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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기억해, 지친 현대인들에게 휴식이 되는 예인 김병만

Shain 2012. 1. 2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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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나 명절 뿐 아니라 평소에도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이라 아이팟을 비롯한 휴대 기기들이 늘 드라마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요즘은 방송국 다시보기 서비스가 제일 빨라 방송 끝나고 바로 다운로드가 가능하더군요. 방영하는 드라마도 많고 보고싶은 것들도 많다 보니 무얼하든 드라마와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 밤에는 주말이다 보니 평소 보다 방영되는 프로그램이 많고 신년특집극까지 가세해 드라마 편수가 한편 더 늘어있더군요. 개그맨 김병만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설날특집드라마 '널 기억해'가 그것입니다.

새해맞이로 명절 마다 만드는 특집 프로그램들 혹은 기념일에 제작되는 특집극들의 수준이 딱히 뛰어나다고는 하기 힘든 것같습니다. 보통은 시간떼우기 용으로 만들어지는 단막극들이라 그리 큰 기대도 하지 않고 방영되는 내용도 대부분은 잃어버린 인간성에 대한 그리움이나 명절을 되새겨보는 주제들로 한정된 편이죠. 어제 방영된 2부작 '널 기억해' 역시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주 뛰어나다거나 보고 나서 '기막히다'같은 감탄이 쏟아지는 드라마는 분명 아닙니다. 그래도 눈길을 끌었던 이유는 '김병만'의 출연 때문이었을까요.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 덕수, 강수, 은수.

요즘은 '개그콘서트'같은 쇼 타입 개그, 코미디가 주류를 이루는 경향이 있어 '코미디'를 굳이 예능으로 분류하지만 제 기억 속의 '코미디'는 본래 정극의 한 형태이고 배우라면 한번쯤 시도해봐야할 장르로 알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정극 출신들이 쉽게 도전하기 힘든 영역 중 하나가 코미디이기도 합니다. 연기자들 중 몇몇은 시트콤이나 코믹극은 뛰어난 연기력이 요구되는 분야라서 출연을 망설이게 된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하지요. 반면 코미디언들이 연기를 하는 건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유재석이나 이경실, 임하룡같은 배우들의 정극 연기는 상당히 수준급이라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하룡은 최근 코미디 프로그램 보다 영화배우로 더 자주 활약할 정도입니다. 코미디 역시 연기의 한 분야이기 때문에 본래 코미디언은 연기자이고 외국에서도 짐 캐리같은 코미디 전문 배우를 따로 코미디언이라 분류하기 보다 연기자라 부릅니다. 연극영화과 출신은 아니지만 개그맨으로 활약하던 김병만이 정극에 도전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만만하게 보는 착한 덕수의 사랑.

어제 방영된 '널 기억해'에서 보여준 김병만의 연기가 솔직히 기존 배우들에 비해 능숙했다거나 탁월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같이 연기한 신인 배우들 만큼의 저력은 보여줬다는 생각이 듭니다. 키도 작고 생긴 것도 별로 잘 나지 않고 바보같이 착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구두 관리사' 이덕수 역할엔 김병만 만한 배우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가족 밖에 모르고 귀가 얇아 사기도 잘 당하는 이덕수는 속어로 '호구'라 불릴 정도로 남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인물입니다.

그의 상대역을 했던 김진우의 배역은 성공과 돈에 집착하는 남자 하강수입니다. 덕수와 달리 늘 주인공인데다 키도 크고 잘 생기고 남들이 선망하는 잘 나가는 광고회사 팀장인 강수는 위에서는 밥값을 하라는 사장의 압력에 시달리면서 아래로는 부하직원들에게 늘 '밥값'을 하라며 기분 나쁜 말을 퍼붓는 악독한 상사입니다. 돈 돈 거리면서 자신을 압박한 어머니에게 지쳤으면서도 강수 역시 돈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 메말라가고 자신을 챙겨주던 친구 덕수와 은수(이영은)을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잘 나가지만 메말라가는 현대인 하강수.

소중한 친구 두 사람을 챙겨주는 은수는 강수와 같은 광고회사를 다녔지만 지독한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사표를 낸 뒤 덕수와 강수가 사는 마을에 액세사리 가게를 차렸습니다. 좁은 상가 지역에 사느냐 주차할 곳도 없는 강수에게 주차 공간을 내주고 덕수와 함께 강수 엄마가 파는 떡볶이, 순대로 점심을 먹는 그녀에게 상가 동네는 소중한 마을이고 이웃입니다. 강수는 그런 은수를 보며 '속세를 떠났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드라마의 내용은 모두가 예상하듯 점점 더 변해가는 강수와 그를 사랑하던 은수, 또 은수를 해바라기 하며 세 친구의 우정을 지키고 싶어하던 덕수의 삼각관계입니다. 맨날 빼앗기기만 하는 덕수는 무슨 대가를 바라고 이웃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해주는 것이 아니듯 은수가 자길 바라봐주길 원해서 친구들에게 사랑을 퍼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착한 마음과 은수의 넉넉한 인정은 세상을 여유롭게 하지만 팍팍한 삶에 찌든 강수에게 그들의 마음은 가식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일 뿐입니다.

'일 더하기 일은 일'이라는 당연한 결말.

드라마의 결말 역시 명절특집극답게 딱히 멜로물의 전형을 따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열린 결말로 처리하는 것도 아닌 딱 떨어지는 해피엔딩이라 그닥 큰 갈등이나 마음 졸일 만한 장면은 없습니다.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도 김병만이 맡은 이덕수라는 보면 한눈에 파악이 되니까 그리 색다른 마무리로 처리되는 것도 아니구요. 그런 뻔한 내용에 뻔한 연출에도 '김병만의 연기'이기 때문인지 그가 이덕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인지 묘하게 웃음이 나면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극중 캐릭터 이덕수를 보면서 시청자가 본 것은 늘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기고 좋은 인상을 주는 개그맨 '김병만'이고 드라마를 보면서 흐뭇해한 것은 개그맨 김병만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겠죠. 드라마 속 차강수처럼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잠시 웃을 수 있는 휴식을 제공해주는 연예인 김병만.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엔 그런 웃음을 주는 사람들, '개그맨 김병만' 역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작품성이 좋은 드라마냐 아니냐를 따지기 이전에 김병만이 나와서 좋았던 그런 드라마였습니다.

* 명절이라 그런지 온라인이 예전에 비해 썰렁해졌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고향으로 멀리 떠나신 분들 조심히 다녀오시고 연휴 맞으셔서 간만에 쉬시는 분들도 행복한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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