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욕망의 불꽃

욕망의 불꽃, 나영의 의미심장한 미소로 마무리

Shain 2011. 3.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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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에 영원한 완결은 원래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은 TV 드라마들이 이야기를 만들고 갈등을 해소하는 구조로 진행되지만 그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늘 완결없는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윗세대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아랫 세대가 이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드라마 '욕망의 불꽃'을 촬영했던 연기자들도 '종방연'을 가지며 드라마에 대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역할이 유난히 힘들었던 배우 신은경은 이번 촬영에 대해 남다른 감회를 보였습니다.

신은경은 극중 윤나영의 캐릭터에 빙의된 채 살았다며 지금까지 출연했던 어떤 작품 보다 휴우증이 클 것같다는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워낙 감정 기복이 큰 캐릭터라 미친듯이 울다가 상냥하게 웃음짓는가 하면 불같이 화를 내다가 서글프게 애원하기도 하는 등 표현이 힘들었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추운 촬영 때문에 손가락 동상에 걸릴 뻔 했다던가 하는 에피소드는 남다른 고생을 했다는 또다른 증거인 듯합니다.

욕망의 불꽃 종방연(이미지 출처 : 스포츠칸, 연합뉴스)


드라마 '욕망의 불꽃'의 이야기는 그닥 만족스럽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불만족스럽다고 할 수도 없는 묘한 결말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줬습니다. 한 가족의 행복을 모조리 망가트렸던 김태진(이순재)의 악행은 자신의 야망을 꼭 닮은 윤나영(신은경)에 의해 저지되었지만 나영 역시 그토록 원하던 대서양의 더러운 돈, 유언장으로 합법적으로 상속받을 수 있었던 재산을 직접 손에 넣지는 못합니다. 그 과정이 그럴듯하다 싶으면서도 개운치는 않습니다.

아내 남애리(성현아)와 이혼하고 윤정숙(김희정)과 나머지 인생을 살고자 했던 김영준(조성하) 역시 깔끔하게 대서양과의 인연을 끊고 울산에 정착하지 못합니다. 그 두 사람의 약속, 사랑에 대한 욕망은 완성되지 않고 언젠가 백발이 되어서라도 함께 하자는 말로 다시 태울 수 있는 불씨를 남겨두었습니다. 백인기(서우)와 민재(유승호)는 완전히 헤어져 서로에 대한 애정을 일단은 접기로 한 듯합니다. 인간의 욕망이 마지막회를 맞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태진의 악행, 사랑으로 빚을 갚는 아들들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따져보면 이 모든 불행의 시작은 김태진 회장이었습니다. 정숙과 나영의 어머니는 결혼 전에 김태진과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김태진은 윤상훈(이호재)의 특허권을 가져가면서 나영의 어머니를 포기했고 상훈의 특허권으로 사업을 일으켰습니다. 고향에 다시 나타나 사랑하던 여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불륜을 저질렀던 김태진. 그로 인해 양쪽 가정의 평화는 산산이 부서집니다.

아버지 김태진이 미친듯이 돈과 재벌기업 완성에 매진했듯 김태진이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꿈을 완성하려는 듯 그의 두 아들은 나영 자매들과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영민이 어린 시절 나영을 처음봤을 때부터 사랑한 것처럼 영준은 울산에서 처음 정숙을 보았을 때부터 빠져들게 됩니다. 마치 아버지의 욕망의 유전자가 아들에게 물려진 것처럼 두 아들은 나영과 정숙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사는 이야기에는 완결이 없다고 화두를 꺼낸 것처럼 인간의 욕망이란 것도 이렇게 '끝맺음'이 없는 것인가 봅니다. 태진의 사랑과 돈에 대한 욕망은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활활 타올라 자식들이 서로 악다구니하는 몸서리쳐지는 재산 싸움에 휘말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에 대한 욕망은 핏줄을 타고 유전되는 것인지 두 아들은 재산을 이어받기 보다 두 자매를 사랑해 아버지의 빚을 갚습니다.


어제 방송의 하이라이트는 '유언장 공개' 장면입니다. 나영에게 충격받아 운신도 하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김태진이 회사의 안정을 위해 유언장을 공개하라 했고 나영은 당연히 자신의 남편이 대서양의 주인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영민은 유언장에 쓰인 자신의 이름 대신 형 영준을 후계자로 지목합니다. 태진의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나영을 지켜주기 위해서 스스로 대서양을 포기한 것입니다.

영민 역시 아버지 못지 않은 야망을 가진 존재로 형 영준 만큼이나 기업 경영에 야심과 자질을 갖춘 인물이지만 그는 과감히 후계자 자리 대신 가족을 선택합니다. 백인기와 나영을 온전히 받아준 그의 선택, 돈과 지위에 대한 욕망 보다 가족에 대한 그의 욕망이 앞섰다는 것, 나영이 태진을 용서하고 영민과 함께 가족으로 행복하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대서양을 포기한 영민의 선택 덕분입니다.

드라마는 모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영민이 후계 자리를 거부하는 해결책을 선택했습니다. 허나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갈등이 '완결된다'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형제들 간의 갈등도 나영 집안과 태진 집안의 원한도 골이 깊어 '해결'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모두 상처입었습니다. 작가가 초조한 음악과 함께 의미심장하게 마무리한대로 이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며 완벽한 결말 따윈 처음부터 없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욕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원한 때문에 평생 증오하기는 했지만 윤나영과 김태진은 놀라우리 만큼 닮은 존재입니다. 나영이 늙어서까지 야망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달려간다면 태진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멈출 것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영민의 사랑을 확인하고 민재, 인기와 함께 가정을 이룬 나영. 휠체어에 앉아 조용히 볕을 쬐는 김태진에게 유언장을 다시 쓰라 종용하는 윤나영은 다시 재산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을 불태웁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태진을 향해 웃는 소름끼치는 나영의 모습은 그녀의 성격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끝없는 몸부림, 그것이 진짜 윤나영이고 욕망의 속성일 것입니다. 영준에게 넘어간 대서양 그룹의 회장 자리가 다시 영민에게 온 것을 모르고 있는 그녀는 재빨리 울산으로 내려와 태진의 휠체어를 끌고 산책을 나갑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윤나영다운 것이겠지요.


'욕망의 불꽃'에서 성인연기자로 활약한 유승호는 초반에는 너무 어려보이는 외모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때묻은 대서양 가문 사람들에 비해 순수한 모습을 잘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맞물려 성현아, 이순재, 이효춘, 조성하, 김병기, 이보희 등의 중견연기자들의 활약으로 드라마는 50회 내내 긴장감을 잃지 않는 저력을 과시했고 마지막주엔 22%가 넘는 시청률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무엇 보다 주연급으로 활약한 신은경의 눈물, 그리고 팔색조처럼 변신하는 그녀의 감정선은 이 드라마를 다시 보기 힘든 매력적인 통속극으로 기억되게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 말 신은경에게 주었던 최우수상이 아깝다며 '연기대상'을 주었어야 했다는 네티즌이 많은 것으로 보아 명실공히 드라마 최고의 연기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7개월 동안의 긴 여정, 수고하신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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