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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책에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표시된 삼국시대 지도에 종종 '마한'이 표시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드라마에서 표현되고 있듯 이 '마한'은 54개의 작은 나라로 이루어진 부족국가라고 합니다. 백제 남쪽에 위치했고 사서에 실린 기록에 의하면 백제 온조왕 때 정복당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각종 사서에 '마한'이 온조왕 이후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온조왕 때 군소국가 중 일부가 통합되었거나 잔존 세력이 이후까지 남아있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3세기 4세기에 걸쳐 완전히 멸망했다고 전해지는 이 마한, 50개가 넘는 부족들의 연합체가 어떻게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국가의 틀을 완성해가던 백제에게 어떻게 삼백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남았는 지 궁금하기도 합니다만 백제, 신라가 초기에 국가의 형태가 완전치 않았고 부족 중심의 내부 갈등으로 고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삼국이 국가의 기반을 갖추는 과도기를 겪는 동안 동시에 군림했다는 게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형태의 초기 국가에서 '부족' 간의 갈등을 해결한다는 건 생각 보다 어려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 '근초고왕'에서 해씨와 진씨가 갈등하는 것도 다르지 않은 이치입니다. 백제의 왕인 어라하를 모시고 백제라는 한 이름을 가진 나라를 꾸렸지만 초기 국가 시기에 대체 '왜 나라가 필요한가'를 납득시키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한 부족 만으로 전쟁하기 보다 두 부족 이상이 강하다는 정도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더욱 많았겠죠.
부여구(감우성)는 위비랑(정웅인)과 겨뤄 요서를 자신의 발 아래 두게 되었고 위홍란(이세은)과의 혼인을 통해 그 관계를 더욱 단단히 했습니다. 아직 제대로 굴복시키지 못한 백제의 위례궁과 해씨를 거두기 위해 부여화(김지수)와의 혼인을 추진했습니다. 부족들은 그 결합의 증거로 당연히 자신들의 후손을 다음 왕위에 세우고 싶어합니다. 여기까지는 그 시기의 질서로 보아 매우 합리적이고 당연한 결과입니다. 다만 이들의 관계가 눈물과 증오로 번져간다는게 큰 문제점이겠군요.
해건(이지훈)의 음모로 부여화의 칠삭동이는 고구려왕 사유(이종원)의 아이인 것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사훌(서인석)과 부여몽(김도현)은 당황하고 사훌은 아이를 죽이려 합니다. 진씨 일가가 어의까지 매수했다고 생각하며 분노한 부여화는 위례궁으로 떠나고 부여구가 돌아올 때까지 친정에 머물겠다 선언합니다. 간신히 안정되었던 백제의 내분이 다시 불거지려 하는 순간입니다.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진 부은 과연 다음 대 어라하가 위홍란의 아들이냐 부여화의 아들이냐 하는 부분입니다(하룻밤 검색이 몇천건에 이를 정도니 대단한 관심). 홍란의 아들은 '부여근'이라는 걸 홈페이지에 밝혀놓았지만, 근초고왕이 즉위후 이름을 바꾸었단 기록이 있고 홍란이 진홍란으로 거듭난 상황에 어느 이름을 근구수왕의 이름으로 설정했느냐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여러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근구수왕의 이름은 수, 귀수, 근귀수, 귀류, 구소 등으로 부여근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홍란의 아들 부여근이 근구수 일거라 주장하는 분들의 근거는 홍란이 진씨가의 양녀가 되었고 진고도(김형일)의 딸 아이와 태중 혼약을 했다는 점을 들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부여화가 근구수의 어머니라 주장하는 분은 홍란을 굳이 근구수의 어머니로 적어두지 않은데다 근구수왕이 근초고왕의 맏아들이란 점, 삼왕자의 난으로 위례궁이 몰락하면 부여화가 기어코 자신의 아이를 왕위에 올리려 할 것이란 점 때문인듯 합니다.
