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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드라마는 19+ 등급입니다 )
미드 '셰임리스(Shameless)'를 보면 이런 상황도 오락물이 될 수 있구나 싶어 의아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친구 아버지의 주사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평소에도 친절하거나 좋은분은 아니셨지만 술만 먹으면 더 거칠어져 힘좋으신 동네 어른들도 그분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같이 술드시던 분들이나 동네분들이 친구 아버지를 간신히 친구네 집 마당에 끌어다 두면 체구가 작은 친구 어머니는 혀만 끌끌 차고 마당을 내다 봅니다.
양말 끝부분 꿰기, 봉투입구 붙이기, 마늘까기, 곰인형 눈붙이기 등 동네 아줌마들에게 뿌려지는 각종 잡다한 부업거리는 안해본 게 없는 그집 어머니는 바쁘게 손을 움직여 1원이라도 벌어야지 술에 취해 소란 떠는 남편을 돌볼 틈이 없습니다. 웬 소란인가 싶어 옆집에서 구경오긴 해도 누구 하나 그 상황을 도와줄 수 없죠. 친구와 어머니는 셋방살이하는 주인집 아저씨가 오기전에 아버지가 잠들기만 바라는 겁니다.
결국 그 친구는 가난한 집안 형편과 아버지의 반강요 덕택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기숙사가 있는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평소에도 부지런한 아이였기에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했겠지만 그 당시 청소년들의 학업이나 미래를 보장해주는 직장은 드물었으니 다니기 수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아이의 월급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술값이 되거나 형제들의 학비, 어머니의 생활비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경제력과 사회적인 힘을 잃은 가장들의 무기력함은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지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에 취해 아무곳이나 돌아다니는 것도 아무곳에서나 잠들거나 노숙하는 것도 술에 취해 사라져 가족들을 애태우는 것도 그 시절에 종종 보거나 들을 수 있었던 '가난'한 모습의 일부입니다. 친구에게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는 시절이기도 하죠.
가난 극복이 주를 이루는 한국 드라마
실직과 가난으로 무력해진 이 시대의 아버지, 한국 드라마 안에서 그들의 모습은 어땠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한국 전쟁 이후 부모들의 도움 없이 맨몸으로 가난을 맞아야 했던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간난이(1983)'는 험난한 참상을 극복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렸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가난을 이겨나가는 이야기인 '육남매(1998)'에서도 아버지는 부재중이죠.
그것도 아니면 권정생 선생 원작의 '몽실언니(1990)'에서처럼 꼭 필요한 순간에 여기저기를 방랑하는, 아이들을 보살피지 아버지들도 등장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정신 못차리며 방황하다가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개과천선해 책임을 면합니다. 한국 TV 안의 아버지들은 보통 '셰임리스'에서처럼 난봉꾼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유난히 한국 드라마가 건전성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부권이 TV 안에서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근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2010)'의 아버지들은 평생 바람만 피우다 늙어 본처에게 돌아와 구박받는 시아버지(최정훈)의 모습이 그려지는가 하면 극중 지혜(우희진)의 친아버지는 이중 결혼으로 지혜와 지혜엄마 민재(김해숙)을 괴롭힌 인물입니다. 김수현 작가는 '사랑과 야망(1986)'에서 술주정 하는 아버지가 싫어 가출하는 미자(차화연)의 모습을 그리기도 합니다.
일부는 김수현의 그런 성향을 두고 '망가진 아버지'를 표현하는 작가라며 비난하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드라마에서 'Shameless'의 프랭크 갤러거같은 망나니 아버지를 출연시키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연 김수현 작가의 그런 표현이 지나친 걸까요? 기사를 뒤져 보면 술주정하는 아버지의 폭행과 횡포 때문에 가정 내 비극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수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드라마들은 그런 아버지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왜 '주사 부리고 아무것도 안하는' 아버지가 있는지 따져보길 꺼려한 것입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가난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런 아버지를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이며(혹은 미워하고 탈선하더라도 개과천선하고) 어딜 가든 착실하고 열심히 삶을 꾸려갑니다. 드라마는 모든 사회 문제들을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떠맡기고 안심하는 구조로 진행됩니다.
가난해도 넘쳐나는 욕구는 어쩌나
미국 영화도 '부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는 무능하다는 이유로 양육권을 박탈당한 아버지가 여장을 해서라도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는 눈물겨운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모성애 보다 부성애가 훨씬 강한 법이지만 'Shameless'의 아버지 프랭크는 그런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술마시고 아무곳에서나 쓰러져 자고 다투고 경찰이 끌고 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신기하게 가난한데 프랭크의 자식들은 여섯이나 됩니다. 욕구만은 왕성해 피오나의 걱정거리만 늘여놓았나 봅니다. 한참 연애할 나이의 장녀 피오나는 아직 걸음도 못 걷는 동생 리암을 데리고 닥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교다닐 나이의 아이들은 뭔가 돈되는 일을 하거나 먹고 사는 일을 하기에 바쁩니다. 핸드폰은 커녕 전화 조차 없는 집에서 살고 세탁기는 고장나서 덜덜거려 누군가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일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클럽에 가서 파티를 즐기고 싶고 또래의 남자를 만나 데이트도 해보고 싶은데 간신히 사귄 남자친구는 피오나의 허덕이는 일상을 도와주고 거드는 일을 합니다. 두 사람 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은 욕구는 어렵사리 채워지곤 하죠. 그런 상황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한들 현실에 보탬이 되지 않을 건 뻔합니다.
가끔은 자신의 젊은 열기를 발산하고 싶은 큰 딸, 행복 추구권을 박탈당해 위로가 필요한 피오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내주지 못하는 이상한 아빠, 골치덩어리 프랭크이지만 아이들은 그런 아빠가 없어지면 온 도시를 다 뒤져서라도 찾아내 거실에 눕혀놔야 직성이 풀립니다. 가난해도 사람사는 곳의 욕망이란 그럭저럭 다 비슷한 법이라 부끄러워할 틈도 없이 그들은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아무리 부유한 나라라도 '가난'을 피할 수 없는 곳은 없습니다. 영국 원작의 이 드라마 역시 대규모 실직이 있었던 시기 이후 급증한 '실업자 아빠'를 주제로 만든 드라마였습니다. SHOWTIME에서 리메이크된 'Shameless'는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하더군요. 미국도 부권 상실에 대해 우려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이런식의 설정이 먹혀들까요.
미국 역시 '실업자'가 늘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는 미국인 특유의 대처 방식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무능해서 부권을 상실했다고 아이들 때문에 노력하던 시대는 지나고 이젠 널부러진 모습입니다. 피오나에게 아빠는 그냥 있기만 해도 다행인 존재일까요. 내 인생에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아버지, 술주정하는 아버지를 언제까지 미워하고 슬퍼할 수 만은 없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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