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근초고왕

근초고왕, 근구수왕의 어머니 대체 누구냐

Shain 2011. 3. 1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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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극의 재미 중 하나가 궁중 암투라지만 마한과 고구려를 경계해야하고 주변 국가 정복에 힘써야할 왕이 궁중 암투를 빙자한 외척 다툼에 시달리는 건 역시 눈뜨고 보지 못할 일입니다. 똑똑하고 대담했던 두 여인의 평소 성정으로 보아 금방 잠재워질 듯 했던 부여화(김지수)와 진홍란(이세은)의 갈등은 가라앉을 기미가 전혀 없습니다. 두 사람은 예전 사극에서 보았던 평범한 궁중 후궁들처럼 어떻게 하면 서로를 잡아먹을까 탐색하는 암사자들 같습니다.

지금 드라마 팬들이 궁금해 하는 건 14대 어라하인 '근구수왕'의 어머니가 둘 중 누구냐 하는 부분입니다. 블로그에도 그 문제로 검색해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위홍란, 즉 진홍란이 낳는다고 하는 아이의 이름은 부여근이라고 하는데 근구수왕의 이름을 부여근으로 삼을 지 다른 이름으로 삼을 지는 작가가 결정할 부분입니다. 극중 부여구(감우성) 역시 왕이 되자 '근초고'로 개명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름을 바꾼다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근구수왕의 어머니는 진씨이고 아내는 진고도(김형일)의 딸인 '아이부인'이라 적혀 있으니 다음 왕이 되는 건 위홍란(이제는 양녀니 진홍란)의 아들 부여근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부여화의 아이는 딸이거나 아들이라도 부여구처럼 요서에서 자라는 아이일 듯합니다. 이미 진고도와 진정(김효원) 진홍란에게 진고도의 딸 아이를 부탁하여 태중 약혼을 한 상태입니다.

근초고왕의 제 1왕후는 부여화, 제 2왕후는 위홍란, 두 대부인은 각각 해씨와 위례궁, 진씨 집안에서 가장 존귀한 여성으로 백제의 세력을 둘로 나누고 있는 대표자들입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둘 모두 사서에 기록된 인물들이 아닙니다. 현재 등장하는 인물 중 사서에 기록된 사람은 부여구, 진정, 진고도, 고구려왕 사유, 조불(김응수), 소우(원상연), 고흥(안석환), 아지카이(아직기, 이인), 고노자(전병옥)[각주:1] 정도로 나머지 사람들은 가상의 인물들입니다.



쫓겨난 왕자의 운명이 반복될 것인가

드라마 '근초고왕'에 대한 비난의 대부분은 그 가상의 인물들이 벌이는 갈등을 드라마의 주된 소재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부여화와 위홍란의 갈등 보다 궁금한 건 누가 다음 대 어라하의 어머니냐는 것이고 근초고왕이 요서 지방을 수성하고 고구려와 전쟁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밟았느냐 아닐까 합니다. 최근 부여화와 위홍란의 갈등에 많은 부분이 할당되니 '사실이 아닌' 것에 집중하지 말라며 우려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서에 쓰인 역사는 참 재미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이 창작한 웬만한 드라마 보다 극적이고 때로는 운명의 장난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교훈적입니다. 사람들이 사극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감히 새로 쓸 수 없는, 감탄할 만한 역사 속 사실을 재현하며 감동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사극의 내용 중 반 이상이 창작된 내용에 집중된다면 굳이 애써 사극이란 장르를 선택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위홍란은 부여구의 총애를 받는 부여화가 왕자를 낳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지카이와 위비랑(정웅인), 진승(안재모) 등은 부여화가 가진 아이는 고구려왕의 아이란 내용의 참요를 백제 곳곳에 뿌렸고 그로 인해 부여화는 근초고왕에게 마음의 원한을 가지게 됩니다. 참요를 퍼트린 인간들을 벌주어도 모자란 판에 모두를 규합해 백제를 일통한다는 이유로 부여구는 그들 모두를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을 싹 다 죽여버릴 수도 없고, 근초고왕의 고뇌.


