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한국 드라마 보기

미스리플리, 한국 사회를 조롱하는 장미리의 거짓말

Shain 2011. 6. 29. 09:37
728x90
반응형
사회활동을 하는 한 여성이 실력이나 능력이 아닌 미모나 패션, 애교같은 것에 의존해 성공하려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물론 최근 유행하는 신종 악플러들은 그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한국 여자라 평가할 수도 있고, 못 생긴 여자들의 질투이며 미모나 애교도 능력의 일부라 말할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긍정적인 면으로 생각해봐도 여성의 성공 방법이 거짓말과 여성성 뿐이란 건 옳치 못한 일입니다. 더불어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한 많은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미스리플리'의 여주인공 장미리(이다해)는 더군다나 실제 성을 상품화하는 공간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술집에서 돈 때문에 웃음을 팔고 술을 마시는 자신의 모습을 끔찍하다고 했고 비참하다고 했습니다. 본인도 그렇게 사는 것이 싫다고 했으며 어떻게든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기를 쓰고 노력했습니다. 똑똑한 장미리의 순발력과 집중력은 누구 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기본적인 자질도 탁월합니다. 그러나 결국 '술집'을 벗어나 한 사람의 호텔리어가 됐음에도 그녀의 인생은 웃음을 파는 술집에서의 삶과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대학 교수로 TV 패널로 재벌가의 예비 며느리로 활약하는 장미리

자기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인생에서 거짓말까지 하면서 벗어났는데 화려하고 빛나는 자리에서도 웃음을 팔아 성공을 유지한다는 게 스스로 행복할 것 같지 않습니다. 거짓말이 들통난 장명훈(김승우)에게 말한 것처럼 장미리는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끝을 모르고 달려가기만 합니다. 송유현(박유천)과 장명훈의 진심을 희롱한 것으로 모자라 자신을 대학 강단에 서주게 했던 많은 남자들의 호의를 받으며 교수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9회에서 방송된 송유현의 로맨틱한 노래와 프로포즈 장면, 그리고 장명훈에게 과거가 들통나는 장미리가 화제가 되었지만 장미리가 송유현과의 아름다운 미래를 약속하면서 늘어난 것은 행복한 꿈 만은 아닙니다. 장명훈을 속이고 송유현을 속이고 호텔 사람들을 속였던 그녀의 욕심이 이제는 학생들과 국민들까지 속이는 수준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녀의 거짓말로 열린 세로운 세계가 팽창하는 만큼 그녀의 세계가 한순간에 폭발하고야 말 위기도 커져버린 것입니다.



성공을 '거저먹게' 하는 '장미리의 남자들'

실제 대학 강단에 서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대학의 교수 임용 기준, 강의 기준이 제출해야할 서류도 많고 사뭇 엄격한 편이란 걸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반면 사회의 전문인력을 초빙해 학생들에게 필요한 강의를 하는 '특강'은 다소 기준이 약한 편입니다. 자신을 동경대 '일어일문학' 전공에 '건축학' 부전공자라 속인 장미리가 '건축학 특강'으로 대학 강단에 설 수 있었던 건 현장에서 근무하는 전문가 자격으로 설정한 듯합니다. 실무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을 초청강사나 평생교육원 강사 등으로 초빙하는 건 생각 보다 자격 기준이 약한 편입니다.

다른 일을 해보겠냐는 장명훈의 제안으로 특강을 나가게 된 장미리는 아름다운 외모와 특유의 흡입력으로 강의를 들을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학생들을 사로잡습니다. 특강의 정의가 이론의 전달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핵심을 전달하는 것이란 면에선 좋은 방법이었지만 공사 현장에서 직접 감독 지시하며 '건축'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문희주(강혜정)의 성실함과 학생들에게 자극적인 '키스 장면'을 연출하라고 해 분위기를 휘어잡는 장미리의 태도는 상당 부분 비교됩니다.

