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재벌들의 폭행 그리고 칼레의 시민상

Shain 2010. 12. 2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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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사회 지도층이나 경제인, 유명인이 문제를 일으키면 과거엔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란 말로 그들을 나무라는 신문 컬럼이 뜨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용어를 사용하며 그들을 탓하는 분위기는 있지만 예전처럼 강경하다거나 정의로운 분위기는 없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그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덮어주거나 완곡하게 표현해주는 당사자가 언론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사회의 지배계층, 귀족들의 솔선수범을 독려하는 용어, 노블레스 오블리즈에 담긴 뜻은 본래 '귀족의 의무'이기에 요즘같은 현대사회에선 헛된 발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대나 과거나 재산이나 지위의 혜택을 받는 계층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에도 사회적 이익에 따른 책임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씁쓸한 일입니다.

드라마에 재벌이 자주 등장하는 건 PPL이 편리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또다른 면에선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불가능한 여러가지 우연이나 상황 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인 듯도 합니다. 재벌이면 'KBS 꽃보다 남자'처럼 재벌 소유의 아름다운 섬으로 휴가가고 쇼핑을 하고 파티를 벌이는 일들이 자연스럽겠죠. 평범한 사람들에겐 개연성없는 설정이 되고 맙니다.


지금 드라마 속 재벌은 요지경

'MBC 글로리아'의 여주인공 나진진(배두나)은 재벌과 사귀다 목숨이 위험해진 하동아(이천희)와 정윤서(소이현)의 처지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재벌가의 장남인 이지석(이종원)은 종종 깡패를 사주해 하동아의 목숨을 노리기도 하고 그를 빌미로 경찰서에 잡아넣기도 합니다. 유독 이지석이 삐뚤어진 재벌가 자식이라 할 수도 있지만 부모를 보면 그런 것만 같지도 않습니다.

이지석의 아버지는 아들이 살인죄를 저질렀음을 알게 되지만 아들이란 이유로 눈감아주고 정윤서의 아버지는 아내를 죽인 전력이 폭로되었음에도 외동딸 정윤서와 이지석을 그냥 결혼시키려 합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하동아를 살리려 결혼을 결심했던 정윤서는 그런 이지석과 결혼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결심하고 하동아와 도망갑니다.

재벌가의 혼외자들과 평범한 서민들의 사랑을 그린 'MBC 글로리아'


또 '욕망의 불꽃'의 재벌가 가족은 회사 창립과정에서 공헌한 남장군(조경환)이란 인물에게 회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똘똘 뭉쳐 비자금 수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족이 비자금 조성을 통한 비리를 저지른 건 사실이었기에 가족의 수장 김태진(이순재)은 감옥에라도 가겠다며 문제가 되는 장부를 집안에 들여놓고 아들들은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대신 죄를 덮어쓰겠다 각오합니다.

그들 재벌가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 직원들이 같이 일군 그들의 회사가 자신들만의 소유인듯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가족들의 전담 변호사와 자문진을 대동하고 모든 법적 수사에 대응하는 그들의 모습은 공정함이나 정직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들입니다. 여주인공 윤나영은 아들을 핑계로 여배우를 국외로 내쫓더니 합법적인 비자금 문제를 위해 후원재단 설립까지 궁리할 정도입니다.



드라마 속 모티브, 실제로 있다

재벌가의 연애사는 개인적인 문제라 크게 밝혀진게 없지만, 그리고 언론 보도를 딱히 탈 문제도 아니지만 예전에 로비스트로 유명한 K씨가 고등학생 때 재벌과 아파트를 얻어 동거한 적이 있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었죠. 또 시시 때때로 모 연예인이 몰래 재벌가의 아이를 낳았노라 폭로하는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법정 시비까지 갔던 사건도 있습니다.

재벌가의 정략결혼, 혼맥을 촘촘히 그려놓을 수준이라 하니 그 부분 역시 사실입니다. 재벌가의 상속을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음은 최근 S그룹의 구도를 봐서도 정확히 인지하고 계신 분들이 계실테구요. 그들이 회사를 자신들의 것처럼 간주하고 있음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닙니다.

