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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날 방영된 KBS '근초고왕' 4회의 내용은 가죽과 대나무를 엮어 만든 비행체로 고구려의 고모리성을 함락시킨다는 내용이다. 부여구(감우성)의 활약으로 자존심을 상한 고국원왕(이종원)은 북방에서 모용황을 상대중인 고노자(전병옥)의 군사를 불러들이려 한다. 고모리성으로 날아든 행글라이더 모양의 커다란 연은 획기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엄청난 무게의 연이 사람을 태우고 날아들려면 깨나 잘 계산된 공식이 필요한데 황당무계한 설정이 아니냔 지적도 많다. 김유신이 연을 활용해 민심을 돌렸다는 기록 탓인지 각종 드라마에서 연을 활용하는 건 자주 볼 수 있다. 고대 사회의 전투신은 사서에서 아이디어를 얻는게 보통이라 익숙한 느낌을 주기에 그리 색다르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긴 'MBC 선덕여왕'에서 보여준 화랑과 백제군의 전투 장면은 우리 고대의 전법이라기 보단 무리를 활용하는 로마군의 원진과 방패를 활용하는 백부장 중심 전투를 훨씬 더 많이 닮았다. 자료가 없는 시대의 구현은 시대가 선명한 기존 자료를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창작하기 쉬울 것 같기도 하지만 그점이 이 시대 사극의 한계이기도 하다.
근초고왕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인물인가
비류왕 역의 윤승원을 비롯한 주요 출연진들은 사극에서 뼈가 굵은 연기자들이 많아 안정적인 톤과 말투를 보여준다. 종종 시청소감을 보면 배우 감우성의 현대적 말투와 발성을 지적하는 분들이 있다. 현대인의 말투로 진행되는 사극은 최근 자주 등장했기에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퓨전 사극은 내용은 현대적이라도 시대 배경만 사극인 셈이니 굳이 지적할 일도 아니다.
'MBC 김수로'에서 보여준 백성과 함께 하는 왕국과 상인들 중심의 해상무역, 'MBC 선덕여왕'에서 덕만공주가 백성을 자립할 수 있는 자영농으로 키우고자 했던 일 등은 현대적인 컨셉의 국가관이자 경제관이다. KBS 근초고왕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부여구는 아직까지 별다른 국가관이나 경제관을 보여준 인물은 아니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시크하다'란 평가를 많이 받는다.
근초고왕은 아직 드라마의 초반부라 왕으로서 뜻을 펼치는 중이 아니라 왕으로 성장 중이다. 지금까지의 모습은 명령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으로 상황을 해결하는 인물이다. 기획의도가 '대백제 건설'을 강조하는 걸로 보아서는 '시대의 필요'라는 미명 아래 강력하고 안정된 왕권과 정복이 국가의 힘이자 백성을 살리는 힘이라고 생각할 타입인 것도 같다.
삼국사기에 적힌 대로라면 근초고왕 부여구는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그렇지만 드라마는 부여구 이외에 네 명의 왕자(태자 부여찬, 부여휘, 부여산, 부여몽)가 존재한다. 계왕에게도 두 명의 아들이 더 있다. 굳이 그렇게 많은 인원을 설정한 이유는 그들을 모두 제거해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복을 위해 때로는 혈육의 피도 뿌리겠다는 이 인물의 가치관은 상당히 보수적이지 않을까 싶다.
조선이 아닌 백제의 이미지?
삼국 시대 사극에서 가장 보기 불편한 장면 중 하나가 조선시대 가치관으로 해석된 인물들이다. 여성이 일부종사하는 장면이나 신하들이 왕에 충성을 다하는 장면은 '조선시대'의 모습이다. 비류왕 시기에도 왕의 이복동생 우복의 반란이 기록되어 있다. 왕비족 혹은 왕의 혈연인 각 부족장이 왕에게 충성함은 파워의 원천이자 혈연이기 때문이지 충성해야하기 때문 만은 아니다.
