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짝패, 주인공 천둥이 의적이 되어야 하는 이유

Shain 2011. 4. 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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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이 드라마 '짝패'를 보면서 생각하는 이야기는 꽤 다양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각에서 지적하는대로 주연배우 천정명은 왜 이리 현대적인 느낌이 나는 지 의아해 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기개있고 똑똑한 현대 여성상을 기대했던 동녀(한지혜)는 왜 저리 신분에 얽매이고 집착하는 속물처럼 행동할까 생각해본 분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 보다 당연히 의적이 되어 강포수(권오중)와 함께 할거라 생각했던 천둥(천정명)은 왜 강포수에게 침을 뱉는지 생각해보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귀동(이상윤)은 한동안 포교로서 자신의 본연에 충실하긴 할테지만 어머니 막순(윤유선)의 죄로 인해 술독에 빠져 살 것이 분명합니다. 출생을 바꿔버린 어머니지만 어머니의 목숨이 위험할까 김진사(최종환)에게 말한마디 못한 귀동은 동녀(한지혜)의 사랑 고백도 애써 못본척하고 천둥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모릅니다. 김진사는 천둥의 목에 있는 붉은점을 보며 의문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천둥의 목에서 붉은 점을 발견한 김진사

'짝패'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못났습니다. 나름 영웅 역할을 하고 있는 주인공 천둥 조차 세상을 뒤엎을 확실한 답도 비전도 갖지 못한채 방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귀동은 미친 세상을 향해 술잔을 치켜들 뿐 썩어빠진 포도청 사람들을 바꿔버릴 힘도 없습니다. 의적으로 활약하는 달이(서현진)는 주인공들에 비해 똘똘하게 세상을 향해 나서지만 아직까지 세상을 향해 나서기엔 약한 아이입니다

그들의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은 훨씬 더 '영웅형' 인물들과 거리가 멉니다. 그동안 비럭과 도둑질로 생계를 연명해온 장꼭지(이문식)는 말할 것도 없고 막순이 원하는 대로 모든 악행을 함께한 쇠돌(정인기)는 착하다는 것과 남을 해한다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삶의 지혜를 깨달은 황노인(임현식)은 말할 것도 없고 강포수 역시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를 구원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인물입니다.



현감을 죽이면 '복수'는 이뤄지는가

동녀는 아버지를 죽인 현감(김명수)을 증오하고 복수하겠다고 했지만 현감의 자형이자 성초시(강신일)를 도우려했던 김진사를 해하고 싶진 않다고 말합니다. 김진사의 덕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장사까지 하게 된 동녀는 의견이 달랐을 뿐 원수는 아니었던 아버지의 친구 김진사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죄를 저지른 당사자를 미워하되 주변인은 받아들이는 동녀의 태도는 사뭇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귀동에 대한 사랑 때문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민란의 원인이 되었던 '현감'의 악행, 동녀는 사과를 사는 현감을 보자마자 사람을 시켜 뒤를 따르게 하고 어떻게든 복수를 하려 마음먹습니다. 그런데 현감에서 물러나고 유배를 다녀온 그 인물은 본처도 죽고 재산도 잃고 이제는 누나 권씨(임채원)가 내려준 여종 삼월(이지수)을 비첩으로 삼아 죽으로 끼니를 연명하고 있습니다. 양반으로 대접받을 일도 없고 체면도 없는, 길거리 천민이나 마찬가지인 전임 현감은 못난 사람 중에서도 더욱 못난 인물입니다.

그 현감의 목숨을 빼앗는다면 현감처럼 죄를 짓지 않은 현감의 비첩 삼월은 아이가진 몸으로 홀로 세파에 맞서야 합니다. 장꼭지가 죽이려 한 왕두령(이기영)은 한양의 모든 범죄와 악행을 담당하는 상징에 해당하는 인물이지만 이제 와서 '빌어먹는' 현감을 죽인다는 것이 정말 아버지 성초시가 바란 복수인지 곰곰히 생각하게 만듭니다. '과거'의 이야기니 목숨을 빼앗는 방법이 옳은 방법인지 이런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입니다.

