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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모습도 두고 보아서는 안되고 올바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세상에 많은 사람사는 모습들 중에 제일 안타까운 건 '약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모양새입니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정체불명의 힘에 함께 대항해도 모자라건만 오히려 강자들의 나쁜 질서를 배워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은 가슴이 아픕니다. 극중 양반인 김진사(최종환)가 점잖은 모습으로 인정많고 따뜻하게 비치는 것과는 달리(김진사를 악인으로 인식하지 않는 분이 더 많더군요) 막순(윤유선)이 악녀로 보이는 건 그녀가 약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반상의 질서가 유별하고 양반의 목숨만 목숨인 시대라 하지만 직접 낳은 자식을 굶어죽게 내버려둘 어미가 어디 있으며 주인마님의 닥달과 고문을 버티며 정신나간 양반네의 첩으로 살고 싶은 여종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진사가 자신의 아이, 천둥(천정명)을 위해 귀동(이상윤)의 어미를 젖어미로 들였기에 모든 원한이 시작됐고 그가 조선사회의 지식인이자 권력층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삶이 피폐해졌습니다. 김진사는 아들을 빼앗긴 피해자 역할 만은 할 수 없는, 신분의 '원죄'를 가진 양반네입니다.
그렇지만 조선 사회, 아니 그 장면 속에서 상징하는 현대사회가 '양반네'를 모두 물리친다고 해서 바뀌거나 달라지게 되지는 않습니다. 서민들에게 푼돈을 뜯어먹어 재산을 불린 왕두령패의 왈자들처럼 덴년의 종문서를 가지고 덴년을 '소'와 같은 재물 취급을 하던 막순처럼 약자들이 '못된 짓'을 똑같이 답습한다면 늘 같은 일이 반복될 뿐 나아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덴년의 종문서를 태워버린 막순의 행동은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 양반네와는 다른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드라마 '짝패'의 대결구도를 모르겠단 이야기를 하지만 '짝패'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결 구도는 제가 보기엔 '타인'과의 대결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결입니다. 장꼭지(이문식)가 도갑(임현성)의 죽음을 극복하고 아래패가 되기 위해 각성하고 행단 행수의 길을 포기하고 아래적의 수령이 되기로 마음먹은 천둥의 자각도 스스로를 극복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속한 신분을 지키려는 '양반네'는 절대 그들을 돌봐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속담 중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있습니다. 속뜻은 배가 고프면 못할 짓이 없다는 뜻, 즉 물건을 훔치면 포도청에 잡혀가 물고를 치르게 될 거란 걸 알면서도 무슨 짓이라도 한다는 말입니다. 드라마에서 묘사한대로 설마 포도청이 도둑질로 사람을 패죽이기까지 했을까 싶었는데 정말 지독한 곳이란 기록이 남아 있더군요. 배가 고파 한 짓이면 경찰도 온정을 베풀만 하건만 작은 도둑질이라도 갇히면 죽어서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드라마 '짝패'에서는 김진사를 비롯한 여러 양반들이(특히 재물을 관리하는 호조) 포도청과 결탁해 각종 뇌물을 수수받는 걸로 나오지만 양반네들도 포도청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방관리들의 지침 등을 적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적약용은 '다른 벼슬은 몰라도 백성들을 심판하는 포도청 직원들은 꼭 청렴한 인물로 뽑아야한다. 포도청 직원이 청렴하지 못하면 가장 먼저 백성들이 피해를 보고 고통으로 쓰러지며, 재앙이 후손에까지 미친다'며 포도청을 경계하는 말을 남깁니다.
극중에서도 종종 조선 시대 경찰의 '은어'와 악행을 사용해 포도청 사람들을 묘사하곤 하는데 실제 남아있는 기록에 의존해 포도청을 재현한 것입니다. '모양을 내라(잔뜩 묶어라)', '새벽녘이다(단서를 잡았다)' 같은 은어를 공포교(공형진)와 귀동이 포졸들에게 가르치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성부에는 좌우 포도청이 있고 각각 포도대장을 두었으며 그 아래에 종사관을 3명씩 둡니다. 그 아래 직책이 귀동과 공포교가 일하고 있는 포도부장 즉 포교입니다. 드라마는 그런 제도적인 부분 이외에도 '포도청'의 악명까지 그대로 묘사했습니다.
