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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극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게 가장 보기 좋다. 사극이 단순한 역사의 나열 같지만 역사적 사실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사극은 오랫동안 공들여 전체를 구성했을 때 가장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삼국의 영웅 시리즈 첫 주인공으로 편성된 근초고왕은 백제의 가장 위대한 왕이라 꼽을 수 있는 인물이다.
KBS가 다음 주인공으로 삼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나 신라의 무열왕(김춘추)은 각자 굵직한 업적이 있어 종종 드라마에 등장했었던 인물이지만 근초고왕이 드라마에 등장한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라이벌로 고구려의 왕 고국원왕을 등장시킨 것도 제법 그럴싸한 대치 구도다. 온조왕의 직계들과 고이왕계의 갈등, 그리고 혼사 관계가 엮인 부여 귀족들의 파워게임도 그럴듯하다.
사극에 오래 출연한 경험이 있는 연기자들의 출연은 눈을 즐겁게 한다. 근초고왕의 할아버지이자 흑강공 사훌 역을 맡은 배우 서인석, 근초고왕의 아버지 비류왕으로 멋진 캐릭터를 보여준 윤승원, 비류왕의 제 1왕후이자 고이왕계의 여장부인 해씨해소술 역의 최명길 등 연륜이 쌓이고 발성이 탄탄한 연기자들이 뒤를 바치고 있다. 자본이 달리지 않는 공영방송의 사극답게 만만치 않은 제작비가 투여된 듯하다. 1
백제의 내분과 고구려와의 갈등
드라마에서 가장 멋진 것은 소서노로 인해 백제는 본능적으로 고구려를 정복하길 원한다는 모티브이다. 같이 갑옷을 입고 고구려를 세웠던 공신이자 주몽의 조강지처 역할을 했던 소서노는 주몽의 배신으로 남쪽으로 아들을 끌고 내려왔다. 'MBC 주몽'은 그 둘의 사랑이 진심이여 주몽을 원망하지 않은 것처럼 묘사했지만 한 부족의 평생 숙원을 순순히 빼았길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견원지간이 되어 각 나라의 시조가 된 두 사람. 고구려는 정복자 주몽의 후손으로 백제를 업신여기며 신하로 두고 싶어하고 소서노의 후예 백제는 억울하게 빼앗긴 과거의 한이 오만한 배신자 고구려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한다. 그들에게 본디 졸본은 자신들의 고향이고 자신들의 땅이기 때문이다. 고국원왕(이종원)과 근초고왕(감우성)이 백제와 고구려의 그 구도를 계승하는 것이다.
백제는 대대로 온조왕의 후계로 왕위를 이었지만 고이왕은 조카 사반왕의 왕위를 찬탈한다. 고이왕의 후계는 책계왕, 분서왕으로 이어지다 다시 온조왕계의 비류왕으로 이어지지만 고이왕계의 계왕(극중 위례궁주, 부여준)이 비류왕의 후계를 노리고 있었다. 부여씨(극중 부씨)를 중심으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귀족으로 이루어진 백제의 세력이 양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극중에선 해씨 즉 해비해소술(최명길)과 해건(이지훈), 해녕(김기복) 등이 고이왕계의 수장 부여준(한진희 후의 계왕)을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진씨 일문 즉 비류왕의 제 2왕후 사하(김도연), 진정(김효원), 진고도(김형일), 진승(안재모) 등은 비류왕계를 따르는 것으로 설정했다.
근초고왕은 이 상황에서 비류왕의 아들이지만 계왕의 후계로 백제에 등극한다. 그는 중국 사서에 의하면 산둥 반도와 요서를 지배했고 왜에게도 문화를 전파하고 지배력을 확장시켰다는 인물이다. 물론 그 지역의 실제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시켜야할 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고 일본 역시 '백제에서 내렸다는 칠지도'를 근거로 백제를 일본이 다스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서노의 한을 풀어준 백제의 최고 영웅임은 분명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는 영웅이다.
자주 등장하는 '돌무덤'이라는 단어
늙은 백제의 귀족과 왕이 '돌무덤에 들어갈 때 다 됐다'란 표현을 쓴다. 당시 마한을 비롯한 남쪽의 장례풍습은 토관묘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이었다. 돌을 쌓는 방식의 장군총 같은 무덤 양식은 고구려의 양식이었다. 고구려에서 이주해 한강 주변에 나라를 세운 초기 백제는 고구려와 같은 무덤 양식을 보여준다. 그들이 이주해왔다는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조상의 양식을 잊지 않고 이주해서 새 나라를 세운 후에도 풍습을 지킨다는 말은 고향을 잊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다. 소서노의 후예들이 고구려와 전쟁을 벌일 만한 충분한 감정적 근거가 될 수 있단 뜻이다. 평소에 취향이 맞지 않는 소설가이지만 드라마로 제작될 때 드러나는 이런 섬세한 부분은 소설 원작 드라마의 장점이지 싶다.
