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한국 드라마 보기

49일의 미남 스케줄러와 '데드 라이크 미'

Shain 2011. 4. 30. 11:23
728x90
반응형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여섯명의 남녀를 통해 이야기하는 드라마 '49일'은 아시다시피 초반에 표절 논란에 잠시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그룹 '신화'의 팬픽 '49일 간의 유예'가 드라마의 내용과 비슷하다는 이야기였는데 분명 두 이야기는 전개 방식 등이 몇부분 비슷합니다. 굳이 양쪽이 비슷하다거나 표절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이 드라마에서 사용하고 있는 몇가지 소재들이 기존 다른 드라마들이나 애니메이션에서 이용되던 것들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체계적인 세계관이나 독자적인 방식을 구축해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익숙한' 것들을 끌어다 이야기하는 방법도 시청자들을 편하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한 수단일지도 모릅니다. 어디서 한번쯤 본듯한 느낌 때문에 '49일'에서 구현된 저쪽 세상은 그닥 무서워 보이지도 않고 어두침침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물론 저승사자, 즉 스케줄러 송이수(정일우)의 발랄하고(?) 디지털한 시스템 운영방식 덕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매트릭스'에서 탈출한듯한 스케줄러 선배(반효정)의 깜짝 등장은 예상치 못한 재미를 주기도 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연락하고 기타를 치거나 클럽에 들락거리거나 수영을 하는 등 인간들 속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등 동양의 저승사자, 서양의 사신 역할을 하는 스케줄러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흥미로운 특징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죽어 스케줄러로 살면서 전생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 채 연인과 가까워진다는 모티브, 그 부분이 애니메이션 '달빛천사'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고 말씀드렸는데 극중 송이경(이요원)이 송이수가 만나는 장면에서는 또다른 미국 드라마가 떠오르더군요.

2003년 1시즌, 2004년 2시즌이 제작된 드라마 '데드 라이크 미(Dead like me)'는 대학을 다니다 그만둔, 매사에 의욕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는 18세의 조지 래스가 죽어 사신이 되는 내용입니다. 무뚝뚝하다 못해 종종 심술궂은 그녀의 행동은 가족들에게도 골치거리이지만 회사에서도 좋은 일자리를 맡지 못하는 원인이 됩니다. '쓰레기'처리장같은 문서실을 오고가던 중 우주에서 떨어진 변기 뚜껑에 맞아 죽고 말지요.

드라마 '49일'의 스케줄러들

2001년에 러시아는 우주에 있던 우주정거장 '미르호'를 폐기시켰습니다. 86년에 설치되어 임무를 수행하던 '미르호'는 공중폭파되어 태평양에 수장되었죠. MBC '서프라이즈'에도 방영되었던 내용인데 왜 러시아가 이 멀쩡한 우주정거장을 무조건 폭파시켰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우주에서 발견된 이상한 박테리아, 어떻게 해도 죽지 않거나 파괴해도 무서운 독소를 뿜어내는 박테리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한때 태평양에 떨어진 미르호의 잔해에서 그 변종균이 유출되지 않을까 걱정하던 사람들도 있었죠.

이 드라마는 그 미르호의 산산조각난 조각, 그중에서도 '변기 뚜껑' 때문에 주인공 조지 래스(엘렌 뮤스)가 죽었다고 설정한 것입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툴툴거리며 재미없어할 거 같던 조지에게도 처음으로 놀라고 분노하는 감정같은게 엿보인 게 이 죽음 때문입니다. 하필 재수가 없는 건지 재수가 있는 건지 조지 래스는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전임 '언데드(Un-Dead, 일종의 사신)'의 임무를 그대로 물려받게 됩니다.

변기 뚜껑에 맞아 죽어 사신이 된 조지 래스와 사신 선배들 (오른쪽은 엄마)

이 '데드 라이크 미'가 보여주는 현대적 사신들의 이야기는 일종의 블랙 코미디입니다. 언데드들은 죽은 후에 각자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스케줄러' 송이수처럼 저승의 비밀에 대해서도 정확한 그쪽 세계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송이수는 그나마 '럭셔리'하게 지구에서의 삶을 즐기도 있는데 '데드 라이크 미'의 언데드들은 이열치열 굶지 않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죽어버린 사람들의 쓰레기를 치우는 존재들같기도 합니다. 스케줄러 보다 한참 궁상맞지요.

