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근초고왕

근초고왕, 부여화는 왜 공주인가

Shain 2010. 11. 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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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KBS 근초고왕' 원작은 이문열의 '대륙의 한'이라고 알려져 있었고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적고 있지만 누군가가 '근초고대왕'이란 다른 소설이 훨씬 더 드라마와 가깝다고 한 글을 읽었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어떤 책을 사야할 지는 망설여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구입할 만한 책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 정보가 불분명한 듯하다.

드라마 '근초고왕'은 정보를 부족하게 제공하는 편이다. 부여화(김지수)와 부여구(감우성) 사이에 어릴 때 어떤 일이 있었으며 부여준(한진희)와 해소술(최명길)이 예전에 어떤 사이였는지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야 차츰 정보를 늘여가면 그만이지만 각종 명칭이나 설정에 대한 정보는 사서에 의한 것인지 작가의 설정인지 마땅히 알려줄 책임이 있지 않나 싶다.

사서상에 기록이 선명해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라면 차라리 시청자가 손품을 팔아 정보를 얻어내면 그만이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픽션은 알아낼 길이 없잖은가. '어라하(於羅瑕)'라는 호칭은 백제의 왕을 부르는 말임을 '욱리하(郁里河)'라는 지명은 백제의 수도가 있던 강임을 알 수 있지만 '대부인'이나 '궁주'가 어떤 위치인지는 작가의 설정일 뿐이다.




백제의 고이왕계와 온조왕계가 갈등했다는 사전 설명이 필요했던 것처럼 드라마 상에는 픽션과 사서(중국 사서라도) 간의 구분이 좀 필요한 듯하다. 극중 어라하를 위하는 걸로 등장하지만 왕권이 확립되지 않은 초기 백제에서 왕족같은 지위를 누렸다는 진씨, 해씨 일족에 대한 설명도 종종 필요해 보인다. 배경설명이 부족하니 아버지 해녕(김기복)이 고구려 군사와 목숨걸고 전투하는 장면에서도 위례궁주를 위해 못본척 하는 아들 해건(이지훈)의 충성은 어쩐지 과해 보인다.



부여화를 왜 공주라고 부르는가

공주(公主)는 보통 왕의 딸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조에는 왕의 정실에게서 나온 딸을 공주라고 하고 후궁에게서 낳은 딸을 옹주(翁主)라고 분명히 구분했지만 고려조나 조선 초기까지는 왕의 후궁이나 대군들의 정실부인 등에게도 옹주란 호칭을 사용했다고 한다. 고려조엔 왕의 후궁에게도 '공주'란 호칭을 사용한 경우가 있다고 하며 화랑세기는 왕의 후궁에게 '궁주'란 호칭을 썼지만 현대의 공주를 부를 때 궁주를 쓰기도 했단다.

부여화는 왕자일 수는 있어도 아직 '왕'이 된 적이 없는 위례궁주 부여준의 딸이다. 후에 부여준이 계왕에 등극한 후라면 모를까 아직은 현대 관점에서 공주가 아니다. 위례궁주가 왕에 버금가는 자리라 그녀를 공주라 부르는 건지 왕실 핏줄로 존대를 받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왕 만큼이나 존중받는 자리라면 태자 부여찬이 자리에 앉아 부여준에게 '하오체'를 사용하는 장면은 약간 어색해진다. 왕실 후손으로 부여화가 공주로 불린다면 그의 오빠 부여민 역시 왕자라 불려도(혹은 그에 상응하는 군 정도의 호칭) 무방하단 뜻이다.


제1왕후 해비와 제2왕후 진비, 극중 대부인 마마라고 불린다.



마찬가지로 약간 모호한게 '해비'나 '진비'의 명칭이다. 시청자에게는 그 둘을 제 1왕후와 제 2 왕후로 소개하고 있지만  왕을 어라하라고 부르는 마당에 왕비, 왕후라는 중국식 호칭은 부적합하다. 극중에서 자리에 없는 그들을 언급할 때는 진비나 해비로 부르지만 직접 보고 부를 때는 '대부인 마마'이라는 약간 아리송한 호칭을 쓴다. 중국 사서엔 백제가 왕후를 '어륙(於陸)'이라 불렀다고 한다.

어라하가 순수 백제어를 한자로 옮긴 말이듯 어륙이란 용어도 그런 방법으로 적혔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어느 것이 맞느냐가 아니라 어떤식으로 백제의 제도를 '설정'했느냐를 시청자들에게 알려줘야한다는 점이다. 왕후에 대한 정식 명칭은 대부인이 맞는지 왕실 핏줄은 모두 공주라 불렀는지 또 극중에 등장한 진비에 대한 '소숙당[각주:1](발음이 정확치않다)'이란 호칭은 어떻게 나온 것인지 말이다.