고국원왕의 불안하고 안쓰러운 인생
첫회 등장으로 만만찮은 주인공의 라이벌이 된 고국원왕(사유)의 일생은 드라마처럼 본래 호전적이었던 것같진 않다. 331년 왕위에 올라 342년 진연의 침략을 받았고 도성이 파괴되었으며 5만여명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갔다. 고국원왕의 어머니와 아내까지 진연으로 끌려갔고 아버지인 미천왕의 시신까지 빼았겼다.
355년 전연에 신하의 예의를 갖춘 후에야 인질을 되찾을 수 있었던 고국원왕은 이후 전연을 격파하였고 황해도로 진출한 백제와 369년 전쟁을 벌인다. 백제를 응징하려 내려와 세 차례 백제와 전투를 벌였지만 모두 패배하고 371년에는 자신도 전투 중에 화살을 맞고 사망한 인물이다. 고구려의 수난기를 온몸으로 맞선 인물이지만 비극적인 최후로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고 만 것이다.
비류왕에게 쫓겨나 소금장수로 자라난 젊은 부여구(감우성)와 백제를 굴복시킬 야망에 의욕적인 고국원왕의 첫만남에서 고국원왕은 화살로 기선 제압을 당하게 된다. 비류왕의 살해를 꾀하는 등 백제의 위기를 고조시킬 주요 인물이지만 최후에 화살로 죽음을 맞이하니 '화살'에 크나큰 징크스가 있는 주인공이 될 듯 하다(혹시 드라마에서는 달리 처리하려나).
사방이 적인 고구려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말갈을 시켜 비류왕 살해를 사주하는 인물, 어려운 시기의 고구려 왕이지만 하필 경쟁상대가 좋지 않았던 듯하다. 사서를 만드는 등 백제를 부흥시켰던 근초고왕 역시 375년 세상을 뜬다. 소서노의 원한은 근초고왕이 풀어줬는 지 몰라도 고국원왕의 원한은 손자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대를 이어 갚아주게 된다.
남성적이고 선굵은 사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반가운 사극이 될 듯하다. 전투장면이나 진승(안재모)의 칼춤 등은 제법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아귀가 맞지 않는 사서 속 기록 때문에 섞어둔 가상의 인물들도 제법 재미있다. 사반왕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비류왕 때문에 흑강공 사훌이 등장하고 계왕의 왕위를 받는 근초고왕 때문에 부여화라는 딸을 설정했다. 근초고왕이 어떤 인물이 되어갈 지 그 면면을 지켜보아도 될 것 같다.
KBS가 다음 주인공으로 삼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나 신라의 무열왕(김춘추)은 각자 굵직한 업적이 있어 종종 드라마에 등장했었던 인물이지만 근초고왕이 드라마에 등장한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라이벌로 고구려의 왕 고국원왕을 등장시킨 것도 제법 그럴싸한 대치 구도다. 온조왕의 직계들과 고이왕계의 갈등, 그리고 혼사 관계가 엮인 부여 귀족들의 파워게임도 그럴듯하다.
바리데기 설화처럼 이번에도 쫓겨난 왕자, 근초고왕(감우성)
사극에 오래 출연한 경험이 있는 연기자들의 출연은 눈을 즐겁게 한다. 근초고왕의 할아버지이자 흑강공 사훌 역을 맡은 배우 서인석, 근초고왕의 아버지 비류왕으로 멋진 캐릭터를 보여준 윤승원, 비류왕의 제 1왕후이자 고이왕계의 여장부인 해씨해소술 역의 최명길 등 연륜이 쌓이고 발성이 탄탄한 연기자들이 뒤를 바치고 있다. 자본이 달리지 않는 공영방송의 사극답게 만만치 않은 제작비가 투여된 듯하다. 1
백제의 내분과 고구려와의 갈등
드라마에서 가장 멋진 것은 소서노로 인해 백제는 본능적으로 고구려를 정복하길 원한다는 모티브이다. 같이 갑옷을 입고 고구려를 세웠던 공신이자 주몽의 조강지처 역할을 했던 소서노는 주몽의 배신으로 남쪽으로 아들을 끌고 내려왔다. 'MBC 주몽'은 그 둘의 사랑이 진심이여 주몽을 원망하지 않은 것처럼 묘사했지만 한 부족의 평생 숙원을 순순히 빼았길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견원지간이 되어 각 나라의 시조가 된 두 사람. 고구려는 정복자 주몽의 후손으로 백제를 업신여기며 신하로 두고 싶어하고 소서노의 후예 백제는 억울하게 빼앗긴 과거의 한이 오만한 배신자 고구려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한다. 그들에게 본디 졸본은 자신들의 고향이고 자신들의 땅이기 때문이다. 고국원왕(이종원)과 근초고왕(감우성)이 백제와 고구려의 그 구도를 계승하는 것이다.