출처 : 이지경제 - 폭행 물의’ SK-금호 '닮은꼴·다른꼴'


안타깝게도 깡패를 시켜 폭행을 사주하는 재벌가 아들의 모델로 실제로 자주 등장하고 있죠. 직접 상대방을 폭행해서 고소당하는 사례가 더 많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겠습니다. 요즘 '매값 폭행'으로 유명했던 최철원씨 관련 기사가 어쩐지 뜸하지요.

최근 재벌가의 폭행 사건이 다시 한번 벌어졌던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최철원에 비해 소리소문없이 지나간 금호가의 폭행사건은 금호타이어 회장의 육촌인 청소도급업체 박모(65) 사장이 비정규직 직원을 폭행하고 흉기로 위협했던 심각한 사건이지만 최철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감지한 금호그룹이 박모 사장이 운영하는 업체와의 용역계약을 해지하고 본인도 물러나게 함으로서 조용히 처리되었습니다. 피해자는 박모 사장에 대한 고소 절차를 진행중이라는군요. 이런식으로 언론 보도가 조용하면 더욱 피해자가 힘들어지진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칼레의 시민상과 재벌의 특권

중국이나 우리 나라의 왕은 생각 보다 많은 시간을 나랏일에 소모했다고 합니다. 국가를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왕들이 많았지만 왕정 자체의 한계와 시대적 상황 때문에 그런 부지런함을 칭찬해줄 수 없는 왕들이 많죠. 왕들은 몇가지 특권을 인정받습니다. 우리가 사극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주색잡기나 경국지색도 그 일부가 되겠지만 존경이나 존중같은 무형의 특권을 대접받기도 합니다.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대왕이 사실 아들이 몇십명이었다더라는 '역사적 사실'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런 부분 보단 세종대왕의 업적을 치하합니다. 왕정이란 제도 자체가 민폐를 끼치지 않거나 국정운영에 해가 되지 않는 선까지는 그런 특권을 인정해주기 때문이지요. 나라가 외국에게 침략당했을 때는 대표로 볼모로 잡혀가거나 땅에 머리를 찧으며 절하는 것도 그들이 해야할 일이기에 그 정도 특권은 '백성'들도 용납합니다.

로댕의 유명한 '칼레의 시민상(The Burghers of Calais)'은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한 프랑스 한 도시 칼레에서 있었던 일을 표현한 조각상입니다. 1년 가까이 영국군의 공격을 막아낸 칼레의 시민들이지만 결국 영국 에드워드 3세에게 항복하게 되었고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을 수락했지만 누군가 1년 동안의 항전에 책임을 지라 조건을 내겁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6명을 교수형시키면 모든 도시 사람들을 살려주겠다는 말에 '외스티슈 드생 피에르'라는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재력가가 나섰고 그를 뒤따라 다른 재력가, 법률가, 귀족들이 대표로 죽겠다며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임신한 왕비의 애원으로 처형 직전 목숨을 건졌지만 사회 지도층이 책임을 지는, '귀족의 의무(Noblesse oblige)'를 보여준 대표 사례로 남아있게 됩니다.

같은 재벌층의 모습이지만 칼레의 여섯 시민들은 자신의 특권을 사회적 책임을 지는데 이용했고 우리 나라의 재벌 폭행 사건은 그들의 특권을 흉기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죠. 그들의 지위 자체가 특권이자 흉기인데 직접 손으로 폭행까지 가했다니 무지하다 해야할지 한심하다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최근엔 드라마 조차 최근엔 재벌들의 인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길 포기한 것 같습니다. 철부지 재벌과 사랑에 빠져 눈뜨고 못볼 고생을 하는가 하면 조폭 두목급의 재벌 2세도 있고 집안의 재벌 승계를 위해서라면 타인의 안전이나 인생은 안중에도 없는 재벌들도 있습니다. 이런 드라마 속 묘사가 드라마틱하긴 해도 아주 틀린 건 아니라는 점에서 '칼레의 시민상'을 한번 더 떠올리게 됩니다. 흉기를 휘두르는 재벌 2세가 어쩌면 이리 자연스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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