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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근초고왕의 초반부는 왜 주인공 부여구가 왕위를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는지 극적인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왕의 자질을 타고나 전쟁을 이끌고 형님을 구하는 속넓은 그의 모습은 간만에 보는 선굵은 사극의 매력을 톡톡히 느끼게 합니다. AG 중계로 라이벌 방송국은 주말극을 결방하고 있음에도 이 사극의 시청률은 두자리수를 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제도 적었듯 이 드라마는 소품 등에서는 고증이 잘된 섬세한 장면들을 연출했고 극적인 긴장관계도 잘 설정된 편이지만 내용이나 배경을 모른다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극중에 배들이 오고가는 작은 나루터가 등장하는데 그곳이 현재의 한강임을 알아본 시청자들이 있을까요.
초기 백제 시대 즈음부터 조선 때까지는 퇴적물이 많지 않아 한강을 통해 서울 한복판까지도 큰 배가 들어왔고 그 배를 타고 중국이나 다른 지역을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백제의 풍납토성을 구현해도 역시 알아보지 못한 것은 백제에 대한 지식이 백지와 가까운 탓입니다. 극중 배경, 관계, 단어 등 여러 부분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죠. 이런식으로는 드라마의 재미를 100%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해비 해소술의 또다른 이름 반월당
이전 포스팅부터 계속 지적하지만 이 드라마가 가장 '괘씸한' 부분 중 하나는 명칭의 유래를 시청자가 직접 추리하게 한다는 겁니다. 해비 해소술을 왜 언월당이라고 부르는지 계속 추리해나가다가 오늘 단서(?)를 잡았습니다. 언월의 뜻이 반달을 뜻하는 偃月이 아닐까 생각해 왔는데 흑강공 사훌이 어제는 해소술에게 반월당이라고 호칭하더군요. 음력 보름 전후의 반달 즉 반월(半月)과 언월을 같이 사용한 것입니다. 1
언월당(偃月堂)에서 '당'이란 호칭은 역시 대부인의 거처를 이르는 말일테고 고구려, 백제 모두에 있는 동명전(東明殿)은 왕이 업무를 보는 곳으로 설정한 모양이더군요. 창경궁에도 같은 이름의 장소가 있는데 역시나 '동명'을 부여의 시조로 여긴다는 최근의 학설을 반영한게 맞나봅니다. 언월당은 그렇지만 거처 이름 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해씨들의 주 거주지가 초성리성(경기도 연천) 쪽이라고 등장했습니다. 그 부근엔 백제가 5세기 부근에 축성한 반월산성(포천)이란 곳도 있더군요. 연천과 포천은 맞붙은 곳으로 매우 가깝습니다. 해비 해소술이 홈페이지엔 해녕의 누이로 등장했지만 어제 보니 사촌 누이로 설정되어 있던데 '출신 지역'에 따라 반월이란 '닉네임'이 붙은 걸까요. 드라마의 작명원리를 알 길이 없습니다.
태대부인 마마는 당연히 아니고 태대부인 마님
드라마가 한자와 병용하면서도 '어라하(於羅瑕)'라는 용어를 굳이 쓰길래 그리고 '아바님'이라는 말까지 쓰길래 백제식 이두를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일본 고대어의 뿌리가 백제 이두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아주 많거든요. 그래서 중국 사서에 적힌 백제 왕후의 명칭 어륙(於陸)을 'oriku' 또는 'oruku' 라는 발음으로 풀기도 합니다. 미추홀 등의 지명은 고대 지명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왕후에 대한 호칭이 '어륙'이라거나 '어리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던지 드라마는 같은 뜻인 '대부인(大夫人)'이란 호칭을 쓰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역시 중국 사서에 근거한 것만 쓰는게 낫다고 판단한 거겠죠. 대부인은 낮은 신분처럼 보이고, 마마란 호칭은 당연히 못쓰고 왕의 부인이니 어쩔 수 없이 太라는 호칭까지 붙여 '마님'이라 쓰는 모양입니다. 차라리 과감하게 순우리말을 쓰거나 했으면 좋았을텐데 어라하와는 궁합이 맞지 않아 보이네요.
소서노를 국조모로 모시는 나라니 왕후를 남당에 들이는게 아주 예에 어긋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흑강공과 신하들은 해소술의 등장을 못마땅해 합니다. 각 신료들과 부족 대표들만 발언권이 있는 곳이 '동명전'인 모양이더군요. 후에 해녕을 이어 해씨의 수장으로 등극하면 태대부인의 위상이 달라질까요. 아직 백제 초기임에도 여성들이 정치권에서 물러난 듯해 의아한 구석도 있네요.
비류왕의 죽음과 해소술의 역할
왕권이 안정되기 전 국가는 자신의 부족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는 부족장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각자 성을 차지하고 사병을 키우는 그들은 세력이 조율되지 않으면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왕정국가로 넘어가기전 과도기의 해비 해소술은 자신의 해씨 가문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는 치밀한 면을 보입니다. 비류왕이 백제의 미래를 생각하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죠.