같은 영웅이었으나 주몽에게 배신당하고 백제를 세운 소서노
백제는 대대로 온조왕의 후계로 왕위를 이었지만 고이왕은 조카 사반왕의 왕위를 찬탈한다. 고이왕의 후계는 책계왕, 분서왕으로 이어지다 다시 온조왕계의 비류왕으로 이어지지만 고이왕계의 계왕(극중 위례궁주, 부여준)이 비류왕의 후계를 노리고 있었다. 부여씨(극중 부씨)를 중심으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귀족으로 이루어진 백제의 세력이 양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극중에선 해씨 즉 해비해소술(최명길)과 해건(이지훈), 해녕(김기복) 등이 고이왕계의 수장 부여준(한진희 후의 계왕)을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진씨 일문 즉 비류왕의 제 2왕후 사하(김도연), 진정(김효원), 진고도(김형일), 진승(안재모) 등은 비류왕계를 따르는 것으로 설정했다.
근초고왕은 이 상황에서 비류왕의 아들이지만 계왕의 후계로 백제에 등극한다. 그는 중국 사서에 의하면 산둥 반도와 요서를 지배했고 왜에게도 문화를 전파하고 지배력을 확장시켰다는 인물이다. 물론 그 지역의 실제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시켜야할 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고 일본 역시 '백제에서 내렸다는 칠지도'를 근거로 백제를 일본이 다스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서노의 한을 풀어준 백제의 최고 영웅임은 분명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는 영웅이다.
고구려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백제 초기 석촌동 돌무덤(출처: 문화재청)
자주 등장하는 '돌무덤'이라는 단어
늙은 백제의 귀족과 왕이 '돌무덤에 들어갈 때 다 됐다'란 표현을 쓴다. 당시 마한을 비롯한 남쪽의 장례풍습은 토관묘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이었다. 돌을 쌓는 방식의 장군총 같은 무덤 양식은 고구려의 양식이었다. 고구려에서 이주해 한강 주변에 나라를 세운 초기 백제는 고구려와 같은 무덤 양식을 보여준다. 그들이 이주해왔다는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조상의 양식을 잊지 않고 이주해서 새 나라를 세운 후에도 풍습을 지킨다는 말은 고향을 잊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다. 소서노의 후예들이 고구려와 전쟁을 벌일 만한 충분한 감정적 근거가 될 수 있단 뜻이다. 평소에 취향이 맞지 않는 소설가이지만 드라마로 제작될 때 드러나는 이런 섬세한 부분은 소설 원작 드라마의 장점이지 싶다.
고국원왕의 불안하고 안쓰러운 인생
첫회 등장으로 만만찮은 주인공의 라이벌이 된 고국원왕(사유)의 일생은 드라마처럼 본래 호전적이었던 것같진 않다. 331년 왕위에 올라 342년 진연의 침략을 받았고 도성이 파괴되었으며 5만여명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갔다. 고국원왕의 어머니와 아내까지 진연으로 끌려갔고 아버지인 미천왕의 시신까지 빼았겼다.
355년 전연에 신하의 예의를 갖춘 후에야 인질을 되찾을 수 있었던 고국원왕은 이후 전연을 격파하였고 황해도로 진출한 백제와 369년 전쟁을 벌인다. 백제를 응징하려 내려와 세 차례 백제와 전투를 벌였지만 모두 패배하고 371년에는 자신도 전투 중에 화살을 맞고 사망한 인물이다. 고구려의 수난기를 온몸으로 맞선 인물이지만 비극적인 최후로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고 만 것이다.
비겁하다 조롱받아도 좋으니 영토를 백제와 나눌 수는없다는 고국원왕
비류왕에게 쫓겨나 소금장수로 자라난 젊은 부여구(감우성)와 백제를 굴복시킬 야망에 의욕적인 고국원왕의 첫만남에서 고국원왕은 화살로 기선 제압을 당하게 된다. 비류왕의 살해를 꾀하는 등 백제의 위기를 고조시킬 주요 인물이지만 최후에 화살로 죽음을 맞이하니 '화살'에 크나큰 징크스가 있는 주인공이 될 듯 하다(혹시 드라마에서는 달리 처리하려나).
사방이 적인 고구려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말갈을 시켜 비류왕 살해를 사주하는 인물, 어려운 시기의 고구려 왕이지만 하필 경쟁상대가 좋지 않았던 듯하다. 사서를 만드는 등 백제를 부흥시켰던 근초고왕 역시 375년 세상을 뜬다. 소서노의 원한은 근초고왕이 풀어줬는 지 몰라도 고국원왕의 원한은 손자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대를 이어 갚아주게 된다.
남성적이고 선굵은 사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반가운 사극이 될 듯하다. 전투장면이나 진승(안재모)의 칼춤 등은 제법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아귀가 맞지 않는 사서 속 기록 때문에 섞어둔 가상의 인물들도 제법 재미있다. 사반왕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비류왕 때문에 흑강공 사훌이 등장하고 계왕의 왕위를 받는 근초고왕 때문에 부여화라는 딸을 설정했다. 근초고왕이 어떤 인물이 되어갈 지 그 면면을 지켜보아도 될 것 같다.
- 윤승원씨를 처음 본 건 1987년, 'KBS 토지'이다. 길상이 역을 맡았을 때 저 평범해보이는 배우가 주연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어린 눈의 착각이었던 거 같다. 연기자는 스타가 아니라 기본을 갖춘 사람에게만 부여할 수 있는 명칭인가 보다. 가장 참신한 얼굴이면서 가장 잘 어울리는 배역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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