삼국 시대 초기 각 나라가 왕권을 확립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전쟁'이 아니었을까 싶다. 침략하는 나라가 있을 대 한 부족이 대응하는 것 보다는 부족의 연합이 대응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초기에 왕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근초고왕 이전 백제사에 기록된 왕들이 모두 장자 상속은 아니었으리라 추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극중 진승(안재모), 진고도(김형일)이 부여찬(이종수)에 의해 하옥되자 그들의 가신들이 어차피 주인이 죽으면 죽을 목숨이라며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이 일개 군사인지 장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왕에 충성하기 보다는 개개 장군에게 충성했을 것이란 점이다. 비류왕은 아직 위례궁에게 충성을 강요할 수 없다. 이런 점들이 세밀히 구현되어야 초기 백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화면에 등장한 장면, 왕후(대부인)들이 서로를 완월당 혹은 소숙당이라고 부르는 모습은 분명 조선조의 후궁들 1을 인빈, 희빈이라 호칭하지 않고 양화당, 취선당 등 거처로 지칭한 모습을 본뜬듯 하다. 어떻게 설정된 명칭인지 알 수가 없으니 여전히 답답하기만 한데 백제의 왕후를 대부인이라 하기로 했다면 그들을 지칭하는 이런 방법도 조금은 달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미 삼국사기와는 다른 설정
전에도 적었지만 부여구의 사촌 진승의 아버지이자 진비 진사하의 오라버니로 등장하는 진정(김효복)은 근구수왕 시기의 조정 좌평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격이 매우 흉악하여 백성들의 미움을 받았단다. 진정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진고도 역시 근초고왕이 아닌 근구수왕의 외삼촌이다. 근초고왕의 제 1왕후가 진씨 일문이 아니라 부여화로 등장할 거 같으니 이미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르긴 힘들 것 같다.
부여 왕족이 부여씨라는 것도, 어라하라는 왕의 명칭과 관제에 대한 정보도 중국 사서에 의존한 것이니 온전히 어느 사서 하나를 따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긴 할 것이다. 현재 방영중인 계왕과 비류왕과의 갈등 구도라던가 부여화와 근초고왕의 결혼 등은 매우 드라마틱한 내용이긴 하나 고대 사회를 상상해보거나 사서로만 따져봤을 땐 무리한 부분도 많다.
드라마 시청 중 가장 기대하고 있는 내용은 혼인 문화를 어떻게 묘사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백제 고유의 풍습으로 기록된 내용 중 근친혼에 대한 기록은 딱히 없다. 부여찬과 부여화는 이종사촌 간일텐데 부여찬의 혼인 상대자로(지금은 고구려 사유의 상대로 거론 중이지만) 부여화가 지목될 수 있을 지 궁금한 부분이다. 중국 사서엔 '백제인이 유부녀가 간통했을 경우 가족까지 종으로 삼는다'는 등의 문화가 있었다는데 그런 부분이 과연 구현될지도 궁금하다.
반면 엄청난 무게의 연이 사람을 태우고 날아들려면 깨나 잘 계산된 공식이 필요한데 황당무계한 설정이 아니냔 지적도 많다. 김유신이 연을 활용해 민심을 돌렸다는 기록 탓인지 각종 드라마에서 연을 활용하는 건 자주 볼 수 있다. 고대 사회의 전투신은 사서에서 아이디어를 얻는게 보통이라 익숙한 느낌을 주기에 그리 색다르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긴 'MBC 선덕여왕'에서 보여준 화랑과 백제군의 전투 장면은 우리 고대의 전법이라기 보단 무리를 활용하는 로마군의 원진과 방패를 활용하는 백부장 중심 전투를 훨씬 더 많이 닮았다. 자료가 없는 시대의 구현은 시대가 선명한 기존 자료를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창작하기 쉬울 것 같기도 하지만 그점이 이 시대 사극의 한계이기도 하다.
연을 이용해 고구려의 고모리성을 함락시킨 백제군
근초고왕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인물인가
비류왕 역의 윤승원을 비롯한 주요 출연진들은 사극에서 뼈가 굵은 연기자들이 많아 안정적인 톤과 말투를 보여준다. 종종 시청소감을 보면 배우 감우성의 현대적 말투와 발성을 지적하는 분들이 있다. 현대인의 말투로 진행되는 사극은 최근 자주 등장했기에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퓨전 사극은 내용은 현대적이라도 시대 배경만 사극인 셈이니 굳이 지적할 일도 아니다.
'MBC 김수로'에서 보여준 백성과 함께 하는 왕국과 상인들 중심의 해상무역, 'MBC 선덕여왕'에서 덕만공주가 백성을 자립할 수 있는 자영농으로 키우고자 했던 일 등은 현대적인 컨셉의 국가관이자 경제관이다. KBS 근초고왕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부여구는 아직까지 별다른 국가관이나 경제관을 보여준 인물은 아니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시크하다'란 평가를 많이 받는다.
