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풍선/有口無言

인화학교, 아직 끓고 있는 우리들의 도가니

Shain 2011. 10. 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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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일을 당해도 저항할 수 없는 어린아이, 그것도 정확한 의사 표현 조차 힘든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저질러진 성범죄. 영화 '도가니'와 소설 '도가니'를 처음 접했을 때 느낀 기분은 '정말 보고 싶지 않다'는 강한 거부감이었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건 그 영화나 소설 속에서 표현된 '사실'이 혐오스러워서도 아니고 불쾌해서도 아닌, 미안하고 답답하고 슬프기 때문입니다. 직접 보고 느끼지 않아도 사회 어딘가엔 부당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건 우리 사회 어딘가에 짓눌리고 억눌린 억울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 3자인 우리들이 영화나 소설로 그 '진실'을 접하고 이렇게 정체불명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동안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2005년부터 꾸준히 노력해온 사람들, 추상적인 '컨텐츠'가 아닌 실제로 일어난 '사실' 앞에서 쉴새없이 행동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광주 인화학교 전경, PD수첩 '도가니' 보다 아팠던 이야기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를 이끌고 있는 김용목 목사(카페 : http://cafe.daum.net/inhwa815)나 국감에서 울먹이며 증언하기도 했던 최사문 교사 등은 꾸준히 그 아이들의 억울함을 호소해 왔습니다. 그들을 알면서도 그들의 기사를 읽으면서도 사회가 외면해 왔던 것도 분명 '사실'입니다.

최대한 냉정하게 정리하려 애쓰고 있긴 합니다만 소설 제목 '도가니'처럼 이 영화 한편 때문에 사람들은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광란의 도가니'를 알게 되었고 피해 학생들이 느끼고 있는 '슬픔의 도가니'를 보게 되었으며 사회를 들끓게 만드는 '분노의 도가니'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한쪽이 찢어질 듯 아파서 외면해왔던 사실, 슬픔이 넘치고 분노가 넘쳐서 사회는 그 사실을 이제 더 이상 모른척할 수 없는 상황이 되버린 것입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피해자를 모른척 버려두었는가. 따뜻한 피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영화와 소설에서 표현된 것 보다 실제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이 증언하는 내용은 더욱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피해자가 청각 장애를 가져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남들이 쉽게 볼 수 있는 학교 곳곳에서 그들을 성적으로 유린하고 폭행했다는 내용은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믿을 수 없게도 그런 사람들이 교사고 교직원이랍니다.

인화학교 사건은 총체적 난국이라 할만큼 사건 발생 과정부터 처벌 과정까지 빈틈 투성이입니다. 우리 나라가 이렇게도 허술한 교육제도와 처벌제도 그리고 복지 제도를 가진 나라였던가 새삼스럽지 않은 진실을 마주쳐야 했던 끔찍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강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사회적 약자에게는 한없이 잔인하게 구는 이 사회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 이 사건에 많은 사람들은 법적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가해자들을 복직시킨 인화학교


어제 방영된 'PD수첩, 도가니, 영화보다 아팠던 이야기'에서 방영된 내용과 지난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방영된 내용을 종합하면 인화학교 사건의 잠정 피해자는 스무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대책위에서 운영하는 다른 학교에서 아직까지 치료와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청각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피해자들로 일부 피해자의 학부모들은 이런 사건에 적극 항의할 수 없는 지적장애인들입니다.

인화학교 교장을 비롯한 가해자들이 그렇게 뻔뻔하게 죄를 저지르고도 큰소리치고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하는 말을 사회가 믿어주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리란 자신감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법적 제도는 그들의 그런 믿음을 뒷받침하듯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며 가해자들을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만듭니다. 말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항거 불능' 상태에 있지도 않았다고 하며 합의한 사건이라 처벌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건 분명히 폭행이며 범죄인데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는 공교육 제도를 채택하고 있고 사립학교로 설립되었어도 대안학교를 비롯한 예외 경우를 빼면 재정 자립율은 높지 않은 학교가 더 많습니다. 대부분 국가의 지원이 없으면 망하는 학교가 더 많은 실정입니다. 적은 자본으로 설립하고 운영은 국가에 맡긴다고 하니 사립학교는 설립만 하면 남는 장사라는 말까지 농담처럼 할 정도입니다.

합의로 인한 솜방망이 처벌과 학교 운영이 정상적이라는 교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운영은 실질적으로 교육청 등을 비롯한 외부기관에서 관리 감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화학교처럼 '족벌'체제로 운영되고 학교 발전기금을 받아도 제재할 수 없거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폐쇄 조치를 적극적으로 할 수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아동 성범죄의 경우 많은 부분 아동의 증언 능력 부족을 이유로 법적 처벌이 미비한 경우도 있고 아동이 나이가 들어 성폭력 사건을 인지한 후 기소할 수 있음에도 공소시효가 존재하고, 또 본인이 아닌 보호자가 합의했을 경우 강경한 법적 처벌이 불가능한 경우가 생깁니다.

특히 이번 '인화학교 사건'처럼 청각장애 등을 가진 아동이 피해자인 경우 증언을 위해 법적, 제도적 조력을 의무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또 예전부터 피해 아동을 일단 보호해야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거나 당사자의 정신적 충격을 고려해 같은 내용은 두번 세번 증언하지 않고 녹화자료로 대체해달란 요구도 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 '도가니'와 소설 '도가니'는 이 사회에 '분노의 도가니'를 끓게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정체불명의 죄책감이 결국 어제 10월 4일, 인화학교 폐쇄 절차를 끌어냈을 지도 모릅니다. 사회복지법인 '우석'은 설립 허가를 취소당했습니다. '자격없음'이 드러난 그들이지만 그들이 운영하는 많은 시설을 동시에 차단할 수 있을 지 그 부분은 의문입니다. 혹은 대표자나 이름을 바꿔 다시 학교를 설립할 수도 있겠지요.

왜 진작에 이 사건을 확실하게 처벌하지 못했으며 가해자들에게 중형을 내리지 못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 허점을 지적하며 분노해왔지만 우리는 이제서야 사회 제도의 공백이 있었음을, 이제서야 인정하고 나섰습니다. 아니 예방을 위한 법안은 있었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쪽이 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픔의 도가니가 다시 광란의 도가니가 되지 않도록, 그렇게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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