사극이 등장할 때 마다 시청자들 사이에선 왜곡 논란이 일어납니다. 'KBS 근초고왕' 역시 논란을 비켜가지 못해 사서에 없는 인물 부여 출신 홍란을 백제 최고 귀족 진씨의 양녀로 삼고 계왕의 위례궁을 강조시켜 부여화를 등장시킨 점 등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들도 많습니다(물론 특정 배우에 대한 반감도 한몫을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역사적 사실이 사서를 따르지 못하고 창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에 이 지적은 절대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백제의 기반을 닦고 관제를 정비한 건 많은 분들이 '고이왕'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고이왕 시기 기록이 상세하게 적힌 탓이기도 하지만 국사 교과서에서도 배포되는 '상식' 범주에 속하는 지식으로 여섯 좌평을 등용하는 근초고왕의 모습이 당연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백제 시기의 역사가 많은 부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정설'이 있기 보다 다양한 해석, 학설이 분분하다는 점을 백프로 납득하더라도 가상인물들의 난입과 맞물려 충분히 '왜곡'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어느 분이 댓글을 달아주신 대로 '고이왕'이 과연 백제의 행정제도를 확립했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어 근초고왕의 치적으로 돌려놓았다는 점, 저는 충분히 사극의 '극적 재미'를 위해 그 주장을 도입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근초고왕'처럼 등장인물의 반 이상이 가상 인물이고 내용의 반 이상이 창작된 사극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식'에 상반되는 설정을 섞어두면 시청자는 당연히 그 부분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봅니다.
드라마 '근초고왕'은 사극치고는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드라마틱한 재미가 극대화되고, 지역과 복식 고증도 잘된 독특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전세계적인 '퓨전사극'의 열풍으로 역사를 기반으로 했지만 대부분의 이미지와 역사적 사실은 창작된, 독특한 사극들이 다수 유행하고 있지만 정통사극 위주의 KBS 채널에서 이런 모습을 본다는 건 약간은 기대 밖의 행보입니다(정성희 작가의 '자명고'를 빼놓지 않고 볼 정도로 좋아했는데 KBS하고는 색이 맞지 않나 봅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근초고왕의 아이가 분명한 부여화의 칠삭동이, 그 아이가 과연 '근초고왕의 맏아들'이라 적혀 있는 근구수왕이 맞느냐 하는 부분에 쏠려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비류왕(윤승원)의 차남이라 적혀 있는 근초고왕도 드라마 상에선 넷째 아들로 설정되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제 형이 한명 죽어 셋째 아들이 되었고 나머지 두 왕자가 더 죽는다면 장남이 되버릴 것입니다(둘째가 되기 위해 하나는 살려두려나요).
근초고왕의 맏아들이라는 근구수왕, 제 1왕후 부여화의 아들이 될 것이냐 제 2왕후 진홍란의 아이가 될 것이냐 하는 부분이 나머지 방영 분의 최고 미스터리(이제 20회 남았습니다)가 될 듯합니다. 힌트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적어드리자면 진홍란의 아이가 근구수왕이 되고 부여화의 아이는 이문열의 원작 '대륙의 한'에 등장하는, 난을 일으키는 '부여광'이라는 왕자 역할을 할 듯 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만약 진홍란의 아이가 근구수왕이라면 자신 보다 먼저 태어난 부여광 때문에 어린 시절 고민하고, 부여화가 친정으로 돌아가 위례궁에서 해건(이지훈)과 외삼촌 부여문(황동주)에게 키워진 부여광은 진씨의 총애를 받는 근구수왕을 시기하고 왕을 미워하며 자라게 될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은 20회가 좀 짧기는 하겠지만 전투에서 남다른 공적을 보인 근구수왕, 사유의 목숨을 끊는 왕자라면 그 정도 '고난'을 설정해주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원작 속 부여광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부여구의 용서를 받고 부여구가 이루고 싶었던 숙원사업, 요서 지역을 정복하러 떠나는 인물이라 합니다(사실 '대륙의 한'의 주인공은 계왕의 아들인 이 부여광이라 보는게 맞지요, 지금은 부여민이 아들이네요). 부여화의 아이가 이대로 죽어버릴 것이란 예상도 많지만, 하여튼 이 부분도 창작의 영역입니다. 한편 예전 '정조' 역할로 배우 정웅인과 함께 출연했던 정재곤, 그의 배역 모용수가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 극중 석라해(최지나)는 부여화의 시언니가 아니라 부여화 오빠의 아내, 올케입니다. 시언니란 표현도 생소하네요.
