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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방영분에서 비류왕(윤승원)은 드디어 해비 해소술(최명길)의 배신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합니다. 계왕에 등극할 부여준(한진희)는 과거의 한을 끄집어내며 곧 죽게될 비류왕을 조롱합니다. 그는 고국원왕(이종원)과의 대화에서 이미 비류왕이 전쟁에서 입은 상처가 악화되어 죽었다는 시나리오까지 마련한 상태입니다. 어라하의 위를 약속받고 백제의 태자로, 형제들의 안부까지 부탁받은 부여구(감우성)으로서는 또다른 시련의 시작이고 왕위 다툼의 첫걸음입니다.
한편 부여구의 첫사랑이자 연인인 부여화(김지수)는 고국원왕의 제 2왕후로 험난한 고구려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백제 보다 늘 춥고 드세기만 한 그곳에서 고국원왕은 그리 다정한 남편이 되지 못하고 역사에도 기록된 국상 '조불(김응수)'는 몰래 부여화를 감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미 부여화의 연인을 눈치챈상태죠.
과거에도 일부 적었지만 삼국사기에 기록된 근초고왕과 근구수왕의 부인은 모두 '진씨'입니다. 진정(김효원)과 진고도(김형일)를 비롯한 진씨들이 큰 권세를 휘둘렀음을 짐작가능한 내용이 많습니다. 근초고왕의 제 2왕후는 요서에서 만난 위홍란(이세은)으로 결정난 상태고 제 1왕후는 '부여화'인 걸로 짐작했었죠.
부여화는 근초고왕의 제 1왕후가 될 수 있을까
고국원왕의 제 2왕후가 되어버린 부여화는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고구려의 여인으로 이제는 더 이상 백제로 돌아올 수 없을 것도 같습니다. '소서노의 현신'으로 백제에서 중요한 인물이 될 것처럼 묘사했고 부여구가 잊지 못하는 첫사랑으로 절대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여인이었지만 '백제가 너를 필요로 한다'는 비류왕의 말 때문에 부여구는 이미 남자로서의 야심을 불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근초고왕은 기록상 백제 13대 왕으로 그 윗대의 왕은 계왕입니다. 비류왕이 후계로 지목했단 자체가 이미 시련의 시작이란 뜻이고 그가 정표에 기록한 말처럼 '如焉在 誰何在 餘花汝我妻(여언재 수하재 여화여아처)'가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런 상황입니다. '여화 네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여화 너는 네 아내이다'란 이 말은 지키기가 힘들어 보이네요.
극중 설명대로라면 부여화가 고구려의 왕후가 되었기 때문에 고국원왕은 백제를 침략할 빌미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꽤 오래 왕후 자리에 있을 거란 이야기인대요. 부여화가 근초고왕의 제 1왕후가 될 것이라 생각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인물 설명에 등장한 저 복색 때문이죠. 어제도 지적했듯 백제의 어라하, 제 1왕후, 태자 만이 나투가 그려진 옷을 입습니다.
해비 해소술(최명길)의 머리 장식은 무녕왕릉에서 등장한 그 머리 장식으로 왕후의 것이 맞고, 복색은 조선에서도 귀하게 생각하는 붉은색으로 왕후 만이 입는 색입니다. 고구려 역시 그 점은 마찬가지이겠지만 일단 제 2왕후로 혼인했고 무늬까지 동일하지는 않겠죠. '삼족오'와 '나투'를 구분하긴 어렵지만 분명 해소술의 것과 같아보입니다. 진씨가 왕후가 될까요 아니면 부여화가 근초고왕의 제 1왕후가 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이 극의 재미 중 하나가 되겠군요.
근초고왕의 뜻은 '초고왕의 뜻을 잇는다'
비류왕은 해소술과 부여찬의 거센 반발을 보면서도 부여구에게 태자 위를 물리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차라리 날 죽이라는 부여찬(이종수)의 난동에 다정하게 대처하지만 흑강공 사훌(서인석)에게 부여구에게 짐을 남겨두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부여찬을 죽이는 고통을 감내하겠다고 말합니다. 백제를 위해 평생을 희생한 비류왕다운 발상입니다(솔직히 이런식의 영웅적 희생은 참 구시대적이라 봅니다만 자주 나오니 어쩔 수 없군요).
