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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고무 장군과 후연 모용수의 50년 묵은 원한

Shain 2012. 1. 1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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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 초반엔 등장인물들의 지나치게 '남성적인' 발성과 무협극처럼 창작된 내용에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배우 김진태나 임호 모두 사극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연기자들임에도 아직 상대적으로 신인이라 할 수 있는 담덕 역의 이태곤이 영 만족스럽지 못하기도 했구요. 그러나 전반부 후연과의 갈등 상황과는 달리 백제 아신왕(박정철)이 등장한 이후에는 흥미진진한 장면이 자주 연출되고 있습니다. 특히 어제 방영분은 그동안 시청했던 어떤 내용보다 눈길이 갔습니다.

제게 광개토대왕에 대한 첫인상은 '정복군주'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광개토대왕비에 적힌 여러 업적 때문에 그러할텐데 의외로 삼국사기를 뒤져보니 침략하였다는 기록이 생각 보다 적습니다. 후연과 백제의 공격에 방어했다는 글이 더 많아보일 지경인데 삼국사기가 광개토대왕의 정복 기록을 다소 축소시킨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빈틈이 많은 편인 다른 고대사와 마찬가지로 그가 이끌었던 많은 전쟁은 후세인들의 궁금증 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후연과 백제의 공격을 모두 막아야하는 담덕의 양동 작전.

호태왕 담덕이 왕위에 있을 동안 주변국은 유난히 소란스러웠습니다. 백제왕 진사는 조카 아신을 밀어내고 형 침류왕의 왕위를 이어 후계를 둘러싼 갈등이 일어날 것이 당연했고 북방의 후연 역시 모용수의 아들들이 경쟁하여 후계가 매우 어지러웠습니다. 나중엔 고구려 출신 고운까지 후연 왕위 계승에 가세했으니 그들의 불안정한 상황은 주변국들을 위협했고 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백제에서 등극한 아신왕은 국론을 통일하기 위해서라도 관미성등을 침략한 고구려를 공격해야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광개토대왕이 한 사람의 왕으로 성장하는 과정 보다 더욱 재미있고,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했던 정면은 어제와 같은 급박한 전투 상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위에서는 후연이 요동성을 치겠다며 모용수(김동현)가 직접 군을 이끌고 내려 오고 아래에서는 아신왕이 관미성을 탈환하겠다며 총력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요동성을 공격하겠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린 담덕(이태곤)은 그 소문으로 모용수를 위협하며 자신은 병력을 이끌고 백제 관미성으로 갑니다. 양쪽을 오가는 그의 전략도 전략이지만 요동성과 관미성을 지키는 성주들의 각오도 남다릅니다.



고무장군과 후연 모용수의 대를 이은 원한

당나라와 연합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쓰러트린 전략이 그랬습니다. 드라마 '계백'에서도 상황이 묘사되었듯 육지에서는 신라 대장군 김유신이 기세 좋게 버티고 있고 바다에서는 당나라 군대가 수없이 밀려 들어오자 백제는 어디로 병력을 보내야할 지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그 어느 한쪽으로 병력을 몰았다간 나머지 한쪽의 방어선이 무너질테고 병력을 나눴다간 둘 중 어느 한쪽도 제대로 사수할 수 없습니다. 양국의 협동작전은 그렇게 한 나라를 패망하게 만들 수 있는 무서운 전략입니다.

담덕은 우선 양쪽을 사수할 수 있는 장수들을 배치합니다. 수성전을 펼치는 관미성 성주 모두루(임대호)를 중심으로 백제군의 군량을 태우는 작전을 시행하고 군사 하무지(윤승원), 연살타(홍경인), 해모월(김영기) 등이 일단 백제군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상대적으로 장수가 비어 있던 요동성은 국구이자 왕족인 고무(김진태) 그리고 그의 아들 고창(남성진)이 담당합니다. 후연의 물량 공세에도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남몰래 고구려와 손잡은 말갈족 설도안(김규철) 덕분이었습니다.

관미성에서 목숨을 걸고 수성하는 장군 모두루와 군사 하무지.

극중 왕사 고무는 병중에 있음에도 나라가 위태로우니 요동성을 지키려 떠난 것으로 묘사됩니다. 왕후 약연(이인혜)은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가 와병 중이었다며 슬퍼합니다. 북방에서의 전투 경험이 풍부하고 요동 상황에 밝은 고무는 분명 그 전쟁의 적임자이긴 하지만 담덕의 '작은 할아버지'인 그에게 담덕은 임무를 맡기길 주저합니다. 고무의 후연과 '끝을 맺어야할 은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담덕은 허락합니다. 고무는 전연의 후예인 모용씨들에 대한 원한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고무는 삼국사기에도 기록된 인물로 전연이 쳐들어왔을 때(고국원왕 12년, 342년) 고국원왕의 명령으로 전연의 침략을 방어합니다. 그때 전연의 모용황은 고국원왕과 고무의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을 파헤쳐갔고 왕의 어머니 그리고 왕비도 함께 데려갔습니다. 고무가 말한 은원이란 이 때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 전연을 멸망케는 했지만 모용황의 아들 모용수가 세운 후연은 끊임없이 고구려를 괴롭힙니다. 고구려가 백제 관미성을 차지한 것이 392년이니 고무에게는 50년 간의 해묵은 원한인 셈입니다.

목숨 걸고 요동성을 지키는 고무 장군. 과연 그 결과는.

작은 할아버지 고무의 희생으로 담덕은 모용수의 야욕을 잠재우고 후연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제에게 기습 공격을 감행했으니 관미성도 무사히 지켜낼 것입니다. 바야흐로 아신왕의 수난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습니다. 백제는 이 뒤로도 몇번 고구려에게 패배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아신왕은 답답한 속을 달래다 젊은 나이로 죽고 맙니다. 수성전을 하는 관미성을 상대로 이제 조금만 더 가세하면 탈환할 것이라 여겼던 그 순간에 모든 걸 포기해야하다니 화병으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긴 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전쟁은 정복전쟁일 수도 있겠으나 주변국의 어지러운 상황으로 볼 때 방어를 위한 공격이었단 점도 분명한 것같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먼저 공격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전쟁하는 시간, 그로 인해 그의 수명이 짧아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관미성과 요동성을 동시에 공격하는 후연, 백제 두 나라의 모습은 그런 광개토대왕의 위기를 제대로 보여준 연출이고 최근 시청한 '광개토태왕' 중에서는 제일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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