* 이 글은 KBS 근초고왕 홈페이지에 동시 게재합니다.
3세기 4세기에 걸쳐 완전히 멸망했다고 전해지는 이 마한, 50개가 넘는 부족들의 연합체가 어떻게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국가의 틀을 완성해가던 백제에게 어떻게 삼백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남았는 지 궁금하기도 합니다만 백제, 신라가 초기에 국가의 형태가 완전치 않았고 부족 중심의 내부 갈등으로 고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삼국이 국가의 기반을 갖추는 과도기를 겪는 동안 동시에 군림했다는 게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형태의 초기 국가에서 '부족' 간의 갈등을 해결한다는 건 생각 보다 어려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 '근초고왕'에서 해씨와 진씨가 갈등하는 것도 다르지 않은 이치입니다. 백제의 왕인 어라하를 모시고 백제라는 한 이름을 가진 나라를 꾸렸지만 초기 국가 시기에 대체 '왜 나라가 필요한가'를 납득시키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한 부족 만으로 전쟁하기 보다 두 부족 이상이 강하다는 정도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더욱 많았겠죠.
부여구(감우성)는 위비랑(정웅인)과 겨뤄 요서를 자신의 발 아래 두게 되었고 위홍란(이세은)과의 혼인을 통해 그 관계를 더욱 단단히 했습니다. 아직 제대로 굴복시키지 못한 백제의 위례궁과 해씨를 거두기 위해 부여화(김지수)와의 혼인을 추진했습니다. 부족들은 그 결합의 증거로 당연히 자신들의 후손을 다음 왕위에 세우고 싶어합니다. 여기까지는 그 시기의 질서로 보아 매우 합리적이고 당연한 결과입니다. 다만 이들의 관계가 눈물과 증오로 번져간다는게 큰 문제점이겠군요.
해건(이지훈)의 음모로 부여화의 칠삭동이는 고구려왕 사유(이종원)의 아이인 것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사훌(서인석)과 부여몽(김도현)은 당황하고 사훌은 아이를 죽이려 합니다. 진씨 일가가 어의까지 매수했다고 생각하며 분노한 부여화는 위례궁으로 떠나고 부여구가 돌아올 때까지 친정에 머물겠다 선언합니다. 간신히 안정되었던 백제의 내분이 다시 불거지려 하는 순간입니다.
이 드라마의 왜곡 논란, 단순히 해석의 문제일까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진 부은 과연 다음 대 어라하가 위홍란의 아들이냐 부여화의 아들이냐 하는 부분입니다(하룻밤 검색이 몇천건에 이를 정도니 대단한 관심). 홍란의 아들은 '부여근'이라는 걸 홈페이지에 밝혀놓았지만, 근초고왕이 즉위후 이름을 바꾸었단 기록이 있고 홍란이 진홍란으로 거듭난 상황에 어느 이름을 근구수왕의 이름으로 설정했느냐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여러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근구수왕의 이름은 수, 귀수, 근귀수, 귀류, 구소 등으로 부여근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홍란의 아들 부여근이 근구수 일거라 주장하는 분들의 근거는 홍란이 진씨가의 양녀가 되었고 진고도(김형일)의 딸 아이와 태중 혼약을 했다는 점을 들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부여화가 근구수의 어머니라 주장하는 분은 홍란을 굳이 근구수의 어머니로 적어두지 않은데다 근구수왕이 근초고왕의 맏아들이란 점, 삼왕자의 난으로 위례궁이 몰락하면 부여화가 기어코 자신의 아이를 왕위에 올리려 할 것이란 점 때문인듯 합니다.