장미리의 거짓말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

어렵게 동경대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호텔 몬도에 취업한 문희주에 비하면 장미리는 아주 쉽게 호텔리어로서 성공한 편입니다. 성공의 발판이 되어준 것은 실력도 아니고 동료들의 인정도 아닌 남자와 운, 그리고 미모였습니다. 대학 강단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준 최본부장(김창완)과 박교수(맹상훈), 방송에 패널로 출연시키도록 도와준 이국장(이홍렬) 등은 예쁘고 재치있는 그녀를 단박에 스타 교수로 밀어주기로 합니다. 말 그대로 장미리를 위해 발로 뛰어주는 '장미리의 남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런 묘사들은 드라마의 모델로 삼았다는 변양균 정책실장과 신정아의 인연을 그대로 묘사하기로 마음 먹은 듯 약간은 억지스럽게 그려지는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거저먹는다'는 표현이 딱 알맞을 정도로 장명훈을 비롯한 주변 남자들이 그녀를 위해 나서는 장면은 희한하게도 실제 모델이 된 인물 주변을 떠돌던 남자들과 유사한 면이 있더군요(그 회고록에 등장한 남자들). 신정아의 삶과 드라마 속 장미리의 삶을 비교해보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게 '한국 사회'다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실력자이지만 표절 의혹을 받는 문희주, 가짜지만 주목받는 자리에 서는 장미리

극중에서 장미리가 건축학이나 일문학에 대한 전문가다운 발언이나 식견을 드러내는 장면은 없었습니다. 최본부장이 일어일문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하이쿠를 읊을 때도 웃음으로 위기를 모면하며 넘어갔을 정도니까요. 노력하는 문희주는 인정해주지 않던 세상 사람들은 미리의 거짓말에는 속아넘어갑니다. 알고 보면 세상이란 그렇게 허술한 것이기도 하고 그들이 세운 학력이나 성공의 잣대도 우스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술집 여자' 장미리에게 세상은 그닥 믿을만한 곳이 못되는 것입니다.

지성의 공간이라는 대학에서 강의하러 온 교수에게 수업을 들을 생각 보단 '교수님 예뻐요'라며 농담을 던지고 연애행각을 벌이는 학생들, 강단에 세울 강사나 방송에 출연시킬 패널의 자질이나 실력을 검증하기 보다 '예쁘다'며 추파를 건내는 중년의 남자들, 포트폴리오의 원작자인 문희주가 나타나도 장미리가 거짓말을 했을 리가 없다고 대응하는 박교수의 모습은 현실에서도 의외로 익숙하게 볼 수 있었던 장면들입니다. 실제 모델이 된 케이스도 그랬지만, 실제 장미리같은 인물의 미인계와 학력 위조, 허술한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라 장담할 수 있을까요?



드라마를 지탱하는 박유천의 힘

장미리는 열심히 살아봤자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을 가진 인물입니다. 거짓말을 해야할 만큼 세상에 데인 인물로 남성을 불신하고 있는 여성이기도 합니다. 문희주의 경력을 카피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려고 기를 쓰는 그녀는 타인들을 괴롭히고 있긴 하지만 안쓰러운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를 후회하게 만드는 건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해주며 모든 걸 희생하는 송유현과 장명훈같은 남자들의 너그러움입니다.

송유현의 사랑에 과거를 후회하는 장미리.

송유현의 계모인 이화(최명길)가 장미리의 입양과정과 과거를 캐고 있고, 장명훈도 후쿠오카에서 일했던 장미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포트폴리오 표절을 의심받고 있는 장미리가 장명훈과 사귀는 사이였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닌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결혼발표까지 했으니 폭탄이 터지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송유현의 말대로 뜻하지 않은 과거와 사진이 떠똘게 될 것입니다. 장미리의 친엄마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화가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요.

장미리는 자신이 끝까지 올라가려 할수록 비극 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예감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히라야마(김정태)의 무서운 눈초리처럼 과거의 불행은 장미리를 떠나지 않겠지요. 이렇게 어두운 장미리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무래도 로맨틱한 박유천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미리의 세상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게 하고 거짓말에 죄책감이 들게 만드는 역할, 이 드라마의 이야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동화 속의 왕자님이기도 한 박유천이 드라마를 많은 부분 지탱하고 있는 듯하네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