하여튼 아무것도 못해보고 즐겁게 살아보지 못한 18살 소녀 조지는 그제서야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허무했는지 깨닫게 되는 거 같습니다. 평소에 없는 사람 취급했던 10살 짜리 동생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장면도 지켜보게 되고 자신을 끌고 온 사신들이 '스케줄러'처럼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장면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죽으면 기뻐할 줄 알았던 엄마가 엉망이 되어 울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뭔가 엄마를 위한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하기도 하죠.


Dead Like Me 오프닝, 저 사신의 복장 어쩐지 익숙합니다.
산 사람들 사이에서 멀쩡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신들이 인상적인 오프닝.

'49일'의 스케줄러가 핸드폰을 보며 자신의 영혼 관리, 즉 저승으로 갈 영혼들을 무사히 인도하는 것처럼 이들 '언데드' 역시 바쁜 스케줄에 시달립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죽게 될 지 시간과 장소가 적힌 '스케줄'이 전달되면 그 장소에서 대기하며 죽은 영혼을 거두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신들은 자신이 배정된 '부서' 즉 살인, 질병 같은 죽음의 원인에 따라 분류되어 '일'을 맡게 됩니다. 죽어서 정신을 못 차리는 영혼을 '수거'하는 일과도 비슷하지요.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부분이 좀  다르긴 합니다만 하여튼 이 'Un-Dead'의 성격과 드라마 속 '스케줄러'가 상당 부분 많이 유사해 보입니다. 대신 '사신'들은 시체들이 죽어나간 방에서 거주한다던가 시체들이 가지고 있던 돈이나 쓸만한 물건들을 챙겨야 사신들도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씁쓸하다 싶을 정도로 죽음을 조롱하는 방식이 짓궂다는 것과 스케줄러가 깔끔하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물론 유부남과 바람난 아가씨에 대한 방식 같은 건 유사하지만요).

'Dead Like Me'에서 스케줄이 전 달되는 방식. 조지가 맨처음 안내한 저승으로 가는 길.

스케줄러, 사신들의 얼굴은 전혀 다른 얼굴로 보인다.


'49일 여행자' 신지현(남규리)이 아르바이트하고 돈벌고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초반부 '조지 래스'가 자신의 거주지를 얻어내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느낌과 유사하지만 무엇 보다 '49일'에서 'Dead Like Me'가 연상된 건 살아있는 사람들에겐 조지의 얼굴이 아주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 몇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가족들은 전혀 조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송이수의 얼굴을 전혀 엉뚱한 사람으로 알아본 송이경(이요원)처럼 말입니다.

드라마 제목 'Dead Like Me'는 당신들도 언젠가 나처럼 죽는다, 뭐 그런 뉘앙스의 말로 주인공 조지 래스가 언데드의 입장으로 시청자들에게 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시크'하다고 해야할지 하여튼 '49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밝다기 보다는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전반적으로 우울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 드라마 제작자의 또다른 '죽음'에 대한 장난스런 이야기가 아마 'Pushing Daisies'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Dead Like Me'의 사신들에 비하면 팔자좋아 보이는 여유로운 스케줄러

모방이다 아니다 표절이다 아니다 그런 문제와 상관없이 비슷한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느냐에 따라, 즉 밝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끌고 가느냐 약간 비비꼬인 블랙코미디로 끌고가느냐에 따라 특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게 '드라마'의 재미인 듯합니다. 꽃미남 '스케줄러'의 조금은 방정맞고(?) 흥미로운 접근 방식도 괜찮겠지만 비틀어진 느낌으로 '죽음'을 대하는 사신 이야기도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2시즌 종료지만 은근 팬층이 두터워 비디오 버전 영화도 출시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49일'은 반복적으로 어디서 본듯한 장면이나 세계관을 노출시키는 건 사실이지만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방식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모으는 흡입력이 있습니다. 요즘은 '어디에서 본 듯한 모티브' 정도로는 표절이라 쉽게 말하기 힘든 시대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묘사되는 드라마는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대부분 익숙해진 것 같구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자신 만의 색깔을 구축하느냐 하는 점인 듯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