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SBS 초혼, 최초 남사당패 드라마 아니다

Shain 2010. 11. 22.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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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SBS에서 20주년 특집극으로 2부작 단막극 '초혼'을 방영했습니다. 남사당패 이야기로 정은별과 박정철이 주연이라는데 드라마 최초로 남사당패의 애환을 그리게 될 거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최초라고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남사당패를 다룬 드라마는 이것이 국내 최초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KBS에서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이은성 작가의 극본을 바탕으로 1989년 1월 4일부터 3일 동안 방영된 '두 석양'이란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 각본으로 그해 백상예술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한 명작인데 신년특집 드라마로 당시로서는 몹시 생소했던 남사당패의 애환 그리고 그들이 늙어 갈등하는 예술가로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남사당패' 이야기로 제일 유명한 건 누가 뭐래도 공길과 장생의 '왕의 남자(2006)'입니다. 천대받고 다 떨어진 옷에 주는 밥 얻어먹고 각종 공연을 펼치는 그들의 이야기는 나름 대중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원래 예인들 중에서도 남사당패는 가장 처지가 어려웠고 대개는 '왕의 남자'에서 처럼 여자를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SBS 창사 20주년 특별 드라마 '초혼'




1989년 KBS 신년특집극 '두 석양'

이 드라마 이전엔 남사당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90년대엔 그나마 '마당놀이'를 비롯한 사물놀이패들이 활약했지만 그 이전엔 정보가 전무했습니다. '농악'이라는 용어가 전부였던 시절에 남사당패의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당시 TV에서 그런 내용을 다룬 게 파격이라면 파격이었죠. 드라마는 남사당패를 묘사하는 동시에 예인으로서의 자세를 묘사해 논란을 피해간 듯 합니다.

남자만으로 이루어진 남사당패에 어린 여자아이(강영아)가 입단합니다. 다음 꼭두쇠가 라이벌 소리꾼 둘(김영철, 정동환)은 이 여자아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여동생처럼 보살펴주게 되는데 어떤 마을에서 남색을 팔다 유일한 여자인 여주인공을 요구하자 꼭두쇠는 남사당패 여자의 운명이라며 허락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항의하던 정동환은 여자를 데리고 남사당패를 떠납니다.


 
후에 세 사람이 모두 늙어 그녀와 부부로 살던 정동환은 '선생님' 소리를 듣는 전통춤 보유자로 김영철은 남사당패의 맥을 잇다 실패해 은둔하며 살아오다 마주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삶은 전통을 고수했지만 궁색했고 한사람의 삶은 현대와 조화를 이뤘지만 무언가 부족했죠. 화장을 떡칠한 정동환을 보고 김영철은 이게 무어냐 큰소리치고 정동환은 남색이나 팔던 그 집단 보단 낫지 않냐고 합니다.

시청자들은 남사당패의 이야기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지만, 드라마는 '예인'들에게 전통 고수와 전통의 변형 문제를 질문으로 던지며 마무리합니다. 공연을 펼치는 끼가 넘치는 김영철씨와 기질적으로 예민해 보이는 정동환씨 그리고 다양한 판소리를 비롯한 재능을 보여준 조연급 연기자(김운하, 추석양, 안병경, 강태기, 박치룡, 박용수)들이 상당히 신기했던 드라마입니다. 이후 1990년엔 고두심 주연의 'MBC 춤추는 가얏고'가 예인들의 극적인 삶을 묘사하게 됩니다.



여사당패의 삶을 강조한 SBS 초혼

1927년 이능화의 책,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엔 여사당패의 삶을 짐작 가능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주로 기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지만 '여사당 자탄가'란 부분에서 여사당의 '색을 파는' 인생을 묘사합니다. 'SBS 초혼'은 꼭두쇠와 여사당의 딸로 태어나 자신도 여사당의 삶을 살게 되는 여주인공 미봉(정은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에게나 웃음을 파는 여사당의 인생이 징글징글한 엄마는 죽어도 딸에게는 그런 인생을 물려주지 않으려 하지만 미봉은 타고난 끼로 여사당의 삶을 살게 됩니다.





