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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리플리, 히라야마의 치사하고 더러운 사랑

Shain 2011. 7. 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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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다 사랑의 정의가 다르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르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한 사람의 사랑을 단정할 수 없고 재단할 수 없다지만 남들 보기에 지독하고 무서운 한 인물의 입에서 '사랑'이란 말이 나올 땐 그 말이 과연 진심일까, 다른 감정을 사랑이라고 착각한 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론 조폭에게도 순정이 있고 세상 최고의 악당에게도 그 정도 빈틈(?)은 있는게 당연하다고들 하지만 어쩐지 '악당'과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도 않고 그럴 수 있을 것같지도 않다는게 사람들의 선입견 아닐까 싶습니다.

드라마 '미스 리플리'의 여주인공 장미리(이다해)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과거는 술집에서 남자들을 접대하던 시절입니다. 양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히라야마(김정태)의 업소에서 일하던 그녀는 악착같이 술마시고 돈을 모아 빚을 갚고 한국으로 도망을 칩니다. 여자들을 고용해서 고급 룸살롱을 운영하는 히라야마는 빚을 다 갚았음에도 희한하게 장미리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국까지 쫓아와 협박하는 그의 모습이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한국에서 업소를 차리고 장미리의 주변을 맴도는 히라야마. 그는 장미리가 사귀던 장명훈(김승우)를 찾아가 장미리에게 받을 빚이 있다며 돈을 받아오기도 하고 장미리가 송유현(박유천)과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의 주변에서 얼쩡거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업소에서 일하게 했으면 모르는 척 놓아줄 만도 한데 장미리 만큼 유능한 여성이 없어서 그런지 끊임없이 자기 곁으로 돌아오라 합니다.

송유현에게 자신의 과거를 밝히지 말아 달라는 장미리의 애원에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히라야마는 시청자들에게 약간 의외로 다가온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실에서 쉬는 장미리를 재촉하는가 하면 '중요한 손님이 있다'며 장미리를 접대하는 자리에 내세운 히라야마는 영락없는 포주의 모습이었고 빚을 다 갚고도 떠나지 못하게 하려 성폭행을 시도하는 등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못된 짓은 다 골라하는 남자였습니다. 그런 남자의 순정이라니 드라마의 상식을 뛰어넘는 반전이랄 수도 있고 의외의 진실이랄 수도 있겠습니다.



거짓말까지 감싸줄 수 있는 완전한 사랑?

'사랑'이라는 말로 용서할 수 있는 상대방의 허물은 어디까지가 한계일까요. 말하기 쉽게 조건을 따지지 않는 사랑이야 말로 완전한 사랑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각자 자신의 허용 범위 안에서만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한계를 지닌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마음 만을 믿고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막상 닥쳐보면 쉽지 않은 게 한 인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술집에서 일했던 과거나 양다리가 별거냐 싶어도 일단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잃고 나면 받아들이기 힘들어집니다.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가 술집에서 일했다? '쿨하다'는 말이 유행하는 요즘에도 그런 과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과거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1990년에 방영된 드라마 '완전한 사랑'에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중년의 한 남자(하재영)가 새파란 신입사원(이상아)과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이 여자가 과거에 술집에서 일했고 회사 간부의 숨겨진 여자 노릇도 했었답니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했으면서도 남자는 흔들리고 여자에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하라 재촉합니다.

히라야마의 정체는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던 남자?

그 드라마의 결말은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하는 여자가 맺어지는 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그녀를 사랑하던 남자주인공과 그녀를 애인으로 두었던 불륜남, 모두가 버려집니다. 그 여자와 결혼한 남자는 불륜으로 맺어진 아이까지 자신의 아이로 조건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불륜남의 운전사였습니다. 그 드라마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완전한 사랑'이란 자신의 이해능력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점까지 모두 감싸줄 수 있는 사랑을 뜻하는 모양입니다.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다며 순수한 사랑을 고백한 송유현의 사랑은 그 기반이 몹시 약했습니다. 장미리라는 여자를 믿고 있던 신뢰에 몹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형이라 부르고 싶던 장명훈과 자신 사이를 오간 한 여자, 그녀의 과거가 술집 여자였다는 사실을 그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첫눈에 반한 장미리, 어머니를 닮았다는 그 여자로 인해 상처를 입고 사람에 데이는 일이 그의 정신적 성숙을 가져올 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송유현은 한동안 장미리를 멀리할 것입니다.

순정남 히라야마가 빚을 갚으라 요구할 두 남자

불같은 애정을 보여주었던 전처 때문에 사람에 상처를 입은 장명훈은 그녀의 거짓말을 감싸기 보다 평소 자신의 철학처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상처받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송유현 보다는 성숙한 행동이지만 장미리가 어쩌다 그런 여자가 되었는지 그 욕망의 실체와 과거를 이해하지 못한 행동이기에 오히려 자신이 사랑했던 한 여자를 더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장미리가 올라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그녀 스스로 내려올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그녀가 열다섯살일 때부터 지켜보았다는 히라야마는 그녀의 양다리나 거짓말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어린 장미리의 물새는 운동화를 갈아신기고 업소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는 그는 빚을 갚기 위해 술집 여자가 되겠다는 장미리를 말리지 못한 모양입니다. 동경대에 함께가 동경대 티셔츠를 샀을 때도 미리가 문희주(강혜정)를 만나 휴학중이라 거짓말을 했을 때도 그녀의 거짓말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녀를 10여년 동안 지켜본 그 대가를 찌질하게 장명훈이나 송유현에게 달라고 하지만 마음은 진심이라 합니다. 



문제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

악당 히라야마의 순정이라니 누군가의 말대로 출생의 비밀 보다 더욱 엄청난 반전이라면 반전이 그의 사랑 고백인 듯합니다. 그러나 평생 나쁜 짓하며 조폭들과 함께 하던 남자가 한 팔자사나운 여자에게 순정을 보여줬다고 해서 해피엔딩을 바라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장미리는 학력 위조를 비롯한 엄청난 거짓말로 사람들을 상처입힌 여자입니다. 해피엔딩은 커녕 평범한 미래 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 장미리입니다. 10여년 동안 진심을 바친 히라야마의 사랑이 어떤 역할을 할 지가 중요한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겠죠.
 

히라야마와 상관없이 장미리의 삶은 정해져 있다

장미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거짓말을 감싸주고 송유현에게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걸 털어놓고 장미리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그만두도록 만든다 히라야마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쪽을 선택하든 '사랑하기 때문에' 핑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명훈에게 돈을 돌려주며 내가 돈을 받을 상대는 당신이 아니라고 했으니 어떻게든 송유현을 상대로 마음먹은 바가 있을텐데 그 마음을 드러내느냐 마느냐 그 부분이 관건이 될 것입니다.

아쉽게도 이 남자의 더럽고 치사한, 십년 넘도록 포기하지 않은 끈질긴 사랑은 역할이 거기까지인 것입니다. 송유현에게 과거를 숨길 수 있더라도 즉 거짓말의 유효기간이 조금 더 연장되더라도 다른 거짓말이 워낙 많으니 장미리는 끝내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장명훈도 떠나고 송유현도 떠난 그 자리에서 장미리를 기다려줄 사람이 히라야마가 될 수는 있어도 그의 순정이 당장 보답받을 일은 없어 보이는군요. 10년 넘게 지켜온 사랑의 결말치고는 좀 아쉽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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