근초고왕은 아직 드라마의 초반부라 왕으로서 뜻을 펼치는 중이 아니라 왕으로 성장 중이다. 지금까지의 모습은 명령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으로 상황을 해결하는 인물이다. 기획의도가 '대백제 건설'을 강조하는 걸로 보아서는 '시대의 필요'라는 미명 아래 강력하고 안정된 왕권과 정복이 국가의 힘이자 백성을 살리는 힘이라고 생각할 타입인 것도 같다.
삼국사기에 적힌 대로라면 근초고왕 부여구는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그렇지만 드라마는 부여구 이외에 네 명의 왕자(태자 부여찬, 부여휘, 부여산, 부여몽)가 존재한다. 계왕에게도 두 명의 아들이 더 있다. 굳이 그렇게 많은 인원을 설정한 이유는 그들을 모두 제거해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복을 위해 때로는 혈육의 피도 뿌리겠다는 이 인물의 가치관은 상당히 보수적이지 않을까 싶다.
조선이 아닌 백제의 이미지?
삼국 시대 사극에서 가장 보기 불편한 장면 중 하나가 조선시대 가치관으로 해석된 인물들이다. 여성이 일부종사하는 장면이나 신하들이 왕에 충성을 다하는 장면은 '조선시대'의 모습이다. 비류왕 시기에도 왕의 이복동생 우복의 반란이 기록되어 있다. 왕비족 혹은 왕의 혈연인 각 부족장이 왕에게 충성함은 파워의 원천이자 혈연이기 때문이지 충성해야하기 때문 만은 아니다.
삼국 시대 초기 각 나라가 왕권을 확립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전쟁'이 아니었을까 싶다. 침략하는 나라가 있을 대 한 부족이 대응하는 것 보다는 부족의 연합이 대응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초기에 왕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근초고왕 이전 백제사에 기록된 왕들이 모두 장자 상속은 아니었으리라 추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극중 진승(안재모), 진고도(김형일)이 부여찬(이종수)에 의해 하옥되자 그들의 가신들이 어차피 주인이 죽으면 죽을 목숨이라며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이 일개 군사인지 장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왕에 충성하기 보다는 개개 장군에게 충성했을 것이란 점이다. 비류왕은 아직 위례궁에게 충성을 강요할 수 없다. 이런 점들이 세밀히 구현되어야 초기 백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화면에 등장한 장면, 왕후(대부인)들이 서로를 완월당 혹은 소숙당이라고 부르는 모습은 분명 조선조의 후궁들 1을 인빈, 희빈이라 호칭하지 않고 양화당, 취선당 등 거처로 지칭한 모습을 본뜬듯 하다. 어떻게 설정된 명칭인지 알 수가 없으니 여전히 답답하기만 한데 백제의 왕후를 대부인이라 하기로 했다면 그들을 지칭하는 이런 방법도 조금은 달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미 삼국사기와는 다른 설정
전에도 적었지만 부여구의 사촌 진승의 아버지이자 진비 진사하의 오라버니로 등장하는 진정(김효복)은 근구수왕 시기의 조정 좌평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격이 매우 흉악하여 백성들의 미움을 받았단다. 진정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진고도 역시 근초고왕이 아닌 근구수왕의 외삼촌이다. 근초고왕의 제 1왕후가 진씨 일문이 아니라 부여화로 등장할 거 같으니 이미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르긴 힘들 것 같다.
부여 왕족이 부여씨라는 것도, 어라하라는 왕의 명칭과 관제에 대한 정보도 중국 사서에 의존한 것이니 온전히 어느 사서 하나를 따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긴 할 것이다. 현재 방영중인 계왕과 비류왕과의 갈등 구도라던가 부여화와 근초고왕의 결혼 등은 매우 드라마틱한 내용이긴 하나 고대 사회를 상상해보거나 사서로만 따져봤을 땐 무리한 부분도 많다.
드라마 시청 중 가장 기대하고 있는 내용은 혼인 문화를 어떻게 묘사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백제 고유의 풍습으로 기록된 내용 중 근친혼에 대한 기록은 딱히 없다. 부여찬과 부여화는 이종사촌 간일텐데 부여찬의 혼인 상대자로(지금은 고구려 사유의 상대로 거론 중이지만) 부여화가 지목될 수 있을 지 궁금한 부분이다. 중국 사서엔 '백제인이 유부녀가 간통했을 경우 가족까지 종으로 삼는다'는 등의 문화가 있었다는데 그런 부분이 과연 구현될지도 궁금하다.
- 2010년 11월 27일 방송중에서 해비의 호칭을 완월당(翫月堂)이라고 바로 잡았습니다. 시청후 소리만 듣고 적은 내용인데 혼란 빚어 죄송하고 바로잡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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