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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리플리, 신랄한 사회 풍자냐 운나쁜 여자의 넋두리냐

Shain 2011. 7. 1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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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연기나 복잡하고 치밀한 스토리, 또는 사실적인 세트장 등으로 꾸며놓기는 했어도 영화나 드라마의 본질은 본래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과거 7-80년대엔 눈물없인 볼 수 없는 고아의 생활고를 묘사한 영화가 인기를 끌기도 했었고 파란만장한 주인공이 모든 고난을 이기고 성공하는 이야기가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어쩌면 조금쯤은 자기 이야기같은 드라마에 푹 빠져들기도 했고 매력적인 배우들에게 눈길을 주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드라마에 공감하고 때로는 드라마에 반발을 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드라마가 '이야기' 뿐 아니라 사회 문제나 각종 이슈들까지 드라마에 담는 시대가 되었고 사람들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이나 철학 보다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드라마를 보며 시대를 느껴보기도 합니다. 드라마 '미스 리플리'가 화제가 된 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신정아와 변양균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옮겨놓는다는 언론의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학력 위조로 한 분야의 최고 인재가 되었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어버린 신정아 이야기를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레이터의 의도가 중요한 부분이었죠.

이제는 전국민이 다 알게 되버린 출생의 비밀

더군다나 이 드라마는 '학력 위조' 문제로 인생이 바뀐 남자 타블로, 신정아 만큼이나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타블로의 아내 강혜정을 주인공으로 출연시킵니다. 뭔가 사회를 풍자하는 대단한 드라마가 나올 것같기도 하고 어떤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그 '사회성' 부분이 이 드라마의 개연성까지 망치는 악영향을 끼치고 말았습니다. 각각의 상황을 신정아에 맞추다 보니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져 버린 것이죠.

드라마 1회에 주인공 장미리(이다해)를 떠나던 엄마 김정순(최명길)을 붙잡으며 미리의 아버지는 '미리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 장미리의 이름은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데 의붓아들 송유현(박유천)의 약혼자로 나타난 딸을 '이화'는 못 알아봅니다. 고아 출신이고 일본으로 입양을 갔다는데도 혹시 이 아이가 내 딸은 아닐까 생각해보지도 않습니다. 호텔재벌 몬도의 부회장이 한 여자의 과거를 정확히 캐내지 못한다는 것도 수상한데 어제 방송에선 '이름이 바뀌어' 그렇다고 변명까지 하더군요.



신정아에 끼워맞추다 보니 개연성 상실

본래 사기를 치거나 거짓말을 하더라도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분야를 고르는 법입니다. 처음 장미리가 호텔리어로 입사하려 했고 동경대 일어일문학과 출신이라고 했던 건 미리 자신이 일본 문화와 일본어에 능숙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가 건축학 전공자로 특강을 맡고 전문가로 TV에 출연하는 건 누가 봐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물론 예쁜 얼굴 때문에 뭘 해도 통과될 것이란 설정은 이해를 하겠는데 그렇다쳐도 사실감이 떨어지는 묘사입니다.

마치 변양균을 연상시키는 장명훈(김승훈)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명훈의 인맥을 이용해 학교에 출강하고 TV 스타가 되는 부분은 신정아의 상황을 장미리에게 끼워맞추려다 보니 생긴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신정아의 자서전에서 밝혀진 남자들, 그녀에게 추근거렸다는 기자, 교수 등과 구색을 맞추려 했는지 중년의 남자들이 다수 장미리에게 호의를 보냅니다. 예쁜 여자만 보면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와 인맥에 의존하는 나쁜 악습을 풍자하려 했다기 보단 실제 그 장면을 연상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법적 처분과는 별개로 이해받아야하는 여자 장미리