평생을 비류왕에게 희생한 해소술은 지아비를 직접 죽여야한다는 사실에 망설이지만 아들 부여찬을 사사할 것이라는 정보를 들은 이상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부여준과 손잡은 해소술은 부여찬을 태자로 두겠다는 부여준의 약속을 믿고 일단 비류왕을 독살합니다. 곧 궁 안에 천아성(왕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이 울리고 피바람이 불겠지요.
초고대왕의 일월검을 전해주며 '초고왕의 뜻을 이으라(근초고왕의 뜻)'는 비류왕의 유언(다음 회에 거의 죽을 듯하니 유언이나 마찬가지군요)을 들으며 부여구는 왕재로서의 각오를 다집니다. 백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혈육 마저 죽이리라 굳게 맹세합니다. 부여찬, 부여휘, 부여산, 부여몽을 비롯한 부여준의 아들들이 부여구의 앞을 가로 막을 것이 뻔하니 쓸쓸한 왕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부여준은 해씨들이 이끄는 초성리성의 군사들을 한성으로 부르고 착착 왕위 계승을 준비합니다. 진비가 왕의 약재를 직접 준비하는 책임을 맡고 있으니 부여구와 진씨 일가가 왕을 독살한 누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입니다. 둘째 아들 휘가 부여구의 편을 든다 해도 부여구는 목숨이 위험해지겠죠. 다음주부터는 요서로 쫓겨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못난 태자 부여찬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종 드라마 속 왕실 체계와 전각이 조선의 모습을 닮아 종종 시청할 때 거슬리기는 하지만 백제를 구현한 모습이 신기하기는 합니다. 조선의 대전을 이르는 동명전, 온조왕의 사당을 이르는 말인 묘시조온(廟始祚溫), 소서노 사당이 있는 곰제(熊祭) 별궁도 등장했는데요. 곰제 즉 고대 민족의 가장 큰 제사였던 곰에게 제사지내는 '곰제'란 표현을 씁니다. 고대와 조선시대의 모습을 적절히 섞어둔게 이색적이네요.
일본식이란 지적을 많이 받는 부분은 고대 백제를 구현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될 듯하더군요. 일본의 고대어와 일본의 문제는 백제의 언어이고 백제식 이두란 주장을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복식 역시 무덤의 그림이나 유물을 복원한 것이라지만 어쩔 수 없이 일본의 모습을 많이 닮았더군요. 근초고왕의 백제 정복은 아직 초반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류왕이 일찍 죽음을 맞은 건 아쉽네요.
한편 부여구의 첫사랑이자 연인인 부여화(김지수)는 고국원왕의 제 2왕후로 험난한 고구려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백제 보다 늘 춥고 드세기만 한 그곳에서 고국원왕은 그리 다정한 남편이 되지 못하고 역사에도 기록된 국상 '조불(김응수)'는 몰래 부여화를 감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미 부여화의 연인을 눈치챈상태죠.
과거에도 일부 적었지만 삼국사기에 기록된 근초고왕과 근구수왕의 부인은 모두 '진씨'입니다. 진정(김효원)과 진고도(김형일)를 비롯한 진씨들이 큰 권세를 휘둘렀음을 짐작가능한 내용이 많습니다. 근초고왕의 제 2왕후는 요서에서 만난 위홍란(이세은)으로 결정난 상태고 제 1왕후는 '부여화'인 걸로 짐작했었죠.
부여화는 근초고왕의 제 1왕후가 될 수 있을까
고국원왕의 제 2왕후가 되어버린 부여화는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고구려의 여인으로 이제는 더 이상 백제로 돌아올 수 없을 것도 같습니다. '소서노의 현신'으로 백제에서 중요한 인물이 될 것처럼 묘사했고 부여구가 잊지 못하는 첫사랑으로 절대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여인이었지만 '백제가 너를 필요로 한다'는 비류왕의 말 때문에 부여구는 이미 남자로서의 야심을 불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근초고왕은 기록상 백제 13대 왕으로 그 윗대의 왕은 계왕입니다. 비류왕이 후계로 지목했단 자체가 이미 시련의 시작이란 뜻이고 그가 정표에 기록한 말처럼 '如焉在 誰何在 餘花汝我妻(여언재 수하재 여화여아처)'가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런 상황입니다. '여화 네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여화 너는 네 아내이다'란 이 말은 지키기가 힘들어 보이네요.
