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강훈에게 사진을 보낸 건 과연 김상철일까?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의사들에게 가장 두려운 순간은 언제일까요. 제 생각에는 자신의 시술이 지금 누워있는 환자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수술이 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공포는 때로는 그들을 짓누르고 힘겹게 만들 지도 모릅니다. 그런 이유로 수련의들은 딴 생각 할 틈이 없도록 바쁘게 환자를 돌보는 훈련을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 적 있습니다. 환자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자신의 의학적 지식에 불안을 가지기 시작하면 오히려 환자에게 안 좋은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브레인'의 이강훈(신하균)은 누구 보다 냉정하고 칼같은 인물로 자신을 사랑하는 장유진(김수현)의 감정도 잘 모르고 윤지혜(최정원)도 마음아프게 하는 남자입니다만 자신의 어머니 김순임(송옥숙)의 수술에서만은 이성을 잃고 맙니다. 의사들이 가족들의 수술을 집도하지 않은 건 그렇듯 감정을 무자르듯 자르기 힘들어서일 것입니다. 강훈처럼 험하게 살아보지 않고 고생도 모르는채 의사가 되었던 서준석(조동혁)이 환자의 사망 이후 포비아를 겪는 건 의사로서 꼭 겪어야할 홍역같은 것은 아닐까요.

삶과 죽음에 상처받은 의사들, 사랑의 상처를 얻은 윤지혜.

각종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 치료를 원하듯 의사들에게도 상처가 있습니다. 주인공 강훈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신경외과 의사가 되었을테고 김상철(정진영)을 누구 보다 증오합니다. 그에겐 가장 큰 상처가 아버지의 죽음과 힘겨운 세상에서 살아남는 일이었을 겁니다. 결코 좋아할 수 없는 배신자 고재학(이성민)에게 아부하고 그의 혀처럼 굴며 천하대 병원의 패권을 쥐고싶어하는 강훈이 그동안 몇번이나 마음에 없이 허리를 굽히고, 때로는 될 때까지 고집을 피웠을지 그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김상철에게 가장 큰 상처는 강훈의 아버지를 자신의 실수로 죽인 일입니다. 서준석은 자신의 과실이 아님에도 환자가 죽자 수술을 집도하지 못할 만큼 벌벌 떨고 힘겨워합니다. 잘 나가던 의사였던 김상철 역시 그를 극복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때의 일을 기억에서 지워버립니다. 180도 다른 사람이 되어 도덕적인 신경외과 의사로 거듭난 김상철은 아직도 가끔식 자신을 살인자라 부르던 소년 이강훈이 눈에 보입니다. 잊어버렸지만 끝끝내 그의 발목을 잡은 상처, 강훈은 그에게 마주하기 싫은 상처이자 고통이지만 김상철이 의사인 이상 강훈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강훈에 대한 김상철의 진심은 무엇?

이번주 방영분에서 도드라지는 김상철의 행동은 '이중성'입니다. 강훈의 어머니 순임이 죽고난 후 잊어버렸던 과거를 떠올린 김상철은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임상실험 투약책임을 물어 연구원 자리에서 해임시키는가 하면 '내가 살인자라는 것도 밝히지 않을거냐'며 이강훈을 도발하기도 합니다. 반면 자신의 업적을 만들기 위해 화송그룹 차훈경 회장(황범식)에게 접근한 이강훈이 무리하게 미니 개두술을 진행하자 수술은 성공적이지 않았느냐며 강훈을 처벌하려는 차훈경을 설득하기도 합니다.

김상철은 강훈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때로 강훈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는 것일까요. 다음주 예고편을 보니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강훈 아버지가 죽은 이후 김상철은 자책감 때문에 철저히 붕괴되어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같습니다. 김신우(전무송) 교수와 일하던 시절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해리성 기억상실증같은 것이었겠죠.

김상철은 야심만만한 이강훈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환자가 죽어 겁을 먹은 서준석의 경우 단순한 포비아로 심리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김상철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만큼 충격도 컸습니다. 병원장 황영선(반효정)이 속물스런 욕심을 보이자 흔들리는 것도 자신의 도움으로 천하대에 돌아온 강훈이 김상철의 영역을 밀어내겠다는 듯 고재학과 합작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도 그의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를 반증하는 것입니다. 가끔 드문드문 과거를 기억해내고 고통스러워하던 그는 급기야 수술실에서 시야가 흐려져 수술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질병의 징후일 수도 있겠죠.

어쩌면 김상철의 이중적인 마음은 강훈에게서 자신과 같은 의사가 될 가능성을 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늘 냉정하고 차분해 정떨어지는 의사란 평가를 받는 강훈은 최고가 되기 위해 철저히 속물처럼 살아왔습니다. 조교수가 된 지금에 와서야 상대방의 눈물이 마음에 걸리고 환자들의 마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지만 서준석과 이강훈 사이를 오가는 동승만(이승주)처럼 그도 기회만 엿보던 약자에 불과했습니다. 좀 더 큰 성공을 거머쥐기 위해 이강훈이 무리를 한다면 그 과정에서 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대나무같은 강훈의 정신도 부러지고 말지 모릅니다.

고재학과 손잡은 이강훈, 환하게 웃지만 그는 불안하다.

더군다나 강훈은 어머니의 죽음을 보는 순간 이미 이성을 한번 잃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비밀을 알지 못했던 강훈은 '엄마'를 오해했고 어머니의 애정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죽는 순간 강훈의 감정은 폭발하고야 맙니다. 강훈은 모든 도전을 시원시원하게 이겨내지만 그도 평범한 인간이기에 한순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버릴 수 있습니다. 장유진과 윤지혜 사이를 오가고 속물과 의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양심과 욕심 사이에서 방황하는 강훈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궁금한 것이 김신우 박사의 사진, 즉 김상철과 김신우 박사가 함께 찍은 그 사진을 누가 강훈에게 보냈느냔 것입니다. 발신인은 김신우로 되어있었지만 그 우편물은 이강훈의 오피스텔이 아닌 어머니의 집으로 왔습니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주소라는 것이죠. 김상철은 같은 사진을 자신의 의학잡지에서 발견하고 울부짖은 적이 있습니다. 즉 알츠하이머에 걸린 김신우가 정신이 돌아와 그 사진을 강훈에게 보냈거나 김상철이 모종의 계획을 꾸미고 그 사진을 강훈에게 보냈거나 둘 중 하나란 이야기입니다.

김상철도 그 사진을 갖고 있었다. 누가 보냈을까?

김신우 교수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점을 고려할 때 김상철이 사진을 보낸 인물일 가능성도 아주 높습니다. 김상철은 이강훈이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동시에 강훈이 자신의 죄책감을 처벌해줄 당사자가 되길 원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강훈을 도발해 스스로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게하길 원하는 것일까. 완벽해 보이던 의사 김상철이 붕괴하고 등장한 낯선 김상철의 이중성은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 뿐입니다. 당분간 사건을 주도하는 건 김상철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