천주교 선교를 위해 우리 나라를 다녀간 프랑스인 '리델(Ridel)'은 1878년 4개월 가량 우포도청에서 문초를 받고 나머지 기간 동안 좌포도청에서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상황을 잘 모르는 외국인의 눈으로 본 모습이라 편견이 일부 있을 수 있겠지만 밤낮으로 발에 차꼬(착고)를 차고 잠이라도 들라치면 두들겨 패며 깨웠다는 이야기(옥에 갇힌 사람들이 눕지 않고 앉아 있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도둑들은 하나같이 가련한 몰골로 병에 걸려 있더라는 이야기. 1
포졸들은 천주교도, 도둑, 채무 불이행자들을 나눠 가뒀는데 도둑들은 굶주리고 있고 돈을 안갚아 잡혀온 자들은 사식으로 잔치를 벌이더라는 이야기, 목매러 가자며 식사시간에 죄인을 끌고 나가 즉결 처분하더란 이야기, 포졸들과 포교들이 평소에는 할일없이 놀다가 죄수들을 상대할 때는 맹수로 돌변했다는 이야기, 실제로 실록에 남아 있는 헐장금(歇杖金)과 차사례(茶事禮)에 대한 기록, 드라마에서 묘사된 상황과 그닥 다르지 않은 비참한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어제 방영분에서는 '포도청의 위신'을 운운하던 공포교가 백성들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는 장면까지 연출되었습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5월이고 곧 5.18 이다 보니 그 장면을 마음 편히 시청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백성이 없으면 포도청도 필요없고 포도청 사람들이 백성을 착취하고 왈자패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되면 그 나라는 살 가치가 없는 나라입니다. 원성이 자자한 백성을 흉폭하다 단정하고 그들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고 그들을 묶어 옥에 가두는 공포교의 행동은 가슴 깊이 사무치는 장면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래적과 포도청 사람들이라면 조선 후기 민중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막순, 쇠돌(정인기), 큰년(서이숙), 황노인(임현식), 현감(김명수), 삼월(이지수)같은 때묻은 옷을 입은 백성들입니다. 포도청 사람들이 문자를 입에 달고 훈계하는 소리도 김진사같은 양반네가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며 힐난하는 말도 아래적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도 모르지만 그들은 존중받아야할 민중이고 지켜주어야할 삶의 결정체들입니다.
때로는 무지하고 어리석고 때로는 못되먹었지만 달이(서현진)가 미운 할아버지를 버릴 수 없듯 그들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귀한 양반의 핏줄이라며 천둥과 피를 섞기 싫다는 동녀(한지혜)는 자신 역시 양반사회의 피해자이면서도 아직까지 신분의 허울이 왜 허망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붕괴할 수 밖에 없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김진사의 아들이 아니라는 귀동의 고백으로 동녀에게도 변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남한테 못된 짓해서 잘 사는 것 보다 낫다'는 삼월의 한마디. 조선달(정찬)과 함께 귀동과 막순을 협박해 한몫 뜯어보려던 현감은 삼월의 인생을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어리석은 양반이지만 그 말에 공감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보면서 자신의 신분이 껍데기 뿐이란걸 깨달았을 것입니다. 형님이라 부르며 떡파는 법을 알려주는 엿장수가 이젠 자신의 동생이고 현감이라 불리던 그는 떡장수에 불과합니다. 흔한 표현으로 이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황사가 심해서 목이 따끔거리긴 합니다만 아름다운 꽃이 피는 오월입니다. 사람은 사는 게 공부고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할 타고난 '의무'가 있다고 합니다. 아래적이 된 천둥은 민두령(송경철) 등과 함께 고창현을 털기 위해 암행어사로 위장합니다. 해주와 고창 현감은 뒷돈 담당인 호조판서의 '뇌물줄'로 어떻게든 자본을 끊기 위해선 처리해야할 곳인데 아래패의 패두들은 반으로 나뉘어 천둥에게 반정도의 인원은 협조하지 않습니다. 속시원한 의적 행보를 보여줄 '고창'에서의 작전, 오늘밤을 기대해 봅니다.
