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풍선/말풍선수다

여름, 그리고 멍멍이와 장미꽃

Shain 2007. 6. 1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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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기전, 그러니까 5월 말쯤이 되면, 열매를 맺는 복숭아꽃, 체리꽃(또는 관상용 벚꽃), 사과꽃, 배꽃, 눈에 잘 띄진 않지만, 포도꽃.. 같은 것들은 이미 지고 수정을 끝내서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그 열매 조차 크기를 재기 민망할 정도로 작아서.. 5월부터 열매가 익어가는 8-9월까지는, 농사를 직접 짓는 입장이 아닌, 관객들이 관람할 무언가가 별로 없다..어차피 ..최근엔 유기농 재배와 오염 방지를 위해서 솎아낸 열매들은 종이로 감싸두기 때문에.. 열린다고 해도 볼 수가 없겠지만..

그냥 그 열매들의 모체인 나무가..
맑고.. 직설적인 햇빛에 축 늘어져.. 물마시고 싶다고 갈구하고..
흐느적 거리는 것만 가끔 볼 수 있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5월 말부터는.. 과일들이 나뭇잎의 그늘만 찾으려고 드는 뜨거운 여름인거다.. 그 그늘에서 천천히.. 햇빛 받으면서 붉은 색이 들도록 익을 때까지.. 덥고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되는거다.. 파이팅 복숭아나무..
포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모두 마찬가지로.. 한 여름이.. 다가오는구나..

자, 이렇게 가꿔야할 열매들이 많은.. 동네인 이곳에도..
각각의 집집 마다 정원이 있고 그 정원엔 꽃을 피우는 나무가 가득차 있곤 한다.
뭔가 과실이 열리고 실생활에 보탬이 되는 꽃들은 아니지만,
풍성하게 피어난 모습이 제법 괜찮다면 괜찮아서...
큼직한 열매를 맺는 꽃은 다루지도 못하는, 이 사람을 흡족하게 해주는거다..

목련꽃을 시작으로, 수국과 라일락이 사뿐히 꽃잎을 뿌리고 지나갔고..
함박꽃, 작약이 짧은 화려함을 자랑하더니..
가히 예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연두빛의 감꽃도 마당을 휘감아 돌다가 사그라졌다..
작은 종이 울리듯 바람에 흔들거리는, 가냘픈 금낭화도 피었었고..
어쩐지 시원시원한 능소화, 그리고 그 정원을 내다보는 군자란의 꽃들도 그때쯤 함께 피어났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보며 잠깐 웃을, 감각도 없는 이 몸이지만.. 그저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 좋다, 그리고 또 좋다.. 하고 나중에라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더라..
그리고 누군가는, 5월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장미가 마지막으로 피기 시작했다.

첫 송이가 도도하게, 고운 봉우리를 피우고 나면,
잘 아다시피 장미라는 묘목은 가을이 늦을 때까지 남은 봉우리들을 차례 차례 피워주는 꽃이다.
빨간 덩굴 장미가 담장을 휘감고 나오더니, 송이가 제법 굵은.. 하얀 장미도 마당에 다소곳이 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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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예쁜 장미야 흔하고 흔하지만, 잡얼룩도 별로 없는 하얀 장미는 어쩐지 오만하지 않은 듯, 태연하게 피는데.. 예쁘다는 말도 모자란 이 꽃, 그런데 ..이를 어쩌나.. 열매를 맺는 꽃에 바빠서 그 향기를 맡아줄 사람도 별로 없으니..

다만 하얀 털을 가진 우리집 멍멍이만.. 가끔 풀려나면, 그 장미 앞에서 신기한 듯이 얼쩡거린다..
주변에 어린아이를 둔 집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마당에 멍멍이를 풀어두지 못하게 됐는데..
(덩치가 커서 짖는 소리가 무섭고 물릴까봐 겁난다고..)
이 멍멍이를 가끔 풀어주면 그 장미 앞에서 들락거리더라..
열매 맺는 꽃들에 마음을 준 사이 너를 예뻐해주는 건.. 멍멍이 밖에 없네..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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