어제 비류왕에게 당당히 항의한 것처럼 해비 해소술과의 결혼이 없었으면 비류왕은 왕위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진씨의 지지 만으로는 평민으로 살아온 부구태의 왕권이 안정될 수 없어 해씨 가문의 딸과 결혼한 것이죠. 원래 해소술은 태자 부여준과 결혼할 사이였습니다. 암묵적인 약속으로 태자 부여찬의 왕위 계승을 요구하는 해소술에게 태자는 너무 많은 과오를 저질렀다며 비류왕이 거부합니다.
해소술의 입장에선 정인을 버리고 억지로 한 정략결혼이고 친정까지 등져가며 평생 뒷바라지 했건만 마음은 둘째 왕후 진사하에게 주었던 남편 비류왕이 원망스러울만 합니다. 사랑 아니면 권력인데 그 둘 중 하나도 얻을 수 없게 되었고 진사하의 아들 부여구에게 자신의 아들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됩니다.
부여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해소술을 설득하고 곧 해소술이 직접 비류왕을 독살할 것입니다. 부여찬을 다음 왕위에 올리는 조건으로 부여준은 왕이 되고 부여구는 쫓겨나게 됩니다. 이제는 해소술이 해씨 집안의 수장으로 등극해 보다 강력한 정치적인 면모를 보이게 되겠죠. 부여찬의 못난 모습이나 해소술이 배신당하는 모습이 조금 진부하긴 합니다.
부여구는 태몽 때문에 형인 부여찬의 자리 즉 장자상속을 위협할까 싶어 한성에서 쫓겨났고 어머니와 떨어져 자라게 한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었습니다. 이제서야 홀로 울부짖으며 백제를 지켜가는 아버지를 동정하게 되었고 부여화와 작은 사랑을 이뤄볼까 했지만 백제를 얻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납니다.
부족국가에서 왕정국가로 넘어가는 동안 틀림없이 강력한 왕이 필요했을 것이고 주인공 부여구는 복수, 사랑, 야망 모든 면에서 그런 왕이 되어야할 모티브를 가지게 됐습니다. 가문과 아들을 지키고자 했던 해소술은 이제 주인공의 가장 강력한 적이 되고야 말겠군요. 윤승원씨가 맡은 비류왕의 퇴장이 멀지 않은 듯 해 안타깝고 사극 전문 배우 최명길씨의 역할에 기대를 걸게 됩니다.
어제도 적었듯 이 드라마는 소품 등에서는 고증이 잘된 섬세한 장면들을 연출했고 극적인 긴장관계도 잘 설정된 편이지만 내용이나 배경을 모른다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극중에 배들이 오고가는 작은 나루터가 등장하는데 그곳이 현재의 한강임을 알아본 시청자들이 있을까요.
초기 백제 시대 즈음부터 조선 때까지는 퇴적물이 많지 않아 한강을 통해 서울 한복판까지도 큰 배가 들어왔고 그 배를 타고 중국이나 다른 지역을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백제의 풍납토성을 구현해도 역시 알아보지 못한 것은 백제에 대한 지식이 백지와 가까운 탓입니다. 극중 배경, 관계, 단어 등 여러 부분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죠. 이런식으로는 드라마의 재미를 100%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한성왕궁에서 가깝고 부여화가 자주 올 수 있었던 이 나루는 한강의 나루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해비 해소술의 또다른 이름 반월당
이전 포스팅부터 계속 지적하지만 이 드라마가 가장 '괘씸한' 부분 중 하나는 명칭의 유래를 시청자가 직접 추리하게 한다는 겁니다. 해비 해소술을 왜 언월당이라고 부르는지 계속 추리해나가다가 오늘 단서(?)를 잡았습니다. 언월의 뜻이 반달을 뜻하는 偃月이 아닐까 생각해 왔는데 흑강공 사훌이 어제는 해소술에게 반월당이라고 호칭하더군요. 음력 보름 전후의 반달 즉 반월(半月)과 언월을 같이 사용한 것입니다. 1
언월당(偃月堂)에서 '당'이란 호칭은 역시 대부인의 거처를 이르는 말일테고 고구려, 백제 모두에 있는 동명전(東明殿)은 왕이 업무를 보는 곳으로 설정한 모양이더군요. 창경궁에도 같은 이름의 장소가 있는데 역시나 '동명'을 부여의 시조로 여긴다는 최근의 학설을 반영한게 맞나봅니다. 언월당은 그렇지만 거처 이름 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해씨들의 주 거주지가 초성리성(경기도 연천) 쪽이라고 등장했습니다. 그 부근엔 백제가 5세기 부근에 축성한 반월산성(포천)이란 곳도 있더군요. 연천과 포천은 맞붙은 곳으로 매우 가깝습니다. 해비 해소술이 홈페이지엔 해녕의 누이로 등장했지만 어제 보니 사촌 누이로 설정되어 있던데 '출신 지역'에 따라 반월이란 '닉네임'이 붙은 걸까요. 드라마의 작명원리를 알 길이 없습니다.