이미지 출처, 참고기사:
아무리 반상의 질서가 유별하고 양반의 목숨만 목숨인 시대라 하지만 직접 낳은 자식을 굶어죽게 내버려둘 어미가 어디 있으며 주인마님의 닥달과 고문을 버티며 정신나간 양반네의 첩으로 살고 싶은 여종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진사가 자신의 아이, 천둥(천정명)을 위해 귀동(이상윤)의 어미를 젖어미로 들였기에 모든 원한이 시작됐고 그가 조선사회의 지식인이자 권력층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삶이 피폐해졌습니다. 김진사는 아들을 빼앗긴 피해자 역할 만은 할 수 없는, 신분의 '원죄'를 가진 양반네입니다.
그렇지만 조선 사회, 아니 그 장면 속에서 상징하는 현대사회가 '양반네'를 모두 물리친다고 해서 바뀌거나 달라지게 되지는 않습니다. 서민들에게 푼돈을 뜯어먹어 재산을 불린 왕두령패의 왈자들처럼 덴년의 종문서를 가지고 덴년을 '소'와 같은 재물 취급을 하던 막순처럼 약자들이 '못된 짓'을 똑같이 답습한다면 늘 같은 일이 반복될 뿐 나아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덴년의 종문서를 태워버린 막순의 행동은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 양반네와는 다른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드라마 '짝패'의 대결구도를 모르겠단 이야기를 하지만 '짝패'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결 구도는 제가 보기엔 '타인'과의 대결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결입니다. 장꼭지(이문식)가 도갑(임현성)의 죽음을 극복하고 아래패가 되기 위해 각성하고 행단 행수의 길을 포기하고 아래적의 수령이 되기로 마음먹은 천둥의 자각도 스스로를 극복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속한 신분을 지키려는 '양반네'는 절대 그들을 돌봐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명높은 조선후기 포도청, 사실적 재현
오래된 속담 중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있습니다. 속뜻은 배가 고프면 못할 짓이 없다는 뜻, 즉 물건을 훔치면 포도청에 잡혀가 물고를 치르게 될 거란 걸 알면서도 무슨 짓이라도 한다는 말입니다. 드라마에서 묘사한대로 설마 포도청이 도둑질로 사람을 패죽이기까지 했을까 싶었는데 정말 지독한 곳이란 기록이 남아 있더군요. 배가 고파 한 짓이면 경찰도 온정을 베풀만 하건만 작은 도둑질이라도 갇히면 죽어서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드라마 '짝패'에서는 김진사를 비롯한 여러 양반들이(특히 재물을 관리하는 호조) 포도청과 결탁해 각종 뇌물을 수수받는 걸로 나오지만 양반네들도 포도청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방관리들의 지침 등을 적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적약용은 '다른 벼슬은 몰라도 백성들을 심판하는 포도청 직원들은 꼭 청렴한 인물로 뽑아야한다. 포도청 직원이 청렴하지 못하면 가장 먼저 백성들이 피해를 보고 고통으로 쓰러지며, 재앙이 후손에까지 미친다'며 포도청을 경계하는 말을 남깁니다.
극중에서도 종종 조선 시대 경찰의 '은어'와 악행을 사용해 포도청 사람들을 묘사하곤 하는데 실제 남아있는 기록에 의존해 포도청을 재현한 것입니다. '모양을 내라(잔뜩 묶어라)', '새벽녘이다(단서를 잡았다)' 같은 은어를 공포교(공형진)와 귀동이 포졸들에게 가르치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성부에는 좌우 포도청이 있고 각각 포도대장을 두었으며 그 아래에 종사관을 3명씩 둡니다. 그 아래 직책이 귀동과 공포교가 일하고 있는 포도부장 즉 포교입니다. 드라마는 그런 제도적인 부분 이외에도 '포도청'의 악명까지 그대로 묘사했습니다.
