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근초고왕

근초고왕, 예왕지인과 돌아오다

Shain 2011. 1. 3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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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첫부분에 항상 이 드라마 '근초고왕'의 등장인물 반수 이상(아니 어쩌면 삼분의 이 이상)이 가상 인물이며 사서에 기록된 인물이라도 그들의 행적은 모두 창작이라는 점을 꼭 밝혀야할 의무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드라마 방영시간엔 실제 사서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검색해 오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근초고왕과 고국원왕의 기록은 한글로 번역해도 네다섯 문단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계시는 위비랑(정웅인)의 책사 아지카이(이인)가 언론에서 밝힌대로 '일본서기'에 등장한 아직기이지만, 근초고왕 시기의 요서, 일본 정복은 항상 논란이 되는 부분입니다. 드라마는 사서에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절묘하게 짜마춰진 극을 꾸몄기에 근초고왕의 업적과 역사적 의의 등, '실제 역사'를 돌아보는 건 시청하시는 분들의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라 봅니다.


이번주는 부여구(감우성)이 고흥(안석환)에게 예왕지인(穢王之印)을 받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받아 부여 재건을 꿈꾸던 단범회 수장 위비랑을 자기 수하로 만든 내용입니다. 아지카이는 해건(이지훈)과 협력해 다시 한번 부여구 암살을 꿈꾸지만 위비랑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부여화(김지수)는 고국원왕(이종원)의 불같은 분노를 몸소 감당하며 왕후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평생 원하고 사랑했던 부여화의 목숨과 맞바꾼 예왕지인[각주:1]은 요서에서 떠돌아야 했던 부여구의 2년 세월을 단축시키고 백제로 돌아갈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위비랑과 아지카이 등 부여유민의 힘까지 얻은 부여구에게는 계왕(한진희)을 물리치고 어라하의 위를 탈환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요서 소식을 듣게 된 부여찬(이종수)와 해소술(최명길)은 계왕과 손을 잡고 부여구를 물리칠 계획을 세웁니다.



근초고왕은 이제 예맥족의 수장?

고흥은 중국에서 귀화한 인물이 아닐까 짐작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국사책에도 잘 알려진대로 백제의 '사기'를 편찬한 인물입니다. 그를 껍데기만 남은 부여국의 천재 문인이자 국상으로 설정한 것은 일단 상당히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학문과 지식이 풍부한 고흥의 도움으로 근초고왕의 문화적 업적은 더욱 위대해질 것이고 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글 깨나 읽은 아지카이가 보탬이 될 것입니다.

황사가 불어올 것이란 천기를 알려주며 조나라군과의 공성전에 도움을 주었던 고흥은 예왕지인이란 부여 국새를 근초고왕에게 주는 것으로 주인공의 영웅성을 부각시킵니다. 부여 동명왕의 후손들이라는 백제. 그중에서도 백제의 왕자라는 자랑스러운 뿌리 만으로 부족해 부여, 고구려를 비롯한 예맥족 전체를 호령할 수 있는 상징적 인물이란 이 설정은 고대 신화 속 '신물'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웅에 대한 이런 사극의 진부한 설정은 일종의 '틀'을 이루어 이제는 깨트릴 수 없는 고정관념인 듯 하지만 현대극에서 설득력있는 연기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배우 감우성에게는 많이 어울리지 않는 컨셉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인공의 영웅성을 강조하기 위해 남들 보다 헤어나오기 힘든 고난을 설정하고 운명적인 왕위 계승을 부각하기 위해 상징을 자주 등장시키는 건 사극이 판타지처럼 보이기 알맞죠.

근초고왕의 업적은 요서와 일본을 가리지 않는다 합니다. 그렇지만 고국원왕 역시 또다른 영웅으로 예맥족의 수장이 될 자격이 충분한 인물입니다. 그는 연나라의 공격에 맞서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성공할 수 있는 고구려의 기반을 닦아놓은 인물이랄 수 있거든요. 무엇 보다 그 시대의 백성들이 진정 부여 동명왕의 이름 하에 모이길 원했을까 생각해 보면 회의적인 기분 마저 듭니다.

주변사람들이 말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보다 늘 되묻고 마음 아프지만 담담하게 부여화를 떠나보내고 위홍란(이세은)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배신하고 죽이려 했던 위비랑과 아지카이도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의 성정은 지혜롭고 담대하지만 현실적입니다. 그런 그에게 과도한 태몽이나 운명성을 강조하는 건 드라마에 별로 보탬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근초고왕의 귀환과 단범회

단범회 인물들은 해건과 부여산(김태훈) 등을 만나며 한때 부여구를 제거하려 했지만 두고(정흥채)는 복구검(한정수) 등과 친하게 지내며 근초고왕의 사람됨을 믿게 됩니다. 해건과 부여산은 앞으로 단범회 사람들이 만나게 될 백제 귀족들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죠. 꿋꿋이 부여구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부여찬과 계왕 부여준은 제거하는 일은 생각 만큼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신생 세력인 위비랑 무리를 끌고 들어온 근초고왕은 진씨와 해씨, 신생 세력을 통합해 새로운 백제를 꾸려야하니 모든 일이 요서 출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갈리 없습니다. 부여의 미래를 보고 싶었던 단범회 세력이 결코 만족할 리도 없거니와 후계자 선정을 두고 다툼을 벌이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걸 견뎌야하는 위홍란의 고초는 둘째치고 진씨 가문의 진고도(김형일)가 비류왕(윤승원)에게 읍소했듯 죽음까지 각오해야겠죠.


부여 동명왕의 후손들이 힘을 합쳤다는 '동명단사'의 취지가 백제 안에서 거듭나려면 어떤식의 합의가 있어야 할까요. 백제의 근간을 이루게 될 진씨, 해씨, 그리고 위비랑 세력을 만족시킬 혼인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고흥이 위비랑을 보며 인용한 군자무적[각주:2]의 뜻이 무엇인지 근초고왕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먼땅에서 넘어온 단범회로서는 왕의 외척 진씨들이 그랬듯 그 점이 가장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한편 미추홀로 흑강공 사훌(서인석)을 귀향 보낸 백제 계왕은 등극 2년 후 AD346년에 사망합니다. 그해가 근초고왕이 왕위에 오른 해이기도 합니다. 부여화가 시비로 버티는 동안 백제의 왕위 계승이 종결되는 것입니다. 삼국사기에 근초고왕이 둘째 왕자로 기록되어 있으니 최소한 부여찬과 부여산은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지 않을까 싶네요. AD346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다음회, 요서에서 돌아오는 근초고왕의 변신을 기대해 봅니다.


  1. 예왕지인(減王之印) -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된 우리 나라 최초의 국새로 실제 중국과의 외교 문서 등에 쓰였을 것이라 합니다. 예맥족에 대한 설정은 극중 창작으로 보입니다. [본문으로]
  2. 공자의 논어에 적힌 말로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군자는 세상 일에 관하여서는 가까이 할 것도 없고 멀리 할 것도 없다. 오로지 의로움에 따를 뿐이다)' 드라마 중 고흥은 군자무적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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