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패, 도갑의 죽음과 천둥의 강포수를 향한 원망

전해오는 이야기나 만들어진 이야기 속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도 많고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의인들도 많습니다. 그 이야기를 읽는 제 3자인 우리들은 그들의 죽음을 보며 칭송하고 안타까워 하지만 정작 그 의인이나 영웅들은 때로 타인들의 고통과 자신들의 미래까지 걸어야하는 선택 때문에 수없이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비롯한 어려운 시대에 '누군가를 숨겨준' 사람들이 대신 고문을 당해야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마을을 괴롭히는 현감(김명수)으로 인해 붓들 아범(엄대호)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강포수(권오중)와 천둥(천정명),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분연히 일어나 현청을 점령했고 억울하게 옥에 갇힌 사람들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민란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고 생계의 터전을 잃어야 했습니다. 붓들아범의 억울한 죽음은 그만한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일어서야하는 일이었을까? 당연히 의인은 고민할 것입니다.

드라마 '짝패'의 이야기의 이야기는 시원하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우울함을 앞으로 계속 끌고 나가야한다는게 이 드라마의 최대 난점이자 어려움입니다. 의적으로서 활약하는 이야기가 계속 진행될수록 천둥과 가까웠던 누군가가 목숨을 잃어야할 지도 모릅니다. 천보 앞에서도 과녁을 맞춘다는 천보총을 든 달이(서현진)라도 포도청과 왕두령 패거리들에게 당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무 자르듯 정확하고 확실하게 답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반상의 법도가 엄연하다고 해놓고 천민 막순(윤유선)은 가마타고 거리를 다니고 현감 출신 양반은 초라한 몰골로 비첩 삼월(이지수)과 함께 거리를 걷습니다. 양반인 동녀(한지혜)가 속물 장사치가 되어 돈을 벌어들이고 권력자 김진사(최종환)에게 빌붙는 선택을 한 것도 천둥이 강포수 때문에 죽은 사람들로 원망을 비치는 것도 답답하지만 이해 못할 일만은 아니란 뜻입니다.

좋은 몸 받아서 다시 만나자

막순(윤유선)이 친아버지라 알려준 이참봉의 장례까지 치뤘지만 천둥은 뭔가 우울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친어머니라 주장하는 막순은 만석꾼 이참봉과 좋아하던 사이도 아니었고 단지 재산이 탐이나 그 집에 들어갔던 것 뿐입니다. 이제 가마 타고 다니며 마님이라 불리는 막순은 받은 유산으로 더 많은 돈을 벌겠다 야단입니다. 반쪽짜리 양반 핏줄을 알게 된 동녀가 호들갑스럽게 문중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라 조언하자 천둥은 차라리 상단을 꾸려 잠시 떠나겠다 합니다.

아래적(我來賊)의 강포수와 사람들은 도갑(임현성)이 왕두령(이기영)을 저격하다 죽자 당황하지만 천둥과 장꼭지(이문식)에게 보내 장례를 치르게 합니다. 천둥은 친부의 죽음에도 슬프거나 괴롭지 않았는데 친동생같던 도갑의 죽음에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거지패에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귀하게 길렀던 착한 도갑이. 좋은 몸 받아서 다시 태어나자 울부짖는 장꼭지의 말에는 밑바닥 사람들의 설움이 담겨 있습니다.

어려운 시대에 거지패에서 태어난 아이가 목숨을 부지할 확률은 생각 보다 높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부 금슬도 유난히 좋았던 작은년(안연홍)과 장꼭지 사이에 왜 아이가 하나 밖에 없을까요. 큰년(서이숙)이나 작은년이나 다른 아이는 잃지 않았을까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장성할 때까지 불안하게 키웠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숨을 거두다니 세상이 찢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도갑의 죽음에 평소 장곡지를 사람 취급 않던 쇠돌까지 슬퍼한다

좀도둑으로 모든 열쇠를 다 딸 수 있었던 도갑이, 그 도갑이가 장사를 배워 새로운 길을 가고 싶어 했다는 천둥, 순박한 도갑이를 꼬여내 죽음에 이르게 한 건 강포수라며 원망하는 천둥은 10년전 민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새로운 세상이 무슨 소용이냐며 따지고 듭니다. 그 모든 사람들의 죽음을 선동한 사람이 강포수라 말하는 천둥, 그의 분노는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강포수의 방법, 의적이 되어 왈자패를 처단하고 그 왈자패를 호령하며 그들이 백성들에게 착취한 이익을 뜯어먹는 높은 지위의 사람들을 겁박하고 그로 인해 도갑과 같은 착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방법이 옳치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민란이 수십번 일어났지만 조선 사회는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민란으로 새 세상을 꿈꿨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순리에 따라 생업에 종사하거나 숨죽인채 살고 있을 뿐입니다.

천둥은 당장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숨이 안타까워 강포수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고통의 원인, 막순이 노비와 거지의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들, 빈민으로 살던 장꼭지가 도둑질하며 먹고 살던 일들 그 모든 일의 원인은 썩은 사회의 '업보'이고 원망할 사람은 강포수가 아니라는 걸 천둥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무 자르듯 정확한 감정도 인과관계도 없지만 완벽하고 속시원한 처신법도 없다는 걸 배우게 되겠지요.

천둥, 장꼭지의 목숨을 구해줄까

심마니 노인네처럼 머리까지 산발하고 약초를 준비한 채 왕두령의 집에 들어간 장꼭지는 도갑의 복수를 꿈꿉니다. 도갑의 죽음에 도둑질하며 거지패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탓했던 장꼭지는 왕두령을 죽이고 살아나면 아래적에 꼭 끼워넣어달라며 애원합니다. 아래적의 일원인 봉삼(이신성)은 쇠고집 장꼭지를 미처 말리지 못했지만 왕두령의 집으로 그가 들어가지 못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요즘도 조폭이 검은 권력과 연계되었다는 말들이 많고 일본의 야쿠자는 정재계의 거물과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짝패'에 등장하는 왈자패, 왕두령패는 그냥 평범한 깡패가 아니라 권신들의 더러운 돈을 불려주는 조선의 썩은 뿌리들입니다. 그들의 거대한 조직에 맞설 수 있는 건 오로지 포도청 뿐일테지만 좌포청대장(심양홍)과 종사관 마저 그들을 눈감아주고 있을 정도로 뒷배가 든든합니다.

심마니로 변장해 암두령을 죽이려는 장꼭지, 강포수에게 항의하는 천둥.

장꼭지가 죽이려 하는 왕두령, 총에 맞아 운신도 못하는 그 깡패 두목은 바로 그런 인물로 공포교(공형진) 조차 그에게 그닥 큰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장꼭지가 아무리 암살을 준비하고 연습했다고 한들 그의 혼자 힘으로는 제거하기 힘든 인물이고 결정적으로 왕두령 옆에는 장꼭지의 얼굴을 알아보는 진득(임성규)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는 천둥의 절친한 친구이지만 어린 시절 구걸을 시키던 장꼭지를 싫어합니다.

도갑의 죽음으로 상심한 천둥, 강포수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생각하는 천둥, 그러면서도 동녀와 막순의 이해할 수 없는 집착에 염증이 나는 천둥, 그 천둥이 과연 다음주에 장꼭지를 구해주려 할까요. 친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 후 홀로 고민하는 날이 늘고, 나날이 눈물이 늘어가는 귀동(이상윤)의 슬픔에 맞물려 천둥의 고민도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운명의 선택이란 어째서 항상 우울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