천주교 선교를 위해 우리 나라를 다녀간 프랑스인 '리델(Ridel)'은 1878년 4개월 가량 우포도청에서 문초를 받고 나머지 기간 동안 좌포도청에서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상황을 잘 모르는 외국인의 눈으로 본 모습이라 편견이 일부 있을 수 있겠지만 밤낮으로 발에 차꼬(착고)를 차고 잠이라도 들라치면 두들겨 패며 깨웠다는 이야기(옥에 갇힌 사람들이 눕지 않고 앉아 있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도둑들은 하나같이 가련한 몰골로 병에 걸려 있더라는 이야기. 1
포졸들은 천주교도, 도둑, 채무 불이행자들을 나눠 가뒀는데 도둑들은 굶주리고 있고 돈을 안갚아 잡혀온 자들은 사식으로 잔치를 벌이더라는 이야기, 목매러 가자며 식사시간에 죄인을 끌고 나가 즉결 처분하더란 이야기, 포졸들과 포교들이 평소에는 할일없이 놀다가 죄수들을 상대할 때는 맹수로 돌변했다는 이야기, 실제로 실록에 남아 있는 헐장금(歇杖金)과 차사례(茶事禮)에 대한 기록, 드라마에서 묘사된 상황과 그닥 다르지 않은 비참한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어제 방영분에서는 '포도청의 위신'을 운운하던 공포교가 백성들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는 장면까지 연출되었습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5월이고 곧 5.18 이다 보니 그 장면을 마음 편히 시청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백성이 없으면 포도청도 필요없고 포도청 사람들이 백성을 착취하고 왈자패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되면 그 나라는 살 가치가 없는 나라입니다. 원성이 자자한 백성을 흉폭하다 단정하고 그들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고 그들을 묶어 옥에 가두는 공포교의 행동은 가슴 깊이 사무치는 장면이었습니다.
막순의 각성과 삼월의 입바른 한마디
조선 후기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래적과 포도청 사람들이라면 조선 후기 민중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막순, 쇠돌(정인기), 큰년(서이숙), 황노인(임현식), 현감(김명수), 삼월(이지수)같은 때묻은 옷을 입은 백성들입니다. 포도청 사람들이 문자를 입에 달고 훈계하는 소리도 김진사같은 양반네가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며 힐난하는 말도 아래적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도 모르지만 그들은 존중받아야할 민중이고 지켜주어야할 삶의 결정체들입니다.
때로는 무지하고 어리석고 때로는 못되먹었지만 달이(서현진)가 미운 할아버지를 버릴 수 없듯 그들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귀한 양반의 핏줄이라며 천둥과 피를 섞기 싫다는 동녀(한지혜)는 자신 역시 양반사회의 피해자이면서도 아직까지 신분의 허울이 왜 허망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붕괴할 수 밖에 없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김진사의 아들이 아니라는 귀동의 고백으로 동녀에게도 변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남한테 못된 짓해서 잘 사는 것 보다 낫다'는 삼월의 한마디. 조선달(정찬)과 함께 귀동과 막순을 협박해 한몫 뜯어보려던 현감은 삼월의 인생을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어리석은 양반이지만 그 말에 공감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보면서 자신의 신분이 껍데기 뿐이란걸 깨달았을 것입니다. 형님이라 부르며 떡파는 법을 알려주는 엿장수가 이젠 자신의 동생이고 현감이라 불리던 그는 떡장수에 불과합니다. 흔한 표현으로 이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황사가 심해서 목이 따끔거리긴 합니다만 아름다운 꽃이 피는 오월입니다. 사람은 사는 게 공부고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할 타고난 '의무'가 있다고 합니다. 아래적이 된 천둥은 민두령(송경철) 등과 함께 고창현을 털기 위해 암행어사로 위장합니다. 해주와 고창 현감은 뒷돈 담당인 호조판서의 '뇌물줄'로 어떻게든 자본을 끊기 위해선 처리해야할 곳인데 아래패의 패두들은 반으로 나뉘어 천둥에게 반정도의 인원은 협조하지 않습니다. 속시원한 의적 행보를 보여줄 '고창'에서의 작전, 오늘밤을 기대해 봅니다.
이미지 출처, 참고기사:
- 조선 시대 포도청에 대한 이미지는 형정도첩 등을 참고하세요. 조선 후기의 실제 사진 자료도 종종 남아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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