실제 상황을 그렇게 드라마까지 끌고온 것은 좋은데 문제는 실존 인물 신정아와는 다르게 드라마 속 인물 '장미리'의 인생은 통속극 그 자체란 것입니다. 많은 빚을 갚기 위해 또 우연히 만난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딸을 버린 어머니 이화로 인해 그녀의 인생은 버림받고 짓밟혀지게 됩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양되고 양부모에게 혹사를 당한 그녀의 '팔자'는 법적 처분과 별개로 동정받아야 마땅합니다. 거기다 죽어라 사랑하게 된 남자가 더군다나 의붓 오빠라니 지지리 복도 없는 여자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과거는 끝끝내 그녀의 발목을 잡습니다. 학력 위조가 아니라도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히라야마(김정태)는 끝까지 장미리를 쫓아올 것이고 어떤 남자를 만나도 떳떳치 못한 과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 미국 유학 중 순간의 유혹에 빠져 학력 위조를 하게된 신정아와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장미리와는 동정의 무게 자체가 다릅니다. 실제 사실과 통속극이 만나다 보니 드라마 전체의 주제를 흐리게 된 것입니다.

장미리는 정리되지 않은 문제도 많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을까?

장미리 한 개인의 불행을 사회가 모두 용납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극중 그녀에 대한 법적 처분은 누군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죄를 경감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장미리의 상황은 감정적으로 '그럴 만도 하겠구나' 싶은 상황인 반면 신정아는 그렇지 못합니다. 한 개인의 불행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야기할 것이냐를 주제를 꺼내고 싶었다면 이 이야기는 실패한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인생을 카피당한 친구마저도 불쌍하다며 동정할 만큼 그냥 팔자 사나운 한 여자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오늘밤 마지막회인 '미스리플리'에서는 히라야마에게 끌려가 밀항을 할 뻔했던 장미리가 물에 빠져 의식을 잃는 내용이 방영될 것 같습니다. 큰 죄를 지은 어머니 이화도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고 히라야마도 드디어 장미리를 놓아주고 학력 위조 수사도 중지될 것같은 상황에서 거짓말을 한 당사자는 목숨이 위태로워졌습니다. 잘하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범죄의 죄값도 신파극으로 끝날 지 모르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한 여성의 비극으로 드라마가 마무리 된다면 그것도 뒤끝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멋진 사랑은 황태자 송유현의 몫

드라마를 보던 지인이 송유현과 히라야마의 주먹다짐을 보더니 한마디 하더군요. 폼나고 멋진 역할은 재벌 아들 송유현의 몫이고 구질구질한 사랑은 히라야마의 것이라고 말입니다. 드라마에서 보면 재벌 아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멋지게 사라지고 해외로 유학가고 그러던데 밑바닥 팔자들에겐 뛰고 도망가고 결국은 사고를 당해 생명의 위기를 겪는 것 말고는 피할 방법이 없나 봅니다. 술집에서 일하던 고졸 출신 장미리에게는 거짓말 말고는 기회가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극중 장미리의 이야기가 안타깝고 격렬한 것과는 별개로 재미있는 건 만약 이대로 장미리가 죽거나 기억을 잃거나 혹시 사고 휴우증으로 어린아이처럼 살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면 이 드라마 '미스 리플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통속극으로 끝나게 된다는 점입니다. 거창하게 신정아와 학력 위조, 고질적인 사회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주인공은 재벌 아들의 사랑을 얻어보려 했던, 그러나 운명의 장난 때문에 포기하고 신분상승도 실패한 신데렐라일 뿐이라는 것이죠.

전 아직도 장미리를 사랑했던 남자 장명훈과 송유현이 그녀를 이해하려 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도 사문서 위조 혐으로 조사를 받았던 문희주가 적극적으로 장미리를 옹호하는 모습은 이해가지 않습니다. 운이 좋았기 때문에 송유현이라는 구세주가 희주에게 직장을 주었을 뿐 미래를 모두 빼앗길 뻔한 희주는 너무도 쉽게 자신의 친구를 용서합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까지 빼앗긴 여자의 반응 치고는 지나치게 담담해 삶에 아무 의욕이 없는 듯 보이는 밋밋한 캐릭터가 되어버렸습니다. 뛰어난 출연자들의 연기 실력과는 별개로 어떻게 결말이 나든 좀 희한한 드라마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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