극중 설명대로라면 부여화가 고구려의 왕후가 되었기 때문에 고국원왕은 백제를 침략할 빌미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꽤 오래 왕후 자리에 있을 거란 이야기인대요. 부여화가 근초고왕의 제 1왕후가 될 것이라 생각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인물 설명에 등장한 저 복색 때문이죠. 어제도 지적했듯 백제의 어라하, 제 1왕후, 태자 만이 나투가 그려진 옷을 입습니다.
해비 해소술(최명길)의 머리 장식은 무녕왕릉에서 등장한 그 머리 장식으로 왕후의 것이 맞고, 복색은 조선에서도 귀하게 생각하는 붉은색으로 왕후 만이 입는 색입니다. 고구려 역시 그 점은 마찬가지이겠지만 일단 제 2왕후로 혼인했고 무늬까지 동일하지는 않겠죠. '삼족오'와 '나투'를 구분하긴 어렵지만 분명 해소술의 것과 같아보입니다. 진씨가 왕후가 될까요 아니면 부여화가 근초고왕의 제 1왕후가 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이 극의 재미 중 하나가 되겠군요.
근초고왕의 뜻은 '초고왕의 뜻을 잇는다'
비류왕은 해소술과 부여찬의 거센 반발을 보면서도 부여구에게 태자 위를 물리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차라리 날 죽이라는 부여찬(이종수)의 난동에 다정하게 대처하지만 흑강공 사훌(서인석)에게 부여구에게 짐을 남겨두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부여찬을 죽이는 고통을 감내하겠다고 말합니다. 백제를 위해 평생을 희생한 비류왕다운 발상입니다(솔직히 이런식의 영웅적 희생은 참 구시대적이라 봅니다만 자주 나오니 어쩔 수 없군요).
평생을 비류왕에게 희생한 해소술은 지아비를 직접 죽여야한다는 사실에 망설이지만 아들 부여찬을 사사할 것이라는 정보를 들은 이상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부여준과 손잡은 해소술은 부여찬을 태자로 두겠다는 부여준의 약속을 믿고 일단 비류왕을 독살합니다. 곧 궁 안에 천아성(왕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이 울리고 피바람이 불겠지요.
초고대왕의 일월검을 전해주며 '초고왕의 뜻을 이으라(근초고왕의 뜻)'는 비류왕의 유언(다음 회에 거의 죽을 듯하니 유언이나 마찬가지군요)을 들으며 부여구는 왕재로서의 각오를 다집니다. 백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혈육 마저 죽이리라 굳게 맹세합니다. 부여찬, 부여휘, 부여산, 부여몽을 비롯한 부여준의 아들들이 부여구의 앞을 가로 막을 것이 뻔하니 쓸쓸한 왕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묘시조온(廟始祚溫)에 그려진 나투 문양입니다. 원형은 첫 등장이군요. 태자, 어라하, 제1왕후는 변형된 나투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고 나옵니다. 고국원왕 머리에 장식된 삼족오와 비슷하죠.
부여준은 해씨들이 이끄는 초성리성의 군사들을 한성으로 부르고 착착 왕위 계승을 준비합니다. 진비가 왕의 약재를 직접 준비하는 책임을 맡고 있으니 부여구와 진씨 일가가 왕을 독살한 누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입니다. 둘째 아들 휘가 부여구의 편을 든다 해도 부여구는 목숨이 위험해지겠죠. 다음주부터는 요서로 쫓겨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못난 태자 부여찬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종 드라마 속 왕실 체계와 전각이 조선의 모습을 닮아 종종 시청할 때 거슬리기는 하지만 백제를 구현한 모습이 신기하기는 합니다. 조선의 대전을 이르는 동명전, 온조왕의 사당을 이르는 말인 묘시조온(廟始祚溫), 소서노 사당이 있는 곰제(熊祭) 별궁도 등장했는데요. 곰제 즉 고대 민족의 가장 큰 제사였던 곰에게 제사지내는 '곰제'란 표현을 씁니다. 고대와 조선시대의 모습을 적절히 섞어둔게 이색적이네요.
일본식이란 지적을 많이 받는 부분은 고대 백제를 구현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될 듯하더군요. 일본의 고대어와 일본의 문제는 백제의 언어이고 백제식 이두란 주장을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복식 역시 무덤의 그림이나 유물을 복원한 것이라지만 어쩔 수 없이 일본의 모습을 많이 닮았더군요. 근초고왕의 백제 정복은 아직 초반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류왕이 일찍 죽음을 맞은 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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