복수를 위해 총을 들이대는 장꼭지와 동녀, 대립하는 천둥과 강포수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였던 원수를 향해 총을 들이댄 장꼭지와 동녀의 복수, 그들의 총구는 도갑(임현성)을 죽이고 성초시를 죽였던 그 인물들을 향해 있지만 드라마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그들이 고통받았어야 하는 이유가 그 둘 때문만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거지패들이 거리를 메우고 포도청과 관리들은 부정부패하고 왈자패들은 밀수입을 일삼고 억울한 백성은 맞아죽는 그 세상, 일개 백성은 알 수 없는 본질을 시청자들은 보고 있으니 답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인공들의 고향 용마골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못난 현감, 그 현감의 귀여우리 만큼 못난 모습은 소매치기를 하면서도 귀여운 작은년(안연홍)이나 능청스레 기둥서방짓을 하는 조선달(정찬), 술주정을 하는 큰년(서이숙) 만큼이나 평범합니다. 선과 악의 구분이 선명하지 않은 세상에서 올바른 세상을 구현한다는 것, 그것이 현대인들의 사상이나 정의 만큼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는 '똑똑한 사람'은 있지만 영웅이 없습니다. '근초고왕'처럼 신적인 카리스마를 뽐내는 인물도 없고 '추노'에 등장한 대길이처럼 한 여자만을 쫓으며 평생을 올인하는 집념의 사나이도 없습니다. 항상 올바르고 똑똑하지 만은 않은 평범한 민중, 마디마디 흩어지고 풀뿌리같은 그들이 '의적'에 환호하는 건 어쩌면 현대인들의 판타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총을 잡고 현감을 위협하는 동녀가 어설퍼 보이는 건 그런 까닭이겠지요.



그래,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

아래적의 두령 강포수는 성공하지 못한 민란 때문에 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며 천둥의 원망을 받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천둥다운 고민이고 반항입니다. 아무리 거지패 시절 순진한 천둥을 괴롭히던 장꼭지라지만 그의 목숨까지 위험하게 만든 강포수는 민란이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알고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백성들이 무서운 줄 알아야 다음 현감이라도 조심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이 와닿습니다.

왜 동패들과 효수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냐는 천둥의 비난, 장사꾼이 되어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던 천둥이 왜 지금 이 모양이냐고 묻는 강포수의 질타. 천둥은 아직 '도둑'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강포수를 사회의 불쌍한 사람들을 선동하여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천둥의 마음은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합니다. 그건 우리 시대 현대인들이 가진 마음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아들들의 고민을 아는 지 모르는지 쇠돌을 중매 중인 막순

생각해보면 현대인들은 '아래적(我來賊)'처럼 한밤중에 지붕을 넘나드는 도적이 되지 않아도 '민란'을 일으킬 수단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비록 제 역할을 하진 못한다 해도 조선 후기 백성들 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신분의 제약도 없는 사회에 살고 있음에도 현대인들은 자신이 먼저 나서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일어나지 않아도 동시에 '천둥'과 같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대신 의적으로 나서주길 바라는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은 답답한 세상에서 그냥 버티자 싶으면서도 천둥의 미적미적 고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은 마음, 그게 드라마 '짝패'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마음이겠지요. 천둥은 아직까지 자신도 남도 희생시키길 원치 않고 있습니다. 어제 방송에서 동녀는 현감을 위협하며 자신이 '아래적'이라고 했지만 그건 아마도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신분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답답한 속물같았던 그녀가 오늘 밤 조선 사회에 경각심을 주는 새로운 인물로 거듭날 지 천둥 보다 먼저 의적이 되어 있을 지 궁금합니다.


* 인터넷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면 PC 전체가 바보가 되기도 하는군요. 회선 점검할 때까지 인터넷이 느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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