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풍선/有口無言

기자는 왜 '미군 성폭행' 피해자를 인터뷰했는가

Shain 2011. 10. 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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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의 흥행으로 사람들은 장애인 성폭행 나아가서는 저항하기 힘든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 더 나아가서 성폭행 자체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소리높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9월 24일에는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한 10대의 여학생이 미군에게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가해자 미군 K이병은 사건 발생 12만인 어제 10월 6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도강간) 혐으로 구속기소되었습니다.

만취한 상태로 새벽 4시경 고시텔로 가 혼자 있던 10대의 여학생을 성폭행한 K 이병은 현재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입니다. 10월 1일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고 법무부를 통해 미군에 신병을 인도 요청한지는 5일만, 사건 발생 12일 만에 구속했으니 이전 사례에 비해서는 상당히 '신속'하게 구속 조치 된 것이라 합니다. 술에 만취해 우발적으로 범행했고 사건 당시의 행적이 기억나지 않는다 증언했지만 CCTV 등을 통해 몇가지 증언은 거짓이었음도 드러나고 있다는군요.

오늘 오전 올라온 동아일보 기사

이 사건에 대한 많은 사람들에 생각이 다양할 것이라 봅니다. 우리 나라 안에서 벌어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피의자를 그것도 자신의 범행 사실을 인정한 가해자를 즉각 구속하지도 못하고 사건 발생 2주가 다 되어 구속수사하는 일이 정말 '신속'한 것인지 의문도 들었을 것이고 다른 나라의 미군 범죄는 대통령이 사과한다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리 낮은 단계의 사과를 받는 것인지 갑갑하기도 하고 무엇 보다 피해 당사자가 얼마나 힘들지 성범죄 수사 원칙은 지켜서 수사받고 있는지 걱정도 많이 했을 것이라 봅니다.

안 그래도 성폭행 피해 당사자들은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하더라도 수사받는 동안 당일의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진술해야하는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때로는 여자 수사관이 아닌 사람에게 심문을 받을 수도 있고 법정에라도 서게 되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 지 증언해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범죄는 신고도 중요하지만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오늘 아침 동아일보에 실린 해당 피해자 인터뷰 기사는 이런 저의 걱정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의 기사였습니다(참고기사 : 동두천 고시원 性폭행’ 미군 어제 구속… 피해 여학생이 말하는 '그날 새벽'). 마치 한편의 옐로 페이퍼 기사를 쓰듯 당시의 상황을 써내려간 본문은 성폭행이 있었던 그 날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는 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피해자 과실론과 자극적인 댓글을 유도하는 기사이기도 합니다.

그에 장단을 맞추듯 해당 기사에는 여학생의 과실을 비난하는 댓글이 수도 없이 작성되기 시작했으며 피해 여학생을 모욕하는 댓글도 동시에 게재되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평생을 두고 상처가 될 '사실'이지만 기자에게는 여학생의 피해 사례가 한편의 삼류소설인듯 흥미를 유발시키는 자극적인 이야기처럼 보였던 것일까요. 댓글을 작성한 사람들도 문제지만 굳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중인 여학생을 찾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물어 인터뷰하고 그런식으로 기사를 작성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또 기사 말미에는 해당 미군이 미안하다는 말을 영어로 하고 자신이 가위로 위협할 때 낸 상처에 밴드를 붙여주었다는 식으로 마무리해 대체 이 기자가 여학생에게 과실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가해자가 상처에 밴드를 붙여줬으니 인간적이란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하려면 최대한 호기심어린 말투를 배제하던가 이 사건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줬어야 하지만 이 기사엔 상처가 되든 말든 상관없다는 잔인한 관음증만 엿보일 뿐입니다.

구속 조치된 미군 K 일병 (이미지 출처 : 한겨례신문)

일각에서는 이번 미군 피의자를 한국쪽에 넘겨준 이유가 미국 보다는 한국의 성폭행 처분이 관대하기 때문이란 말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을 더욱 가중처벌하는 경향이 있기에 몇백년의 형을 내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또 12일 만에 구속 가능하게 해준 것이 영화 '도가니'의 흥행으로 성폭행에 대한 국내 여론이 좋지 않은데다 누적된 미군 범죄에 대한 불만으로 반미 감정이 커질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혹자는 '뼈속까지 친미'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은 이 일에 대해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번 일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SOFA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부에서는 성폭행에 대한 경각심도 낮고 처벌도 미약해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둘 다 맞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강경한 처벌과 보상을 하더라도 피해 여학생의 상처가 완전히 치료되지는 않겠지만 언론에서 그 피해자를 장난감처럼 함부로 거론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지나가다 돌을 맞았다는 이유로 그 피해자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댓글 작성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무지 피해자가 도마 위에 올라와야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피해자는 당시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혼자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 부모가 함께 있지 않더라도 그 여학생이 밤거리를 활보하더라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시스템을 이 사회와 이 나라가 갖춰야할 책임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의 책임을 가진 기관이라 봅니다. 그런 시스템의 결함이나 문제점을 따져볼 생각 보다 피해 여학생을 찾아가 그날의 일을 캐묻는 행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사를 작성하신 기자님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아래에 달린 댓글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면 '피해자의 인권'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방금 올라온 기사에 의하면(10월 7일) 또다른 주한미군이 10대 여고생을 성폭행한 사건이 마포에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사건 발생일은 지난 9월 17일이라는군요.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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