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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송편,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는 우리들

Shain 2012. 10. 2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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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보호색이나 과장된 몸짓으로 위기를 벗어나곤 합니다. 고슴도치는 몸을 한껏 부풀리고 날카로운 가시를 세워 덩치가 큰 동물들이 자신을 해치지 못하게 하고 녹색의 풀벌레들나 개구리, 카멜레온같은 작은 동물은 주변의 풀이나 나무 등과 유사한 색으로 자신의 몸을 감춥니다. 때로는 나뭇잎처럼 보이는 외모로 주변을 속이는 곤충이 있는가 하면 큰 물고기처럼 보이는 가진 작은 물고기도 있습니다. 동물들의 이런 보호색이나 위장의 공통점은 '생존전략'이란 점입니다.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과장된 겉모습이 쓸모있다는 말입니다.

말을 할 줄 알고 문명을 이루고 산다는 사람들도 어쩌면 이 동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무리를 짓는 사람들 사이에서 남들 보다 눈에 띈다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혼자서도 다수의 적을 상대할 수 있는 맹수라면 모를까 약하디 약한 동물이 남들 눈에 띄면 먹이가 되고 맙니다. 어떤 어른들은 되도록 남의 눈에 띄지 말고 되도록 공격당할 약점도 만들지 말고 강한척 쎈척 하는게 생존전략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곤충들의 보호색처럼 자신을 꽁꽁 감추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합니다.

'왕따 당하는 아이가 바보' 아이들은 위험한 세계를 살아간다.

특집 드라마 '못난이송편'이 많은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며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고 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방영된 드라마니 만큼 전체적인 구성이나 인물 설정 등은 단편적이었지만 짧은 만큼 효과적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 같습니다. 단 두 편 방영된 드라마가 이만큼 큰 호평을 얻었다는 건 사회에 '왕따' 현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이 약자가 되어 먹이감이 되는 걸 꺼려하는 것처럼 인간들도 사회적 약자가 되어 왕따가 되길 싫어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동물의 보호색과 왕따의 원리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즉 왕따는 철저히 권력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힘 문제이며 그 단순한 약육강식의 논리 만으로도 충분히 원시적이라는 것입니다. 약한 동물을 버리고 먹이도 주지 않던 동물의 세계가 인간에게 그대로 반영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스스로 문명화된 인간임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언급한대로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는 행위임에도 틀림없구요.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그 존재를 위협해서 지키는 생존이라면 본인을 기분좋게 할 리가 없습니다.

약점잡히지 않으려 기를 쓰는 생존경쟁은 어제도 오늘도 없어지지 않는다.

반장 예빈(주다영)의 왕따로 자살까지 시도한 세진(조정은)은 같은 반 친구인 서유민(김보라)을 왕따시키면 자신은 안전한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이레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역으로 왕따가 될 거란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거죠. 세진은 아슬아슬한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약한 동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가해자 아이들은 피해자가 잘난 척해서 못 생겨서 별나서 남들과 달라서라고 각종 핑계를 대지만 왕따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수천 수만가지가 있습니다. 그들이 동물적인 생존 원리에 동의하고 추구하는 이상 핑계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드라마 속 아이들은 하나같이 왕따의 조건을 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즉 남들에게 약점잡히지 않는 훈련을 어릴 때부터 받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입장에 서면 최소한 자신은 최소한 왕따를 당하지 않으니 먼저 선동하는 법도 본능적으로 배웁니다.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는 이런 질서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익숙하게 반응합니다. 약자인 아이들, 친한 친구 소정(장지은)의 왕따로 평생을 상처받고 살아가는 오순복(경수진)같은 아이는 놀림당하지 않기 위해 오아영으로 개명합니다. 소정과 세진의 부모는 잘못했어도 약점이 될까봐 사과하지 않습니다.

성인이 되어도 왕따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못 생긴 아이는 성형수술을 하고 뚱뚱한 아이들은 살을 뺍니다. 촌티나고 가난한 아이들은 시골 출신이란 것과 가난을 들키지 않으려 합니다. 모든 게 약점이 될 수 있는 학교에서 재수가 없이 걸리면 왕따를 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약점이 잡히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나만 왕따를 당하지 않으면 된다'는 그들의 질서는 살벌하다 못해 끔찍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아이들에게 그런 생존을 가르친 것은 바로 우리들의 사회입니다.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해도 아이들의 생존원리는 어떤 면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한 경쟁을 추구하는 사회, 인간성을 상실한 사회라는 자조섞인 비평을 우리는 수없이 들어왔으니까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부해서 '성적'이라는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가르친 어른들. 상대방의 약점을 쥐어서라도 밟고 일어서라고 가르치는 사회. 그 속에서 아이들이 원시적인 생존 본능만 배우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요. 드라마 속 아이들은 계속해서 괴로워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에 악을 씁니다. 소정의 오빠 한영민(지남혁)처럼 부모에게도 무시당하고 여동생에게 가혹한 말을 들으면서도 뚱뚱하고 살찐 자신 - 즉 약점많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들, 진짜 강한 어른들은 세상에 별로 없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시기를 지켜주고 싶다면 누군가는 변해야한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그대로 지켜주고 싶다면 또 그 아이들에게 소중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갖게 해주고 싶다면 누군가 먼저 달라져야하고 그 주체는 성인들이어야할 것입니다. 약점부터 감추고 남의 약점을 들추는 그런 아이로 자라서는 안된다면 부모들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세진의 어머니가 깨닫고 주희(김정화)가 변하고 소정이 순복을 위로하기 시작한 것처럼 누군가는 먼저 변해야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죠.

물론 드라마 한편이 잘못 흐르고 있는 사회의 질서를 바꿔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태도를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언젠가는 바뀌는 사람들도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특집극' 형식이었지만 꼭 언급되어야할 민감한 사회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많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남과 다르면 못나고 약한 것이 아니라 '못 생긴 송편일수록 더 눈에 잘 띄고 맛도 좋다'는 말을 기억해주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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