같은 패거리의 고아 창수(박정철)과의 사랑하는 사이가 됐지만 양반 승재(최령)의 욕심으로 순탄하게 사랑을 이루지도 못하고 여사당으로서의 인생도 방해를 받습니다. 저승패 황노인은 간만에 TV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전무송씨이고 꺽두쇠 학진 역할은 안정훈씨입니다. '두 석양'이 밑바닥 인생을 사는 곤궁함과 비참함이 한눈에 드러났다면 이 드라마는 여자로서 사는 삶의 굴곡과 스토리가 더 눈에 들어옵니다.

남사당패의 맥이 황노인에게서 창수에게 그리고 또다른 삶에게 이어지는 모습이나 남사당패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꼭두쇠 학진, 꽹과리를 비롯한 풍물, 접시돌리기 버나, 땅재주인 살판, 줄타기인 어름, 탈놀이 덧뵈기, 꼭두각시놀이 덜미 등을 재현하는 장면도 볼만합니다. 남주인공이 풍물을 하고 여주인공이 줄타기를 연습하는 장면은 상당히 힘들었을 듯하더군요.



조선 후기 특별한 예인집단 남사당패

얼마전 여사당패였던 남사당 바우덕이 드라마 제작을 포기했단 이야기가 돌아 안타까웠는데 여사당의 이야기는 초혼과 중복되지 않을까 합니다. 남사당이란 집단의 특수성 때문에 그들의 기록은 확실치 않습니다. 백정 보다 광대 보다 못한 신분이었다는 점은 확실한데 패의 우두머리인 꼭두쇠를 중심으로 전국을 떠돌며 공연을 펼치고 곰뱅이, 뜬쇠, 가열, 삐리 등의 서열이 있었습니다.

공연을 펼치는 집단은 주로 독신 남자로 이루어졌지만 흔치 않게 여자가 포함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KBS 두 석양'과 'SBS 초혼'은 그 흔치 않은 여사당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갑니다. 희귀 케이스가 이야기 거리가 된 셈인데 굳이 여성을 등장시켜야하는 이유, 또 지금까지 남사당패 이야기를 컨텐츠로 만들기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남색'을 한다는 공공연한 비밀 때문이었을 겁니다.




수동모와 암동모(삐리)로 나눠 마을에 공연을 펼치는 동안 색을 팝니다. 'KBS 추노'에서 등장한 남사당패와 그 일원이었던 설화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확실하실 겁니다. 그 드라마에서는 어린 여자아이를 잡아두고 여색을 팔았지만 대개는 멤버 중에 남성이 훨씬 많은 관계로 남색을 파는 경우가 흔했다는 이야기지요.

굳이 그런 문화를 천박하다 밝히기 싫다를 논하기 전에 조선 후기 서민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는 지 충분히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가난해서 정착하지 못했고 배곯는 고아들을 멤버로 받아들였습니다. 마을에 허락받아 남사당패가 들어오는 날은 온 마을이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공연 내용 중에 부유층이나 양반을 비판하는 내용도 많았지만 인심좋은 후원자를 만나면 제법 오래 공연을 펼칠 수도 있었습니다. 한을 웃음으로 승화시켜주고 재주부리며 풀어내는 존재들이었죠.

통속적이라 많은 분들이 우습게 보는 대중 문화는 양반네는 끼어들 수 없는 '저속함' 자체가 저항이고 카타르시스인 그런 단면들이 있죠. 잘못된 문화는 그 사회의 어두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니 절대 그냥 출발하지 않습니다. 또 팍팍한 서민들 삶에 유일한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삶의 활력소 역할을 했던 남사당패 공연, 그 존재 의의가 저급하다, 천하다 그런 말로 평가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니겠죠.


* 특집 드라마라 모르는 분들도 많던데 기회되시면 꼭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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