같지 만은 않을 것입니다.
86년 방영된 '산타클로스는 있는가'란 단막극은 80년대에 유난히 전국적으로 늘어가던 교회,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축제 분위기를 바라보는 세 명의 '이방인'의 시선으로 진행됩니다. 외국 문화인 크리스마스를 직접 즐기는 사람들 보다는 '신기한 현상' 쯤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좀 더 많던 시대, 크리스마스와 전혀 관계 없을 것같은 넝마주이 일땅, 이땅, 삼땅은 산타클로스가 정말 있는 지 1 궁금해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MBC 베스트셀러극장'은 단편소설을 드라마로 만들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드라마도 이동하 원작의 소설을 원작으로 감독으로 잘 알려진 장선우가 극본을 담당했고 'MBC 완장',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 등으로 유명한 선우완 PD가 연출했습니다. 출연배우는 정대홍, 박윤배, 이기선, 전미선 등 당시 활약하던 분들이네요.
넝마주이 삼형제의 성탄절
지금은 보기도 힘든, 커다란 대바구니를 등에 메고 다니며 고물을 줍던 넝마주이. 지금은 폐지줍는 할머니들이 계시고 고물을 팔러 트럭을 끄는 분들은 계셔도 넝마주이는 볼 수 없습니다. 80년대까진 종종 남아 있던 그 넝마주이를 드라마는 주인공으로 삼고 있습니다. 일땅, 이땅, 삼땅이란 이름의 이 형제들은 허허 벌판에 천막을 짓고 고물을 주어 팔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그들은 폐품을 팔던 고물상 주인 아저씨에게 일하러 나오지 말란 말을 듣습니다. 내일은 크리스마스니 모두들 쉬는 날이라 그렇다고 하죠. 일땅 형제들이 발음도 하기 힘든 클쑤마쑤가 뭐하는 날이냐 묻자 고물상 아저씨는 '예수의 생일'이라 대답해줍니다. 왜 남의 생일에 아저씨가 쉬느냐 투덜거려 보지만 마땅히 납득할 대답을 듣지 못하죠.
배가 고파 살던 천막에 돌아와보니 거렁뱅이 꼴로 들판을 헤매던 여자가 자신들의 찬밥을 훔쳐먹고 있습니다. 밥을 빼았으려 기력을 다해 다퉈보지만 반쯤 미쳐버린 여자에게 자신들의 먹을 밥을 빼았을 순 없습니다. 남은 거라곤 연탄 한장에 쌀 한봉지 그리고 미역 한줄기 밖에 없는 그들은 내일을 기약하며 주린 배를 잡고 잠들 수 밖에 없었죠.
한편 이땅(박윤배)은 성당에서 주어들은 캐롤을 웅얼거리며 예쁜 수녀님(이기선)을 자기 애인이라 부릅니다. 일땅(정대홍)과 삼땅(박경순)은 수녀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며 핀잔을 줍니다. 수녀가 보고 싶어 성당에 가봤던 세 사람은 아이들의 성탄제를 구경하고 수녀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을 듣고, 양말을 걸어놓고 자면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준다는 걸 알게 되죠.
삼형제 산타클로스 되다?
일땅과 이땅과 삼땅이 잔뜩 기대하며 냄새나는 구멍난 양말을 걸고 비는 소원은 여자와 아기와 수녀님을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정말 엉뚱하고 말도 안되는 소원이란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세 사람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실망하고 맙니다. 이땅은 수녀님이 거짓말을 했을 리 없다며 양말에 들어가지 않는 소원을 빌었기 때문에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설득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도움을 주기 보다 세상의 도움을 받아도 모자란 처지의 세 사람, 그 세 사람은 일도 할 수 없는 크리스마스에 자신들이 직접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도시를 떠돌게 됩니다. 자신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없고, 자신들이 기껏 생각해낸 '가진 것을 선물하겠다'는 뜻을 알아주는 사람들도 없고 밤새도록 무시당한 일땅, 이땅, 삼땅은 연탄, 미역, 쌀한봉지를 들고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옵니다.
생계를 위해 공장에 다니는 소녀(전미선)도 쉬는날에도 창녀촌에서 밤새워 일하는 여성들도 심지어는 성당의 수녀님 마저도 그들의 선물을 거절합니다. 넝마를 주워 파는 초라한 삼형제가 가장 도움을 받아야할 행색을 하고 있으니 상대방도 동정받고 싶지 않단 반응을 보입니다. 항상 만족하며 살았는데 선물을 주려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삼형제의 선물은 어디에 쓰였을까
수녀님을 동경하지만 교회나 성당이라곤 가본 일 없고 종교와는 전혀 무관한, 어른이지만 아이같은 넝마주이 삼형제들은 자신들은 끼어들 수도 없고 함께할 수도 없는 크리스마스라는 축제를 즐기려다 오히려 큰 상처를 입고 맙니다. 그들의 처지를 불쌍하다 비웃기도 하고 그들의 성의는 무시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나눔과 사랑을 실천한다는 성탄절의 의미는 말뿐이었던거죠.
밤새도록 지친 삼형제가 천막으로 돌아왔을 때 천막 안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더럽고 더러운 천막 이불 조차 제대로 없고 난방도 안되는 그곳에 밥을 뺐어먹던 미친 여자(채유미)가 아이를 낳아버린 겁니다. 이땅이 좋아하던 수녀가 나타나 그 여자를 돌보고 삼형제에게 미역국과 밥을 준비하고 천막을 따뜻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들이 주려던 선물을 받을 적임자가 나타난 것이지요.
미쳐서 돌아다니던 여자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밥뺐으며 싸울 때와는 달리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삼형제는 그렇게 보고 싶던 수녀와 아이와 여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마굿간에서 태어난 예수와 성모 마리아, 그리고 동방박사들처럼. 그들이 등에 메고 넝마를 주으러 다니던 대바구니가 산타클로스의 선물보따리인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험한 일을 하는 계층을 무조건 비참하게 그리고 어리석게 묘사했다고 이 드라마를 악평했지만(당시엔 드라마에 거지나 수입이 적은 분들이 나오면 무조건 비판했던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는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본 종교와 사람 이야기입니다.
성탄절에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다고 했지만 '축제'와 '파티'로 변해버린 요즘엔 어울리지 않는 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80년대에 크리스마스를 바라보던 시선은 이랬습니다. 가장 '미천한' 선물이 아이와 산모의 생명을 구했고 그 아기가 세계가 믿는 종교의 성인이 되었습니다. 선물이란 무엇일까요? 진정한 산타는 정말 있을까요? 여러분은 이 이야기 속에서 진짜 산타클로스를 보셨습니까? 25일 아침, 여러분 머리맡에 걸린 양말엔 어떤 선물이 들어 있을까요.
이미지 출처, 참고기사 :
문화예술봉사회 나눔마루(출연진 중 한분이신 정대홍씨가 직접 올린 사진이네요)
- 넝마나 헌 종이, 빈 병 따위를 주워 모으는 사람. 또는 그런 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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