해건(이지훈)의 책략대로 부여구가 흔들리고 '삼왕자의 난'이 일어나 위례궁의 왕자들과 부여찬(이종수)을 비롯한 부여산(김태훈) 왕자의 힘이 약화되는 과정은 꼭 필요한 장면일 수는 있겠지만 안 그래도 부족한 백제 근초고왕 시기의 역사를 묘사하기 위해 고이왕의 업적을 근초고왕의 것으로 만들고 마한 정복과 고구려와의 갈등도 필요 이상 극대화한 아슬아슬한 상황에 굳이 다음 왕자까지 힘겹게 아버지의 운명을 반복해야하는 지 의문입니다.

백성들은 모두 진승과 진홍란 무리들이 뿌린 참요를 알고 있습니다. 고구려왕의 왕후였던 부여화가 아들을 낳는다면 태어나자마자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자라게 될 것입니다. 부여화는 고구려에서의 마지막 2년 간을 시비로 지냈기 때문에 아이를 임신했을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지만 소문이란 건 원래 그렇습니다. 양 손주며느리 사이에서 서로 참으라 조언하는 흑강공 사훌(서인석)의 의견대로 요서로 쫓겨나는 왕자가 될 지도 모릅니다.

다음 대 백제 왕인 근구수왕은 직접 고구려왕 사유를 죽인 인물입니다. 위홍란의 아들이 훌륭하게 장성해 아버지를 대신해 고구려를 치는 위업을 달성할 것인가. 부여화의 아들이 근구수왕이 되어 어머니를 괴롭히고 자신을 고구려 씨라 놀리는 사유를 죽이고 당당히 왕자의 능력을 보일 것인가. 역사는 진씨의 아들이 근구수라 했지만 사극임에도 창작된 내용이 훨씬 많은 드라마라 그걸 장담할 수 없다니 안타깝습니다.



마한 정복을 앞두고 불거지는 갈등

드라마에는 백제를 다스리던 여덟개의 명문 귀족 중 '목'씨는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해씨와 진씨가 졸본부여에서부터 함께한 권력자 집안이라면 나머지 성씨들은 마한이나 한반도 남쪽에 있던 군소부족들일 거라 추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목씨성을 가진 사람들은 '목지국(目支國)' 출신이 3세기 후반 마한연합이 백제에 귀속될 때 백제의 새로운 세력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근초고왕은 시기적으로 4세기의 왕이므로 아직까지 목씨가 등장하지 않은 건 이상할 수 있겠지만 여러 마한연맹체의 부족들이 큰 전쟁없이 근초고왕에 투항하지 않을까 예상해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고구려의 압박과 요서를 공격한 연나라의 압박, 왕자의 난 등으로 계속서 분열되는 백제 내부의 귀족들까지 감당해야하는 근초고왕이 좀 더 쉽게 자신의 업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생길 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런 위기 상황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왕자의 후계를 안정시키겠다며 눈물 바람을 하는 부여화나 시녀를 시켜 부여화를 감시하게 하는 위홍란의 그릇은 먼 미래까지 살필 수 있는 왕후의 그릇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반에 등장했던 대범한 두 여성의 캐릭터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아무리 기록이 부족하고 사서가 부족한 시대의 사극이라지만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너무 많이 앞서온 것은 아닐까요.

* 토요일 방영분에서 곰재 별궁이란 표기가 나오던데 백제에서 지내던 제사인 '곰제'를 드리는 곰제 별궁이 맞는 표기 아닐까요. 연고도 없이 갑자기 곰재 별궁이라 표시하여 의아한 장면입니다. 동명왕, 소서노를 비롯한 왕들의 제를 지내는 곳이라면 곰제 별궁이 맞지 싶습니다.

* 이 글은 KBS 근초고왕 홈페이지에 동시 게재됩니다


  1. 최근 사충선의 아들이 '사기'로 이름을 개명하였고 삼국사기에 등장한 스파이 '사기(斯紀)'가 동일 인물이 아니냐 짐작하는 사람이 많지만 둘은 한자가 다릅니다. 대성팔족 사씨는 沙라는 한자로 표기합니다. 이는 이두로 표기하는 한자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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