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짝패, 다음 생에 온새미로 만나지려나

Shain 2011. 3. 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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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존귀한 임금이었지 허수아비와 다름없었던 '강화도령 철종'은 타고난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왕으로서 제 구실을 하기 힘든 왕이었습니다. 철종의 할아버지는 은언군, 사도세자의 서자로 왕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고 은언군과 그의 후손들은 왕족이란 이유로 역모만 있다 하면 연루되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은언군 역시 정순왕후 수렴청정 시기(순조)에 종교박해로 사사당합니다.

철종 임금을 다룬 드라마는 제 기억에 단 한편 밖에 없습니다. 바로 'MBC 조선왕조오백년 대원군' 편으로 지게들고 나무하던 더벅머리 총각(최수종)은 하루아침에 왕이 되어 궁에 들어갔고, 철종은 강화도에서 같이 살던 첫사랑 양순이를 그리워했지만 평생 못 만나고 죽고 말았습니다. 뜻을 펼치기는 커녕 수렴청정하는 대비의 뜻대로 왕실이 움직이고 철종은 조정의 눈치보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왕실 법도에 따르자면 가족 모두가 죄인 신분인데다 항렬을 따지면 헌종의 숙부뻘인 철종이 왕위에 오른 건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고 합니다. 숙부가 조카의 제사를 모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선대왕인 헌종의 제사를 모시지 않았다고 하죠. 이런 왕위계승이 가능했던 건 왕실의 외척, 당시의 세도가인 안동 김씨들의 욕심 때문입니다. 꼭두각시 왕에 수탈당하는 국민들은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일어난 참극이었습니다.

그런 철종을 향해 아침마다 절을 올리던 성초시(강신일)가 민란의 수괴란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를 죽인 건 관리로서의 양심을 버린 현감(김명수)입니다. 현감의 자형인 김진사(최종환) 조차 그의 처사에 동학이 일어나고 장길산이 일어나고, 전국적으로 민란이 들끓었던 그때, 양반네들의 말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 백성들이 오죽 갑갑하면 관아를 습격하러 뛰어들었을까요.



탐관오리를 향한 치명적인 한발

성초시와 유선달의 죽음으로 아이들의 인생에도 큰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천둥(노영학)은 이 모든 것이 현감의 짓이란 걸 알고 현감의 목숨을 끊으려 맘먹습니다. 생전 남을 해꼬지하거나 해칠 생각을 해본 적 없는 아이가 칼을 쥐고 남의 생목숨을 끊으려 맘먹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천둥은 붓들아범(임대호)의 목숨을 빼앗고 황노인(임현식)을 가두고 없던 세금까지 만들어 징수하며 사람들의 삶을 옥죄는 그를 죽이기로 합니다.

천둥은 어려서부터 글을 읽는 재미를 알았지만 그의 학문을 거두어준 사람은 오로지 성초시 뿐이었습니다. 쇠돌(정인기)과 큰년(서이숙) 말고는 달리 의지할 곳도 없었고 어머니 막순(윤유선)은 자신을 아는체 하거나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않았는데 유일하게 사람처럼 자신을 대접해주던 '어른'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강포수(권오중) 마저 자리를 비운 마당에 현감을 직접 처분할 사람은 자신 뿐입니다.

무릇 사람들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던 동녀(진세연)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이생원의 음모로 기생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생전 처음 받아보는 수모를 겪어야하는 동녀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황노인이 옥에 갇혀 고아 아닌 고아가 되버린 달이(이선영)는 뒤숭숭한 마을 분위기와 심상치 않은 천둥의 움직임을 보고 마상총을 들어 직접 현감을 처리합니다.

아무도 예상못한 달이의 총격, 의심받지 않고 현장을 탈출한 달이


천둥은 책을 좋아하고 이치를 좋아하는 이상가에 불과합니다. 귀동(최우식)은 무관이 되겠다며 불의에 화를 내지만 기껏 양반집에서 고생모르고 자란 천방지축입니다. 동녀는 착하고 인정많지만 타고난 신분이 천명인줄 알고 한번도 천한 이들의 삶을 생각해 본 적 없는 양반집 규수일 뿐입니다. 천둥이 후에 선비의 자질을 갖춘 의적으로 귀동이 포도대장으로 동이가 예술인의 삶을 사는 기생으로 거듭난다 해도 아직까진 달이의 자질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달이는 담대하게 양반집 자제인 귀동에게 총을 겨누어 기선 제압을 하는 배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웬만한 남자아이 못지 않은 배포와 사격 실력이 어쩐지 귀동을 주눅들게 합니다. 배운 것도 짧고 천한 신분이지만 누구 보다 갖신을 다루는 재주는 뛰어나 꽃신 만드는 일로도 굶어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천둥이 목숨을 걸고 현감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고 마상총을 들어 현감의 목을 날릴 만큼 영리하고 의리있는 아이기도 합니다.

네 아이들 중에 가장 먼저 자수성가할 인물이 있다면 바로 달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철종이 사망하고 대원군과 고종이 등극하면 신문물을 취해 재물을 끌어모을 거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대화 시기의 '신여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인생을 살게될 거란 뜻이죠. 현감의 목덜미를 관통한 달이의 시원한 한방, 그 총성이 용마골의 울음이 그치고 민란이 일어나는 시발점이 된 듯 합니다.



녹두장군 전봉준과 새야새야

구전되어 온 것 중 녹두 장군 전봉준을 빗댄 노래라 해서 듣기만 해도 마음아픈 노래가 있습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라는 구슬픈 가사는 별명이 녹두 장군인 전봉준의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라고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맞아죽으나 굶어죽으나 똑같으니 민란이라도 일으켜 살아보려 했건만 백성들의 눈물을 대변하던 전봉준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처형당합니다.

아이들의 소중한 사람들이 죽고, 고을 사람들이 마음 아픈 이별을 하는 그 장면은 녹두장군의 그 노래를 떠올리게 합니다. 드라마 '짝패'의 OST 가사는 하나 둘 어른들을 잃는 네 아이들의 슬픔,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서글픔을 생각하면 허탈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비연'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소프라노와 창이 함께 섞인 곡으로 드라마 시작 때부터 화제를 모은 OST입니다.

마지막 촬영을 마친 아역 4인방 최우식, 이선영, 진세연, 노영학(출처 : MBC 홈페이지)


'구름발치 아라만치 닿을 수 없이 애닳아서 / 짧은인생 흐놀다 다음생에 기약하오니 / 꽃보라가 흗날리는 봄이오면 만나려나 / 짧은인생 흐놀다 다음생에 온새미로 만나지려나' 왜 언제나 꼭 필요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늘 먼저 죽어 살아남은 가슴 속에 아픔을 남기는 지 모를 일입니다만 성초시의 죽음을 알게 된 천둥이 그의 갖신을 안고 울부짖는 장면은 어쩐지 마음 한켠을 따끔하게 합니다.

오늘 밤 이어질 민란을 기점으로 고을은 숙대밭이 될 것이고 천둥은 자신의 친아버지 김진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운명적인 대면을 하게 될 것입니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인생을 살게 네 아이들이 온새미로 만나서 뜻대로 살 수 있는 나라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노영학, 최우식, 진세연, 이선영 등 짧은 출연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아역들의 마지막 출연, 바로 오늘 밤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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