해비 해소술과 부여화의 복잡한 대화

극중 진승(안재모)의 아버지로 고국원왕(이종원)에게 잡혀간 진정(김효원)은 진씨 가문의 수장으로 온조왕계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으로 나온다. 근초고왕과 그의 아들 근구수왕은 '진씨' 일가의 여자들과 결혼을 했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있다. 근구수왕의 외삼촌이 극중 등장하고 있는 진고도(김형일) 장군이다. 근초고왕은 진정(眞淨)을 좌평 자리에 올리는데 왕후의 친척으로 어질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지만 근초고왕과 결혼한다고 설정된 부여화는 진씨 가문의 인물이 아니고 근초고왕의 제 2왕후로 설정된 위홍란(이세은)도 진씨 일문은 아니다. 아직은 진정의 딸이란 인물도 등장한 적이 없다. 하여튼 중요한 건 극중 비류왕이 부여화와 진승의 혼례를 주선하듯 진씨와 해씨들이 그런식으로 왕의 주변을 채우며 왕의 자손들이 혼사를 치루듯 국혼을 맺었다는 점이다.


해비 해소술과 부여화의 은밀한 대화



해소술(최명길)의 여동생이 현 부여준의 아내인 소해비일 것으로 짐작되고 오빠가 해녕(김기복)인데 소개된 설명에 따르면 해소술은 왕자 부여준과 혼인하는가 했지만 정략적으로 부구태 즉 비류왕에게 시집갔다고 한다. 비류왕은 첫사랑 진사하(김도연)를 제 2왕후로 삼았고 제 1왕후인 해소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다. 해씨 가문의 해녕은 위례궁주에게 충성하는 인물로 해건과 함께 부여준에게 충성하고 있다.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셈이다.

부여화가 해소술에게 부여구(감우성)와 진씨 일문이 짜고 말갈과 연합해 비류왕을 죽이려 했을거라 귀띔 한다. 해소술은 개인적으로는 아마 부여화의 이모일 것이고 부여준과 약간의 유대가 있다. 라이벌 진씨 일문을 무력화시키고 왕자 부여구를 제거하고 싶은게 해소술이지만 쉽게 그 '미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의 아들 태자 부여찬은 해씨의 자손이기도 하지만 비류왕의 장자로 왕의 충신을 공격하려면 신중해야한다.



백제의 기록을 드라마로 살리려면

해소술은 분명 해씨 일가이지만 아들 부여찬은 해씨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해녕을 비롯한 해건이 부여준을 밀고 있기 때문이다. 비류왕은 해씨 일가를 싫어했고 부여구의 핏줄인 진정과 진씨 가문은 부여찬에게 우호적일 까닭이 없다. 그러니 쉽게 진씨를 치라고도 하지 못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씨들이 아들을 공격할까 싶어 전전긍긍하게 된다. 진씨와 해씨의 갈등은 사서에 의해 짐작이 가능한 내용이라 한다.

백제에 대해 기록한 사서는 중국 사서와 삼국사기 등 모두 한자로 기록된 게 전부이다. 때로는 일본서기를 참고하기도 한다. 근초고왕(近肖古王)의 '근'이란 글자가 가까운 내지는 닮았단 뜻이니 초고왕을 닮았다거나 초고왕에게 가깝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백제어나 고대어의 다른 글자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드라마의 반 이상은 학설이나 추측에 근거한 설정이다.


고구려의 고국원왕. 고구려는 장자 상속이 제법 일찍 정착된 편이라고 한다.



저 시기의 초기 국가들이 왕정을 확립하지 못해 왕권 강화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주지의 사실인데 장자 상속도 단단히 정착시키지 못한 나라에서 자신도 왕이 될 수 있는 신하가 '왜 충성을 바치는가' 하는 문제도 꼼꼼히 설명되어야 할 문제이다. 각 가문의 수장이 될 해건과 진승이 강력한 왕을 꿈꾸는 이유는 과연 무얼까.

근초고왕의 시청율이 10%대로 지난주 보다는 약간 올랐다고 하는데 MBC 방송이 아시안 게임으로 인해 드라마 방영을 모두 뒤로 미룬 덕이 아닌가 싶다. 시청자들은 사극을 조선시대 기준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해소술을 비롯한 백제 왕실, 고구려 왕실의 갈등 구조는 첨예하게 잘 구성했지만 그들의 컨셉이 많이 낯설고 왜 서로 갈등하는 지 알 길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드라마의 설정을 제작진이 나서서 설명하는 방법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1. 부여화가 진사하를 '소숙당 마마'라 부르는 걸로 보아 조선조의 '양화당'처럼 후궁이 기거하는 궁을 지칭하는 듯하다. 제작진이 정확한 발음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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