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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리플리, 장미리를 구하고 싶은 남자 히라야마

Shain 2011. 7. 1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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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드라마를 보다 보면 종종 '신분'의 차이라고 표현되는 희한한 경계와 구분을 만나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 신분이 어딨냐고 말들은 하지만 서민들은 뉴스와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유리벽 너머의 세계를 보게 됩니다. 재물이나 돈이 부여하는 신분은 인간이 역사를 쓰기 시작한 이래로 한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고 합니다. 돈의 무서움을 실감하는 만큼 부유한 사람들은 계급과 신분이 다른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만 합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때로 그 구분이 지나치게 분명하고 대조적이라 껄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죠.

흔히 볼 수 있는 드라마 속 재벌과 서민의 구도는 이런 것입니다. 부드럽고 대범하고 너그러운 성격의 부유층과 그들이 가진 것을 탐내고 그 자리로 올라가려 기를 쓰는 서민층 주인공 혹은 반대로 가진자의 철학이 없는 졸부 타입의 재벌과 그들을 이겨내는 완벽한 서민 주인공으로 극단적 대립 구조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확실한 건 마치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입성할 수 없는 '유리의 성'처럼 그들의 세계가 현실과 분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거짓말이 드러나 대가를 치를 일만 남은 장미리

드라마 '미스 리플리'의 여주인공 장미리(이다해)는 거짓말을 시작할 때부터 생존에 지쳐 정상이 아닌 상태였습니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위로를 받고 따뜻하게 사랑받아도 모자랄 상황인데 오히려 마음 깊이 타오르는 열망을 삭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가려 애쓰고 있습니다. 학력을 위조하기 위해서 자신의 호텔 대표였던 장명훈(김승우)과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상류층의 일원이 되기 위해 송유현(박유천)과 거짓 진심을 꾸며내기도 합니다.

문희주(강혜정)의 인생을 카피해서 제것으로 만들고 아름다운 얼굴로 거짓된 세계를 꾸미려는 그녀는 '감히'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려 하고 있습니다. 극중 송유현의 계모로 등장하는 이화(최명길)은 장미리의 숨겨진 친어머니이면서도 장미리가 그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는 걸 극구 반대합니다. 결국엔 술집 여자이자 가짜 동경대 출신이며 장명훈의 연인이었던 장미리의 뺨을 때리며 가당치 않은 그녀의 욕망에 철퇴를 가합니다. 무서운 거짓말을 한 쪽은 장미리인데 어쩐지 당연한 추궁을 하는 이화가 악녀처럼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무례하지만 정확한 히라야마의 야유

장미리의 거짓말은 성실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이고 사회 제도를 유린하는 범법 행위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한 불운한 여자의 무모한 도전이자 생존방식이기도 합니다. 열다섯살에 양부모에게 도망쳐 빚을 갚기 위해 술집 여자가 되었다는 장미리에겐 처음부터 문희주처럼 동경대를 다니고 건축 전문가로 태어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술집 여자로 히라야마(김정태)의 여자가 되거나 거짓말이 들통나 끝장을 보거나 그녀에겐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찬가지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한순간 아름답게 피어났다 사그라드는 불꽃처럼 환하게 빛나며 이 남자 저 남자 유혹해 보지만 그 불꽃은 언젠가 꺼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그런 아슬아슬한 장미리를 계속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히라야마는 송유현과 장명훈에게 '진짜 장미리'의 정체를 알려주며 너희들이 사랑했던 건 본래의 장미리가 아니라며 조롱합니다. 두 남자에게 동경대 학력에 아름다운 미소, 사랑스런 애교가 아니더라도 장미리를 사랑할 수 있었겠느냐는 야유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히라야마의 말에 비웃음으로 응대하는 이화

'멋진 대학 나오고 폼나는 집안의 딸 정도 되야 사람 취급한다'며 어차피 버릴 장미리를 찾으러 왔다는 히라야마는 이화를 비롯한 '그 세계'의 사람들이 얼마 만큼 장미리를 괴롭힐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장미리란 여자를 꾸밈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어떤 학력과 과거와 집안을 갖춘 여자인지 끊임없이 따져보고 제단해서 결국엔 걸레처럼 찢어버릴 것이란 그의 예상은 장미리의 슬픈 미래이기도 합니다.

