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짝패, 회초리질처럼 경쾌한 새로운 출발

Shain 2011. 3. 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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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초반부를 즐겁게 장식하던 '짝패'의 아역들은 퇴장하고 어제 방영분부터 성인연기자들의 출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한판 즐겁게 놀다 사라진 마당놀이패들처럼 아역들이 깊은 인상을 남겼기에 성인연기자들의 부조화를 걱정하신 분들이 많은 듯합니다. 특히 배우 천정명이나 한지혜는 사극이 처음인데다 어색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 우려섞인 목소리가 종종 들려옵니다.

물론 그 두 사람이 배우로서 아직 연륜이 더 필요한 사람들일 수 있겠지만 저는 이 드라마가 '민중사극'이라 불리는 까닭을 더욱 주목해야할 듯 합니다. 서민 드라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김운경 작가가 배우의 연기력을 몰라 볼 리도 없고 주연급 배우를 섭외하기 힘들어 아무나 골랐다는 생각은 더더욱 들지 않습니다. 조선 사회를 이루고 있던 다양한 색채를 띤 사람들이 출연하는 내용이니 천둥(천정명)이나 귀동(이상윤)이나 '그들' 중 일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짝패'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모두다 선한 사람들이거나 성인군자인 것은 아닙니다. 의로운 선비였던 성초시(강신일) 조차 신분제 사회에 대한 구시대적인 생각을 지닌 가난한 양반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천둥이 존경하던 강포수(권오중)도 약간의 시대적 한계를 지닌 인물입니다. 어색하면 어색한대로 낯설면 낯선대로 서민들이 즐겨먹던 고급스럽지 않은, 조금은 거친 음식처럼 각기 다양한 색을 띠며 어우러지는게 '사람사는 이야기'들의 특징입니다.

거지였던 천둥은 이제 알아주는 행수가 되어 중국을 오가며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고 동녀(한지혜)는 그 거상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갖바치 집의 달이(서현진)도 여전히 부유한 갖신 장사를 하고 있고 귀동(이상윤)은 포교가 되어 일하고 있긴 하지만 술취해서 우포청 종사관의 상투를 잡아뜯다 우포청에서 쫓겨나고 좌포청으로 전직하는 등 여전히 어린 시절 개구쟁이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명품 조연들

마을에서 민란이 일어난지 10년 후 사람들의 처지는 조금씩 바뀌게 됩니다. 김진사는 호조판서가 되었고 성초시를 죽였던 현감(김명수)은 귀양살이 후 거지꼴이 되어 귀동에게 빌붙는 상황이 됐습니다. 아들을 양반가의 자제와 바꿔치기한 막순(윤유선)은 술독에 빠져 바람이나 피우는 막사는 인생이 되고 거지패 장꼭지(이문식)는 작은년(안연홍), 도갑(임현성)과 함께 여전히 도둑질을 하다 아웅다웅 다투곤 합니다.

막순의 술주정과 바람기에 속이 문드러지는 쇠돌(정인기)은 방물장수인 큰년(서이숙)과 함께 돈을 벌며 막순의 뒷바라지를 합니다. 재미있게도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찬모는 김진사네 집에서 부엌일을 돌보던 업득네(라미란)입니다. 큰년에게 거지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던 장면이 재미있더니 이젠 함께 살며 일을 거들고 있네요. 현감의 처지 만큼이나 역전된 인생입니다.

포도청의 포도대장(심양홍), 공포교(공형진) 등이 귀동의 상관으로 함께 일하고 있고 천둥과 함께 거지패에서 구걸하던 진득(임성규)은 왈자패의 두목이 되어 거리를 점령했습니다. 나머지 거지패들의 운명은 알 수 없지만 곧 등장해 드라마의 잔재미를 주는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일 방영분에서는 정찬이 조선달 역으로 출연해 막순과 함께할 것 같더군요. 큰년과 쇠돌은 그대로 연상연하 커플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양홍, 임현식을 비롯한 몇몇 출연진들은 예전 김운경 작가의 작품에 출연했던 분들인데 공통적으로 조연급이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약방에 감초, 드라마에 꼭 필요한 이미지를 가진 역할들이란 점입니다. 특히 정찬은 '황금사과'에 이어 이번에 세번째 작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막집 막순과 어울리는 반건달 역인 듯한데 당시 흔하디 흔했던 돈주고 산 양반이거나 천민 대접을 받던 몰락한 양반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진사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천둥을 금옥(이설아)의 짝이 되게 하려 역관 시험을 보라 권하고 족보를 사서 사위로 들이면 된다 회유하는 모습도 당시의 신분제가 무너지던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양반이니 노비니 천민이니 하는 문제가 여전히 족쇄가 되고 있음에도 시대는 자꾸만 변합니다. 귀동이나 김진사는 기존의 제도에서 희망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이라면 천둥과 천민들은 세상을 바꿔 희망을 찾으려 하는 백성들일 것입니다.

이 드라마가 '민중사극'이란 이름으로 분류되려면 주인공 보다 중요한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하는 사람들, 바로 이 조연들의 역량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양반네에 빌붙기도 하고 하루하루 뜯어먹히며 살아도 불평할 줄 모르고 못되게 도둑질을 하거나 술마시고 주정을 해도 밉지 않은 그네들. 이 세상을 가득 채운 건 돈을 쥔 김진사네가 아니라 평범한 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래(我來)적'의 비밀과 천둥

비단 두 필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는 왈자패에게 경쾌하고 부드럽게 회초리를 날리는 천둥은 날렵하고 강한 인물이지만 단호하면서도 넉넉하게 상대를 다룰 줄 아는 대범한 면모를 보입니다. 양반네 틈에서 허송세월하는 듯한 귀동은 여전히 따뜻하고 인정이 넘치지만 어딘지 모르게 방황하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더러운 집안'이라며 자신의 가문을 원망스레 바라보던 귀동은 포도청에서 자기가 할 일을 찾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초시의 죽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생원을 죽이고 그가 부정하게 모았던 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는 '아래적'은 백성들의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김진사의 말에 의하면 권포수는 죽었다는데 과연 이 아래적의 정체는 무엇이며 천둥이나 동녀, 달이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비밀에 쌓인 아래적의 사람들은 분명 등장인물들 속에 섞여 있거나 모른 척 살고 있는 그들 전부인지도 모릅니다.


허균이 만든 작품 속 의적, 홍길동이란 게 그렇습니다. 허균이 부르짖던 호민론의 '호민'처럼 원망하는 백성을 들고 일어나게 만드는 앞선 사람이자 일깨워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로운 일을 하는 '도적'으로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도둑질을 통해 정의를 실천하는 인물입니다. 제도를 옹호하는 경찰, 즉 조선시대의 포도청과는 척을 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민란을 일으킨 백성들을 향해 화승총을 들었던 현청의 군졸들은 김진사처럼 현재의 제도 속에서 갈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명을 받습니다. 세도정치에 휩쓸리지 않고 올바르게 행동하던 양반들도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시대가 더욱 어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은 대원군의 쇄국 정책의 한계와도 맞물린다고 할 수 있겠죠. 급작스런 세상의 변화를 감당할 수도 없고 개혁하지 않자니 같이 죽을 것 같은, 그런 불안한 심리가 의적들을 맞설 수는 없을 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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