태대부인 마마는 당연히 아니고 태대부인 마님
드라마가 한자와 병용하면서도 '어라하(於羅瑕)'라는 용어를 굳이 쓰길래 그리고 '아바님'이라는 말까지 쓰길래 백제식 이두를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일본 고대어의 뿌리가 백제 이두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아주 많거든요. 그래서 중국 사서에 적힌 백제 왕후의 명칭 어륙(於陸)을 'oriku' 또는 'oruku' 라는 발음으로 풀기도 합니다. 미추홀 등의 지명은 고대 지명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왕후에 대한 호칭이 '어륙'이라거나 '어리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던지 드라마는 같은 뜻인 '대부인(大夫人)'이란 호칭을 쓰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역시 중국 사서에 근거한 것만 쓰는게 낫다고 판단한 거겠죠. 대부인은 낮은 신분처럼 보이고, 마마란 호칭은 당연히 못쓰고 왕의 부인이니 어쩔 수 없이 太라는 호칭까지 붙여 '마님'이라 쓰는 모양입니다. 차라리 과감하게 순우리말을 쓰거나 했으면 좋았을텐데 어라하와는 궁합이 맞지 않아 보이네요.
소서노를 국조모로 모시는 나라니 왕후를 남당에 들이는게 아주 예에 어긋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흑강공과 신하들은 해소술의 등장을 못마땅해 합니다. 각 신료들과 부족 대표들만 발언권이 있는 곳이 '동명전'인 모양이더군요. 후에 해녕을 이어 해씨의 수장으로 등극하면 태대부인의 위상이 달라질까요. 아직 백제 초기임에도 여성들이 정치권에서 물러난 듯해 의아한 구석도 있네요.
대부인 진사하와 태대부인 해소술
비류왕의 죽음과 해소술의 역할
왕권이 안정되기 전 국가는 자신의 부족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는 부족장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각자 성을 차지하고 사병을 키우는 그들은 세력이 조율되지 않으면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왕정국가로 넘어가기전 과도기의 해비 해소술은 자신의 해씨 가문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는 치밀한 면을 보입니다. 비류왕이 백제의 미래를 생각하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죠.
어제 비류왕에게 당당히 항의한 것처럼 해비 해소술과의 결혼이 없었으면 비류왕은 왕위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진씨의 지지 만으로는 평민으로 살아온 부구태의 왕권이 안정될 수 없어 해씨 가문의 딸과 결혼한 것이죠. 원래 해소술은 태자 부여준과 결혼할 사이였습니다. 암묵적인 약속으로 태자 부여찬의 왕위 계승을 요구하는 해소술에게 태자는 너무 많은 과오를 저질렀다며 비류왕이 거부합니다.
해소술의 입장에선 정인을 버리고 억지로 한 정략결혼이고 친정까지 등져가며 평생 뒷바라지 했건만 마음은 둘째 왕후 진사하에게 주었던 남편 비류왕이 원망스러울만 합니다. 사랑 아니면 권력인데 그 둘 중 하나도 얻을 수 없게 되었고 진사하의 아들 부여구에게 자신의 아들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됩니다.
부여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해소술을 설득하고 곧 해소술이 직접 비류왕을 독살할 것입니다. 부여찬을 다음 왕위에 올리는 조건으로 부여준은 왕이 되고 부여구는 쫓겨나게 됩니다. 이제는 해소술이 해씨 집안의 수장으로 등극해 보다 강력한 정치적인 면모를 보이게 되겠죠. 부여찬의 못난 모습이나 해소술이 배신당하는 모습이 조금 진부하긴 합니다.
부여구는 태몽 때문에 형인 부여찬의 자리 즉 장자상속을 위협할까 싶어 한성에서 쫓겨났고 어머니와 떨어져 자라게 한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었습니다. 이제서야 홀로 울부짖으며 백제를 지켜가는 아버지를 동정하게 되었고 부여화와 작은 사랑을 이뤄볼까 했지만 백제를 얻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납니다.
부족국가에서 왕정국가로 넘어가는 동안 틀림없이 강력한 왕이 필요했을 것이고 주인공 부여구는 복수, 사랑, 야망 모든 면에서 그런 왕이 되어야할 모티브를 가지게 됐습니다. 가문과 아들을 지키고자 했던 해소술은 이제 주인공의 가장 강력한 적이 되고야 말겠군요. 윤승원씨가 맡은 비류왕의 퇴장이 멀지 않은 듯 해 안타깝고 사극 전문 배우 최명길씨의 역할에 기대를 걸게 됩니다.
- 2010년 11월 27일 방송중에서 완월당(翫月堂)이라고 바로 잡았습니다. 시청후 소리만 듣고 적은 내용인데 혼란 빚어 죄송하고 바로잡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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