히라야마는 장미리를 대신해 이화에게 항의합니다. 가당치 않은 꿈은 대체 뭐고 사람이면 다 사람이지 사람 취급하지 않는 사람은 뭐냐고 따집니다. 그런 히라야마에게 이화는 자신의 '신분'과 '세계'에 대해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합니다. 로열의 경계를 넘을 수 없는 아이가 장미리, 주제를 모르는 가당치 않은 꿈을 꾸지 않는 장미리라는 이화의 무시와 비웃음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자신 역시 서민 출신의 재벌 아내이면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장미리를 천대할 수 있는지 의아하기도 한 부분이죠.

거짓말이 아니라도 장미리를 옥죌 출생의 비밀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은 한 죄인의 앞뒤 사정을 모두 따져 죄를 감면해주라는 말은 아닙니다. 적절한 죄값을 주되 그 사람이 그렇게 했어야 했던 사정이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때로는 법적으로 전혀 구제할 수 없는 법의 허점이 드러날 경우엔 제도적 보완을 하려 노력해야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실하게 아르바이트하고 취업하기 위해 면접을 보던 장미리가 거짓말의 유혹에 빠진 이유는 면접관의 성추행 때문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장미리의 상황을 실존인물인 신정아에 끼워맞추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도망칠 곳 없는 극중 장미리가 학력위조라는 거짓말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은 어쩐지 동정심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같이 밑바닥에서 살아본 히라야마는 그점을 모두 알면서도 여전히 장미리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테구요. 앞부분에선 그저 미리를 뒤쫓으며 공포를 유발하던 남자였는데 지금은 높은 지위에 있는 장명훈이나 송유현 보다 있는 그대로의 장미리를 보아준다는 장점이 부각되고 있네요.



모든 사람이 장미리의 곁을 떠나는데

'술집 여자' 장미리는 왜 평범하게 살고 싶어도 그 기회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일까요. 알고 보면 자신의 친어머니는 재벌집 사모님이고 계부인 송인수(장용)도 장미리의 존재를 그리 싫어하지 않는데 무슨 팔자가 그리 사나워 입양까지 가고 생고생을 했어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두 다 자신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송유현은 다른 건 다 받아들일 수 있지만 속였다는 사실 만은 용납이 안된다고 합니다. 독일병정 장명훈은 모든 걸 순리대로 처리하겠다며 방송출연부터 대학강의까지 하나 둘 거둬가고 있습니다.

거짓말이 탄로난 건 장명훈 탓이 아니다

학력위조는 분명 엄청난 범죄이기 때문에 장미리의 결말은 그닥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던 모든 것을 놓칠 수 없어 정신줄을 놓거나 위험한 선택을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아무리 이화가 자신의 친어머니이더라도 학력위조범으로 알려진 그녀가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무엇 보다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해주던 사람들이 외면하면 그 상실감을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넘봐서는 안될 세계를 꿈꾼 대가는 혹독할 것입니다.

히라야마는 송유현과 이화에게 모든 걸 폭로할 때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장명훈처럼 쉬엄쉬엄 뒷감당을 하고 송유현처럼 이리저리 질문하는 것 보다 모든 걸 까발리고 터트리는게 장미리가 좀 더 빨리 거짓말의 대가를 깨닫는 방법이란 걸 말입니다. 조금 더 일찍 드러났더라면 차라리 상처만 주는 거짓된 세계에 대한 꿈을 일찍 깰 수도 있었을 지 모릅니다. 어디로도 돌아갈 곳 없는 장미리가 쉴 곳은 정말 히라야마 뿐인 걸까요. 장미리는 마음아픈 거짓말 때문에 씁쓸한 안타까움이 남는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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