사극이 등장할 때 마다 시청자들 사이에선 왜곡 논란이 일어납니다. 'KBS 근초고왕' 역시 논란을 비켜가지 못해 사서에 없는 인물 부여 출신 홍란을 백제 최고 귀족 진씨의 양녀로 삼고 계왕의 위례궁을 강조시켜 부여화를 등장시킨 점 등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들도 많습니다(물론 특정 배우에 대한 반감도 한몫을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역사적 사실이 사서를 따르지 못하고 창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에 이 지적은 절대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백제의 기반을 닦고 관제를 정비한 건 많은 분들이 '고이왕'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고이왕 시기 기록이 상세하게 적힌 탓이기도 하지만 국사 교과서에서도 배포되는 '상식' 범주에 속하는 지식으로 여섯 좌평을 등용하는 근초고왕의 모습이 당연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백제 시기의 역사가 많은 부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정설'이 있기 보다 다양한 해석, 학설이 분분하다는 점을 백프로 납득하더라도 가상인물들의 난입과 맞물려 충분히 '왜곡'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어느 분이 댓글을 달아주신 대로 '고이왕'이 과연 백제의 행정제도를 확립했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어 근초고왕의 치적으로 돌려놓았다는 점, 저는 충분히 사극의 '극적 재미'를 위해 그 주장을 도입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근초고왕'처럼 등장인물의 반 이상이 가상 인물이고 내용의 반 이상이 창작된 사극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식'에 상반되는 설정을 섞어두면 시청자는 당연히 그 부분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봅니다.
드라마 '근초고왕'은 사극치고는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드라마틱한 재미가 극대화되고, 지역과 복식 고증도 잘된 독특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전세계적인 '퓨전사극'의 열풍으로 역사를 기반으로 했지만 대부분의 이미지와 역사적 사실은 창작된, 독특한 사극들이 다수 유행하고 있지만 정통사극 위주의 KBS 채널에서 이런 모습을 본다는 건 약간은 기대 밖의 행보입니다(정성희 작가의 '자명고'를 빼놓지 않고 볼 정도로 좋아했는데 KBS하고는 색이 맞지 않나 봅니다).
부여화의 아이, 그의 운명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근초고왕의 아이가 분명한 부여화의 칠삭동이, 그 아이가 과연 '근초고왕의 맏아들'이라 적혀 있는 근구수왕이 맞느냐 하는 부분에 쏠려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비류왕(윤승원)의 차남이라 적혀 있는 근초고왕도 드라마 상에선 넷째 아들로 설정되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제 형이 한명 죽어 셋째 아들이 되었고 나머지 두 왕자가 더 죽는다면 장남이 되버릴 것입니다(둘째가 되기 위해 하나는 살려두려나요).
근초고왕의 맏아들이라는 근구수왕, 제 1왕후 부여화의 아들이 될 것이냐 제 2왕후 진홍란의 아이가 될 것이냐 하는 부분이 나머지 방영 분의 최고 미스터리(이제 20회 남았습니다)가 될 듯합니다. 힌트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적어드리자면 진홍란의 아이가 근구수왕이 되고 부여화의 아이는 이문열의 원작 '대륙의 한'에 등장하는, 난을 일으키는 '부여광'이라는 왕자 역할을 할 듯 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만약 진홍란의 아이가 근구수왕이라면 자신 보다 먼저 태어난 부여광 때문에 어린 시절 고민하고, 부여화가 친정으로 돌아가 위례궁에서 해건(이지훈)과 외삼촌 부여문(황동주)에게 키워진 부여광은 진씨의 총애를 받는 근구수왕을 시기하고 왕을 미워하며 자라게 될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은 20회가 좀 짧기는 하겠지만 전투에서 남다른 공적을 보인 근구수왕, 사유의 목숨을 끊는 왕자라면 그 정도 '고난'을 설정해주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원작 속 부여광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부여구의 용서를 받고 부여구가 이루고 싶었던 숙원사업, 요서 지역을 정복하러 떠나는 인물이라 합니다(사실 '대륙의 한'의 주인공은 계왕의 아들인 이 부여광이라 보는게 맞지요, 지금은 부여민이 아들이네요). 부여화의 아이가 이대로 죽어버릴 것이란 예상도 많지만, 하여튼 이 부분도 창작의 영역입니다. 한편 예전 '정조' 역할로 배우 정웅인과 함께 출연했던 정재곤, 그의 배역 모용수가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 극중 석라해(최지나)는 부여화의 시언니가 아니라 부여화 오빠의 아내, 올케입니다. 시언니란 표현도 생소하네요.
* 이 글은 KBS 근초고왕 홈페이지에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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