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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빛나는, 차별받는 황금란 도망칠 곳이 없다

Shain 2011. 7. 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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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부모가 기른 자식은 평생 자기 인생 한번 챙길 시간 없이 돈벌어다주는 기계처럼 고생만 하고 부자 부모가 기른 자식은 똑똑하게 자라나 출판사 후계자를 노려볼 정도로 자립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이 끊임없이 화제가 되며 게시판을 달구고 있는 건 이런 돈없는 사람의 서러움이랄까 돈이 없어서 사람 역할도 못하는구나 싶은 상황을 현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그런 집이 없잖아 있겠지만 7-80년대에는 장남, 장녀가 집안 뒷바라지를 하다 미혼으로 늙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좀 있는 집 자식들은 그런 친구들을 보며 '네 인생 네가 사는거다'며 나중에 가족들이 그 공 알아주지 않는다고 충고를 해주지만 그렇게 가족들 먹여 살리는 입장에선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가족이 굶어죽는다는 공포가 두려움이 되고 족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반짝빤짝 빛나는'의 주인공 황금란(이유리)이 난봉꾼 아버지 황남봉(길용우) 때문에 집안이 어려워 이권양(고두심)과 함께 생계를 꾸려가면서 느낀 기분이 바로 그랬었겠죠. 착하기 때문에 더욱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겁니다.

한정원은 정말 황금란을 이해할 수 있는 걸까


요즘은 이 드라마가 백곰(김지영)의 살벌한 아들뺏기 싸움, 조폭과 칼부림 등으로 점점 더 무서운 느낌까지 들지만 전체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는 바로 '돈'입니다. 돈에 집착하고 돈에 목숨걸고 재산 물려주지 않으면 아버지도 싫다고 하는 그 사람들을 질타해도 고상한 척 신림동 식구들을 무시하는 진나희(박정수)가 모든 재산이 잃고도 그들을 무시할 수 있을 지 그 부분은 장담할 수 없는 겁니다.

금란이 정원을 미워하게 된 계기, 금란에 가슴에 결정적으로 대못을 박은 한정원(김현주)의 한마디는 '자꾸 남한테 자기 인생 부탁하지 말아요. 자기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윤승재(정태우)가 금란에게 모든 것을 줄듯 따뜻하게 굴며 사귀다가 금란을 걷어차고 정원이와 선을 볼 때 승재에게 매달리는 금란이 똑똑한 정원 입장에서는 한심하고 어리석어 보였겠지요.

자기 인생이나 앞길은 생각해보지 못하고 모든 월급을 고스란히 가족에게 줘야하는 금란, 그런 금란이 유일하게 꾸었던 '결혼'이란 소박한 꿈을 한심한 위탁 정도로 간주한 정원이야말로 세상물정 모르는 어른은 아니었을까요. 자기 인생도 똘똘하게 챙기고 가족들도 먹여 살리는 수퍼우먼이 되라는 것인지 만화 속 주인공처럼 항상 웃으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것인지 남들 다 나오는 대학도 제대로 갈 수 없던 금란에겐 그녀의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같잖은 훈계이기도 합니다.

'돈은 공기와 같은 거다'라는 백곰과 자식은 못 이긴다는 이권양


금란이는 신림동 가족을 떠나올 때도 퇴직금을 넘기고 올만큼 그쪽 가족 생계에 대한 고민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돈과 생계가 삶의 최고 목적이고 가치관이던 시절의 그녀는 분명 주어진 인생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지치고 고단한 삶을 다 버리고 평창동에서 부자로 살아보고 싶었던 자신을 남들도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늘 잘난 가치관으로 훈계하려 드는 정원은 그녀가 신림동에 그래선 안된다고 합니다.

그 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정말 재수없는 정원이, 겪어보지 못한 일은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데 정원이는 아직 그런 것도 모르나 봅니다. 네가 신림동에서 황남봉와 이권양의 둘째딸로 살았어도 나 보다 더 잘 할 수 있었겠어? 그런 질문이 목구멍에 치밀어 오르는 기분, 황금란의 처지가 되어 본 적이 없다면 절대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말이죠. 더군다나 자기 대신 부유하게 살아온 한정원에겐 번듯한 직장도 있고 신데렐라로 만들어줄 왕자도 있는데 말입니다.



정원도 돈없으면 똑같은 고민을 하는 게 정상

돈이 세상살이의 전부가 아니란 말은 맞습니다. 백곰처럼 징그럽게 돈을 좋아해 남편까지 칼부림에 죽게 만들 정도로 돈돈거리고 사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행복해질 리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백곰의 돈 때문에 불행해질 것이 틀림 없습니다. 한지웅(장용)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도 궁극적으론 맞는 말이고 부자들이 따라야할 철학이기도 합니다.

사채업자 백곰이 남들에게 함부로 할 수 있는 이유는 돈이 무섭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백곰에겐 돈이 곧 권력이고 힘입니다. 쫄쫄 굶고 살 곳도 변변치 않은 사람들은 돈 한푼에 내일이 무섭고 미래가 두렵게 느껴집니다. 그런 삶의 무게를 제대로 아는 황금란이 '돈 따위 없어도 그만'이라고 하는 말과 돈고생 안해본 한정원이 '돈은 없으면 불편할 뿐이지'라고 하는 건 상당히 다른 무게를 가진 말입니다.

가난한 아버지 황남봉과 부자 아버지 한지웅의 대조적인 삶


이 드라마가 어릴 때부터 고생만 하며 자라 '돈'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황금란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한정원이 '악역'이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황금란이 한지웅의 집에 살며 느낄 수 있는 어려움은 생각 보다 많습니다. 막상 부자집 딸이 되고 보니 사치하게 자신을 꾸미고 명품 옷을 구매하는 것 말고는 할 일도 없고, 어릴 때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공부 때문에 차별받는 내용이 부각될 수도 있었습니다.

돈돈거리며 살던 서른살 또래의 한 여성이 부유한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컴플렉스는 생각 보다 상당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갖춰야할 모습을 한정원이 그대로 갖고 있는 것도 참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인데 드라마 속 황금란은 그 고통을 자기 발전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악역'이 되었습니다. '정원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악역에도 급이 있다는데 계약서나 위조하고 다이어리나 훔치는 가장 질낮고 어리석은 악역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다시는 신림동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황금란과 울부짖는 이권양


한정원은 벽이 얇아서 옆방 소리까지 고스란히 들리는 신림동 살림살이에 긍정적으로 적응하는 것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부유한 자의 여유랄지 오히려 주변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한정원, 만약 실제 그런 처지에 처하게 된다면 등이 배기고 샤워도 맘대로 하기 힘든 그곳의 삶이 좋기만 했을까요? 월급 전부가 모두 빚갚는데 쓰이는 그런 인생이 즐겁기만 했을까요? 일각에서 두 사람에 대한 묘사가 '차별'이라 느끼는 건 확실히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어제 방영분을 보니 원수진 곳이 많은 백곰을 죽이려 누군가 백곰의 집으로 침입한 것 같은데 송편집장(김석훈)이나 황금란 둘 중 한사람은 다치게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금란이 다쳐서 송편이 그녀를 책임지게 될 것이냐 송편이 다쳐서 백곰이 마음을 바꿔먹게 될 것이냐 어느 쪽이 되든 간에 드라마 전개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다. 불쌍한 처지였지만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 자기 인생 말아먹고 친부모 재산까지 팔아먹게 생긴 황금란. 정원이 금란의 자백을 녹화하는 걸 보니 이제 갈때까지 갔습니다.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지는 거다'라는 말은 아무래도 작가의 주장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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